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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학명인전④ 장신봉(張神峰)】
차례
머리말 7
일러두기 10
제1화 임천의 선비, 천명(天命)을 묻다 11
제2화 산중에서 만난 기인, 굳게 닫힌 하늘의 문을 열다 25
제3화 강호(江湖)에 나가 직접 명운(命運)을 묻다 45
제4화 허름한 주막의 걸인, 적벽의 바람을 말하다 61
제5화 새는 하늘을 날고, 나무는 땅을 지킨다 77
제6화 옥황산에 올라 육오산인을 만나다 91
제7화 보존하는 자의 그릇, 깊이를 알 수 없는 스승 121
제8화 전당강변의 산명관, 이론과 실제로 쌓는 명리의 탑 141
제9화 열두 권의 바다를 건너 땅의 기운을 마주하다 159
제10화 낙방한 청년의 좌절, 첫 제자로 맞아들이다 185
제11화 눈 내리는 이른 아침, 명리(命理)의 뿌리를 묻다 211
제12화 거대한 용광로에서 자평의 골법(骨法)을 벼리다 229
제13화 옛 학설을 제자리에 놓고 병약문답의 첫 장을 열다 259
제14화 언 땅에 불을 지피고 병약(病藥)의 뼈대를 세우다 283
제15화 하늘이 약을 내리지 않거든, 마음에서 약을 만들라 309
제16화 별빛의 거짓을 베고, 《명리정종》의 첫머리를 쓰다 333
제17화 분노의 그림에서 사람을 살리는 붓으로 361
제18화 모든 열쇠를 쥔 부자, 재물의 숨길을 열다 393
제19화 칼을 내려놓은 장수, 종화(從化)의 문을 열다 425
제20화 세대가 함께 새긴 질문, 천하의 물길로 흐르다 461
남기는 말 497
장남(張楠) 생애 및《명리정종》전승 연보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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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는 말
사람보다 높은 책은 없다
이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도 한동안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장신봉이 평생 벼려온 칼날은 마지막 장에서 책이 되어 세상으로 흘러갔지만, 그가 처음 품었던 질문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듯했기 때문이다.
바르게 산 사람은 왜 고통을 겪는가.
사람의 운명은 태어난 여덟 글자 안에 어디까지 담겨 있는가.
명리를 안다는 것은 닥쳐올 불행을 미리 선고하는 일인가, 아니면 아직 바꿀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 주는 일인가.
이 소설은 그 질문을 따라 걸어온 한 학자의 긴 여정을 그렸다.
역사 속의 장남(張楠), 곧 장신봉(張神峰)은 명나라 때 활동한 명리학자이다. 그의 저술은 판본에 따라 서명이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현전하는 문광당 순치본의 서명은 《신전신봉장선생통고벽류명리정종대전(新鐫神峰張先生通考闢謬命理正宗大全)》이며, 책갑에는 《신봉통고(神峰通考)》라는 약칭도 적혀 있다. 오늘날에는 흔히 《신봉통고》 또는 《명리정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장신봉은 자서에서 여러 명리서를 섭렵한 뒤 그 안의 근거 없는 주장과 서로 어긋난 설명을 안타깝게 여겨, 사십여 년 동안 이 학문을 탐구했다고 밝혔다.
그가 세우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또 하나의 비결서가 아니었다.
그의 책에는 동정설(動靜說), 개두설(蓋頭說), 육친설(六親說), 병약설(病藥說), 조고·왕약의 네 가지 병과 손익·생장의 네 가지 약을 논한 팔법설, 종재와 종살을 비롯한 종화론 등 기존의 이론을 다시 살피고 실제 명조를 통해 그 쓰임을 검토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살과 납음, 외격을 모두 버린 순수한 오행론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해 오는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그 이치와 증험을 따져 물으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장신봉의 전기(傳記)가 아니다.
호명선에게 《연해자평》을 받는 장면, 만민영을 직접 스승으로 섬기는 과정, 황청과 조영환, 백연과 연화, 허정후와 유경산을 비롯한 많은 인물은 장신봉의 학문이 형성되는 과정을 한 편의 이야기로 보여 주기 위해 빚어낸 소설적 인물과 사건이다.
특히 장신봉과 만민영의 사제 관계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다만 《연해자평》이라는 오래된 물줄기와, 만민영의 《삼명통회》라는 거대한 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옳고 그름을 다시 분별하려 했던 장신봉의 학문적 위치를 독자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사제의 인연으로 형상화했다.
황청은 장신봉의 날카로운 칼날 곁에 세워 둔 등불이었다.
그녀는 특정한 실존 인물을 옮겨 온 사람이 아니라, 기록과 증험, 여성의 삶과 상담, 그리고 학자의 자기 확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또 하나의 학문적 양심을 상징한다.
