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9 · 수요일(乙丑日)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인연이 되셔서 고맙습니다
08.19 · 수(乙丑日)
오주괘 →
철학산책시리즈(전자책) 안내

사주학명인전⑤ 진소암(陳素庵)


---------------------------

 


[클릭하면 판매서점으로 연결됩니다]

 

 

사주학명인전진소암(陳素庵)

 

차례

 

 

머리말 7

일러두기와 등장인물 11

 

 

1화 먹물이 마르기 전에 19

2화 강물에서 건진 운명 51

3화 별들이 말을 걸던 시절 87

4화 갑자년의 거인, 산문(山門)에 들다 113

5화 세 번 닫힌 문 147

6화 글자 사이의 빈자리 183

7화 네 번째 시험, 숙소 노파의 예언 213

8화 합환수(合歡樹) 아래의 두 시인 245

9화 부친을 구하지 못한 용신(用神) 273

10화 폐고(廢錮)의 서재 311

11화 왕조(王朝)에도 대운이 있는가 341

12화 새 황제, 낡은 마음 369

13화 산처럼 쌓인 삼명통회397

14화 칼날 같은 명리정종421

15화 생극(生剋)과 부억(扶抑), 그 너머 447

16화 약언(約言) 487

17화 졸정원(拙政園)의 주인 517

18화 한 운을 둘로 자르지 마라 545

19적천수집요의 봄 575

20화 상양보(尚陽堡)의 잔설(殘雪) 619

 

진소암(陳素庵) 연보 655

 

 

작가의 말 661

-----------------------------------

 

작가의 말

 

다 쓰고 나서야 한 사람이 보였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한동안 원고를 다시 넘겨 보았다.

어린 지린이 강물에 빠진 날 처음 마주한 연해자평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북방의 상양보에 내리는 눈까지 와 있었다. 한 아이가 사람의 운명을 알고 싶어서 책을 펼쳤고, 한 선비가 과거에 떨어지면서 자신의 명조를 들여다보았으며, 마침내 높은 벼슬에 올라 다른 사람의 명을 논하던 사람이 자신의 삶 앞에서는 쉽게 답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 진소암을 쓰려고 했을 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역시 명리약언이었다.

어째서 그는 그렇게 많은 명리 이론을 접하고도 말을 줄이려고 했을까. 왜 만민영의 삼명통회가 지닌 폭넓음을 인정하면서도 박()하되 약()하지 못한다고 했으며, 장남의 명리정종에서는 조목을 나누어 이치를 정리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번다함을 경계했을까.

처음에는 그것을 학문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원고가 한 편씩 늘어가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진소암에게 약()은 단순히 복잡한 이론을 간추리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살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가 평생 줄이고 또 줄이려 했던 마지막 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기록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노계원은 소암의 곁에서 끝까지 근거를 요구하는 사람으로 그렸다. 스승의 말을 받아 적는 제자로 시작했지만 차츰 스승에게 가장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논적이 되었다.

화란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어려운 이론을 들으면 엉뚱한 곳에서 구멍을 찾아냈고, 스승이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설득하려 하면 어느새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글을 쓰면서 나도 여러 번 화란의 질문 앞에서 멈췄다. 소암에게 대답을 시켜야 하는데 나부터 대답할 말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찬은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서찬의 눈을 통해 대학사도 명리학자도 아닌, 함께 늙어 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진지린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상양보에 이르러서는 이론보다 두 사람의 대화가 더 중요해졌다.

노계원과 화란은 역사 기록에 없는 인물이다. 서찬은 실제로 진지린의 곁을 지킨 사람이지만, 작품 속에서 그와 나눈 대화와 마음의 풍경은 기록의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운 것이다.

진소암이 남긴 글과 실제 삶 사이에는 너무 많은 빈자리가 있었다. 그 빈자리를 함부로 사실인 것처럼 채울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서는 한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를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실이 놓인 곳에는 사실을 따르고, 기록이 멎은 곳에서는 상상의 등불을 켜 보았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자주 만난 말은 모른다였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모른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하고,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진소암의 삶을 따라 원고를 써 갈수록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남겨 두는 것도 하나의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다.

같은 명조를 놓고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고, 옳다고 믿었던 선택이 훗날 돌아보면 욕망과 뒤섞여 있을 수도 있다. 충성이라고 부른 마음 안에 출세욕이 있을 수 있고, 살아남으려는 선택 안에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진심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한 이름으로 잘리지 않았다.

진소암도 그랬다.

명나라의 신하였고 청나라의 대신이었다. 방안으로 급제한 문인이었고 황제 가까이에 섰던 대학사였으며, 권세를 누린 사람이었다. 동시에 죄를 얻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북쪽 유배지에서 생을 마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세월 사이에서 사람의 여덟 글자를 붙들고 끊임없이 이치를 묻던 명리가였다.

어느 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를 겹쳐 놓으면 다시 어려워진다.

아마 그래서 마지막에 이르러 소암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위대한 명리학자의 선언이 아니라 한마디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겠소.”

나는 그 말이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이 어렵게 도달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조금 아는 사람이 쉽게 단정하고, 많이 본 사람일수록 말끝을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원고를 다 쓰고 다시 첫 장을 펼쳐 보니 강가에서 처음 연해자평을 바라보던 어린 지린과 상양보의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늙은 소암이 한 사람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책과 벼슬과 사람과 질문이 있었다.

무엇은 얻었고 무엇은 잃었다.

무엇은 끝까지 믿었으며 무엇은 스스로 버렸다.

그러나 질문 하나는 끝내 남았다.

 

사람의 명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진소암이 그 답을 모두 알고 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이 책을 다 썼다고 해서 그 답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사람을 보게 되었고, 이름을 붙이기 전에 한 번쯤 더 망설이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긴 이야기를 쓴 보람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책장을 덮는다.

상양보의 눈은 그쳤지만,

소암이 남긴 질문은 아직 녹지 않았다.

 

 

2026년 병오(丙午). 입추지절 박주현 쓰다

 

목록으로 — 철학산책시리즈(전자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