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 제42장. 적천수(滴天髓)
20. 낮은 곳에 머무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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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강당에 들어서니 대중이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했다.
“스승님 편안하셨습니까~!!”
우창이 합장으로 화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백발은 우창과 같이 나란히 앉아서 혹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려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현담이 등단하자 모두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대중을 둘러본 현담이 말했다.
“모두 반갑네! 오늘은 무엇을 할 차례인가?”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를 바라봤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배울 부분을 보고했다.
“예! 태사님, 오늘은 기토(己土)편을 공부할 순서입니다.”
“그렇지? 기토는 그대가 읽어보겠나?”
이렇게 말하면서 춘매를 가리켰다. 그러자 춘매가 일어나서 읽었다.
기토비습 중정축장(己土卑溼 中正蓄藏)
불수목성 불외수광(不愁木盛 不畏水狂)
화소화회 금다금광(火少火晦 金多金光)
약요물왕 의조의방(若要物旺 宜助宜幫)
춘매의 또랑또랑한 소리로 기토를 들으니 흡사 노래를 듣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다 읽고서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허정(虛靜)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대가 앞의 두 구절을 풀이해 보겠나?”
현담의 지시를 받은 허정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태사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풀이해 보겠으나 깊은 이치를 모르고 있어서 그 점이 걱정이에요.”
그러자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이 대중 중에서 누가 그 뜻을 다 안다고 하겠는가? 그냥 보이는 만큼만 이해하고 말할 수가 있는 것까지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네. 허허허~!”
“잘 알겠습니다. 제자가 이해한 것으로는 ‘기토비습(己土卑濕)’의 기(己)는 음토(陰土)라는 말이고, 비유하면 토양(土壤)이기에 낮은 곳에 있으며 축축하기도 합니다. 다음 구절은 ‘중정축장(中正蓄藏)’이니 중정(中正)을 축장(蓄藏)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 중정은 무토(戊土)편에서 말한 ‘기중차정(旣中且正)’의 뜻을 그 안에 저장(貯藏)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풀이하고는 민망하다는 듯이 허리를 굽히고서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말했다.
“그것 보게나, 누가 풀이를 하더라도 그렇게 보지 않겠는가? 잘했네. 여기에 대해서 또 다른 관점으로 풀이를 할 사람이 있으면 말해도 되네.”
이번에는 채운이 손을 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조용히 있자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허정의 풀이만으로도 이미 핵심(核心)을 풀어냈는데 여기에 사족(蛇足)을 더하고자 합니다. ‘비습(卑濕)’은 무토(戊土)의 ‘고중(固重)’에 대응(對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己)의 체(體)는 무(戊)와 같은 토(土)이고 용(用)은 음토인 까닭에 무토보다 낮은 아래에서 축축하다는 의미이니 이것은 토양(土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어요. 만물은 이 토양을 의지해서 생멸(生滅)을 반복(反復)하는 것이기에 모태(母胎)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무토(戊土)를 부친(父親)이라고 했으니, 기토(己土)는 모친(母親)이 되는 것으로 짝을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채운이 이렇게 설명하자 현담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풀이가 맘에 든다는 의미로 이해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습(溼)에는 수분(水分)이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토양에는 초목(草木)이 자라고 다시 초목을 의지해서 동물(動物)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상낙원(地上樂園)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큰 포용력(包容力)으로 만물을 감싸주면서도 중심(中心)에는 반듯하게 하늘의 뜻을 받들고 따르는 것이 ‘기르고 저장한다’는 축장(蓄藏)입니다. 이것은 무(戊)가 추절(秋節)에 정흡(靜翕)하게 되면 기(己)는 하늘의 뜻에 따라서 만물을 휴식(休息)하게 합니다. 또 춘절(春節)에 동벽(動闢)하면 그 뜻을 따라서 땅의 기운을 열어서 만물이 소생(所生)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봄에는 개벽(開闢)을 이루고 가을에는 폐색(閉塞)을 따르게 됩니다. 더구나 무(戊)의 만물사명(萬物司命)에 따라서 기(己)가 직접적으로 간여를 하게 되니 혼연일체(渾然一體)라고 합니다.”
채운의 설명을 듣고 다른 대중들도 내심으로 명쾌한 풀이에 대해서 감탄했다. 현담도 웃으며 말했다.
“오호! 무기(戊己)의 관점을 잘도 말했군. 무(戊)가 없는 기(己)도 없고, 기가 없는 무도 없으니 이 둘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인데 정확하게 잘 설명했네. 허허허~!”