장신봉이 거짓을 베어 내는 사람이라면 황청은 무엇을 베어서는 안 되는지 묻는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문답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간단하다.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비판받을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론을 세운 학자 역시 자신의 이론이 사람의 삶과 맞지 않을 때에는 기꺼이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 《삼명통회》와 《명리정종》은 서로 싸워 한쪽이 사라져야 하는 책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삼명통회》는 앞선 시대의 여러 학설을 폭넓게 모은 거대한 총집이었고, 《명리정종》은 그 바다 속에서 다시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으려 한 책이었다.
실제로 《삼명통회》 열두 권은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子部) 술수류(術數類)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사고전서총목제요》는 이 책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았다. 후대 방각본의 첨입 가능성을 지적했고, 정관·정인·정재에 치우친 점과 일부 이론이 실제와 맞지 않는 점도 비판하면서, 큰 뜻을 취하되 변통하여 읽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신봉통고》는 본래의 《사고전서》에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총찬관(總纂官) 기윤(紀昀, 호 효람 曉嵐)이 장신봉을 촌부라 업신여겨 직접 배척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당시의 수집 범위와 판본의 유통, 책을 올린 사람과 올리지 않은 사람, 편찬관의 선택 등 여러 조건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민국 시기에 동방문화사업총위원회 계통의 북평인문과학연구소에서 편찬한 《속수사고전서총목제요(續修四庫全書總目提要)》에는 《명리정종대전》 여섯 권에 관한 해제가 전한다. 그 해제는 장남이 당시에 명리로 큰 명성을 얻어 책을 배우고 전한 사람이 많았으며, 옛 학설의 오류를 분석하고 일간과 월령을 중심으로 전체의 이치를 관통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황실의 정식 총서에는 들지 못했지만, 후대의 서지학적 평가에서 다시 그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이 서목 사업은 1995년부터 상하이고적출판사에서 1,800책 규모로 간행된 《속수사고전서(續修四庫全書)》와는 별개의 사업이다.
무엇보다 책은 목록에 이름이 올라야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장신봉의 책은 여러 이름과 판본으로 거듭 인쇄되며 명리가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한 목판본의 권두에는 《신전신봉장선생통고벽류명리정종대전》이라는 긴 서명과 함께 장남의 저집(著集), 두춘방의 교정(校正), 곽자장의 발행(發行), 여섯 아들의 휘편(彙編), 여섯 손자의 등사(謄寫), 예림사지관(藝林四知館) 여천 양금(麗泉楊金)의 수재(繡梓)가 기록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머리에서 곧바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벗과 가족, 발행자와 판각을 맡은 사람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음을 보여 주는 소중한 흔적이다.
나는 그 권두의 이름들을 바라보며 오래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위대한 책을 한 천재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 한 권이 세월을 견디려면 저자의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잘못을 지적하는 벗이 있어야 하고, 흐트러진 원고를 정서하는 손이 있어야 한다. 판목을 새기는 장인과 비용을 감당하는 사람, 젖지 않도록 책을 싸서 먼 길을 옮기는 이름 모를 일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책을 펼쳐 읽고, 자신의 삶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다시 판단하는 독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명리정종》은 장신봉만의 책이 아니다. 앞선 명리서를 남긴 학자들과, 그 책들을 읽으며 오류를 겪거나 의문을 품은 사람들, 다시 문제를 제기한 후학과 찢어진 책장을 베껴 전한 이름 모를 독자들이 함께 이어 온 책이다.
장신봉의 병약설이나 종화론이 후대의 모든 이론으로 곧게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학문의 계보는 소설처럼 한 줄로 이어지지 않으며, 비슷한 질문이 서로 다른 시대와 학자에게서 거듭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병(病)과 약(藥), 희(喜)와 기(忌), 왕(旺)과 약(弱), 개두(蓋頭)와 절각(截脚), 종(從)과 화(化)를 둘러싼 장신봉의 질문이 후대 명리학자들이 반복해서 마주한 중요한 문제들과 깊이 맞닿아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한 비법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책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믿지 않고,
오래되었다는 까닭만으로 숭배하지 않으며,
자신이 새롭게 발견했다는 이유로 교만하지 않는 태도.
사람의 명을 논한 뒤에는 실제로 그 말이 맞았는지 다시 확인하고, 틀렸다면 고치며, 아무리 흉한 명식을 만났더라도 그 사람을 겁주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지 않는 태도.
나는 그것이 장신봉의 책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장 귀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명리학은 사람을 여덟 글자 안에 가두기 쉬운 학문이다.
