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제45장. 만행(漫行)
18. 변화할 수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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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의 자식들은 모두 관찰사(觀察使)거나 어사(御史)가 되어서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다복(多福)한 노년이라고 할 만하지 않겠소?”
“과연 그렇겠네요. 그럼에도 환과고독을 말씀하신다니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자원이 말 상대가 되어서 이야기를 거들었다. 비록 자식들이 모두 출세해서 관가(官家)의 몸이 되었는데도 왜 고독한 삶이라고 하는지 오히려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50평생을 공직(公職)에서 공사다망(公私多忙)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온통 남의 일들로 내 삶을 모두 바쳤지 않겠소? 60이 넘어서야 관직에서 물러나서 한가로이 『장자(莊子)』를 읽으니 비로소 일생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소. 전당포(典當鋪)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남의 돈만 헤아리다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간다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내 말처럼 들리던지 말이요. 허허허~!”
노인의 허탈한 웃음소리에 자원은 마음이 아팠다.
“그건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먹고 사느라고 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고 바쁘게 살아가다가 보면 인생 환갑(還甲)이 되는 것이 말이죠. 그럼에도 왜 공허감(空虛感)이 들게 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조광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잔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이 허무감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구려. 스스로 매미의 허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 말이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어서 방에서 책이나 뒤적이다가 무료(無聊)하면 잠시 여기 나와서 식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소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던 것이오. 그러다가 오늘 그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지 않았겠소. 모든 것이 정해져서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정해질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뭔가 대화를 나눠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오.”
우창은 조광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파향(破香)이 떠올랐다. 연배로 봐서는 서로 엇비슷해 보이는데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문득 조광의 팔자가 궁금해졌다. 이러한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면 분명히 식재(食財)는 부재하고 어쩌면 편관(偏官)이나 편인(偏印)이 그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혹 괜찮으시다면 추명(推命)을 해 봐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남들이 봐서는 괜찮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용심(用心)을 하시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원인을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 그야 당연히 좋고말고 지요. 허허허~!”
이렇게 흔쾌히 말한 조광이 자기의 팔자 간지를 적었다.

모두의 눈이 탁자에 있는 조광의 팔자로 모였다. 알면 아는 대로 어떤 구조인지 궁금했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또 어떤 풀이를 듣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 앞섰던 까닭이었다. 다만 삼진(三塵)과 자원(慈園)은 조용히 지켜볼 따름이었고, 여정(旅鼎)과 하염리(夏廉李)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우창의 표정만 살필 따름이었다. 조광이 붓을 놓고 우창을 바라보자 잠시 생각하는 듯한 우창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도 오행이 기본적인 이치는 알고 계시지요? 이미 읽으신 책만 해도 황소가 다 싣기 버거울 정도일 테니까 말입니다.”
“약간이야 이해하고 있지요. 답답해서 속이 터질 정도로. 허허허~!”
우창은 조광의 말을 듣고서 조용히 시지(時支)의 해수(亥水)를 가리켰다. 모두의 눈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왜, 재능을 숨기고 계십니까?”
“재능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심(內心)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지내시는 것도 의미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선생님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점차로 속에 울(鬱)이 차오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답답한 것을 밖으로 풀어야 하는데 자꾸 누르기만 하면 마치 끓어오르는 솥의 뚜껑을 억지로 부여잡고 누르는 형국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조광이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하염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앞으로 공부하면 염리도 그러한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정말 신기막측(神奇莫測)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여덟 글자를 보고서 내면 깊숙히 깃들어 있는 본심을 읽을 수가 있단 말이에요?”
조광의 표정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는 듯이 묻자, 우창은 미소를 짓고 말이 없자, 옆에서 보고 있던 자원이 염리에게 말했다.
“가만있어봐. 우선 싸부의 설명을 들어봐야 하니까. 호호~!”
모두의 시선이 우창에게로 향하자, 주위를 둘러본 우창이 조광을 향해서 말했다.
