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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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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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천수

[614] 제45장. 만행(漫行)/ 19.귀로(歸路)

[614] 제45장. 만행(漫行)/ 19.귀로(歸路)

[614] 제45장. 만행(漫行)

 

19. 귀로(歸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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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여정의 발길이 바빠졌다. 귀가하는 길에 마차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어딘가 빠지거나 부서진 곳은 없는지도 살피고 말들의 몸도 이상이 없는지 챙기면서 콩과 당근을 가져다가 넉넉하게 먹였다. 말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지 코를 벌렁거리면서 힝힝거렸다.

“여정은 벌써 준비가 끝났구나~!”

푹 자고 일어나서 산책을 다녀오던 자원이 던진 아침 인사였다.

“누님도 편히 쉬셨습니까?”

“그래, 나도 잘 쉬었어. 싸부는 아직 주무시나?”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고단하셨나 봅니다. 하하~!”

“가는 길에 공화(空華) 선생은 댁에 모셔다드리고 가야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정도 헤어지려니 아쉬움이 큽니다.”

“원래 회자정리(會者定離)잖아. 호호호~!”

“누님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익숙하시겠지만 저는 아직 세상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그 후유증이 며칠씩 가곤 합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그렇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이별은 적응이 잘 안 됩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에 기현주가 밖으로 나오다가 대화를 들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벌써 헤어질 준비를 끝낸 거야? 이거 서운하잖아?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자원이 입을 삐죽하면서 말했다.

“맞아요. 언니랑 같이 다니느라고 지긋지긋했는데 이제 홀가분한 것이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잖아요? 호호호~!”

“정말이야? 이제야 자원의 진심이 드러나는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기현주의 말에 자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모습을 기현주가 못 봤을 리 없지만 애써 못 본 채하고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자원은 돌아서서 눈가를 훔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밖으로 나오던 하염리가 여정에게 외쳤다.

“여정(旅鼎), 말만 돌보지 말고 씻어. 너만 그냥 있잖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정작 내 일을 못 살폈구나. 하하~!”

어른들 사이에서 항상 섬기는 입장에만 있다가 하염리를 만나면서 여정의 표정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문득 하염리에게도 아호를 하나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식탁에 나와서 앉아있던 우창을 보자 여정이 말을 꺼냈다.

“스승님, 이제 하염리도 공부에 입문했으니 멋진 아호를 지어주셨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 그렇구나. 여정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으면 말해 볼까?”

“예? 제가요?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당연히 스승님께서 지어 주셔야지요. 그건 아닙니다.”

“그래? 여정이 하염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음, 드는 생각은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에 비해서 어른스러운 모습이 자꾸 느껴져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혜(慧)를 하나 넣어주면 되겠구나. 또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느냐?”

“아니, 아호는 스승님께서 지으셔야......”

“그래, 내가 짓고 있잖은가? 여정이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물어 볼 따름인데 뭘. 하하하~!”

“예, 그렇다면 앞으로도 올바른 안내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 그러면 정(正)이로구나. 하염리의 호는 혜정(慧正)이라고 해 주면 어떻겠어?”

“예? 아, 물론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주인이 아침밥이 다 되었다는 외침에 모두 식당으로 모여들다가 우창과 여정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서 자원이 끼어 들었다.

“아니, 뭐야? 두 사람은 이 자원을 빼놓고서 무슨 작당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아, 나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정이 하염리의 아호를 하나 지어주자고 하기에 나온 말이지 뭘 빼놓고 작당하긴 하나. 하하하~!”

“어? 그랬구나. 그래서 어떤 호로 결정했어?”

자원이 여정에게 묻는데 마침 하염리가 아침밥 먹으러 나오다가 그 말을 듣고서 눈이 휘둥거레졌다.

“예? 아호를요? 저같이 어린 사람이 무슨 아호예요. 건방져 보이잖아요? 그냥 하염리로 할래요. 호호호~!”

