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大靑島) 농여해변(農與海邊)(9/12)
자칭 「한국의 사하라사막」이라는 옥죽포 사막을 잘 둘러봤다. 그런데 이름이 모래사막이다. 이것도 뭔가 옥상옥(屋上屋)이고, 역전앞이다. 사막이 어차피 모래인 것을 말이다. 그냥 사막이라고 하면 몰라볼까봐서 모래사막이라고 했으려니..... 그나저나 다시 시간에 쫓긴다. 왜냐하면 대청도의 일몰의 풍경이 기대가 되는 까닭이다. 대청도에서의 일몰을 맞이할 장소로는 이미 농여해변을 찜했다. 그래서 서둘러서 다음 장소로 향했다.
지도의 추천 길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여하튼 3분 거리이다. 서둘러서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고로 부지런히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현장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담는다. 읽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때로는 천천히 읽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냥 지나친다. 다만 이렇게 여행기를 정리할 적에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글자가 많으면 좀 더 확대해서 보기도 한다.
대청리였구나. 그러면 대청면 대청리가 되는 셈이겠군. 그런데 농여해변이라고 쓰고 한자로는 표기를 못했잖아? 이건 너무 성의가 없는데? 이래선 될 일이 아니지. 조금만 노력하면 이내 답을 얻을 수가 있는데 얼마나 조급, 혹은 조잡하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안내판이다. 에잉~~!! 포토샵나와라 오바~!
그래 이렇게 해 놔야 한자문화권에서 여행을 온 사람도 무슨 이름인지 알아 볼 것이 아니냔 말이지. 문제는 이러한 것을 알려 줘도 전혀 고칠 마음이 없을 것이라는 관료들의 안이함이다. 경치는 기가 막힌데 안내판은 졸속이니 격이 맞질 않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봐하니 안내판도 낡았는데 이참에 새로 만들면서 제대로 고쳐지기를 바라지지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낭월의 하릴없는 희망사항일 뿐.
모래사장이 광활하게 전개되는 모습에 시야가 확~ 넓어진다. 과연 그래서 대청도라고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청도 사막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농여해변은 사랑해도 되지 싶다. 그야말로 대청도 만의 농여해변이기 때문이다.
뚜리벙 뚜리벙~~!! 뭘 찾겠는가? 바로 이 고목바위를 찾았다. 농여해변에서 주인공은 단연 이 고목바위라고 하는 여행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숙소를 잡고서는 바로 여기로 올까도 생각했는데 해변은 일몰의 시간에 따라서 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우선 사막에서 잠시 대청도의 바람을 익히고서 본격적으로 대청도 관광을 하게 되는 셈이니 말하자면 모래사막은 맛보기인 셈이다.
해변은 살아있었다. 수없이 많은 게들(로 짐작되는 생물체)의 탑이 그것을 말해 준다. 얼마나 청정해역이겠는지를 생각해 보면 짐작을 하고도 남을 일이기도 하다.
어서 고목바위로 가야 하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사진을 찍어 줘야 했다. 이 진흙의 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왕성하게 살아가는 생명체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두무진의 기기묘묘한 분위기를 감탄하면서 본 것은 불과 어제 이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또 이렇게 단순한 선으로 이뤄진 풍경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여행의 묘미가 여기에 더할 것은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에 또 다른 감탄이다.
기묘(奇妙)하면 긴장감이 증폭하면서 아드레날린이 희열감을 부추기니 절정의 황홀함을 느끼게 되고, 단순(單純)하면 반대로 긴장이 풀리면서 아늑한 평온을 느끼게 되니 이것은 감정의 음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긴장만 하면 미쳐버리게 되고 이완만 하면 무기력해지는 것인데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충만감을 채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령도와 대청도는 서로 상반되는 풍경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되지 싶다. 대청도를 와보지 않았다면 이러한 풍경을 접할 수가 없었을 텐데 일정을 변경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최대로 잘 한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처음 계획대로 진행했더라면 대청도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백령도에서 놀다가 백령도를 떠나서 인천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이 유동적이듯이 여행객의 일정도 항상 역동적이어야 한다. 암~!
농여해변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행여라도 믿믿해서 심심할까봐 이렇게 절묘한 그림을 하나 배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조물주가 뭔가 한 껀 한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고목바위라는 이름도 일견 그럴싸~해 보인다.
