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수삼(水杉)나무 숲이다. 군내 전체에서 가장 많이 볼 수가 있는 나무라고 해도 되지 싶다. 그런데 발음하기도 어려운 메타세콰이어라고 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외제가 있어보여서일까? 다들 그렇게 부르니 그렇겠거니... 하다가 이름이 그것 밖에 없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수삼나무란다. 원산지도 중국의 서남부 지방인 사천 쪽이란다.

아주 아담한 정원이라기에 언제 한 번 나들이 가야지....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광주에 사는 제자가 번개를 쳐 줬다. 그야말로 울고 싶자 뺨 맞은 셈인가? 아니, 뭔가 적절하지 않고, 불감청 고소원이 낫겠다. 여하튼 그래서 소쇄원 나들이를 하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이다.
논산에서 2시간도 채 안 걸렸지 싶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 것은 길이 너무 좋아서이기도 하다. 동서남북 어디로 향하더라도 길이 뻥뻥 뚫려 있음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랄 밖에.

이름도 참 어렵다. 소쇄원(瀟灑園)이란다. 소쇄는 어려운 글자만 골라서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붓으로 쓴다면 한~참 걸리지 싶다. 컴퓨터의 공덕이 무량함을 다시 알게 된다. 적어도 글 줄이나 좀 읽은 사람이 지은 것이라는 냄새가 폴폴 난다. 맑고 깨끗한 동산이란다.
왠지 품격이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탁하고 더러운 사람들은 가까이 하기 싫다는 주인장의 의도가 그대로 묻어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림을 보니 참 단촐해 보인다.

일단 신상명세서를 봐야 한다. 객관적인 내력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양산보가 만들었다네. 스승이 조광조였다는 이야기고, 스승이 유배지에서 죽는 것을 보고는 벼슬의 길이 어떠한지를 즉시로 깨달았다는 이야기인 것을 보면 양산보의 사주에는 탁월한 직관을 소유했겠구먼. 여하튼 500 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당금의 한국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가 있지 싶다.
양산보의 호가 소쇄옹이었다니, 그 양반도 꽤나 청렴하고 싶었던가 보다. 최소한 혼탁한 세상과 어울리기 싫다는 비명에 가까운 항의가 그의 호에서 느껴진다. 그야 저마다 생긴대로 살아가는 것이겠거니..... 여하튼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가 있다는 것은 선비의 고고한 인품임이 분명하다.
양산보의 5대 자손이 보수해서 조상의 뜻도 기리고 수입도 올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보다. 그런데 줄잡아도 500년 혹은 450년은 되었겠는데.... 5대 손이라니.... 이건 뭔가 이상하군.... 평균 1대를 30년으로 잡는 것이 상식인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10대를 넘어 20대를 바라봐야 할 것 같은 세월의 후손은 되어야 하지 싶은데 말이지. 근데 상대하손(上代下孫)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낭월이 잘못 알고 있나.....? 5세손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여하튼 뭔가 기록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슬며시......
그래서 네이버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15대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도 무슨 고집으로 많은 사람이 돈을 내면서 찾아오는 소쇄원의 정보를 고치지도 않고 방치하는지 모를일이다. 이건 또 무슨 배짱이고....?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담양군청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도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여하튼 많은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창작활동도 했더라니까 느낌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일일이 다 읽고 진입을 해야 정상이지만, 해가 서산 가까이 다가갈 시간이라면 읽을 시간이 없다. 그냥 사진 한 장으로 기록을 저장한 다음에 한가로이 이렇게 여행이야기를 쓰면서 읽어보는 것이 보통이다. 먼저 읽으나 뒤에 읽으나 내용은 같으니까 말이다.