그러자 여정이 하염리에게 말했다.

“아니, 네가 그렇게 말하면 한 살 더 어린 나는 어쩌라고?”

“여정과 의논해서 하염리의 아호는 오늘부터 혜정(慧正)으로 부르기로 했다. 다만 하염리가 좋다고 하면 말이지. 어때?”

“옙~! 좋고 말고요. 그렇게만 된다면 살아갈 보람이 있겠어요. 앞으로 그렇게 불러주세요. 남들은 아호를 받으면 호 턱을 낸다고 하던데 혜정은 뭘로 대접해야 할지 그게 걱정이네요. 호호호~!”

“우리 오행문에는 그딴 것은 없다. 다만 열심히 수행하는 것만이 오히려 호 턱이라고 생각하렴. 자, 음식 식는다. 어서 먹자.”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은 일행이 모두 말없이 마차에 올랐다. 음이와 양이도 신이 나는지 하늘을 향해서 크게 외쳤다. 그것을 본 여정이 혜정에게 말했다.

“오늘은 음이랑 양이도 신이 나서 저러고 있는 걸 보면 동물이라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교감이 되는 것 같잖아?”

“그런데 말의 이름이 왜 음이랑 양이야? 혹시 음양(陰陽)의 그 의미인 거야? 그건 아니지?”

혜정의 말에 여정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흑마는 음(陰)이, 백마는 양(陽)이야. 참 간단하지? 하하~!”

나이는 혜정이 한 살 위이기도 했거니와 여정은 듬직하고 하염리는 영리해서 두 사람은 재바르게 일행의 시중을 잘 들었다. 어느 사이에 둘은 서로 말을 트고 있었다.

“넌 여정(旅鼎)이고 난 혜정(慧正)이니 오누이 같아서 더 정감이 가지?”

“그런가? 어쩌면 스승님의 의도한 바일까?”

“어? 그러셨을 수도? 그렇다면 두 아호를 붙여서 시라도 하나 지어 볼래?”

마부석에 붙어 앉은 두 사람은 무엇이 흥겨운지 재잘재잘 수다가 끊임이 없었다. 혜정의 말에 여정이 잠시 생각하고는 시를 지었다.

 

커다란 밥솥[鼎]을 등에 지고 

강호의 산과 바다를 누비며[旅]

올바르게[正] 배운 지혜[慧]를 베푸네

 

“어? 한 구절이 더 있어야 하는데? 뭘로 하지? 생각이 나면 네가 마무리를 해 봐. 난 이런 것에는 소질이 없단 말이야.”

여정의 말에 혜정이 나머지 한 구절을 채웠다.

 

커다란 밥솥[鼎]을 등에 지고 

강호의 산과 바다를 누비며[旅]

올바르게[正] 배운 지혜[慧]를 베푸니

하루를 살면 공덕도 그만큼 커지네

 

“와! 깔끔하네. 하하하~!”

“그럴싸하지? 호호호~!”

 

마차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소요원(逍遙園)의 앞마당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풍경은 또 색다른 꽃이 피어나서 출발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고 있었다.

 


 

 

기현주가 도착한 것을 본 소요원의 가족들이 모두 달려 나와서 환영했다. 여장을 풀고 전에 묵었던 곳에서 그대로 쉬면서 즐겁게 견문한 것에 대해서 담소하면서 다시 사흘을 머물고서야 비로소 소주로 향해서 출발할 수가 있었다. 

기현주는 작별하면서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다음에 시간을 내어서 오행원으로 가서 살겠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달랬다.

자원도 정이 들어서인지 기현주를 안고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등을 토닥였다. 아무래도 홀로 있을 기현주가 더 아쉬웠을 텐데 오히려 떠나는 사람들이 더 서운해하는 것이었다.

“동생 덕에 세상의 이치도 배우고 오행의 공부도 많이 했으니 다음 생에는 더 열심히 시봉(侍奉)할거야. 이번 생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어서 양보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야. 호호호~!”