재성이 없으니 재물이 없다고 하고, 관성이 약하니 벼슬이 없다고 하며, 특정한 살이 있으니 혼인이 깨지고 병이 들며 자식이 떠난다고 선언하기 쉽다.
그런 말은 간단하고 강렬하다.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에도 좋고, 술사를 신비로운 존재로 보이게 하기에도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같은 명식을 지닌 사람도 서로 다른 부모와 시대, 몸과 땅, 교육과 선택을 만난다. 같은 병을 품었더라도 누군가는 의원을 만나고, 누군가는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같은 불기운도 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등불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집을 태우는 불길이 된다.
그러므로 명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정답을 많이 외우는 일이 아니라, 성급히 판결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병을 찾되 사람을 병으로 부르지 않고,
약을 찾되 기적을 장담하지 않으며,
운명을 말하되 인간의 선택과 환경을 지워 버리지 않는 것.
하늘의 때를 살피고 땅의 형편을 물으며, 그 사이에서 떨고 있는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것.
이 소설의 장신봉이 평생 찾아 헤맨 정종(正宗)은 바로 그러한 태도였다.
정종은 자신의 학설만이 옳다고 외치는 종파의 깃발이 아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큰 물줄기다.
마지막 장에서 신봉은 자신이 쓴 책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믿으라고 제자에게 당부한다.
그것은 어쩌면 한 학자가 자신의 책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유언일 것이다.
‘나를 지키지 말고 사람을 지켜라. 내 이론과 사람의 삶이 어긋나면 내 이론을 버려라.’
이 한마디를 남길 수 있는 학자라면, 그의 책에 오류가 조금 남아 있더라도 그 학문의 정신까지 죽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신봉은 백연의 죽음을 끝내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어진 사람이 왜 먼저 죽었는지, 하늘은 어째서 침묵했는지, 여덟 글자만으로 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죽음을 도덕적 죄나 전생의 업, 조상의 노여움으로 돌리지 않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귀신의 이름으로 채우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을 찾았다.
둑이 무너지려 하면 사람을 먼저 옮기고,
병든 아이에게는 죽을 날보다 의원과 맑은 공기를 찾게 하며,
낙방한 청년에게는 대운보다 어머니의 편지를 먼저 읽게 했다.
그것이 이 소설에서 장신봉이 찾아낸 활인(活人)의 길이었다.
사람을 죽지 않게 만드는 신통력이 아니라,
절망 때문에 스스로 삶을 놓지 않도록 곁에서 작은 길을 밝혀 주는 일.
이제 그의 책이 황실의 가장 높은 서가에 놓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그 책을 펼쳐 한 사람에게 함부로 죽음을 말하려다가 붓을 멈추었는가 하는 것이다. 신살의 이름으로 혼인을 깨뜨리기 전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가, 자신의 통변이 틀렸음을 깨닫고 기록을 고쳤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책은 살아 있다. 책은 종이와 먹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읽는 사람의 삶 속에서 의심받고, 잘못된 부분은 깎여 나가며, 살아 있는 이치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갈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신봉통고명리정종(神峰通考命理正宗)》을 완성된 진리의 궁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이 건너온 돌다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떤 돌은 반듯하고 어떤 돌은 금이 갔다. 더러는 물에 잠겼고, 이제는 디뎌서는 안 될 낡은 돌도 있다.
그러나 그 돌들을 하나씩 살피며 건너온 덕분에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다.
이제 이 이야기도 나의 손을 떠난다.
독자가 장신봉의 이론에 동의할 수도 있고, 의심할 수도 있다. 소설 속의 사건이 지나치게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있고, 실제 삶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의문은 정당하다.
장신봉의 학문이 의심에서 시작되었듯, 이 책 또한 독자의 의심 속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
다만 한 가지 마음만은 오래 남았으면 한다.
운명 앞에서 두려워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보다 먼저 책을 펼치지 않는 마음.
한 글자의 흉함보다 그가 살아온 세월을 먼저 묻는 마음.
하늘이 약을 내리지 않은 듯한 순간에도, 땅과 사람과 마음 사이에서 아직 찾지 못한 작은 물길이 있는지 함께 살피는 마음.
그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장신봉의 강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황실의 서고에 갇힌 채 잠드는 책이 아니라, 사람의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닳으며, 때로는 틀렸다고 붉은 줄이 그어지는 책.
누군가의 절망을 판결하는 책이 아니라, 다시 하루를 살아 볼 작은 이유를 찾게 하는 책.
그것이 이 소설이 그려 낸 장신봉의 정종이었으며, 내가 이 긴 이야기를 마치면서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소회이다.
사람보다 높은 책은 없다.
운명보다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운명의 글자 사이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문장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