차를 한 모금 마신 현담이 이번에는 임천(林泉)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 구절은 그대가 풀이해 보겠나?”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임천이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제자는 임천(林泉)입니다. 제자에게도 풀이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자가 이해하기로 두 구절이 아니라 네 구절을 이어서 풀이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정화(丁火)편과 같이 이 기토의 뒤쪽에 있는 두 구절을 앞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임천의 말을 듣고서 대중들도 다시 살펴보면서 뜻을 음미해 봤다. 현담은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는 듯이 말했다.
“뭐, 그렇게 봐도 되겠지만 별반 큰 차이는 없어 보이니 책에 적혀 있는 그대로 풀이해도 되지 싶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정리해 보겠습니다. ‘불수목성(不愁木盛)’이니 목(木)의 세력(勢力)이 왕성(旺盛)해도 근심하지 않고, ‘불외수광(不畏水狂)’이라 수세(水勢)가 범람(泛濫)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화소화회(火少火晦)’라 화기(火氣)가 부족하면 습토(濕土)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부족하니 많은 것을 기뻐하고, ‘금다금광(金多金光)’이라 금기(金氣)는 습토(濕土)가 생조하니 빛이 나게 된다는 의미로 풀이했습니다.”
“그렇군. 목(木)이 왕성하면 목극토(木剋土)를 할 텐데 근심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 제자도 그 점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만약에 오행(五行)이 모두 대등(對等)하다고 간주(看做)한다면 당연히 목왕토쇠(木旺土衰)의 이치에 의해서 근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심하지 않는다’는 글귀는 사주에서의 간지와는 다른 관점이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라보니 기토(己土)는 대지(大地)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대지에는 초목(草木)이 아무리 왕성해도 근심이 안 되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까 이 글귀가 쉽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지는 태사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당연하지. 허허허~!”
현담이 유쾌하게 웃자, 임천은 제대로 풀이했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말했다.
“제자의 생각이 엇나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다음은 물이 아무리 범람한다고 해도 결국은 이 땅 위에서 잠시 머물러 있을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손오공(孫悟空)이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물이 아무리 난동을 부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어디론가 흘러가게 되므로 두려워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또한 대지(大地)를 생각하니까 쉽게 풀렸습니다. 다만 다음 구절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불이 적다는 것은 자연(自然)에서 병정화(丙丁火)를 논한다면 태양과 열기(熱氣)를 의미하는 것일 텐데 태양이 부족할 이치도 없고, 땅이 차가워질 까닭도 없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지 납득이 어렵습니다. 태사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임천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현담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소를 짓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담이 말했다.
“그럴 만도 하겠군. 앞의 두 구절인 수목(水木)은 대지(大地)의 토(土)를 말하고 뒤의 두 구절인 화금(火金)은 팔자에서의 토(土)를 말하는 것이니 그대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었네. 그러니까 처음에 임천이 앞의 두 구절과 뒤의 두 구절을 같이 생각했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는가? 이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로 알고 풀이하면 된다네. 마치 갑목(甲木)편에서 ‘화치승룡(火熾乘龍)’과 ‘수탕기호(水蕩騎虎)’의 의미가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네. 허허허~!”
현담의 말에 임천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살펴보니까 과연 그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역시 태사님의 가르침으로 번뇌의 구름이 말끔히 걷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둘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쓰인 것이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해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내친김에 계속 풀이를 해 보게. 허허허~!”
“이제는 쉽습니다. 사주에서 일간(日干)이 기토(己土)일 경우에 목생화(木生火)를 이루지 못하여 뿌리가 약한 병정화(丙丁火)가 있다면 허약(虛弱)한 기토(己土)가 됩니다. 그러므로 화(火)는 적으면 안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금이 많아도 빛나게 한다는 것은 토생금(土生金)으로 금다토허(金多土虛)의 이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토(己土)는 습토(濕土)인 고로 조토(燥土)가 생금(生金)이 어려운 것에 비교(比較)해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은 무토(戊土)의 ‘화다토척(火多土斥)하여 불능생금(不能生金)한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하니 간단하게 해소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는데 혹 잘못된 것은 없는지요?”
“잘 이해했네. 그만하면 훌륭하군. 허허허~!”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고는 다시 원정(元貞)을 가리켰다.
“마지막 구절은 어디 원정이 풀이해 보게.”