뭔 말이 필요하랴 싶은 것은 두무진의 절경과 같은 마음이다. 원래는 옆으로 누웠을 지층이다. 그러니까... 상상을 해보면, 그렇게 옆으로 시루떡의 켜처럼 차곡차곡 누워있었을 암반이 압력을 받아서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을 것이다.
서고 서고 또 서다가 결국은 거의 수직으로 서게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매우 합리적인 자연의 현상을 바탕으로 추론하는 것이니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백령도의 사곳해변에서 본 45도 정도의 기울기로 된 창바위를 생각해 보면 백령도보다 더욱 큰 압력을 받은 곳이 대청도였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뭐든 일상적이지 않을 적에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낯설음에 대한 경외심일 것이다.
남들이 신기하다고 하면 낭월이 봐도 신기한 것이다. 휘어지고 구멍뚤린 모습은 그야말로 여기 이 자리에서만 볼 수가 있는 진풍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엄청나게 큰 규모도 아니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생긴 모양이 반드시 커야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자연이 압력과 풍화작용으로 빚어놓은 걸작이라니......
그냥 바위를 바위로 봐도 된다. 그렇지만 뭔가 자신의 이미지를 덧씌워서 보면 또 재미있는 감상이라고 할 수 있고 대체로 자신의 이미지 창고에 저장된 것들 중에서 유사한 것을 찾아내어서는 말한다.
"삼장법사가 천축에서 법을 구해서 말에 싣고 오는 모습이네~!"
이러한 모습이 언뜻 스쳐서 상부를 확대했다. 원래 바위랑 노는 재미는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크롭을 해도 그 자체로 멋진 그림이 되는 까닭이다. 나무의 한 그루라면 아무리 잘라내도 그냥 나무 한 그루일 뿐인데 바위는 어디에서 잘라내도 여전히 멋진 작품이 된다. 때론 구상(具象), 때론 비구상(非具象). 때론 추상(抽象)으로 상상과 함께 몰입하게 되는 바위 놀이이다.
그러다가도 살짝만 방향을 돌리면 또 다른 그림이 된다. 대청도에서 지팬션의 쥔장이 데리러 와서는 숙소로 가면서 말했다.
쥔장 : 대청도를 둘러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낭월 : 그게 어떤 것입니까?
쥔장 : 첫째는 제가 가이드를 해 드리는 겁니다. 다른 일행들과.....
낭월 : 그건 아닙니다. 해당 없습니다. 하하~!
쥔장 : 둘째는 차만 빌려서 마음대로 돌아다니시는 겁니다.
낭월 : 그걸 원합니다.
쥔장 : 세번째는....
낭월 : 마을버스를 타거나 걸으면서 둘러보는 것이겠네요?
쥔장 : 맞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음을 정하신 거죠?
낭월 : 그렇습니다. 렌트카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쥔장 : 이 차(스타렉스)를 타시면 됩니다.
연지 : 승용차는 없어요?
쥔장 : 지금은 없습니다. 길이 좋아서....
낭월 : 다행이네요. 그럼 이 차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항상 어디를 가든 일행과 같이 다니는 것은 도저히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바위 하나를 놓고 해찰을 하고 있는데 다른 일행들이 가만히 기다려 주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차를 빌릴 형편이 안 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문제는 시간과의 타협이다. 그래서 지금 이 정도의 형편이 마냥 행복한 낭월이다. 차를 빌릴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ㅋㅋㅋ
연지님이 뜨악~했지만 낭월은 이차가 아니라 트럭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고, 대청도가 그렇게 생각보다 여러 가지로 갖춰진 것이 없는 작은 섬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감지덕지한 것이다.
앞에서만 보면 안 된다. 멀리서도 보고, 저 멀리 보이는 바위가 또 눈길을 끄는군. 일몰 전에 거기까지 갔다 와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자동으로 이뤄지게 된다.
고목바위와 산의 사이로 샛길이 있다. 사리(음력으로 그믐과 보름전후)때가 되어서 장벌(해안)에 물이 가득차게 되면 틀림없이 저 곳을 통해서 군인들이 해안을 경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낭월도 안면도에서 학교를 갈 적에 겪어 본 나머지인 까닭이다.
