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보이는 것들
이것은 그랜드캐년이 아니다.
생긴 것은 험상궂어도 분명히 고구마이다.
다만, 고구마 치고는 참 못 생겼을 따름이다.
왜 이렇게 생겼을까....
지난 여름에 노루가 뜯어먹고,
토끼도 뜯어먹은 고구마 잎사귀이지만
그래도 고구마가 광합성을 할 만큼은 남겨 뒀다.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이겠거니....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갈무리이지 싶다.
아, 고추가 남았구나.....
서리 오기 전에 해야 할 마지막 수확은 고추인 걸로.
고구마 서너 이랑 심은 것을 캐고 있다.
연지: 도대체 왜 이렇게 길~게 뿌리가 뻗은겨?
낭월: 지난 여름에 가뭄의 흔적이라고 봐야지.
연지: 가물어서 물 찾느라고 뿌리가 길어진 건가?
낭월: 맞아. 그래서 깊이 뻗었네. 안 죽으려고.
연지: 그건 이해가 되네.
낭월: 오죽하면 구황작물이라고 했겠어.
연지: 구황작물이 뭐야?
낭월: 가뭄에도 먹을 것을 만들어 준다는 거지.
고구마를 보면 지난 여름의 흔적이 보인다.
지질층을 보면 쥬라기 백악기가 보이듯이...
손가락 마디를 보면 삶의 여정이 보이듯이....
말을 들으면 지혜의 깊이가 보이듯이....
연지: 내가 예뻐? 고구마가 예뻐?
낭월: 그야 고구마가 예쁘지.
연지: 왜?
낭월: 원래 예쁜 것은 예쁘다고 하지 않는 거니깐.
연지: 그런 겨?
낭월: 그으~럼. 그런겨.
연지: 근데 왜 이렇게 엉망으로 터진 거지?
낭월: 그야 무지하게 가물었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이지.
연지: 그런 것도 알아? 참 대단하다.
낭월: 알면 보이는 겨. 간지를 알면 인생이 보이듯이.
연지: 그래서 철학자라고 하는 건가?
낭월: 그냥 삶의 경험이지. 철학자는 무신.
연지: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 그러니까 고구마 잘못이 아니네.
낭월: 고구마를 비난할 수가 없는 겨.
연지: 동네 이장네 고구마도 이렇더라구.
낭월: 아이가 삐뚤어지는 것도 아이 탓만은 아닌 겨.
연지: 그건 또 뭔 소리래?
낭월: 아 있어. 몰라도 돼.ㅋㅋㅋ
그렇게 해서 수확을 한 고구마이다.
그리고 정리해서 담는 것을 보니....
고구마도...
인물 순이더라....
예쁘게 생긴 놈을 담는 그릇과,
험상궂게 생긴 놈들 담는 그릇....
이또한 자연의 이치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