“이제 공직도 떠나서 즐기시기만 하면 되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남의 이목은 그만하면 되셨습니다. 장자가 말한 대로 「소요유(逍遙遊)」의 주인공이 되셔서 천하에 걸림이 없는 삶을 누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창(唱)이든 마작(麻雀)이든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아니, 소중한 삶을 그렇게 허비하는 것이 과연 옳으냔 말이오.”
“그러시다면 어떻게 보내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월간(月干), 시간(時干)에 있는 무기토(戊己土)와 월지(月支)의 술토(戌土)까지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조광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문제는 성산지토(城山之土)였던 것이다. 우창의 안타까운 표정을 읽은 조광이 조용히 말했다.
“토중금매(土重金埋)를 말하는 것이오?”
“바로 그것입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잔뜩 억눌려서 살아온 삶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나 장자를 읽으시고서야 그렇게 살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오랜 관습으로 인해서 더욱 답답함만 늘어난 것이지요. 이제라도 그러한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허공을 향해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면서 한바탕 호접무(蝴蝶舞)를 추시지 않겠습니까?”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조광은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내면을 들킨 사람처럼 움찔했다. 그 표정과 우창의 말을 듣고서 앉아있던 염리가 안으로 들어가서 비파를 안고 나왔다. 식당에서도 가끔 음주가무가 펼쳐지곤 해서 대략 어떤 것이 있는 줄을 알고 있던 터에 지금 분위기에는 비파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 염리였다.
모두 의아한 가운데 염리가 의자에 앉자, 비파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염리의 섬섬옥수를 타고서 흥겨운 십면매복(十面埋伏)이 울려 퍼졌다. 웅장한 박진감이 긴장감을 뚫고 문밖으로 흘러 나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에 자원이 일어나더니 벽에 걸어놓은 북이 있는 것을 들고 와서 한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췄다. 비파와 북이 어우러져서 분위기를 만들자, 기현주와 삼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팔을 펼치고 춤을 췄다. 갑자기 변한 만어루에 밥을 먹던 손님들도 흥이 나서 각자의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면서 동참했다.
갑자기 변한 상황에 얼떨떨한 조광은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삼진이 다가가서 한 팔을 잡아서 끌었다. 쭈뼛거리던 조광이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자 우창도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서 되는대로 어깨를 들썩이면서 뱅뱅 돌았다. 그러자 처음에는 마지못해서 삼진에게 끌리던 조광이 스스로 신명이 났던지 춤판에 젖어 들었다. 어느 사이에 겹겹이 쌓였던 체면과 남의 눈길이 한겹씩 벗겨져 나가고 있는 조광이었다. 노인의 얼굴에 붉으스레한 빛이 감돌았다. 하염리의 손길이 더욱 빨라졌고, 춤판도 정신없이 돌아갔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두 손으로 장단을 맞추자 분위기는 더욱 흥겹게 돌아갔다.
다만,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고 얼떨떨한 여정만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앉아있는 것을 본 기현주가 여정에게 다가가서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여정, 말을 몰 적에 말들이 네 뜻에 따라서 내달려 줄 적에 통쾌하고 신나던 장면을 생각하면서 운율에 몸을 맡기면 되는 거야. 일어나서 같이 어울려 볼래?”
그렇지 않아도 흥겨워서 같이 어울리고 싶었으나 어르신들의 춤판에 나서기 조심스러워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기현주가 잡아 이끌어 주자 여정도 마부가 말을 모는 자세를 한 채로 빙빙 돌면서 흥겨움으로 녹아들어 갔다. 모두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에서야 하염리의 연주가 끝나고 북도 소리를 멈췄다.
모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여전히 상기된 표정들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 주인이 시원한 수정과(水正果)를 가져와서 커다란 잔에 골고루 따라 주자, 목이 마르던 차에 모두 시원하게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제정신을 차린 듯했다.
숨을 돌린 자원이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이건 무슨 처방이죠? 처음 보는 풍경이라서 자원도 얼떨떨했거든요. 정말 신기한 처방도 있네요. 호호호~!”