입구에는 틀림없이 매표소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낭월과는 상관없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표를 사라는 것은 보여 줄 것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거니 한다. 아, 왜 낭월과는 상관이 없느냐? 나이가 65세를 넘겼느냐?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담양 군민이냐? 그럴리가, 낭월은 논산 시민이다. 그런데 왜 상관이 없느냐? 장애증이 있단 말이거든. 아름답고 좋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음이다. ㅋㅋㅋ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태어날 적에 부터 한 눈을 못쓰게 타고 난 것이 이렇게도 요소요소에서 고마울 때가 많은 것을 보면 육근이 성치 못한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어려서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다녀서 '찌그댕이'라거나 '예망총(나중에 생각해 보니 M1소총을 말 하는 듯)'이라는 별명이 쫓아 다녀서 무척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 녀석들은 모두 어디에서 뭘 하면서 살고 있으려나.....
따돌림도 잠시이고, 타관살이도 이내 흘러가 버린다. 왕따로 인해서 힘들어 하는 것도 다 자기 팔자이고, 그것으로부터 내면을 성찰하는 계기를 얻는 것도 또한 자신의 팔자려니 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서 군대도 면제 받았지. 예비군도 면제 받았지, 동서남북으로 싸돌아 다녀도 입장료도 면제라지.....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아마 흔치 않을 게다. ㅋㅋ
그렇다고 해서 볼 것을 못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말은 있더라만, 그러한 것은 애초에 모르므로 그냥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카메라도 외눈이잖여? 물론 쌍안경도 필요없다. 있느나 마나니깐. 그래서 이렇게 사물을 외눈으로 본다는 것의 불편함이 별로 없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 더 많을 밖에.
어떤 사진가들은 한 눈으로 물체를 잡기 위해서 한쪽은 찡그리거나 감기도 한다더라만 그럴 필요도 없으니 뭐, ㅋㅋㅋ 여하튼 왠지 손해 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한국의 외눈이들에게 위로와 함께 덕담을 드리는 셈이다. 장애는 장애일 뿐. 그 속의 주인공만 반듯하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더라는 말씀이다.
물론 입장료 아껴서 논을 사거나 빌딩을 지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들은 지갑을 꺼내어서 계산하느라고 부산할 적에 쓱~ 들어가면 되는 것은 귀찮지 않아서 무엇보다도 제일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항간에 듣자니까 요즘은 장애인증을 발급하는데도 절차가 복잡하더란다. 그런 것에 인색하지 말고 없는 사람들 잘 살게 해 줄 법이나 좀 만들지... 쯧~!
그런데 낭월은 그냥 들어간다지만 동행한 가족은 여지없이 돈을 내야 한다. 그리고 과연 무슨 볼꺼리들이 2천원 값을 할 것이냐는 생각도 짐짓 해 보게 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감축했으니 그에 대한 댓가는 당연하다고 보는 것일게다. 그리고 나오면서 그 계산서는 바로 나온다. 볼 만 하다거나, 볼 것도 없는데 입장료만 받아 쳐먹는다는 감상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는가. 자손이 조상의 덕좀 보겠다는데....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땅을 굳게 부여잡고 있는 것은 죽근(竹根)이다. 가로 세로로 엉켜서 야무지게도 잡고 있다. 예전에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일본에서 사실 적에 지진이 나면, 모두 화로를 들고 죽림으로 뛰어 가더란다. 그래서 왜 그러는지도 모르게 같이 뛰셨다는데 대나무의 뿌리가 땅이 갈라지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는데 화로는 왜 들고 가야 했는지 모르겠다. 어머님도 그게 궁금했지만 그냥 그렇게 하더란다. 거 참....
을목의 힘이다. 치밀한 계산으로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땅에 뿌리를 박고 버틴다. 나무의 속성에 밝은 사람은 나무를 보면 뿌리가 어디로 뻗었는지를 알아 본단다. 그야말로 입지안(入地眼)이다. 땅 속을 들여다 본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예전에 풍수 공부를 한답시고 입지안전서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 구먼....

