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 제44장. 소요원(逍遙園)
12. 갈융심법(葛融心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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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현주는 갈만을 데리고 가서 편히 머물기 좋은 방을 하나 마련해 줬다. 깨끗한 방을 본 갈만이 말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귀한 분들과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을 어떻게 부르면 좋겠습니까? 아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 함께 지내면서 공부하면 또한 즐거운 일이니까요. 조금도 개의(介意)치 말고 편히 지내면서 기탄없는 대화를 나누면 되겠어요. 나는 공화(空華)라고 불러요.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호호호~!”
“웃으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우십니다. 심성까지 고우시니 과연 이렇게 멋진 소요원의 주인이 되실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힘이 자라는 데까지 열심히 거들어서 밥값이라도 하겠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고 그냥 즐기시면 됩니다. 꼭 힘이 필요하다면 요청하도록 할게요. 그럼 나가서 또 이야기 나눠요.”
“예. 알겠습니다.”
갈만이 돌아오자 우창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아까 말씀하시기를 조부께서도 사람의 내면에 있는 심리를 깊이 연구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기록을 남기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우창이 갈 선생의 사주를 풀이했던 것과 견주어서 어떤 공통점(共通點)이나 차이점(差異點)이 있는지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우창의 말에 갈만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실로 우창 선생의 잠재의식에 대한 풀이는 감탄을 넘어서 경탄(驚歎)했습니다. 일찍이 이러한 풀이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풀이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못 들어봤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진즉에 알았더라면 모든 공부를 접고 그 무슨? 명리학이라고 하셨지요?”
“아, 이름을 붙이자면 자평명리학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자평명리학이라고 하더라도 우창이 접근하는 방법은 특별히 심리적(心理的)인 부분에 집중해서 살피기 때문에 여느 학자들과는 다소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의 우창파(友暢派)’가 되는 것이로군요. 능히 일문(一門)을 세울 장문인(掌門人)의 능력이 되고도 남는다고 생각이 됩니다.”
“예? 장문인이라니요. 하하하~!”
“아닙니다.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우창파라고 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듣고 보니 일리는 있습니다. 다만 우창파는 어울리지 않고 그래도 차별을 둔다면 ‘자평명리학 심리파(心理派)’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하하~!”
“오! 심리파 멋집니다. 능히 세계 제일의 심리파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일백 년의 세월이 흐른다면 천하를 휘어잡을 학파로 우뚝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건 그렇고 조부이신 갈융(葛融) 선생의 가르침이 궁금합니다. 이렇게 되면 동서(東西)의 학문(學問)을 교류(交流)하는 셈이 되나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없겠습니까만 말씀을 들어봐서는 감히 교류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 싶습니다. 처음에는 조부께서 연구하신 필생의 업적에 대해서 우쭐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오늘에 와서야 그것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의 관점이었는지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다만 우창 선생이 참고만 하신다고 해도 영광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니지요. 그것은 지나친 겸손입니다. 그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어떤 가르침을 듣게 될지 설레네요. 하하~!”
우창은 새로운 학문을 접할 때가 가장 긴장되고 행복했다. 갈만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조부님의 연구에서 발표된 것은 아마도 역경(易經)의 영향을 크게 받으셨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사상(四象)에서 음양으로 확장되어서 여덟 가지 형태의 심성을 유추(類推)하셨으니까 말입니다. 특히 마음을 모아서 궁리하셨던 책이 있는데 여동빈(呂洞賓) 선인(仙人)이 저술하신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 책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실로 명나라에 오게 된 연유도 이 책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오호! 그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여동빈이 신선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인연이란 참으로 기이(奇異)하다고 하겠습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조부의 가르침은 이렇게 역경의 이치에 바탕을 두고서 펼쳐나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니까 자연히 음양(陰陽)에서 확장하는 사상(四象)과 그 결합체(結合體)로 인해서 여덟 가지의 이치가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입니까? 참으로 열린 마음으로 학문에 임하셨던 분임을 알겠습니다. 그 가르침의 요지가 궁금합니다. 이해할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능하다면 좀 들어보고자 합니다.”
