[615] 제46장. 대미(大尾)
1. 춘매(春梅)와 자원(慈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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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소연이 춘매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이 들으시는 곳에서 말씀드리기가 그래서 나왔어요. 이모의 가슴에 붉은 기운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뭐라고? 가슴에 붉은 기운이라니? 그럼 무슨 몹쓸 병에라도 걸린 거야? 속 시원하게 말을 해 줘야 알지. 알아 듣기 쉽게 말해 줘봐.”
“병이라면 병이죠. 아주 몹쓸 병이니까요. 왜냐하면 이 병에는 약도 없거든요. 그리고 병도 오래되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를 몰라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그 붉은 기운이 스승님의 가슴에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모는 자꾸 양보만 하느라고 가슴에는 멍이 들었던 거죠? 왜 진작에 스승님을 사모한다고 말하지 못하셨어요. 참 답답해요. 아마도 그게 인연이겠죠? 그러나 지금은 푹 곰삭아서 스스로 감당할 정도가 되었고, 그 가운데에서 푸르고 밝은 기운이 생겨나서 붉은 기운을 감싸고 있어요. 이것은 지혜로운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고 있어서 더 이상 상처로 이어지진 않아요. 정말 존경스러운 춘매 이모에요. 호호호~!”
“소연아, 알지?”
이렇게 말하면서 춘매는 자기의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본 소연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에구 이모도 참, 영안(靈眼)으로 본 것은 본인 외에는 말하지 않아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심지어 스승님께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말씀드리는 것이잖아요. 호호호~!”
“그래, 고마워. 너도 아는 것이 많아서 가끔은 힘들기도 하겠구나. 그렇지?”
“맞아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특히 어려웠던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 본인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적에 더욱 그랬죠. 어떤 경우에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수명이 반년도 남지 않았음에도 본인은 그걸 모르고 백 년이나 살 것처럼 바삐 허둥대는 것을 볼 적에는 참 딱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본인이 알기를 원치 않으면 나도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참 괴로웠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호호호~!”
“그랬구나. 정말 이해가 되네. 참 애 많이 썼구나. 여기까지 오느라고 말이야.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별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호호호~!”
그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서 춘매가 깜짝 놀라서 문을 열어보니 자원이었다. 자원도 춘매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

“어머, 언니! 어서 와요. 먼 길에 힘들었죠? 푹 쉬지 않고 찾아왔어요? 호호호~!”
“응, 춘매가 많이 보고 싶었어. 스승님과 다니면서도 마음의 한 자락은 춘매가 오행원을 잘 지키고 있겠거니 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잖아. 호호호~!”
자원이 말하는 것을 보면서 춘매는 소연의 표정을 살폈다. 소연이 자기의 왼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자원의 가슴에도 그 붉은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말하자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던 것임을 춘매에게 전해 준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더욱 돈독하게 잘 지내시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춘매가 자원을 껴안았다. 자원도 춘매를 껴안았다.
“언니가 무사히 돌아와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호호호~!”
“정말이야. 강호에는 험한 꼴도 많은데 그래도 한산사 사천왕께서 굽어살펴주시고 보우(保佑)하셨나 봐. 이렇게 잘 돌아온 걸 보면 말이야. 호호호~!”
“그야 언니가 착하고 스승님을 잘 챙겨주셨으니까 그렇지. 불한당이 나타나도 언니의 검술이면 충분히 지켜줄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호호호~!”
자원이 소연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소녀네? 어떻게 인연이 되셨을까?”
춘매는 소연에 대해서 자원에게 설명해 줬다. 뛰어난 영안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말해 주자 자원도 깜짝 놀랐다.
“이야~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긴 하구나. 난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야기인 줄로 알고 있었지. 정말 신기한 보물이 오행원에 들어왔네. 그렇다면 오행원 식구들에게 다가올 길흉에 대해서도 미리 판단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거지?”
“당연하죠. 다만 소연을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요. 호호호~!”
춘매의 말에 자원도 얼른 알아 들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지, 뛰어난 능력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힘들게 하니까 말이지?”
“그러니까요. 호호호~!”
소연은 자원에게도 인사를 했다.
“자원 이모께서도 많이 가르쳐 주세요. 부족한 것도 많아요. 그렇지만 가르쳐 주시면 뭐든 부지런히 배울게요. 소연이 보기에 이모는 가르치는 능력을 타고나셔서 머리에 후광이 맑은 가을하늘의 색이에요. 감정에는 전혀 휘둘리지 않고 차갑고 맑은 이성으로 상황에 대처하시네요. 원래는 감정의 영역도 컸었는데 검술을 익히고 오행을 공부하시면서 그것이 순화되어서 거의 없어지셨네요. 이제는 거의 관음보살님 급이되셨어요. 호호호~!”