담양에 와서 대나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뭘 하느냐고 해도 되지 싶다. 과연 대나무의 천국이다. 그리고 대나무 숲과 소쇄 선생을 생각해 보니 문득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떠오른다. 소쇄 선생이 왜 담양의 죽림 속으로 숨어 들었는지도 혹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죽림칠현처럼 세속과 결탁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함 이었을게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나는 것은 갑(甲)을 닮았고, 야무지게 땅을 붙잡고 버티는 것은 을(乙)을 닮았다. 그리고 속이 빈 것은 도(道)를 닮았고, 마디가 있는 것은 자연의 계절을 닮았다. 대나무를 보면서 고기 잡는 통발이나 죽통밥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낭월은 나름 학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쪼매~ 더 있어 보이지 않은가 말이다. ㅋㅋㅋ 원 미친~

오~ 과연~!
소박해도 너무 소박하다. 오히려 빈티가 철철 넘치는 풍겨이기조차 하다. 이곳이 소쇄원이었구나.

이 데자뷰 느낌은 뭐지? 언젠가 이 숲 길을 호젓하게 걸었던 것만 같은 느낌. 이제 별 것 다 한다. 소설도 지나쳐서 공상으로 이어진다. 그럼 뭐 워뗘? 내가 그렇게 느꼈다잖여. 그러니까 그 자리에 서는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거지. 내가 꼭 소쇄원을 지었거나 노닐었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니 느낌의 흐름을 따르고자 함인지라.

그야말로 자연 정원이다. 산 비알에 물이 흐르는 계곡 하나 끼고, 조촐하게 꾸며놓은 은둔처사(隱遁處士)의 거주처로 썩 잘 어울린다. 이러한 모습에서 고졸(古拙)의 그윽한 맛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 과연 소쇄 선생의 심성이 이러했을 것이라는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보게 된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나무들과 제멋대로 생긴 바위들은 산보를 하다가 잠시 앉아서 쉬어도 편안할 것 같은 풍경이다.

번개에 먼저 도착하신 인연들이 미리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딱 마주쳤다. 표정들을 보니 모두 낭월을 많이 보구 싶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솔솔 배어난다. 학문의 인연으로 만나서 이렇게 불식간에 번개를 치면 또 부산에서 포항에서 논산에서 언양에서 양산에서 우루루 날아와서 서로를 보고 반긴다. 이것은 학연(學緣)이다.
뭐, 학연이래서 벼슬길에 도움을 받으려고 온갖 비리를 무릅쓰고 학위를 얻기 위한 몸부림의 학연이 아니라, 그냥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과정에서 우연처럼 만난 인연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뿌듯한 인연일 수밖에.
나름의 일들을 잠시 뒤로 미루고 득달같이 달려 온 인연도 소중하고, 비록 현실의 거미줄에 걸려서 어쩔 수가 없는 학연도 마음만 유체이탈로 담양 나들이에 동참했으려니 한다.
사실 소쇄원에 왔으면 툇마루에 둘러 앉아서 논도(論道), 담명(談命), 관철(觀哲)을 하는 것이 제격이다. 그런데 이 학연의 친구들은 마음이 바빴나보다. 그래도 최소한 싸부님을 뵈었으니 같이 한 번 더 소쇄원을 돌아보겠다는 사람도 하나 쯤 있어도 될테지만 뭐 그것까지야 바라겠는가 싶다. 예까지 온 것만도 반가울 따름이니 말이다.

미리 와서 둘러 봤으니 무등산에 다녀 온다면서 왁자지껄 길을 재촉한다. 그래서 다시 고요한 순간을 맞이했으니 이것도 또한 천복(天福)이다. 역시 사유(思惟)에는 고독(孤獨)만 한 것이 없음이다. 천천히 둘러 볼 시간은 없다. 이미 햇살이 대나무 숲 사이로 끼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디오를 32배속으로 돌리는 심정으로 짧은 시간에 후딱~! 돌아봐야 한다. 때론 느긋하게 또 때론 후다닥 돌아보는 것이 자연의 흐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연에서도 느슨한 물결도 있지만, 휘몰아 치는 격랑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기에 상황따라서 즐기는 것만 중요할 뿐이고, 직장에 다니는 일행으로 인해서 2시 반이나 되어서야 논산에서 출발을 한 것을 투덜댄다거나, 그냥 떼어놓고 나 먼저 출발할 것을 그랬다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냥 되는대로 즐기는 것이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정녕? 하모요~!