“그야 이를 말씀이십니까? 부족한 대로 이해를 한 만큼만 설명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정의(正義)를 내린 것은 내향성(內向性)과 외향성(外向性)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떤 것이 떠오르십니까?”
갈만은 잠시 설명을 멈추고 우창에게 물었다. 자신의 대화에 주변 사람을 끌어들이는 화법(話法)을 구사하고 있었다. 우창이 갈만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외(內外)를 말한다면 그것은 음양(陰陽)에서 온 것임을 짐작하겠습니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조부께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심리(心理)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相對的)으로 작용하는 큰 원칙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안으로 향하는 성향인 내향성과 밖으로 향하는 외향성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형태를 역경(易經)에서 음양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아시고는 큰 충격을 받으셨을 것으로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오호! 역시 깨어있는 사유로 대단한 발견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것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니 다반사(茶飯事)라고 하겠습니다만, 머나먼 이역만리(異域萬里)인 덕국(德國)에서 그러한 관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갈만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조부가 닦은 필생(畢生)의 연구에 의한 업적에 대해서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서 갖게 되는 고마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헤아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앞서 제 팔자를 풀이하면서 잠재(潛在)된 심리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실로 위축(萎縮)이 되었었는데 말이지요. 하하~!”
“학문의 업적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멋진 대궐을 지어도 기둥 아래에 작은 돌이 하나 끼어서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 작은 돌을 치우는 것에 큰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치우는데도 방법은 있기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또 귀한 가르침을 듣습니다. 적절한 비유입니다.”
“사람의 심성(心性)에 내면(內面)을 향하는 것과 외면(外面)을 향하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루셨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우창이 계속 설명하기를 재촉하는 의미에서 다시 화제를 본론으로 돌렸다. 그러자 갈만이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러한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또 구분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합리적(合理的)인 생각을 하는 사람과 비합리적(非合理的)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눴습니다.”
“아하! 그것도 또한 음양의 확장이로군요. 합리적인 사람은 이성적으로 냉철할 테니 음으로 보고 비합리적인 사람은 자기의 감정에 의해서 행동하기 쉬울 것으로 봐서 이것은 양이라고 할 수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의견을 말했다.
“정말 우창선생과 대화하니 ‘척하면 착’입니다. 오늘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성향에서 사고적(思考的)인 것과 감정적(感情的)인 것으로 나눴습니다.”
“일목요연(一目瞭然)합니다.”
“다시 또 감각적(感覺的)인 형태와 직관적(直觀的)인 형태로 구분했습니다.”
“아하! 그렇게 해서 모두 여덟 가지의 유형을 찾아내신 것이로군요. 그렇게까지 접근하는데 얼마나 많은 각고(刻苦)의 시간을 보내셨을지 미뤄서 짐작만 해 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업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자손 된 자의 마음으로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갈만은 이야기하다가 목이 마르자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무의식(無意識)은 역경(易經)의 태극(太極)으로 대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境地)는 음양의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을 이룬 상태의 경지(境地)에 머무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동의(同意)합니다.”
우창도 갈만의 말에 동조하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조부님께서 내향(內向)과 외향(外向)을 말씀하신 것을 보면 내향(內向)은 음(陰)이 되고 외향(外向)은 양(陽)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셨다고 봤습니다.”
“그렇겠습니다. 물론 음양은 상대적(相對的)이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내향이 양이고 외향이 음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봐도 될 듯하여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타당하겠습니다.”
우창의 동조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에 사상(四象)을 대입하게 되니까,
태양(太陽⚌)은 감각(感覺)에 대입하고
태음(太陰⚏)은 사상(思想)에 대입하며
소양(少陽⚎)은 직각(直覺)에 대입하고
소음(少陰⚍)은 지각(知覺)에 대입할 수 있겠습니다.”
갈만이 이렇게 말하고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려는 듯이 말을 멈췄다. 그것을 본 우창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말했다.
“그렇게 큰 형태를 네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겠군요. 간명합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약간의 파생되는 관점이 있기는 합니다만, 스승님께서 열 가지의 기본적인 형태가 있다고 하셨을 적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실 겁니다. 조부께서 놓친 그 두 가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느라고 말이지요.”