 

소요원에서 기현주와 이별하고서 마차는 출발했으나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쾌활하고도 시원시원한 기현주가 없어서라고 생각하니까 모두 서운한 마음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만남과 이별에 익숙하다고 해도 적지 않은 나날을 함께 하면서 마음을 나눴던 도반인지라 그 느낌은 남달랐던 것도 있었지만 또 다음을 기약하면서 애써 자신들을 위로했다.

 

“싸부, 그간 적지 않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지만 유독 공화(空華) 선생 기현주 언니와는 감정이 유별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아, 자원도 그랬구나.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야. 이유는 아마도 소요원에서 주고받았던 많은 학문의 대화가 앙금으로 남아서가 아닐까?”

다시 저마다의 사유로 빠져들었는지 한동안 여정의 외침과 마차의 삐걱대는 소리만이 고요한 숲길의 적막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을 달린 마차는 비로소 소주의 입구인 태호(太湖)가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다시 두어 시진이 지나자 한산사(寒山寺)가 나타났다. 여정이 마차를 한산사 입구에 세우자 일행이 모두 내려서 한산사의 대웅전으로 올라가서 부처님께 무사히 귀환하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다. 법당에서 나오는데 마침 지객 화상이 지나가다가 우창을 발견하고서 반갑게 말했다.

“아니, 오행도사께서 어쩐 일이오? 한 동안 안 보이기에 면벽수련에 들어갔나 했더니 어디를 다녀오셨던 게요?”

“스님, 평안하셨습니까? 며칠 나들이를 하고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부처님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들렸지요. 도량은 여전합니다. 하하하~!”

“아, 그러셨구려. 우리야 달리 변화가 있을 것이 없지요. 그날이 그날인 채로 이렇게 살아가는 불제자의 삶이지 않습니까? 허허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무탈하게 하루를 보낼 수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이오. 알면서도 자유롭게 나돌아 다니는 우창 선생을 보니 괜히 심통이 뻗혔지 뭡니까. 허허허~!”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또 놀러 오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허허허~!”

그 사이에 우창 일행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어갔는지 춘매와 염재가 달리다시피 뛰어나오다가 일행을 마주하고는 맨바닥에 절을 하면서 무사귀가를 환영했다.

“스승님, 잘 계시리라고 생각은 했으나 모습을 뵈니 너무 좋아보이세요. 먼 길에 객고도 없어셨던가 보네요. 호호호~!”

“춘매도 여전하구나. 반가워. 여러 식구들 거느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별일 없이 잘 지내셨는가?”

“우리야 스승님이 다 닦아놓으신 터전에서 밥만 축내면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한 것밖에 더 있나요. 염재가 오히려 안과 밖으로 뛰어다니느라고 고생이 많았지요.”

우창이 염재를 보니, 염재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오랜만에 뵙는 스승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감격이 복받쳤던 모양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서둘러서 백차방으로 향했다. 없는 사이에 오행원은 어제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마음이 놓이는 우창이었다.

제일 먼저 진명(眞明)이 뛰어왔다. 우창을 보더니 두 손을 덥썩 잡고서는 반가움에 겨워서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우창이 등을 토닥여 주자 비로소 진정이 되는지 말했다.

“스승님, 다음에는 진명이도 꼭 데리고 가 주세요. 스승님이 떠나신 다음 날부터 같이 따라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어요. 날마다 아침이면 밤사이 도착하셨나 하고 기웃거리고 해가 저물면 마차 소리가 들리나 싶어서 문밖을 내다보곤 했는데 그것도 못 할 짓이더라구요. 호호호~!”

“어허! 그랬구나. 미안허이. 그래, 다음에는 같이 떠나도록 약속하지. 집을 지키고 식구들 관리하느라고 고생이 많았구나. 그렇지 않아도 가끔 진명이 생각났어. 그 특출한 지혜를 빌릴 수가 없을 때는 말이지. 하하하~!”