보라, 이끼에 쩔은 석축. 문득 근래에 읽고 있는 도올의 중국일기가 떠오른다. 고구려 사람들은 그렇게도 돌을 쌓는 기술이 뛰어나더라는 감상문은 백미였다. 도올 선생이 한 가지 흠이라면 잘난체를 하신다는, 그것도 조금은 심하게 하신다는 것인데, 그것만 빼면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대석학(大碩學)이시다.
그래서 자기자랑이 나올 적에는 양주동 박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자기 자랑을 하는 것도 학자가 갖는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면 뭐 크게 나무랄 것도 없다. 그러한 자존감으로 외롭고도 긴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낭월은 제 자랑을 얼마나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자기만 모른다'는 말이 문득 찔려 온다. ㅎㅎ
고구려에서 그렇게도 많은 산성들을 보면서 하나같이 돌을 이용해서 기가 막히게 쌓아놓은 석성(石城)들에서 감동을 받으신 도올 선생의 느낌을 이 조그만 석축에서 느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제각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잔 돌의 모습들에서 고구려의 기상이 옅보이기도 한다. '에게~!' 라고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바닷물을 이해하는데는 한 컵의 물도 너무 많은 것이라는 고인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라고 우긴다.

어디에선가 담양 소쇄원이 좋다고 해서 나들이 오셨나 보다. 어쩌면 소쇄 선생에 대해서야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소쇄원이 거기 있으니까 찾아온 것일 뿐이라도 좋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탐욕과 명예의 부질없음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그냥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주변의 돌들을 대충 주워다가 쌓아서 물길을 비껴주고 담장을 둘렀으니 또한 재치라고 해도 되겠고 자연친화적이라고 해도 되겠다.

어딘가에서 나들이 온 연인인가 보다. 모델이 참하다. 예쁜 연인을 찍는 사내도 준수하지 싶다. 젊은 사람들이 카페나 극장을 가지 않고 이렇게 고졸한 선비의 정원을 찾았다는 것만 봐도 능히 알고도 남을 일이다. 아마도 여인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장자(莊子)의 호접몽(虎蝶夢)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담장, 그 아래로 흐르는 옥수, 그리고 세월의 이끼, 이에 어우러지는 선남선녀들이 모두 자연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요, 산수화이다. 소쇄원에 나들이를 한 인연이 갸륵한 연고로 나름의 소감이 날개를 달고 퍼져나간다.

보라, 죽림이 비잉 둘러져 있으니 속세와 인연을 단절하고, 이쪽에 흐르는 물로 채마밭을 가꾸려는지 나무 하나를 이용해서 물이 흐르는 길을 만들었다. 수행자는 흐르는 물을 막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처럼 흘러가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봄이나 나무들은 아직 옷을 입지 못했으니 겨울의 부족한 햇살을 고스란히 정자에 안겨 준다.
고저넉한 모습에 마침 늦어가는 시간이라 관람객도 드문드문하니 풍경은 그야말로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옛 선비들이 한양을 잊고 자연을 즐긴 맛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정자에 앉아서 천하대세를 담론하고 공맹노장(孔孟老莊)과 소요(逍遙)했으리라. 소박함이 지나쳐서 빈한해 보이기조차 하지만 그러한 것에 개의치 않고, 송순(宋純)
, 임억령(
林億齡), 김인후(
金麟厚),
소세양(蘇世讓), 김윤제(
金允悌),
고경명(高敬命), 기대승
(奇大升), 정철(
鄭澈)과 같은 당대의 거유들의 토론장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이 자리에 함께 하는 것도 송구할 따름이다.
과연 담양이 왜 담양(潭陽))인지를 알겠다. 아니, 그보다도 왜 그들이 담양으로 모여 들었는지를 알겠다고 해야 맞지 싶다. 물이 맑고 햇살이 따사로워서였을 것이다. 물이 맑으니 지식을 저장하기에 제격이고, 햇살이 따사로우니 지혜를 나누기에 넉넉했음이리라. 그래서 담양의 물좋은 소쇄원에서 삶의 철학을 논하며 순간을 즐겼을 게다.
정자 가운데에 방이 있는 것은 겨울에도 공부를 하기 위한 디자인이었을 것이다. 아궁이에 장작을 한 아궁이 미여터지게 집어 넣고는 두툼한 사서삼경을 펼쳐 놓으면 긴긴 겨울도 순식간에 백화가 만발하는 꽃동산이었을 터이니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벼슬길을 재촉할 것이냐는 생각도 해 본다.