어느 사이에 갈만은 우창의 호칭을 스승님으로 자연스럽게 불렀다. 우창도 앞으로의 과정을 생각하면 그래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응했다. 괜히 사양하고 호들갑을 피우는 것도 번거로워서였다. 그래서 마음에서 내키는 대로 하도록 둔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능히 찾아내실 것입니다. 여덟 가지의 기본적인 유형이 이치에 타당하다면 여기에서 빠진 두 가지는 또 무엇일지를 말입니다.”
갈만은 집을 지어놓고 용마루를 못 올린 사람처럼 우창에게 간청하듯이 말했다. 우창도 일단 이야기를 정리해서 생각해 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생각해 봐야지요. 우선 갈 선생의 조부께서 연구하신 결과를 이해한 다음에야 무엇이 빠졌는지 아니면 팔괘처럼 이미 그 안에 모두가 갖춰졌는지도 판단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선생이라고 칭하시니 듣기에 불편합니다. 선생은 생략해 주시고 갈만으로 칭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것 같아서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나이는 연장이었지만 학문의 세계는 학문의 연륜으로 논한다는 것은 이미 피차에 잘 알고 있던지라 우창도 더 만류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직도 부족합니다. ‘편하게 낮춰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지막 부탁입니다.”
갈만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우창도 웃으며 답했다.
“아, 그런가? 알았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하지. 거참.... 하하~!”
“이제 되었습니다.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갈만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말을 이었다.
“조부께서는 이러한 형태를 모두 잠재된 의식이라고 이름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국(終局)에는 무의식(無意識)도 연구하셨습니다만, 이것이 바로 보타암에서 혜정 선사와 스승님께서 나눈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었구나. 주지화상이 어찌나 몰아세우던지 진땀이 났잖은가. 하하하~!”
“혜정 선사를 뵙고서 조부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모두가 스승이십니다. 하하~!”
우창은 갈만의 말에 미소로 화답했다. 갈만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람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사고(思考)하거나 합리적으로 감정(感情)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그런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해 주겠나?”
“예. 합리적인 것과 사고(思考)하는 것은 당연히 서로 같은 말이 됩니다. 감정적인 것을 느낀대로 말한다고 할 수가 있다면 느낌에서도 합리적인 성향을 작용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가 하면 비합리적인 성향에서도 감각적(感覺的)으로 느끼는 사람과 직관적(直觀的)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 그것만으로도 이미 네 종류의 성향이 되는구나.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아내고 설명할 수가 있지? 혹시 우리가 논하는 태어난 생년월일시와 유사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라도 있을까?”
우창의 물음에 갈만은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창이 답을 기다리는 것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실로 제자가 놀랐던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조부께서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에게 여러 가지의 유형(類型)을 만들어 놓고서 그에 따라 질문하는 형식을 만들어 놓고서 대화를 통해서 구분하는 방법을 취하셨습니다. 스승님처럼 생일만 갖고서 그렇게까지 심층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어서 다시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가 산수(算數)를 셈하는 것과 대학자가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다음에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세계를 비교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갈만의 말에 우창이 오히려 의아해서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일일이 다 물어봐서 그 사람의 성향을 정리해 준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스승님께서 들으시기에는 참으로 유치(幼稚)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음..... 확실히 차이가 나는구나. 묻기 전에 읽어내는 것이 「자평심법(子平心法)」이라고 한다면 물어서 확인한 다음에 정리해 주는 것이 그대 조부께서 창안하신 「갈융심법(葛融心法)」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이것은 각기 장단점이 있겠는걸.”
“예? 장단점이라니요? 조부의 관법에는 단점만 보이는데 말입니다.”
“아니네.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충실한 방법이잖은가.”
“실사구시라고 하시면?”
“상대가 말하기 전에 알게 되는 것은 자평심법이라고 한다면 상대가 묻는 대로 소상히 말하는 것을 듣고서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갈융심법이잖은가? 최종적으로 모든 말을 종합해서 판단하는 것이 실제의 상황을 살펴서 올바른 것을 찾아내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실사구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그제야 우창의 말을 이해한 갈만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이야말로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하시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을 묻지 않고서 알아내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생각을 다 물어본 다음에 비로소 답을 제시하는 것은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네.”
“그건 무슨 뜻인지요?”