사리때의 아침에 등교 시간과 만조(滿潮)가 만나게 되면 해안으로 해서 학교를 갈 방법이 없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연중 몇 차례는 만나게 되는 일이다. 그런 경우에는 천상 해안의 절벽 위로 산을 타고 가야 한다.
물론 그러다가 어떤 때는 꿩의 집을 털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던 적도 있었지만, 학교에 가기 싫은 핑계로는 그것도 안성마춤이었던 생각이 기억창고에서 튀어나와서 혼자만 아는 미소를 짓는다.
석양이 점점 맛있게 익어간다. 이미 하늘은 사진가의 시간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른바 '골든아워'인 것이다.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만들기 시작하면 그 시간이 이 시간인 것이지 일몰 전 몇 분부터 인지는 의미가 없다 이것조차도 그때 그때의 하늘 사정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정해진 것과 정해질 것이 함께 어우러져서 음양의 도를 이뤄가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여행객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때가 있다. 남자들이 몰려 다니는 것과 여성들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보면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지만, 남녀가 둘이 여행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셔터를 누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만 자중해야 한다. 낭월이 보기에는 남녀일지라도 실상은 불륜남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행여라도 낭월의 렌즈에 걸려서 평화로운 가정이 파탄지경이 된다면 내가 연못에 던지는 돌과 무엇이 다르랴 싶어서이다.
가족 나들이는 부담없이 찍는다. 아기들은 더 부담없이 찍는다. 노부부의 모습은 보는 순간 바로 안다. 그래서 편안한 모델이 된다. 그렇지만 남녀의 동행은..... 분간이 어렵다. 그래서 가급적 눈으로만 보고 카메라의 렌즈와는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는 습관이 생긴다.
"와우~~!!"
억겁의 세월을 머금고 있는 모습들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언젠가는 구멍이 계곡이 되겠군. 저 위의 구멍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바람을 타고 허공으로 흩어질 때가 된다면 말이지. 그 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흐름일 테니까.
오늘 보고 있는 고목바위는 어제 누군가가 보고 간 고목바위가 아니다. 공간이 변하고 시간이 변하고 빛이 변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까닭이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그렇게도 비슷한 혹은 같은 사진들이 겹겹이 쌓이는 것일게다. 그리고 저마다 보는 모습은 같아도 느끼는 것은 다 다르다는 것도.
뒤쪽에서도 봐야한다. 앞쪽과 뒤쪽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실은 이쪽이 앞쪽이다. 남쪽이기 때문이다. 남쪽이 앞인 이유는? 없다. 그냥 습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남쪽에 태양이 있기 때문이라고 굳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처음 본 것을 앞쪽으로 정의하는 습관이 있는 걸까? 낭월만 그런 걸까? 은연 중에 해변에 와서 처음 보이는 것이 앞쪽이고 그 반대인 쪽은 뒤가 되는 것도 하나의 고정관념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되는 것에는 원래 앞뒤가 없기 때문이다.
'전차 앞뒤없고, 여자고무신 좌우없다'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영화 대사였나? 바위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무래도 북쪽면이 얼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그쪽을 앞쪽이라고 하면 된다. 이쪽에서 보니까 뭔가 뒤통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만. ㅋㅋㅋ
바위가 종잇장처럼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물에 젖은 책이 울은 것처럼.... 저 켜의 하나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쌓였을지.... 그 세월의 DNA가 그 안에서 화석이 되어 있겠지..... 공룡의 발톱이 하나 끼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ㅎㅎ
이만하면 충분히 완미했지 싶다. 충분하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불충분이면 이것은 마치 불완전연소와 같아서 연기가 난다. 연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들여다 봐야 한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마음이 된 다음에서야 눈길을 뗄 수가 있는 것이다. 비로소 시선은 해안선의 끝으로 향하고,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발이 움직인다.
이 바위도 완전히 수직이로군. 모두가 같은 시기게 같은 압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다. 뒤쪽의 암벽이 아직도 85도 정도로만 선 것은 아마도 뒷산이 잡고 있어서였을 게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그래서 생각의 소스를 던져준다.
홀로 살아가는 삶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여정과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 살면 변화가 무쌍하고 함께 살면 상호작용에 의해서 비교적 변화가 더디게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면 말이다.