봐라 이거, 정자 이름 하고는 참 예사롭지 않구나.
다들 낙향한 선비들이거나 귀양살이 하는 학자들이다 보니 항상 볕이 그리웠나 보다. 양광(陽光)이 가득하기를 꿈꿨을테니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광은 하늘의 햇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에, 그러니까 간신배들이 우글대는 나라에 백천일월과 같은 해맑은 햇살이 가득하기를 염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신이 올곶게 박힌 선비들은 모두 귀양길로 내치고, 아부와 아첨을 일삼는 떨거지들만 우글대는 한양 도성의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진광풍(一陣狂風)이 휘몰아 쳐서 권력에 붙어서 아첨하는 간신배들을 싸그리 쓸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를 말아먹는 떨거지들을 미친 바람이 달려들어서 모조리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따사로운 햇살의 밝은 정치를 해 달라는 선비들의 염원을 담았을 것이라는 소감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은 달라졌지만 인생의 공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생각해 본다. 4.13의 총선을 앞두고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국민의 안위는 십만 팔천리로 날려보내고, 자신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서 줄을 대고 있는 모습들이라니......
이땅에 다시 한 번 일진광풍이 휘몰아 쳐서
절대권력 주변에 알짱대는 십상시를 날려버리고
올곧은 사람들로만 똘똘 뭉쳐서
세계 제일의 한국을 만들어주고 말고 암.
작금(昨今)의 상황을 보니 과연 소쇄원이라도 있었기에 숨통을 트고 살았을 당시의 선비들의 마음에 대한 연민심이 느껴진다. 정자의 현판 하나에도 그들의 염원을 담았음을 생각하면서 저물어 가는 소쇄원을 서성인다.
일행이 독촉하지만 않았다면 오늘 밤은 예서 그냥 하루 묵고 싶은 마음이다.

폭포는 커도 폭포이고 작아도 폭포이다. 삼각대도 챙기지 않았는데 폭포를 보니 예쁘게 담아주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여다 본다.
셔터 속도는 1초, 실제로는 3/5초
조리개는 최대한 조여서 F/22
감도는 최저로 낮춰서 ISO 50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위에 올려놓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서 겨우 하나 건졌다.
이렇게 해 놓고서 선비의 정신이라고 우길 참이다. 이 시대에도 분명히 선비는 있을 것이고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 물처럼 세월을 한탄하면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광풍을 만나면 노도(怒濤)가 되어서 세상의 오염물질들을 다 날려버리고 정화시켜 주겠거니....... 하는 기대조차도 갖지 못한다면 너무 재미 없지 않은가 말이다.

뭔 소리냐고?
그래 개 소리 좀 했다. 뭐 어쩔래~!
소쇄원의 선비들이 그렇게 귓가에 와서 속삭이네. 그래서 잠시 그 느낌을 적어보니 딱 이만큼 이구먼. 여하튼 옛 선비들과의 조우는 항상 행복만 안겨다 준다.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남녁의 봄이 이미 소쇄원에 다달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산수유(
山茱萸) 꽃이 이제 마악 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희망을 본다.
기쁨을 본다.
꿈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