“만약에 주어진 생년월일시의 자료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니, 사실이 아닐 이유가 있습니까? 왜 그런 거짓된 자료를 제시한단 말입니까?”
“생각해 보게. 그가 태어날 때가 혹은 전란(戰亂) 중이거나 부모가 문자를 몰라서 아이의 생일날을 적어놓을 상황도 되지 않을 경우라고 한다면 어떻게 정확한 시간은 고사하고 날짜라도 제대로 적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듣고 보니 과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또 말이네. 아무리 내가 자평심법에 의거(依據)해서 판단했더라도 상대방이 거짓말로 부정해 버린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지 않겠나?”
“아니,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갈융심법에서도 비합리적인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거짓말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그대가 진실하다고 해서 남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
“아, 그런 염려도 해야 하는 것이로군요. 작정하고 거짓으로 대답한다면 스승님 말씀대로 그럴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는 갈융심법에서도 같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외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는 하겠구나. 여하튼 어느 것이나 쉽지는 않겠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갈만도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물었다.
“스승님, 여쭙겠습니다. 이것은 갈융심법으로 역추산(逆推算)해서 자평심법에 대입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호~! 그 참 재미있는 발상이로구나. 그래 어디 들어보세.”
우창의 말에 갈만은 종이에 붓을 들고서 문답을 기록할 준비를 하고는 물었다.
“우선 여쭙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주에서 어떤 관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겠습니까?”
“그것은 정관(正官)의 영향이네. 경(庚)으로 태어난 그대가 월간(月干)에 정(丁)을 봤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지.”
“아, 그렇다면 경이 정을 보면 화극금인데 그것은 정관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은 합리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되는 것으로 보면 되는 것입니까? 매우 간단하지 않습니까?”
“다만 음양(陰陽)이 달라야 한다는 부칙(附則)이 있을 따름이네.”
“그렇다면 음양이 같으면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만약에 월간에 정(丁)이 아니고 병(丙)이 있다면 합리적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비합리적인 사람이 되겠군요.”
“아니지. 그렇게 볼 수도 있으나 더욱 명료한 이치가 있기 때문이라네.”
“그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비합리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되는 사람은 경(庚)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떤 글자를 옆에 두었을 적에 나타나게 됩니까?”
“계(癸)가 옆에 있다면 그러한 영향을 나타내게 된다네. 이것을 자평심법에서는 상관(傷官)이라고 이름하지. 조건은 내가 생(生)하면서 음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기존의 법칙조차도 자기의 뜻에 부합되도록 뜯어고칠 수도 있으니 논리적인 영역에서 본다면 궤변(詭辯)을 일삼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
“아, 그러니까 나를 극을 하되 음양이 다르면 합리적인 성향을 띠고 내가 생을 하되 음양이 다르면 비합리적인 성향을 띤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그렇게 정리하면 되겠군.”
“아니, 조부께서는 평생을 연구해서 찾아낸 특성을 이렇게 쉽게 깨닫다니 참으로 보타암의 관세음보살의 가피입니다. 정말 무슨 말로 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차차로 공부하면서 이해하면 될 것이네. 인연법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지 뭘. 하하~!”
“잘 알겠습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팔유형(八有形)에 대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물론 제자가 자평심법에 이해가 전무(全無)한 상황인지라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라도 적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또한 효과적이겠구나. 잘하는 것이네.”
“알겠습니다. 조부의 말씀에 첫 번째로 「외향적(外向的) 사고형(思考形)」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어떻게 정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정관(正官)의 영역이라네.”
“예? 정관은 합리성(合理性)의 영역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 합리적인 것이 바로 외향적 사고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름은 다를지 몰라도 사유하는 것이 같다고 봐도 될 것이네.”
“알겠습니다. 겹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것이 타당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내향적(內向的) 사고형(思考形)」에는 어떤 명칭을 부여할 수가 있겠습니까?”
“편관(偏官)이지.”
“편관은 무슨 관계에 해당하는지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뜻은 천천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극하는데 음양이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하니까 경(庚)의 기준으로는 병(丙)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네.”