“어마! 정말이시죠? 그렇다니까요. 무사히 귀가하셔서 다행이에요. 이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발 뻗고 자겠어요. 호호호~!”

백차방이 떠들썩했다. 모두 뛰어와서 저마다 반가움을 전하고 인사를 나누느라고 반시진(半時辰)은 족히 걸렸다. 그러고 나서야 우창은 안채로 갔다. 못 본 사이에 부쩍 커버린 일석의 손을 잡고 댓돌을 내려오는 아내 서옥(瑞玉)을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부둥켜안았다. 서옥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반가움에 겨워서 우창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석도 옆에서 손을 모으고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우창은 아이도 안아 올려서 눈을 맞추면서 말없이 볼을 부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했다.

“잘 계시다 올 줄 알았어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어서 제자들에게 가보셔야지요. 다들 목이 많이 말랐을 거예요. 호호호~!”

그제야 웃으면서 말했다. 우창도 서옥을 다시 꼭 안아주고는 백차방으로 향했다. 고월이 제자들과 함께 백차방으로 오다가 우창과 마주쳤다. 두 손을 활짝 펼쳐서 반갑게 달려와서 두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어허! 간밤에 길몽이 보이더니 우창이 오늘 돌아오려고 그랬군. 세상 풍경도 많이 접하고 새로운 공부도 얻어서 알차게 귀가했겠지? 이제부터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려면 힘들겠군. 하하하~!”

“정말 고월이 있었기에 나도 마음 놓고 강호를 유람할 수가 있었네. 내가 없는 사이에 오행원을 돌보느라고 수고 많으셨겠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보상은 내가 다니면서 넓힌 견문(見聞)으로 보상하도록 함세. 하하하~!”

고월과 같이 백차방으로 들어가자 벌써 삼삼오오로 모여 앉아서 자원과 여정과 삼진을 에워싸고 오가면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묻고 답하면서 시끌시끌하다가 우창이 들어오자 모두 조용해졌다. 가운데 탁자를 비워놓아서 고월과 같이 앉자 백차방주 연화(緣和)가 따끈하고 향긋한 녹차를 우려서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말할 수 없이 반가웠으나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옆에서 손을 모으고 서서 우창을 바라봤다.

“연화가 끓여주는 차를 못 마셔서 고량진미를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네. 고생 많으셨지?”

우창의 너스레에도 연화는 미소만 짓고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말하면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다. 그리고 모두 그러한 심경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렇게 귀환의 기쁨을 나눈 다음에서야 비로소 평소대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고 나자 문득 현지(玄智)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우창이 춘매에게 물었다.

“춘매, 현지가 안 보이네? 어디 편찮은가?”

“예, 스승님, 그 사이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네요. 현지는 혜암(慧岩) 노사께서 어떻게 아시고 전갈(傳喝)을 보내오는 바람에 혜암도장을 관리하게 되어서 떠났어요. 동해가 보이는 강소(江蘇)의 어디라고 했는데 진명이 적어 뒀을 거예요.”

우창은 문득 잊고 있었던 혜암 스승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다가 보이는 멋진 곳에 수도장을 마련하셨던가 보다. 현지는 항상 차분하게 열심히 뭐든 하니까 기어이 끌고 가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잘 된 것이잖아? 축하해야지. 달리 해 준 말은 없고?”

“말이야 뭐 달리 있겠어요. 마음은 두고 간다고 한마디 했어요. 나중에 찾아와도 냉대하지 말아 달라는 말도 남겼죠. 정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는데 도와달라는 말씀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셨나 봐요. 다음에 또 보면 되잖아요. 호호호~!”

춘매가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고 웃으며 말했다. 가기 싫었다고 하는 말이 우창은 짠했으나 그것도 인연인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 외에는 모두 잘 있는 것으로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춘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스승님 채소연(蔡昭娟)이라고 기억하세요?”