원정은 부족한 공부에서도 열심히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가 갑자기 현담이 풀어보라고 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예! 태사님, 마지막 구절은 ‘약요물왕(若要物旺)’이니 ‘만물을 왕성(旺盛)하게 하고자 한다면’으로 풀이하면 되지 싶어요. 마지막은 ‘의조의방(宜助宜幫)’이니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최대한 협조하고 도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이것은 다른 사행(四行)이 기토(己土)를 위해서 헌신적(獻身的)으로 도와야 한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아마도 대지(大地)는 모두가 관리하고 지켜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한지는 명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기토(己土)에 대해서만 그렇게 보호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약간은 의문이 남아요.”
원정은 이렇게 나름대로 이해한 것에 대해서 풀이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담이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은 원정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혹 첨언(添言)할 것이 있는가?”
현담의 말을 듣고서 우창도 일어나서 의견을 말했다.
“스승님께서 보충할 것이 있느냐고 말씀하셔서 생각해 봤습니다. 대의(大義)는 이미 모두 드러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마지막의 구절에서 의조(宜助)는 병화(丙火)를 말합니다. 생조(生助)의 의미는 병정화(丙丁火)가 인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까닭인데 특히 병화(丙火)의 따뜻한 기후(氣候)가 있으면 만물이 순탄하게 성장할 수가 있는 까닭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의방(宜幫)은 비겁(比劫)으로 돕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여기에서는 당연히 무토(戊土)를 말합니다. 앞서 채운이 설명한 그대로 정흡동벽(靜翕動闢)으로 천기(天氣)를 운행하여 기토(己土)가 임무(任務)를 완수하는데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은 기토(己土)가 모두 알아서 하게 되는데 만약에 태양이 너무 과다(過多)하거나 부족하여 냉열(冷熱)이 반복된다면 기토의 역할은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고, 천기(天氣)도 순탄(順坦)하지 않으면 또한 대지(大地)의 역할은 제한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찌 물왕(物旺)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 약요물왕(若要物旺)이라고 한 것인데 여기에서 약(若)은 필(必)로 바꿨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필요물왕(必要物旺)이 되니 해석하는 것도 ‘반드시 만물이 왕성해야만 하므로’라는 의미가 됩니다. 약(若)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느낌이 되는 것으로 본다면 그 무게감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까닭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우창의 깊은 통찰력(統察力)은 믿을 만하군. 약요물왕보다는 필요물왕이 훨씬 더 명쾌하게 다가오는군. 허허허~!”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많은 부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기토(己土)의 역할이란 대지에서 만물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성숙시켜서 결실까지도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만물(萬物)의 자모(慈母)라고 한다는 것을 사무쳐서 깨달았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무기(戊己)는 일체만물이 생성(生成)하고 변화(變化)하는데 절대적(絶對的)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으로 깨닫게 된 것은 결국 토(土)는 만물이 탄생(誕生)하고 삶을 유지(維持)하는데 그 막중(莫重)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니 예전에는 막연히 생각하기를 ‘토(土)는 목화금수(木火金水)와 마찬가지로 5분의 1의 몫을 한다’고만 여겼었는데 이렇게 상세한 가르침을 접하고 보니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가 8할을 담당하고 목화금수(木火金水)는 흡사 토(土)에 기생(寄生)하는 존재와 같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무렴. 잘 이해했네.”
현담이 동의하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천간론에서의 기토(己土)와 사주명식(四柱命式)에서의 기토(己土)에 대한 이해는 달리해야 한다는 것도 명료(明瞭)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화소화회(火少火晦)’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습니다. 만약에 ‘화소토한(火少土寒)’이라고 했으면 그 의미가 더욱 명백하게 다가왔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토편의 문장은 약간 수정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금다금광(金多金光)’도 ‘금다능생(金多能生)’으로 썼더라면 또한 풀이하는 후학의 관점에서는 정연(整然)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글자를 바꿔서 풀이하자 현담도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오호! 그런가? 그렇다면 그렇게 바꿔서 문장을 다시 조합(組合)해 본들 누가 뭐라겠는가. 어디 다시 만들어 보게. 허허허~!”
현담의 말을 들은 우창이 글자를 바꿔서 읽었다.
