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節知)와 철부지(節不知)

세월이 흘러가봐야 알게 되는 것이 참 많다.
특히 식물들은 더욱 그렇다.
여름 내내 꽃을 보면서 놀았던 나팔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꽃이 피어있을 적에는 예쁘기만 하던 천사의 나팔이다.
발그레한 분홍빛에다가 웬지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이름까정.....

반면에 새하얀 예쁜 색의 꽃을 피운 악마의 나팔...
이름만으로 본다면 이미 승부는 끝났다.
천사와 악마라니 이렇게 극적인 대비도 흔치 않을 게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저 이름은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붙인 것일 게라는.....
「진실은 무수한 잎이 아니라 몇 개의 열매에 있다」
누구의 말인지는 잊었지만 문득 떠오르는 한 구절이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서....
자연의 실체는 숨김없이 드러난다.
당장은 속을 수도, 혹은 속일 수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영원치 않다.
온 산천이 겨울 준비에 들어가고 있는 11월....
아직도 꽃을 만들고 있는 천사의 나팔을 보면서....
문득 한 숨이 나온다.
'에구.... 철을 모르는 녀석....'
그렇다. 천사의 나팔은 철부지였다.

여름 내내 새하얀 예쁜 꽃을 피웠음에도
이름에 갇혀서 악마의 사촌 쯤으로 생각했던 악마의 나팔은.....
이렇게도 알찬 가을을 노래하고 있음이랴.....
미련한 인간들이 뭐라고 이름을 붙여줘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름은 이름일 뿐.

최대한 안전하게.....
그것도 거대하게... 씨앗이 익기를 기다리는.....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병아리가 부화하는 모습과......
그렇게 한 참을 들여다 본다.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쩌억~! 쩌억~!
이제 산새들을 불러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무시무시한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고....

어서 와서 내 자식들을 먹으라고....
그리고 사방으로 퍼뜨려 달라고....
그리고..... 된 서리가 내리고 나서....

이렇게 죽어가는 천사의 나팔을 만났다.
철을 모르고 꽃만 피우던 철부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문득, 퇴임한 전직 대통령이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과 겹치는 것은...
인생도 죽을 날이 다가와야 그 결실이 보이는 것인 까닭일 게다.
나의 가을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