“응? 채.... 소.... 연....?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누구지?”

“어머, 잊어버리셨구나. 염재는 잃었던 동생이 돌아왔다고 그렇게도 반가워 하던데 말이죠. 호호호~!”

“근데 채소연이 오행원에 왔다는 말이야?”

“맞아요. 그런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으시는 것이 맞구나. 에구 어쩐담. 소연이가 들었으면 서운하겠는데 말이야. 호호호~!”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네? 어떻게 생긴 사람이지?”

“에구~ 맹자의 고향인 추성(楸城)에서 굿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연이라고 염재가 그렇게나 화려한 무용담을 펼쳐 놓았는데 그사이에 스승님은 까마귀 고기를 드셨나 그렇게 말끔하게 잊어버리셨다니 쯧쯧~!”

우창이 곰곰 생각해 보니까 비로소 자기에게 할아버지라고 했던 야무지게 생긴 여아가 떠올랐다. 

“아, 그 아이가 소연이었구나. 잠깐 봤고 오랜 시간 함께 하지 않아서 기억에서 사라졌었지, 춘매가 맹자의 고향이라고 하니까 바로 생각이 났네. 그래 지금은 어디에 있지? 소연이 말이야.”

“이제라도 생각이 나서 다행이네요. 호호호~!”

춘매가 얼른 나가더니 소연을 데리고 왔다. 그사이에 몰라보게 성장을 해서 처녀티가 났다. 대략 혜정의 또래가 될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춘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소연이 우창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절을 했다.

“할아버지 절 받으세요~! 소연이 문안인사 여쭈옵니다~!”

소연이 할아버지라고 하자 그날의 전경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미소를 지었다. 신굿을 하느라고 몰입했을 때 우창에게 갑자기 할아버지라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춘매도 의아해서 소연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아직 할아버지는 아닌데 싶어서다. 그제야 우창은 춘매에게 말했다.

“아, 춘매는 놀랄 것 없어.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조부님이신데 소연이 그것을 보고서 말한 것인데 오늘 말하는 것은 그때의 광경이 떠올라서 말하는 것이니까. 하하하~!”

“스승님도 그 장면을 기억하셨네요.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늘 뵙고 싶었는데 이제야 때가 되었어요. 호호호~!”

소연은 더욱 귀여워지고 복스러워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했는데 춘매가 차를 끓여줘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소연을 보자 문득 포충(鮑忠)이 떠올라서 물었다.

“참 소연아, 그때 널 데리고 있기로 한 어르신은 어떻게 되셨어?”

“의원님은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병환 중이셨는데 어떻게 스승님을 수소문하셨는지 한산사의 오행원으로 찾아가라고 하셨는데 장례(葬禮)를 치르고 여기를 왔더니 마침 염재 삼촌이 반겨 주셨어요. 오랜만에 스승님을 뵈오니 건강은 더욱 좋아지셨고 후광도 더욱 커지고 밝아지셨어요. 호호호~!”

소연의 말에 춘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 뭐라고? 후광이 어떻다고?”

춘매가 놀라는 것도 타당하겠다 싶은 우창이 설명해 줬다.

“아, 소연은 영안(靈眼)이 열려서 사람이 볼 수가 없는 것을 능히 보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갖고 태어났어. 그리고 특히 몸의 환부(患部)에 대해서 보는 능력이 뛰어나지. 그래서 하는 말이니까 놀라지 않아도 돼. 참 소연아 춘매 이모도 좀 살펴봐 줄래?”

“그야 진작에 살펴봤죠. 다만 말해도 믿지 않으실 것이 빤해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 따름이에요. 호호호~!”

소연의 말에 춘매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어머~! 그랬어? 어떤데? 이제 말해도 믿을게 말해 줘봐. 어서~!”

춘매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하자 소연이 조용히 춘매의 손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우창도 조용히 할 말이 있나보다 싶어서 잠시 의자에 기대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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