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깨비와의 수다

낭월 : 니 누고?
깨비 : 난 허깨비라네.
낭월 : 여기서 뭐하고 있노?
깨비 : 길을 찾고 있구먼.
낭월 : 그래, 길을 찾았나?
깨비 : 이 화상아, 찾았으면 이러고 댕기겠어?
낭월 : 하긴......
깨비 : 그대는 길을 찾았어?
낭월 : 나야.... 뭐... 관심이 없어서...

낭월 : 왜 그렇게 망설이고 있노?
깨비 : 나도 사람들이랑 친하고 싶은데....
낭월 : 그럼 친하면 되잖는감?
깨비 : 사람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걸랑...
낭월 : 하긴.... 넌 허깨비잖여....?
깨비 : 그럼 화상이 생각할 적에 나는 실체가 없는 거야?
낭월 : 그렇지~! 오죽하면 허깨비겠냐구. 도깨비도 실체는 있는데~!
깨비 : 그....렇....쿠....나........
낭월 : 그래도 난 그래 생각 안 한다네.
깨비 : 그럼?
낭월 : 어차피 인간도 허깨비니까. 다 같은 허깨비끼리 좌우를 가르고 있지.
깨비 : 오호,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낭월 : 당연하지. 고금의 성현이 알려준 거니까.
깨비 : 그 말을 들으니.... 힘이 나네.
낭월 : 근데 그렇게 혼자서 떠돌면 외롭지 않아?
깨비 : 나도 한 때는 혼자가 아니었기도 했었지.....

낭월 : 한때는 사랑하는 인연이 있었던가 보군. 그런가?
깨비 : 그랬었..... 지....
낭월 : 그럼 재미있게 잘 지낼 일이지 왜 도로혼자가 되었나?
깨비 : 원래 만남은 헤어짐을 예약하지 않는가?
낭월 : 오호~! 그것도 안단 말인가?
깨비 : 이거, 왜이래~! 허깨비라고 무시하는 겨?
낭월 :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깨비 : 허깨비도 오욕칠정은 다 있는 걸 잊지 말게나.
낭월 : 그렇군..... 당연한 것을 또 선입견으로... 미안허이...
깨비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낭월 : 그래서 그 인연과는 어떻게 되었는데?
깨비 : 뭘 자꾸 물어. 남의 아픈 일은 모른 채 하는 것이 미덕이라네.
낭월 : 그렇긴 한데.... 그래도 궁금하잖아.

깨비 : 어느 날, 그 여인에게는 더 행복한 일이 생겼던가 보더군...
낭월 : 저런..... 상처를 받았겠구.... 나....
깨비 : 첨엔 그랬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내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던 거야.
낭월 : 우와~! 그 정도면 도인의 문턱에 갔다는 건데.....?
깨비 : 도인이니 속인이니 그런 분별은 왜 하나? 다 부질 없는 걸.
낭월 : 그.... 런....가....? 그래도.... 멋지단 말을 한 겨.
깨비 : 멋지다고..... 하긴... 남이 볼 적에는 그럴지도.....
낭월 : 그럼 정작 그대는 어땠는데?

깨비 : 많이 망설였지....
낭월 : 돌아와 달라고 하지 그랬는가?
깨비 : 그런 마음도 들었다네.
낭월 : 그런데 말은 하지 않았단 말이야?
깨비 : 어차피 오고 감에 흔적이 없는 삶이잖은가....
낭월 : 저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긴 하지....
깨비 : 빌어볼까, 겁을 줘볼까, 울어볼까.....도 했지.
낭월 : 그래서 결과는 어찌 되었나?
깨비 : 결과?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
낭월 : 그...래....도....
깨비 : 모든 것은 뜬 구름이란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낭월 : 음..... 무슨 마음인지 알 것도 같군.....

깨비 : 그날부터 3년, 1천일을 꼬빡 앉아서 명상에 잠겼었지.
낭월 : 오호, 장좌불와(長坐不臥)를?
깨비 : 결과, 얻은 것이 하니 있다네.
낭월 : 그게 뭐지?
깨비 : 길을 찾는 거야.
낭월 : 아하~! 그래서 서성이고 있었구나~!
깨비 : 그런데 오늘 그것을 깨달은 것 같애.
낭월 : 아이구~! 축하하네. 그게 뭔가?
깨비 : 빛을 찾지 않으면 허깨비도 사라진다는 걸 알았네.
낭월 : 뭐? 뭐라고?
깨비 : 밝은 것을 찾으니 어두운 것이 생기고...
낭월 : 그야 당연하지....
깨비 : 빛을 놓으니 어둠도 사라지고....
낭월 : 어둠도 사라지니.... 속박도 없어지더라...?
깨비 : 맞아... 이제 수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려나 보네...
낭월 : 그럼... 깨비는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깨비 : 아직도 못 알아 들었구나..... 쯧쯧~!
낭월 : 어? 그런게 아니었던 말인가?
깨비 : 불래불거본자연(不來不去本自然).
낭월 : 허깨비도 공부하니까 유식한가 보네. 뭔 뜻인가?
깨비 : 온 것도 아니고 간 것도 아니니 이것이 본래 그렇게 되는 거.
낭월 : 우왕~! 도인의 말씀이다. 적어야지~~!!
깨비 : 휘리릭~!
낭월 : 어? 그냥 사라지는 거야? 아, 해가 넘어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