자원은 소연의 말에 듣기 좋으면서도 멋쩍어서 말했다.
“뭐야? 이모를 놀리면 되나? 호호호~!”
“놀리는 것도요 놀릴 만큼의 공부가 되셔야 놀릴 수가 있죠. 춘매 이모의 붉은 기운과 자원 이모의 푸른 기운이 어우러지니까 하나의 태극이 생겨나요. 그래서 서로 만나면 안정되고 평온하지만 서로 헤어지면 그립고 궁금하고 그래서 자꾸 생각나는 인연인데, 소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기운을 얻을 수가 없는데 두 분은 어쩌면 그런 기운을 얻게 되셨는지 부러워요. 호호호~!”
“어머, 정말? 그래서 매일 돌아다니면서도 춘매가 늘 떠올랐던가 보다. 이제야 그 비밀을 알게 되었네. 호호호~!”
춘매가 의아하다는 듯이 소연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기운을 볼 줄 모른다고 함부로 말하는 거 아냐?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소연에게 어떻게 그런 후광이 없을 수가 있겠어?”
“아, 실은 맑은 후광은 있죠. 내가 맑아야 다른 후광들을 살펴볼 수가 있으니 그렇게 고운 색의 후광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이에요. 호호호~!”
“원래 그렇게 되는 것이었구나. 정말 재미있는 소연이네. 호호호~!”
춘매의 말을 듣고 있던 자원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이번에 같이 온 혜정(慧正)이라는 아이 봤어?”
“봤죠. 어떻게 인연이 되셨는지 몰라도 상냥하고 재치가 있어서 스승님이 좋아하시겠던걸요. 호호호~!”
“말도 말아, 어찌나 맘에 들어 하던지 질투가 다 생길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그 아이를 맘에 들어 한 이유가 뭔지 알아? 춘매를 닮아서라는 거야. 나 참. 이렇게 말하면 싸울 수도 없고 내가 어떻게 해야겠느냔 말이지. 호호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소연에게 물었다.
“아까 다 모였을 적에 백차방에서 봤지? 혜정의 후광이 궁금한데 말해 줄 수 있어?”
“그럼요. 다른 사람의 후광을 말하게 되더라도 좋은 것은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요. 혜정의 후광은 연보라의 빛인데 약간의 주황색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차차 이해하게 되겠지만 흔하지 않은 후광이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선도(仙道)를 수련할 인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선도라고? 그건 무슨 뜻이지?”
“그건 논리적으로 오행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에서 또 다른 길이라고 할 수가 있죠. 그런 후광을 가진 사람 중에서 예전에 모셨던 포충 스승님이 계셨는데 스승님도 선도(仙道)를 수련하셨거든요. 그래서 혜정 낭자도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어요. 혹 동행하면서 느낀 것이 있으세요?”
자원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응, 특별한 것은 못 느꼈는데 누구하고든 말을 잘하는 것 같았어. 원래 용행십팔식(龍行十八式)을 하면서 차관에서 생활하다가 우리를 만나서는 갑자기 그 일을 그만두고 따라붙었거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예사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봐야겠지?”
“어쩐지, 이제 이해가 되네요. 잘 어울리면서도 신비로운 존재일 거예요. 앞으로도 오행원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이고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소연의 말을 들으면서 자원은 궁금한 것이 생겨서 물었다.
“말이 나와서 궁금해졌는데, 어떤 후광을 가진 사람은 기분이 좋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아, 당연하죠. 자원 이모의 푸른 기운은 지식을 수용하는데 최적화(最適化)가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자기의 내공으로 흡취(吸取)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죠. 호호호~!”
“어머, 그런 거였어? 설마 나쁜 것이라고 나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
“절대로 아니죠. 비난하다니요. 그렇게 해서 또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바로 나눠주시는 걸요. 어미 새가 새끼들을 육추(育雛) 하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다행이야. 괜히 등줄기가 써늘했잖아. 호호호~!”
“실은 후광의 종류를 이루 다 말로 할 수는 없어요. 간단히 말하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할 수가 있을 거예요. 아, 흡사 사람마다 팔자가 다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궁금하신 자원 이모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있는 것은 대체로 열 종류의 빛으로 나눠서 말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겠구나. 실로 놀랍네. 열 가지도 괜찮아. 그것만으로도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자원 이모는 느낌이 발달해 있으셔서 ‘붉은빛이 보이는 듯한’이라고 생각이 되거나, 혹은 ‘누런빛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을 거예요. 그것이 바로 후광을 느끼시는 거니까 그대로 믿으시면 되죠. 다만 선명하게 보지는 못할지라도 그 느낌을 갖게 되는 것도 보통의 능력은 아니거든요. 주로 푸른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해요.”