“응, 파토용수(破土湧水)라고 하는 처방이라네. 하하하~!”
“예? 그건 처음 듣는 말씀인데요? 무슨 뜻이죠?”
“아,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수맥(水脈)을 건드래서 폭발하게 만들어서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지. 물은 흘러야 하니까 말이야. 하하하~!”
순간 무슨 뜻인지를 이해한 기현주가 말했다.
“우와! 그러니까 동생의 말은 시지(時支)에 기해(己亥)로 토에 눌려서 숨을 못 쉬고 있던 해수(亥水)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비파가 동원되었다는 말이잖아? 그러고 보면 하염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눈치가 나온거지? 참으로 놀라운 굿판을 그냥 보는 것도 아니고 같이 어우러져서 한바탕 놀았으니 이렇게 신나는 사주풀이는 매일 해도 좋겠잖아? 호호호~!”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조광의 근엄하고 어두웠던 표정이 돋아오르는 아침의 햇살처럼 환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우창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조광 선생님, 어떠십니까? 사람도 자연이니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져서 공자도 권한 음악(音樂)을 함께 누리신다면 환과고독은 이미 봄바람에 구름이 흩어지듯이 사라지고 청천(靑天)에 춘풍(春風)이 감돌 따름이 아니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갑자기 일평생을 해 보지 않았던 짓에 대해서 멋쩍은 마음으로 엉거주춤하고 있던 조광이 얼굴을 펴면서 말했다.
“오늘 내가 새로운 생일을 맞이한 듯하오. 다시 태어난 것처럼 조금 전의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로운 내가 생긴 것처럼 어딘가에서 광명이 비춰지는 것 같으니 말이오.”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는 조광에게 우창이 말했다.
“실로, 선생님의 사주에서 너무 강한 신유(辛酉)의 일주(日柱)가 사방에 겹겹이 쌓인 토기(土氣)들로 인해서 숨이 막히면서도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익숙한 것이 흡사 하녀가 주인마님의 호통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그렇게 지내오신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우창이 젓가락 하나로, 하염리가 비파 줄 한 가닥으로 그 막혔던 곳을 헤집어서 물길을 냈습니다.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물이 솟아오를 것이고, 점점 그 세력은 커질 것이니 나중에는 힘찬 분수(噴水)가 되어서 걷잡을 수가 없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흥겨운 오늘을 보내시게 될 것입니다.”
조광은 대답 대신에 포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대중을 향해서 말했다.
“여러 귀인을 만나서 오늘 다시 새롭게 태어났으니 얼마나 남은 삶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제의 고독이 오늘은 환희(歡喜)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세상사가 여반장(如反掌)’이라고는 들었으나 그것이 내게 다가올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조광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선생께서 혹 무료하심을 깨트릴 요량이시라면 좋은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서호(西湖)의 서북쪽에 파향정(破香亭)이 있는데 아시는지요?”
“파향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종종 들리는 곳이기도 하고.”
“아, 선생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그 옆으로 조금 올라가면 장원(莊園)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곡원(曲院)입니다.”
“그곳도 알고 있소이다. 인연이 닿지 않아서 들어가 보지는 않았소만, 그 또한 밖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까닭일 테지요? 허허허~!”
“며칠 전에 그곳에 들렸다가 이인(異人)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향(破香) 허승조(許承祖)라고 하는 어르신이 계신데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손바닥처럼 꿰고 있는 것에 감탄한 우창입니다. 혹 관심이 있으시면 한 번쯤 나들이해 보시기를 권하겠습니다. 아마도 실망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하하~!”
우창의 권유를 들은 조광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듯이 호기심을 보이며 말했다.
“과연, 심모원려(深謀遠慮)에 감탄하는구려. 내 반드시 곡원을 찾아서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리다. 참으로 배려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오. 허허허~!”