걸음걸음마다 모양을 달리하는 것도 바위를 보는 재미에서 뗄 수가 없는 부분이다. 사양(斜陽)을 받은 햇살이 바위의 측면에 쏟아진다. 이것은 한낮에 보는 그림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햇살이 옆에서 쏟아질 적에 그림도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위에서 내리 쏟는 빛과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된다. 그래서 태양의 빛은 사진가의 벗이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낭월은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플레시를 터뜨리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래가면서 까지 해야 하는지를 아직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인물을 촬영하는 전업사진가는 물론 고객의 요구에 따라서 작업해야 한다. 그러나 낭월은 취미사진가이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것만 찍으면 그것으로 만족인 때문이다. 조명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사진 짐이 대책없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사진수업을 받을 적에 어떤 선배들은 밝은 대낮인데도 플레시를 터뜨리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사진의 빛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겠지....
아마도 낭월은 자연주의인 모양이다. 자연의 빛으로 사진을 찍으면 될 것이 아닌가? 왜 구태여 인공조명을 보태서 촬영을 해야 할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어슴프레하면 또 그런대로의 그 시간의 모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무사태평의 성격도 한 부조 하는 것인가 싶기는 하다.
그래서, 낭월의 조명은 하늘에 있는 매우 밝은 태양 뿐이다. 실내가 어두우면 감도를 올리면 된다. 그래서 감도를 올려도 사진이 크게 얼룩지지 않는 소니A7M3이 고마울 따름이다. 예전의 카메라는 이소(ISO)를 4000으로 올리면 그림이 좀 봐주기 어려웠는데 이 카메라는 16000까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낭월은 화질은 크게 신경쓰지 않기도 한다. 의미가 중요하고 느낌이 중요할 뿐이기 때문에 렌즈도 1.2나 1.4와 같은 매우 밝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대신에 24-240과 같은 줌렌즈에 관심이 간다. 재빨리 멀리 있는 이미지도 당겨서 담을 수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인 까닭이다.
"쨍~!"
ㅋㅋㅋ 사진이 쨍하다면서 비교하는 설명을 보다가 혼자 실소를 했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사진은 흔들려도 되고, 초점이 맞지 않아도 된다. 느낌만 있으면 그것으로도 훌륭한 사진임을 전문가들이 증명했는데도 자꾸만 그런 문제로 분석하는 것을 보면 그냥 웃음만 나온다. 누구더라......
그래,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장면이던가.... 이 사진이다. 흔들린 것으로 치면 참혹하다. 그런데 이 사진은 이래야 한다. 일부러 흔들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나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생명도 보장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셔터를 눌렀겠지.... 그래도 이런 사진을 퓰리쳐상으로 보답했다면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하는 메시지라는 것이 명백한 것이다.
혹자는, 그것이야 특수한 상황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런 사진가는 비싸고 밝은 렌즈를 배낭에 가득 짊어지고 다니면 된다. 단렌즈가 밝다니까 그것들로 채우면 된다. 낭월은 세 개의 렌즈로 신나게 즐길란다. 그래도 하나의 단렌즈는 있다. 보이그랜더 10mm이다. 이것도 참 작품이다. 물론 10-24의 초점을 가진 렌즈가 있었다면 이것을 안 샀을 게다. ㅋㅋㅋ
사진놀이의 제1원칙 - 즐거워야 한다.
사진놀이의 제2원칙 - 즐거워야 한다.
사진놀이의 제3원칙 - 즐거워야 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낭월의 사진놀이개론이다. ㅋㅋㅋ
구멍에 해님이 광림(光臨)하셨도다. 아니, 모셨다. 구멍과 렌즈와 태양이 일직선이 되는 각도를 찾았으니깐. 물론 이 시간이 아니면 같이 놀 수가 없는 그림이다. 해님이 그 자리에 지나고 있었고, 마침 낭월이 이 자리에 왔을 적에, 마침 바위에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앗, 그럼 세 가지의 동시공존인가? 그러면 천지인(天地人)이네. 오호~!!
天 - 태양
地 - 바위
人 - 낭월
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이외수 선생의 「사부님 싸부님」이 떠오른다. 연못의 올챙이 한 마리의 이야기였는데.... 책은 어디에 쳐박혔는지 모르겠고... 네이버 이미지에서 뒤적뒤적....
내 그럴 줄 알았다. 누군가는 이러한 장면을 찍어서 올리게 되어 있는 게다. 올챙이가 심심해서 모래 위에 뒹굴어 보기도 하고 떠오르는 달의 그림자랑 놀기도 하는....