“맞아! 가끔 그런 기운을 느낀 것같아. 가령 질이 나쁜 악한을 만나게 되면 그의 얼굴에서 잿빛의 검은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거든.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검을 뽑아서 혼을 내야 해. 어물거리다가는 얕보여서 행패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야. 호호호~!”
“맞아요. 바로 그거죠. 특히 검은 빛이나 회색빛을 가장 꺼리는데 이렇게 짙은 빛은 아마 춘매 이모도 느끼실 수 있어요. 다만 그것이 어슴프레해서 긴가민가 하실 따름이죠. 그렇잖아요?”
“응, 맞아, 그걸 또 맞추네. 신기하다 정말. 호호호~!”
“그러니까 춘매 이모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거둬줘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나셔서 그래요. 웬만하면 밥을 주고 싶은 어머니의 심성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특별히 선악을 크게 구별하지 않으려고 하는 능력을 갖게 되신 거죠. 반면에 자원 이모는 선악이 분명해서 흑백을 나누는 능력이 탁월해서 스승님을 보호하면서 동행을 해도 위험한 경우를 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거예요.”
두 사람은 소연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방범 담당이 참나무 방망이를 ‘딱딱’ 두드리면서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삼경(三更)인 줄을 알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우창은 언제나처럼 일상으로 돌아와서 새벽안개가 자욱한 강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오늘은 옆에 서옥과 동행했다. 서옥은 참으로 오랜만에 우창과 나란히 강변을 거닐었다. 두 사람은 말이 필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만치 의자에 고월이 앉아서 안개 자욱한 강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는 다가가서 말했다.
“여, 고월도 일찍 일어났구나.”
우창의 말에 고월이 고개를 돌려보고는 말했다.
“오붓하게 산책 중이신가 보구나. 보기 좋네. 하하하~!”
고월을 보자 서옥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석을 돌봐야 하겠다면서 먼저 돌아가고 둘이 남았다. 둘이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시라고 자리를 비켜 준 것을 알고서 우창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고월이 우창에게 말했다.
“우창이 없는 동안은 뭔가 모르게 허전했는데 이제 다시 주인이 돌아오니까 뭔가 모르게 충족된 느낌이 있네. 이게 뭔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하하하~!”
“정말 든든하게 믿고서 돌아다녔는데 이제 또 같이 대중들을 이끌고 가도록 하세. 하하하~!”
“당연히 그렇게 하고 싶지. 그런데 노산(嶗山)에서 전갈이 오지 않았겠나. 우창도 없는데 홀연히 떠날 수가 없어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네. 이제야 노산으로 떠날 수가 있게 되었으니 만나자마자 이별이지만 그것조차도 뿌듯한 마음이 드니 이것은 또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군. 하하하~!”
우창은 고월이 들려주는 뜻밖의 말을 듣고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또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그렇다면 어쩌겠나? 아마도 도관에서 필요로 하는 모양이로구나. 옛날에 노산에서 살면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공부하던 시절이 새삼 그립구나.”
“맞아. 그 시절의 풋풋했던 나날이 두고두고 그러울 거네. 하하~!”
그때 소연과 자원이 새벽에 바람쐬러 나왔다가 우창과 고월을 발견하고는 다가와서 인사했다.
“어머 싸부랑 고월 사부가 같이 계셨네요? 잘 주무셨지요?”
“자원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노산에서 즐겁게 살았던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왔구나. 고월이 노산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뭔가.”
“노산은 왜? 무슨 일로 가시는데요?”
“응, 스승님께서 다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하시니 어쩌겠나 무슨 일인지는 가봐야 알겠어.”
고월이 말하는 모습을 소연이 빤히 바라보자 자원도 그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소연에게 물었다.
“소연아, 혹 무슨 조짐이 보이는 거야? 보인다면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어. 고월 사부는 자원이 아끼는 소중한 분이거든.”
잠시 망설이던 소연이 자원에게 말했다.
“자원 이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냥 넘어갈 수도 없네요. 실은 두 가지의 빛을 봤어요.”
“두 가지나? 어디 자세히 이야기해 줘봐.”
소연이 긴장하고 말하는 것을 본 우창과 고월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짝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소연이 세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노산이라는 곳이 북쪽인가요?”
자원이 잠시 생각하고는 얼른 말했다.