기토비습 중정축장(己土卑溼 中正蓄藏)
불수목성 불외수광(不愁木盛 不畏水狂)
화소토한 금다능생(火少土寒 金多能生)
필요물왕 병조무방(必要物旺 丙助戊幫)
이렇게 읽고는 다시 풀이까지 직역으로 말했다. 제자들도 이렇게 말하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기토는 낮은 곳에 습하며 중정을 축장하니
목성(木盛)해도 근심치 않고 수광(水狂)해도 두렵지 않네
화가 부족하면 토한(土寒)하나 금다(金多)라도 능생(能生)하니
만물(萬物)이 왕성(旺盛)함에 병조(丙助)하고 무방(戊幫)할지라
이렇게 간단하게 직역했지만 이미 앞서 자세한 풀이를 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것을 듣고 있던 현담이 말했다.
“그렇군. 뒷부분의 구절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수정(修正)이 필요했단 말이로구나. 그렇게 하고 보니 버릴 글자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과연 후생가외(後生可畏)로다. 허허허~!”
현담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약간의 부연설명을 했다.
“의조(宜助)에서 알 수가 있듯이 병화(丙火)의 큰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만물에게 모두 적용이 되는 까닭이며, 금광(金光)의 의미를 습토(濕土)여서 생금(生金)하는 것이 원활하다고 해도 틀린 의미는 아니겠지만 제각각 만물의 존재인 주체(主體)가 모두 금(金)이 된다고 해석한다면 또한 만물이 저마다 자신의 삶을 영광(榮光)되게 이룩할 수가 있는 것에 병(丙)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인 기토의 무한한 품 안에서 모두 자신이 생겨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왜 안 되겠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보네.”
우창이 합장하고는 자리에 앉자, 현담의 말이 이어졌다.
“음토(陰土)를 왜 기(己)라고 했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내가 언급하겠네. 무(戊)는 ‘지킨다’는 의미라고 했으니 기(己)는 자신(自身)을 말하는 것이라네. 물론 자신은 심신(心身)을 모두 통칭(通稱)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특히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라네. 자기(自己)를 의미할 적에도 기(己)를쓰고 기신(己身)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이렇게 중요한 글자를 음토에 부여(附與)했단 말이네. 그 말인즉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나서 놀다가 간다는 말인가? 어디 고월이 한마디 해 보려나?”
현담이 이번에는 고월에게 물었다. 고월도 그 생각은 못 했다는 듯이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너무나 당연한데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참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이 한 몸인 기신(己身)이 지상(地上)에서 무천(戊天)을 만나서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 자신이었습니다. 기토를 본받아서 일체 만물이 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기토(己土)의 몫이라고 생각했다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를 아끼면 산신(山神)이 기뻐하고 물을 아끼면 수신(水神)이 기뻐하며 불을 조심하면 화신(火神)이 노하지 않고 땅을 잘 가꾸면 토지신(土地神)이 기뻐한다’는 말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나 자신(自身)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맞는 말이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할 임무까지도 부여받았으니까 말이지.”
“기신(己身)이 중앙(中央)에 있고, 상무(上戊)와 하기(下己)의 상하(上下)를 두고 있기에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육신(肉身)은 하기(下己)에서 지기(地氣)를 받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정신(精神)은 상무(上戊)에서 천기(天氣)를 받아서 호흡(呼吸)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것이 잘 이뤄지도록 목화금수(木火金水)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巳時)를 운행(運行)하면서 천지(天地)의 역사(役事)를 보조(補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이 땅과 만물은 둘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 중간에 있는 자신(自身)은 당연히 중정심(中正心)을 잃지 않아야 하겠고, 고중(固重)도 놓지 않아야만 비로소 온전히 천수(天壽)를 누릴 수가 있겠다는 생각됩니다. 중정심은 마음이 평정(平靜)을 유지하는 것이니 모친(母親)의 본질(本質)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견고(堅固)한 정신력(精神力)은 부친(父親)의 본성(本性)이라고 하겠으니,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으로 처신(處身)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까지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네. 스승의 역할은 이렇게도 단순하지. 빤히 다 아는 것이지만 이렇게 살피지 못한 것을 간단히 거들어 줄 뿐이니 말이네. 허허허~!”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거대담론(巨大談論)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등하불명(燈下不明)으로 바로 앞에 있는 것조차 살피지 못하듯이 오늘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지 않으셨다면 또 그냥 지나칠 것이 당연했으니 말입니다. 또 빠트린 것이 없는지를 살피느라고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하하~!”
“맞아! 그것이야말로 학인(學人)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월은 개(改)의 뜻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현담이 고월에게 물었다. 그러자 모든 대중도 고칠 개(改)의 뜻에 대해서 생각해 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고월은 어떻게 풀이할 것인지가 궁금해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잠시 생각한 고월이 말했다.