조광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까 우창도 내심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동행들도 모두 같았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자 하염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이제 또 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자원이 얼른 눈치를 챘다. 영업하는 곳에서 너무 오래 노닥거리면 그것도 방해가 될 듯한 하염리의 배려를 헤아리고는 모두 주인에게 잘 놀았다는 인사를 하고서 자리를 떴다. 마차를 끌고 온 여정의 표정도 활기가 넘쳐 보였다. 모두 마차에 올라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가다가 보니 이내 항주의 서호가 고요한 풍경으로 펼쳐졌다.
“싸부, 조금 있으면 노을이 지겠어요. 여기 앉아서 낙조(落照)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요?”
자원의 말에 모두 호반의 휴식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여정은 마차를 한가한 곳으로 옮겨서 잘 두고 돌아왔다.

아까부터 궁금증을 못 이긴 기현주가 참았던 것을 물었다.
“동생, 아까 조광 선생 사주 말이야. 토중금매(土重金埋)라고 했는데 그건 토다금매(土多金埋)가 맞는 거잖아? 그 차이가 뭔지 묻고 싶었는데 참느라고 혼났잖아.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자원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듯이 대신 설명했다.
“언니, 그건 자원이 설명할 수가 있겠어요. 오행의 관계에서 다소(多少)라고 표현할 경우에는 식재(食財)와 비겁(比劫)의 경우에 해당하고, 관인(官印)은 다소라고 하지 않고 중경(重輕)이라고 해요. 아마도 예의를 갖추느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인중용재격(印重用財格)이라고 하고 살중용인격(殺重用印格)이라고 하거든요. 다만 재성(財星)의 경우에는 재다신약(財多身弱)이나 재중용겁격(財重用劫格)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을 거예요.”
“아, 자원의 설명을 들으니, 안개가 흩어지고 또렷하게 보이는 듯이 명쾌하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입이 근질근질했지 뭐야. 호호호~!”
그러자 이번에는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그 사주에서 신유(辛酉)가 태왕(太旺)한데 흐름을 탄 것은 좋았지만 아쉽게도 기해(己亥)가 되어서 답답하게 되었던 것인가 싶었습니다. 시간(時干)에 두툼하게 덮여서 답답하기만 했던 흙을 비파의 가락으로 시원하게 뚫어주시는 스승님의 처방을 보면서 내심 절묘한 해결책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팔자공부를 아무리 해도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기에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맞아, 급신이지(及身以止)를 면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봐야지. 해시(亥時)가 아니라 무술(戊戌)시 였더라면 어떡할 뻔했느냔 말이네.”
삼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스승님께서는 그것까지도 내다보신 것입니까?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오늘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썼더라도 헛된 수고로움이 되고 말았지 않겠습니까? 과연 호리지차(毫釐之差)가 천리지격(千里之隔)이라는 고서의 가르침이 여기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알겠습니다.”
“그 또한 적천수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책에서 고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현장에서 그 가르침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학문(學問)의 최대 즐거움이 아니겠나? 그 맛으로 책을 펼치고 진주알을 줍는 즐거움을 지루해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네. 더구나 조광 선생과 같이 압박감으로 힘들어할 때는 가볍게 한 가닥의 막힌 곳을 쳐주는 것만으로 삶이 달라질 수가 있다면 또한 학문을 하는 보람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하염리가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이 자원의 무릎을 툭 쳤다. 그것을 본 자원이 대략 의미를 이해하고서 말했다.
“왜? 리리(理理)도 할 말이 있었던 거야? 해 봐.”
자원이 자리를 깔아 주자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듯이 궁금했던 것을 술술 풀어냈다.
“좀 주제넘은 것 같은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궁금한 것은 견딜 수가 없잖아요. 왜냐하면 아까 만어루에서 해 주신 말 중에 정해질 것과 정해진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까 어르신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답답하고 우울한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와 함께 어우러져서 변화를 얻게 된 것은 정해질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여쭙고 싶었어요. 노인장의 표정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예전에 간간이 뵈었으나 항상 어둡고 침울하고 과묵해서 말을 걸기조차도 부담스러웠었기 때문에 오늘 접하게 된 그 변화는 더욱 놀라울 수밖에요.”