“맞아! 북쪽인데 왜 그래? 안 좋은 조짐이 보이는 거지?”
소연이 무슨 말을 하려다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자원이 다시 다그쳐 물었다.
“아니, 소연이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들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말을 해 줘. 아무래도 나쁜 조짐이 있는 거지?”
자원의 말을 듣고서도 냉큼 말하지 않던 소연이 고월에게 불쑥 물었다.
“고월 스승님, 여쭙고자 해요. 의리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목숨이 중요할까요?”
고월은 소연의 당돌한 말에 내심 놀랐으나 자원의 태도로 봐서 허투로 들을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물론 의리가 중요하지. 그래서 가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의리도 내가 살아있어야 지키는 것이니 죽고 없는 다음에야 의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맞아요. 지금 북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 거죠? 그래도 스승님에 대한 의리로 인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가려고 하는 것이잖아요?”
“오호! 소연의 통찰력이 놀랍구나. 딱 말한 그대로네. 그래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것도 오늘 바로 떠나려고 한 것이었네.”
“소연의 짧은 안목으로 본다면, 스승님이 가시거나 안 가시거나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예요. 그 스승님은 이미 피할 수가 없는 화를 입게 될 것이고요. 그런데 스승님께서 가셔서 괜히 액난(厄難)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소연의 말에 자원은 무척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 길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실은 나도 고월 사부의 미간에 낀 암회색의 기운을 보면서 내심으로 꺼림칙했거든. 그 방법이 있는지를 찾아봐.”
“북쪽으로 흐르는 기운은 암적색(暗赤色)이고, 동쪽으로 흐르는 기운은 청록색(靑綠色)이네요.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그러니까 동쪽으로 피하면 된다는 말이잖아? 진작에 그렇게 말을 해 줄 일이지 괜히 놀랬잖아. 호호호~!”
자원은 해결책이 있다는 소연의 말에 비로소 안도했다. 그러나 소연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아니,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조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뭔데? 뭐든 기탄없이 말해 줘.”
“동쪽에 인연처는 있으신가요?”
소연의 말에 고월이 웃으며 말했다.
“인연처야 발길이 닿는 곳이 인연처 아니겠나?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왜 걱정을 하는 거지?”
“그게 아니라 반겨줄 곳이라야만 인연처가 되기 때문이거든요.”
자원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어제 언뜻 현지가 강소(江蘇)의 어딘가로 갔다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참 고월 사부? 현지가 간 곳이 어디죠? 강소성 어디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 나도 지나가는 말이라서 흘려 들었는데 그건 진명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고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원은 진명을 찾았다. 진명은 새벽에 일어나서 조용히 명상하고 막 일어나려든 참이었다.
“현지가 간 곳 좀 알려 줘. 급해.”
“아니, 무슨 일이 있어. 언니?”
“응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알려 줘봐.”
진명이 적어 놓은 것을 찾아서 읽어 줬다.
“내가 적어 놓은 주소는 강소성 염성현의 신계(新界)에 있는 해안도관(海安道觀)이라고 되어 있네. 왜 그러는데?”
“응, 알았어~!”
자원이 허둥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진명도 궁금해서 얼른 뒤를 따라 나섰다. 아직도 우창과 고월은 강변의 의자에서 토론하고 있었다.
“고월 사부, 현지가 있는 곳의 주소를 알아냈어요. 여기로 가시면 되겠어요. 서두르세요.”
자원의 말에 소연이 다시 자원이 들고 온 종이에 뭔가를 적으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고월 스승님, 잘 들으세요. 오행원에서 출발해서 북으로 최소한 400리는 가야 해요. 이것은 북쪽에 있는 인연의 끈을 끊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400리만 지나면 우회(右回)해도 괜찮아요. 그다음에 동쪽의 해안도관이라는 곳으로 가서 2년만 머물러 계시면서 수행하시노라면 이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이 될 것으로 보여요. 잘 이해하셨나요?”
고월은 아직도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그래도 워낙 진지하게 말하는 소연의 표정과 걱정하는 자원의 모습에서 아무래도 이것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이해했다.
소연은 고월의 표정을 보고서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다시 우창에게 말했다.
“이번에 같이 갔다가 돌아온 여정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겠어요. 말을 쾌속으로 몰아야 가장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거든요. 쌍두마차로 두 사람만 태우고 달리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충분히 될 것으로 봐요. 그러니까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 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한 소연이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을 본 자원이 거듭 고월에게 다짐해 놓고는 서둘러서 여정에게 다녀오라고 한 다음에 비로소 안심하고 우창과 함께 조용히 고월을 전송했다. 많이 알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조용히 오행원을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