태양을 위로 보내기도 하고, 그러니까 태양을 올챙이로 만들어 버리는 셈인가? 뭐 그래도 된다. 사진은 놀이이니깐.
오른쪽 틈으로 보내면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내에게 선물하자. ㅋㅋㅋ
요렇게도 놀고...
조렇게도 논다.
구름이 가려도 놀 수가 없고, 시간이 지나도 놀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순간을 최대한 태양과 바위구멍과 같이 신나는 놀이에 빠져든다.
그렇게 놀다가, 심드렁~해지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훌훌 떠나면 된다. 아이들이 돌맹이로 탑을 쌓고 모래로 밥을 지어서 놀다가도 아무런 미련이 없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쫓아서 집으로 뛰어가는 것처럼.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절경이다. 사실 요즘은 장가계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늘은 더구나 그렇다. 이렇게 즐거운데 말이다. ㅋㅋㅋ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뭔가 남았으면 마져 활활 태우면서 놀아야지. 인생은 불꽃이 되어야 하는 거야. 라즈니쉬가 말씀하셨지.
탈대로 다 타야지
타다 말면 안 되지
'타다말진 부디마소'였나? 기억이 아름아름한다. 이번엔 풍등이다. 초롱이다. 초롱을 들고 다리를 건너 사랑스런 낭군을 만나러 가는 새악시에게 선물 해야지. ㅎㅎ
이젠 진짜 간데이~!
고마워 같이 놀아줘서~!
이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른다. 책은 많이 읽을 수록 행복을 즐기는 코드도 늘어난다는 것은 확실하다. 낭월의 방에 놀러 왔던 어떤 사람이 물었다.
손님 : 책이 참 많네요.
낭월 : 그런가요...
손님 :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요?
낭월 : 지금 내 옆에 있는 책이요.
손님 :도덕경이나 사기열전 같은 것이지 않나요?
낭월 : 재미있다면요.
손님 : 읽으려고 사놓긴 했는데 손이 안 가요.
낭월 : 그럼 손해 보셨네요. 나쁜 책.
유시민 선생의 말투가 재미있다. 양서(良書)를 읽으라고 어른들이 말하지만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냔다. 그냥 마구마구 읽다가 보면 저절로 자기에게 양분이 되는 책을 가릴 수가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고, 낭월도 이에 대해서 완전히 동조한다. 구분하는 것은 장애물이다. 그냥 닥치는 대로 읽으면 된다. 가려서 읽는 것도 편식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ㅋㅋㅋ
푸른 바다가 황금바다가 될 적에... 연지님이 전화로 부른다.
연지 : (띠리링~!) 물 들어와 어서 오셔~!
낭월 : 그래 보고 있다. 아직은 괜찮지?
연지 : 금방 들어와. 막히면 못 나오겠어.
그러나 낭월은 천하태평이다. 아직 덜 놀았기 때문에 전혀 돌아갈 마음이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아까 봐 뒀다. 장벌(해변)에 물이 가득 넘쳐도 빠져 나갈 길이 있다는 것을. ㅋㅋㅋㅋ
저수지에서 반영을 찾는 것도 옳다. 그리고 이렇게 풀등 옆에서 반영을 찾아내는 것도 옳다. 어디에서나 다 옳다.
바위 사이로 달달한 금빛 햇살이 파고 들어오면 또 아름답다.
몇 걸음 오른 쪽으로 움직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낭월과 놀아준다.
자연은 어디에나 있다. 지렁이와 굼뱅이에게도. 아니 자연이 아니라 도(道)였나? 요즘은 자연과 도와 삶이 마구 뒤범벅이 된다. 여튼 장자(莊子)의 말이다. 게 구멍에서 나왔을 구슬들, 모래구슬이네 그럼 사주(沙珠).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번엔 이렇게 게가 씹고 버린 것들과 놀이에 빠졌다.
물과 모래가 만든 작품도 감상한다. 바람과 모래가 만든 작품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선이 날카롭다. 잘못하면 베이겠다. 원~호들갑도 참. ㅋㅋㅋ
이제, 그림자도 많이 길어졌고, 갯물도 많이 들어왔다. 슬슬....
모델. 남편이 물에 잠겨서 못 오게 될까 봐 바닷물을 감시하고 있다. ㅋㅋㅋ
거의 고목바위 턱밑까지 물이 들어왔군. 그래도 아직은 비상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만만이다.