하염리의 말에 기현주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어머나! 정말 그 짧은 순간에도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단 말이야? 이제 보니까 리리가 기재(奇才)였구나. 이곳에서 용행십팔식(龍行十八式)을 연마하면서 스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결국은 오행원의 일원이 되어서 오행의 이치를 깊이 통찰하고 중생에게 단비를 내려 줄 것이 틀림 없구나. 미리 축하해~!”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번 생의 보람이라고 하겠어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번뇌의 그물에 휘감겨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과 같은 가르침을 전해 주고 변화를 시킬 수가 있다면 용행십팔식을 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얻는 즐거움의 수백 수천배의 기쁨이 되지 않겠어요? 호호호~!”
하염리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지 얼굴도 발그레하게 홍조(紅潮)가 되었다.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는 자에게서 드러나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마침 석양에 비친 노을까지 받아서 더욱 곱게 빛나는 듯했다.
모두 태양이 서산으로 사라질 때까지 저마다의 상념으로 명상을 했다. 그리고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 마음속에서는 서로의 주고받는 대화들이 무르익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서호에 땅거미가 깔리고 하늘이 점차 잿빛에서 먹빛으로 변해갈 무렵에 여정이 마차를 끌고 왔다. 이제 숙소로 가서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임을 알고서 미리 준비했다. 그것을 본 일행은 모두 말없이 일어나서 마차에 올랐다.
며칠 전에 묵었던 서시빈관(西施賓館)에서는 넓은 공간을 비워놓고 우창의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푸짐하게 차려놓은 저녁의 요리가 김을 무럭무럭 피워올리면서 배가 고픈 일행들에게 시장기를 부추겼다.
저녁을 먹고 과일과 차를 내온 주인을 보자, 우창은 오행원에서 자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서옥이 떠올랐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자원이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이제 집을 떠나온지도 몇 달이 흐르고 보니 어항의 금붕어만 봐도 집이 생각나고, 바람에 대나무가 흔들리는 것만 봐도 집이 떠오르네.”
자원이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시를 지어서 읊조렸다.
이가수월(離家數月)하니 소견개고향(所見皆故鄕)이라
소어유수(小魚游水)도 사오정전지경(思吾庭前之景)이요
풍과죽엽(風過竹葉도 억오고거지음(憶吾故居之音)이구나
자원의 소리에 우창의 심사는 더욱 그리움으로 젖어 들었다. 어린 일석의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며, 춘매의 바지런한 보살핌도 또렷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우창의 표정을 살핀 자원이 웃으며 놀렸다.
“에구~ 싸부는 오늘 환과고독에 빠져 드셨군요. 이걸 어쩌나! 호호호~!”
“무슨 소리야. 문득 그 노인의 표정이 떠올랐을 뿐이야. 하하~!”
우창이 애둘러 딴전을 피우는 것은 모르는 척한 자원이 말했다.
“그런데 싸부의 심사(心思)는 모르겠는데 자원은 오행원의 가족들이 보고 싶어요. 백차방(百茶房)의 연화(緣和) 언니가 끓여주는 계피차도 생각나고, 염재(念齋)의 빈틈없는 외호(外護)도 생각나는 것을 보면 아마도 향수병(鄕愁病)이 도진 것이 분명하죠? 왜 이럴까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모두 오행원에 있을 도반들의 표정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가는지 잠시 숙연했다. 그러자, 우창이 동행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조광 선생의 가르침이 결국은 내게 주는 깨달음이었기도 했나 보다. 이번 여정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는데. 이제 귀가해서 제자들을 보살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에구머니~! 싸부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날도 있었나요? 이제야 역마살(驛馬殺)이 다 풀렸나 보네요. 그러시다면 기꺼이 따라서 귀가해야죠. 그럼,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소주(蘇州)로 돌아가는 걸로 하고 오늘은 편히 푹 주무세요. 다들 애 많이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