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쓸쓸함이란....

오늘은 책을 읽었다. 특별히 정해 놓고 읽지는 않는다.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대당서역기》도 읽었다가, 《장미의 열반》도 읽다가는 다시 또 어느 순간에 《사피엔스》를 들고 있다. 그야말로 책의 천국에서 허우적대는 행복한 순간들이다.

생차도 마시다가, 숙차도 마시다가, 또 커피도 한 잔 하면서 그렇게 눈과 입을 통해서 마음의 유희를 즐기는 겨울날의 풍경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둠이 깔리는 뒷산이 궁금해서 문을 나선다. 아침에 살포시 내린 눈은 가난한 남편의 꽁보리밥 도시락에 쌀밥으로 살짝 덮은 어머니의 그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던 모습이 겹친다.

보나마나 쓸쓸할게다. 그리고 그 쓸쓸함을 즐기고 싶은 때도 있으니깐, 그 때가 지금이다. 혼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집을 나서는 것도 산골에 사는 여유로움일 게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의 길이 없는 산길을 걸어본다. 문득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이 떠오른다. 그니깐..... 길이 없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ㅋㅋ

웬만하면..... 산길을 좀 걷고 싶었는데....

길은 이미 산과 하나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원래 길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길로 삼고 다니다가 또 뜸하니까 다시 산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길. 문득 뱃길이 떠오른다. 배가 지나가면 길이 되었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바다가 되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데까지 가보자고....

이내 숲에 가려서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게다....

그리고 억지로 헤치면서까지 갈 마음이 없는 것은 약간의 무서움도 포함된다. 산 속에서는 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려고 점호를 하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야행성의 시간에는 주행성의 존재는 길을 비켜줘야 하는 까닭에.....

발걸음을 돌린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눈이 쏟아질 수도 있지 싶다. 포근포근한 것이 눈 냄새가 난다. ㅎㅎㅎ

하늘에 사알짝 감도는 보랏빛은... 석양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의미할게다.

겨울의 진수이다. 아름답군.... 하늘에 가득한 구름과 앙상한 나무들의 풍경이야말로 진정 쓸쓸함이 뚝뚝 떨어지는 실화이다. 이게 진정 실화이다. 재미있다.

이번에는 옛날의 추억이 가득한 길을 걸어 본다.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워서이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이미자의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실로 이 길은 처음에 감로사 터를 잡고 공사하러 다녔던 길이고, 한동안 방문자들이 이용했던 길이다.

당시엔.... 저 집에 살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누군가 과속으로 차를 달려서 통과하면 집까지 쫓아와서 호통을 치던 열혈할머니셨는데 지금은 안 계신다. 듣기에는 자식 집으로 가시고, 할아버지만 홀로 계신단다.

왕래가 없어서 뵌 지도 오래 되었다. 테레비 소리도 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추위를 피해서 아들네 댁으로 가셨나 싶다. 초하루에는 기도하는 불빛을 봤었는데....

그래도 오래 타는 양초가 집을 지키고 있다. 산불이 나지 않도록 안전하게 해 뒀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돼지가 촛불집을 치고 들어가서 털에 불이 붙은 다음에 놀라서 산으로 튀어 달아나는 바람에 산에 불이 붙지만 않는다면....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산짐승은 불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불나방과는 그 격이 다른 까닭이다.

이 불편한 길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기도를 했더니, 산천이 감응하셔서 길을 열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옛길을 걸으면서 추억에 잠겨보는 무술년의 12월 풍경을 여유롭게 볼 수가 있으니 또한 쓸쓸함의 즐거움이다.

감로사 번창하라고 배롱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어주셨던 어르신도 편히 누워계시는 곳이다. 생전에 터를 다듬고는 자신이 누울 자리까지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나셨다. 자식들 불신 시대이다. 아니, 자식들에게 헛된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게다.

물렁물렁한 길에 자갈 깨나 실어다 부었었지.... 어딜 가든지 길을 잘 닦아야 도를 잘 닦는 것이겠거니... 하고 열심히 손질하고 산다. 다른 것은 못하고 제 다닐 길이라도 잘 만들어서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갔을 적에 길도 제대로 손질하지 못하고 사는 절을 만나면 그만 더 들어가기 싫은 생각이 드는 것도 이 생각의 연장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길을 찾는 것과, 삶의 길을 만드는 것이 어찌 두 가지랴..... 하나의 음양일 뿐일게다....

어둠이 내리는 전깃줄도.... 문득 김홍희 사진집의 방황이 떠오른다.
'저 멀리 전깃불에게 물었다. "거기가 끝이가?" 전깃불이 말했다. 여기가 시작이다~!'
맞나? 뭐 아무렴 워뗘.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나도 말을 걸어 볼까?
낭월 : 어디까지 가노?
전선 : 사람 있는 데까지 가네.
싱겁긴.... 뭐하는 기고. ㅋㅋㅋㅋ
뭐하기는, 그냥 노는기다. ㅎㅎㅎ

아직 노루가 내려올 시간은 아닌가.... 안 보인다. 혹시라도 보이면 한 장 찍으려고 셔터에 손을 얹어놓는다.

지난 폭풍에 부러진 나무는 이제 베어야 할 때가 되었군....

그리고.... 쓸쓸함을 일소(一掃)하는 불빛...
그렇다 전깃줄이 여기까지 왔구나.
연지 : 어데갔다 오노?
낭월 : 산책.
연지 : 어둬지는데 어디 갔나 했네.
낭월 : 쓸쓸함의 즐거움을 찾으러 갔다 온다.
연지 : 그런게 어딧어?
낭월 : 여기 있잖아. 하하하~!
불빛의 따스함이란.....
그러니까 쓸쓸함의 끝에 불이 있어서 즐거웠구나.
이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