“알겠습니다. 다음은 세 번째로 「외향적(外向的) 이성형(理性形)」에 대해서 여쭙습니다. 이러한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작용하려면 상관(傷官)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지. 외향적이기에 남들과의 대화를 즐기는데 그 논리는 합리적(合理的)이고 이성적(理性的)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형태이니 여기에 잘 어울리는 것은 상관(傷官)이 으뜸이지. 경(庚)을 기준으로 한다면 계(癸)가 해당하는데,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논리를 끌어다 붙이기도 하니 앞서 말한 대로 ’비합리적(非合理的)‘이라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보겠지.”
갈만은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것은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까?”
“원래가 그런 것이라네.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곤조곤 주장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는데 비록 상대가 격한 반론(反論)을 펼치더라도 빙긋이 웃으면서 감정적인 동요가 없이 설득하는 과정에서 웬만한 사람은 그의 주장에 휘말리곤 하지 이러한 형태가 되는 것이 상관의 본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네.”
“아,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니까 비로소 상관의 작용에 대한 말씀이 이해됩니다.”
“다행일세. 하하하~!”
갈만은 신기하게도 묻는 대로 해당하는 글자를 연결되는 것이 신기했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었으나 우선은 이렇게 가능성에 대해서만 살펴보고 공부는 천천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네 번째로 「내향적(內向的) 감정형(感情形)」의 성향은 혹 임(壬)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왜냐면 정(丁)과 병(丙)이 짝을 이루는 것으로 봐서 계(癸)와 짝이 되는 오행은 임(壬)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역시 철학자의 혈통이 그대로 이어지는가 보군. 하하하~!”
“잘 짚은 것이 맞습니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명칭은 어떻게 부릅니까?”
“그러한 경우의 명칭은 식신(食神)이라고 한다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면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고 몰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네.”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한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나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라네. 다음은 또 뭔가?”
이번에는 우창이 더 궁금해서 물었다.
“예, 스승님. 다음에는 다섯 번째로 「외향적(外向的) 감각형(感覺形)」이라고 하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어떤 경우와 연결이 되겠습니까?”
“감각적(感覺的)인 심리라고 한다면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생각하고 느낀대로 반응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면 그것은 재성(財星)과 연결이 될 테니까 외향적이라면 정재(正財)가 담당할 것이네. 십간(十干)으로 대입한다면 경(庚)에게는 을(乙)이 해당하겠군. 이러한 성향은 구체적인 결실에만 관심을 두고 논리적이거나 윤리적인 말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네.”
“맞습니다. 틀림없이 그와 같은 성향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기술과 같은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이해되었습니다.”
“다음은 여섯 번째로 「내향적(內向的) 감각형(感覺形)」을 물어볼 참인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벌써 어떤 질문이 나올지 가늠하셨습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이미 그대도 답을 알고 있을 텐데 뭘 그러나?”
“맞습니다. 문득 내향적 감각형에 해당하는 글자는 경(庚)을 기준으로 본다면 갑(甲)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항상 남보다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감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스스로 느낌대로 추진하는 성향을 띠는 것으로 보는 이유라네.”
“알겠습니다. 다음은 일곱 번째로 「외향적(外向的) 직관형(直觀形)」의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어떻게 대입하면 되겠습니까?”
“직관(直觀)이라면 정인(正印)이 되고, 경(庚)의 기준으로는 기(己)가 해당한다네. 구조로는 나를 생하면서 음양이 다른 경우라고 적어두게.”
“그렇다면 여덟 번째로 「내향적(內向的) 직관형(直觀形)」에 해당하는 글자는 무(戊)가 되겠지요? 이름을 뭐라고 하면 됩니까?”
“이름은 편인(偏印)이라고 한다네. 주관적인 견해가 너무 강해서 남들이 모두 그렇다고 해도 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의심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것으로 생각해 보면 될 것이네. 이렇게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심오한 정신세계(精神世界)로 진입하기에 적합(適合)한 성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네. 어쩌면 보타암의 주지화상도 이러한 성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군. 하하~!”
우창의 말에 갈만은 곰곰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맞습니다. 혜정 선사는 말하기도 전에 직관력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부의 유형에서는 「내향적 직관형」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하하~!”
우창은 영민(靈敏)한 갈만이 맘에 들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궁리하면서 묻는 것을 봐하니 반드시 크게 깨달을 것으로 봐도 되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