“스승님, 오늘은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입니다. 기신(己身)이 문자(文字)를 가까이하면 고칠 개가 됩니다. 기(己)에 붙은 등글월문(攵)을 보면 글월이 적힌 책을 등에 지고 다니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같은 뜻으로 때린다는 칠 복(攵)도 됩니다. 그러니 선현의 가르침이 적힌 글을 대하면서 스스로 매섭게 반성(反省)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아무리 모진 심성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평성(平性)으로 변화가 가능할 것이고, 더욱 노력한다면 마침내 선성(善性)으로 개선(改善)될 수 있을 테니 참으로 고칠 개(改)를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현담이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시자 고월의 말이 또 이어졌다.
“이 말의 뜻은 배운 사람은 항상 자신을 새롭게 고쳐가면서 상인(上人)의 위치에 도달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몸을 가꾸고 재물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개량(改良)이나 개선(改善)과 같이 항상 고칠 개(改)가 들어가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개화(改化)까지도 악을 고쳐서 선을 따른다는 말이 있고 보면 참으로 기토(己土)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오행도장(五行道場)에서 수행하는 제자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이 도량에 들어오기 전에는 비록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당연하지. 그렇다면 내친김에 또 ‘향취(香臭)’의 의미를 생각해 봤나?”
고월의 말에 현담은 다시 또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잠시 생각한 고월이 다시 대답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하해(河海)와 같습니다. 향(香)을 생각해 보면 개선(改善)하는 사람에게서는 향기(香氣)가 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신도 모르게 글을 가까이하다가 보면 문자향(文字香)이 몸에 배어든다는 뜻입니다. 취(臭)는 가까이하면 거슬리는 취기(臭氣)가 난다는 말이니 글자의 생김새를 보면 자기(自己)가 견(犬)과 같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공부를 하면 사람이 되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가 그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과는 항상 가까이 머물고 싶지만 어리석고 탐욕에 가득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한시라도 빨리 그 곁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취를 고쳐서 향기로 만드는 것도 온전히 기신(己身)에 달렸으니 천간에서 기토(己土)로 인해서 자기의 내면(內面)을 수양(修養)해야 할 이치까지도 관통(貫通)하게 됩니다. 참으로 오묘한 공부입니다. 하하~!”
“그게 공부 맛이 아니겠나? 고월은 류련(榴蓮:두리안)이라는 과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남방에서 나는 과일이네만.”
“금시초문입니다. 어떤 과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으로 봐서는 석류나무의 연꽃인가 봅니다.”
이때 백발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현담이 백발에게 물었다.
“아, 백발은 알고 있나 보군. 어디 대중을 위해서 설명해 주려나?”
백발이 일어나서 군침이 고인다는 듯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태사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류련의 달콤한 향이 느껴집니다. 수년 전에 남방을 주유(周遊)하다가 광동(廣東)에 갔을 적에 고슴도치를 떠올리게 하는 온통 가시투성이의 큰 과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잘 익은 류련은 석류(石榴)처럼 갈라집니다. 그래서 갈라진 껍질을 벗겨서 다 펼쳐놓으면 마치 금련(金蓮)이 활짝 핀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는 황금색(黃金色)의 달콤한 과육(果肉)이 가득 들어있지요. 그 과육에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향이 진동하고 입에 베어 물면 달콤한 과육이 사르르 녹습니다.”
백발이 어찌나 맛있게 설명하는지 들어보지 못한 제자들도 군침이 고일 정도였다. 대중의 표정을 살펴본 백발이 다시 말을 이었다.
“태사님께서 왜 갑자기 류련을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향류련(香榴蓮)이라고도 하고 취류련(臭榴蓮)이라고도 한다’는 말씀을 주시려고 그러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향기로운 류련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입에도 대지 못할 악취가 진동해서 접근하기도 꺼리고 먹는 사람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문자(文字)를 대하면 마음에서 환희심(歡喜心)이 나는데 또 어떤 사람은 문자를 보면 뱀이라도 만난 듯이 십만리(十萬里)로 달아나니 말입니다. 하하~!”
백발의 말을 듣고서 현담도 웃었다.
“바로 맞췄네. 허허허~! 향류련을 먹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향기가 진동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네. 물론 우리 오행원에서 수행하는 제자들은 당연히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즐거워서 말이네. 대중들도 나중에 기회가 되거든 류련을 먹어보면서 어디에 그러한 향이 숨어있는지를 찾아보기 바라네. 허허허~!”
이렇게 말을 마친 현담은 제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처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