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다.

잠시 시간을 내어 궁남지를 찾았다.
가을이 깊어가는 연못의 풍경이나 보자고....
바쁘다는 화인을 졸라서 끌고 갔다.
올해 새로 만들어 놓은 빅토리아 연못Ⅱ(두번째 연못)에는 야개연이 피었다.
그리고 둑에 파라솔을 펴고 앉아있는 사진가 님들....
아니.... 밤에 빅토리아를 잘 찍으려고 이 시간부터?
미리 명당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려니... 했다.
나름 반가운 마음에 주춤거리면서 다가갔다.
그땐 몰랐다.
그들의 표정이 왜 그리도 심각했는지....
그들의 표정이 왜 반가워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는지....
낭월 : 안녕하십니까~!
한분 : (렌즈에 눈을 댄 채로) ..... 예.....
낭월 : 저녁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계십니까?
한분 : ... 우린 꽃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낭월 : 예? 그럼...요...?
한분 : 물총새를 찍고 있는 겁니다.
낭월 : .... 아~!
순간, 아차, 싶었다.
왜 그분들의 표정이 그랬는지를 비로소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물총새를 찍고 있는데 낭월이 쫓은 것인가 싶었다.
기다리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 바퀴 돈 다음에.....

이번에는 뒤쪽으로 다가가 봤다.
물총새가 혹시라도.... 얻어걸리면 한 번 찍어보게...
그래서 혹시 몰라서. 150-600렌즈도 챙겨 왔는데...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뭐, 찍을게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챙겨보자.... 했는데.....
이번에는 조심조심.....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눈길을 줬다.

앗, 있다~!!
이런 행운이 주어지다니. 오늘은 일진이 좋은가보다.
얼른 렌즈를 바꿔끼우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삼각대도 없이 찍으려면 최대한 자세를 고정시켜야 한다.
그냥 삐쭉 서서 퍽퍽 눌러서는 사진 한 장 건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배턱에서 갈매기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자태이다.
예쁜 색의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이 포즈를 취해 준다.
구슬이 뭐하는 것인지도 그 전에는 몰랐다.
물총새의 휴식처였다는 것을.....
그래서 모르면 안 보이는 법이다.

잠시 후(사진정보에는 2분 정도)에 나타난 녀석.
엇, 부리에는 먹이도 물었구나.
그러니까 사냥에 성공한 다음에 천천히 먹으려고 집으로 돌아 온 모양이다.
셔터소리도 안 내려고 미러를 올려놓고 릴리즈로 찍고 있는 그분들....
덩달아 숨을 죽이면서.... 셔터를 눌렀다.
무음으로도 찍을 수가 있는 카메라이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냥 물총새 놀이에 동참했다. 얼떨껼이다.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1/1000초. 그것도 부족했던가 보다.
이소를 800쯤 올리고, 셔속을 1/4000초 정도는 했었어야....
항상 후회는 늦는 법이고, 기회는 지나간 다음인 것을....

잠시 기다리니 다시 앉아준다.
더구나 얼굴에 햇살이 닿는다. 그나마 다행이군.
순간.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직감했다. 연지님이 운동을 끝내고 건 전화라는 것을.
데리러 갈까를 물어보는 전화일게다.
그리고 또 직감했다.
물총새가 날아가겠군....
그리고 또 직감했다.
저분들에게 눈총을 받겠군....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울림과 동시에 물총새도 날았다.
얼....마...나... 미안턴지................

그래도 끝까지 물총새를 쫓아서 셔터를 눌렀다.
그분들은 이미 이골이 난 듯 했다.
세상을 초탈한듯 싶기도 했다.
전화벨이 울리건, 새가 날아가든, 미동도 없다.
그렇게..........

연못은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면벽하듯이...
부처가 6년 고행에서 송장이 되어가듯이....
또 날아오겠지.....
이미 도를 통한 달인들 같았다.
무음으로 했어야 하는데....
그땐 몰랐다.
전화가 와서 새를 쫓아버릴 것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