한 번 더 봐주는 것은 작별인사이다. 잘 있어~~!!
가을이로군....
이제 바다와 태양과 낭월의 천지인이 되어볼 시간이 다가온다.
하루 종일 수고로이 만물을 비춰 준 태양을 환송할 준비가 완료 되었다.
갈매기들의 흔적을 치우는 것은 누울 자리를 만드는 게다. 고단도 하시겠지. ㅋㅋㅋ
서성인다. 아직 태양이 너무 높이 계시네. 그럼 기다려야지. 감 따는 망으로 끌어당길 수도 없으니. ㅎㅎ
황금의 시간.....
점점 차 오르는 바닷물....
한 무리의 여인들이 차에서 내렸다. 일몰을 보러 왔나 보다. 집을 떠나 잠시 즐겨보는 시간들일 게다. 얼마나 순간순간이 맛이 있을까....
중간에 풀등이 있어서 경계선을 만들어 준다. 저쪽은 저승이고 이쪽은 이승이다. 풀등으로 누군가 지나가 줬으면 좋겠다. 실루엣이 추가되면 정중동(靜中動)이 완성 될텐데 말이다. 이렇게 실상과 상상이 서로 어우러져서 나래를 편다.
폰은 뒀다가 이런 때에 쓰면 된다. 열 일하는 폰이다. 네비에, 일기예보에, 일출몰에, 물때에, 정보까지.... 물론 이렇게 풍경스케치용으로도. 이 샷은 카페의 회원들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궁금해 할 몇 제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용도이기도 하다.
구름이 있어 고맙고, 구름이 있어 아쉽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엇? 소원성취 했다. 실루엣이다. 딴짓하느라고 못 봤다 그래서 태양의 빛그림자와 일치하는 선을 놓쳤다. 아쉽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적처럼 나타났다가 이내 렌즈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시 돌아오기는 하겠지... 더 갈 곳이 없으니깐. ㅋㅋㅋ
여인 : 엄머~! 사진작가이신가 봐요?
낭월 : 여행가입니다. 하하~!
여인 : 이렇게 큰 카메라로 찍으면 멋지겠어요.
낭월 : 들여다 보실래요?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는 붙임성 좋은 여인과 즐거운 수다도 떨어 본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만드는 사람인가? 라이트룸으로 보정하는 것이야 여인이 화장하는 정도의 수준이니 작가랄 것까지도 없지 싶다. 포토샵이랑 놀아야 사진작가지. 그래서 낭월은 사진가이다. ㅋㅋㅋ
일몰 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초병이 관광객들을 몰아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원래는 일몰전 30분에 해안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농여해변은 특별히 일몰까지 봐준다고 들었다. 일몰이 끝나면 그 여운을 즐길 시간은 없다. 이것은 국법이니깐. 골든아워만 즐기고 블루아워는 포기해야 한다. 아니면 총구멍에서 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모델이 바뀌었네? 심심한데 옆에서 놀아 주시니 한 장 찍어 본다.
앗, 되돌아 오는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잠겨든다. 하마터면 못 볼 뻔 했다. 잘 안 보이니까 라이트룸에서 잘라내어 본다. 누군지 궁금해서. ㅎㅎ
아, 예상을 한 대로 군인들이었군. 일몰 전의 상황을 순찰했던 모양이다.
순찰병이 초소로 돌아갈 즈음에....
낭월의 놀이도 다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군인들을 대놓고 찍을 수는 없다. 괜히 캥겨서이다. 그래서....
트릭을 쓴다.
낭월 : 연지야 손으로 해를 가리켜.
연지 : 이렇게?
낭월 : 팔을 조금 더 높이 쳐들어.
연지 : 왜?
낭월 : 뒤에 군인들을 찍으려고. ㅋㅋㅋ
이러고 사진을 찍으면 혹 의심할지도 몰라. 앞에서 팔을 들고... 옳지. 잘 한다.
연지님은 항상 낭월의 소품이다. ㅋㅋㅋ 아니, 주인공이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언제나 편리한 모델친구이다. 그래도 재미있다니 다행이다.
그래....
장엄한 하루의 마무리.....
그렇게 농여해변에서의 놀이도 막을 내리고,
다시 내일 새벽을 기약하면서 숙소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