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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⑯ 태하 성하신당의 전설

울릉 태하(台霞) 성하신당(聖霞神堂)의 전설

(방문일: 2026년 6월 1일 월요일)



태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사당을 발견했다. 소개하는 글에서 언뜻 본 것도 같았는데 그곳이 여기라는 것을 알았으니 잠시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싶었다. 고을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사당을 만들어서 기념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버섯바위에서 성하신당까지는 5.9km에 11분 거리다. 나름 제법 먼 거리구나.


 

 


갈림길의 삼거리에서 태하로 향하면 된다. 실은 태하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황토구미이다. 뇌록을 알게 되면서 석간주를 알게 되고 석간주는 우리나라에서 울릉도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알고서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것인데 가는 길에 아무리 바빠도 이런 곳은 들러보고 싶어서 잠시 차를 세웠다. 


차에 앉아서 풍경을 보면서 잠시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내 도착한다.

 

성하신당의 전설

조선 태종 때 쇄환정책이 확정된 후 안무사 김인우 일행이 울릉도 주민을 데려가기 위하여 병선 두 척으로 태하동에 도착하여 이곳을 숙영지로 삼고 섬을 두루 살펴 본 후 일기가 좋아 다음날 주민들을 데리고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해신이 나타나

“너희 일행 중 동남동녀 한 쌍을 남겨두고 떠나라”

고 분부하였다.

안무사는 기이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날이 밝아 출발하려 하니 갑자기 풍파가 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안무사는 문득 지난밤의 꿈 생각이 나서 동남동녀 한 쌍을 불러

“내가 거처하던 곳에 필목을 잊고 왔으니 너희가 가서 그것을 찾아오라”

고 명하였다.

동남동녀는 숙영지를 향하여 뛰기 시작했고, 숲으로 사라지자 순식간에 풍파가 가라앉고 순풍으로 변하였다. 안무사 일행은 황급히 배를 출발하고 먼 바다로 쏜살같이 나아갔다.

필목을 찾지 못한 동남동녀가 해변으로 돌아왔을 때는 배가 이미 까마득히 수평선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무사히 귀임한 안무사는 섬에 두고 온 동남동녀의 안부가 항상 잊혀지지 않아 번민하던 차 수년이 지나 다시 울릉도 순찰명령을 받고 입도하여 지난번의 숙영지로 직행하였더니 그 자리에 껴안은 형상을 하고 동남동녀의 백골만 남아 있었다.

안무사는 두 사람의 고혼을 달래기 위해 그 곳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귀임하였다.

 

울릉도 개척 후 주민들은 매년 음력 3월 1일(삼질날)과 농사나 어업의 풍년을 비는 제사를 이 사당에 지내며 모든 선박의 진수 때도 반드시 이 사당에 제사를 올려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나름 정성을 들여서 모시고 있는 사당이구나. 관리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마당에 소나무들이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은 풍경이다. 문득 소청도의 허술하기 짝이 없던 사당이 떠오른다. 이 정도는 해 놨어야 하는데 말이지.


성하신당(聖霞神堂)이다. 태하의 하(霞)는 노을을 의미하니까 서쪽이라는 것을 짐작으로 알겠고, 태하의 성인이 계시는 곳이라서 성하일 것으로 짐작해 본다. 문 앞에서 반배하고 문을 열었다.


현판도 멋지게 써서 걸었구나. 내용을 봐서는 어디선가 봤음직한 생각도 든다. 아이를 두고 도망치는 이야기는 또 다른 곳에서도 봤는데 여기에서는 동남동녀를 그랬단 말이지? 왜 그랬을까? 왜 바람은 불었고, 꿈에서는 또 왜 아이를 두고 가라고 하고, 또 왜 아이들을 두고 가니까 바람이 잠잠해졌을까 싶지만 그것은 알 방법이 없다. 

우선 성하신을 뵙고 3배를 올렸다. 동남동녀상이 깨끗한 상단에 모셔져 있고, 오색실로 된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모습이 해맑다. 막걸리와 사과 수박 문어와 떡까지 차려진 것은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문득 생각해 보니 오늘이 음력 4월 16일이었구나. 혹 어제 보름날에 무슨 행사를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주민들이 이 신당을 열성적으로 섬긴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왜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백골이 되었을까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았어야 하는데 그냥 굶어 죽었다는 말이 못내 짠하다. 동남동녀가 몇 살이었는지는 안 나와 있지만 안타깝게도 굶어 죽고 말았다는 것이 짠하다. 야박하게 버려두고 가면 아이들 둘이 살아갈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빤히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용왕님께 기도를 할 생각도 했을 법한데 이야기를 만드느라고 그랬을 것이라는 짐작도 든다. 설마 목민관이 그렇게 무책임한 행동을 했을 리가 있느냐는 생각이 한 자락 깔려 있음이다.


비단 꼬까신이며 과자며 때때옷이 수북하게 쌓여있구나. 영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잠시 고통스러움을 지나고 이렇게 신격화 되어서 대우받으면서 주민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대상이 된 것도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저세상의 풍경은 짐작만 할 뿐 모르니까 말이지.


저마다 염원을 담아서 공양한 의복들도 한쪽에 가득 걸려 있다. 뭔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구나.


참배하고 사진도 찍고 밖으로 나오니까 앉아서  담소하던 사람들이 와서 음식을 같이 나눠 먹잔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어제가 보름인데 혹 무슨 행사가 있었나 봅니다?"
"예, 오늘 배를 운영하는 선장이 재수 기도를 했습니다. 같이 드시면 복이 됩니다."

"아, 그러셨군요. 먹을 복이 있네요. 그럼 수박 한 쪽 먹겠습니다."
"떡도 드시고 막걸리도 한 잔 드시고 같이 드셔도 됩니다. 우리는 여기 공사판에 직원들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럼 선장님의 만선을 기원하면서 한 쪽 먹겠습니다."


이렇게 또 성하신당의 인연을 한 가닥 남겨놓게 되었다.


민원센터가 바로 옆에 있었구나. 옛날식으로는 면사무소다. 아마도 서면이겠거니 싶다.

 

성하 신당 童男童女

  • 사랑의 힘으로

격랑의 세월 건너가는 이여, 그렇게 

돌아와 섬이 되는 이여 

목을 놓고 우짖는 

저 파도소리 

누구의 전생인가 

그날 그날 피어나는 꽃잎이거나 

단 한번의 낙화에도 

홀연히 번져나는 

저 향기는 또 

누구의 슬픔인가 

다만 童男童女 우리 주검은 

발원의 지극한 불길 되어 다시 살아나느니 

사람아 

우리에겐 이처럼 사랑이 있어 

추위와 굶주림과 두려움 

벗어나 있어 

여기, 전설의 힘으로 지어진 

영혼의 처소에서 

칠흑 어둠을 지나서도 길길이 뛰는 바다 

그 깊이를 다스린다.

之岸 이기애

 

1947년 경북 의성 출생 

1989년 심상 신인상 등단 시인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저서: 내 안 가득한 당신 흔들리는 것은 바람탓이 아니다 외 다수

 

 

어느 시인의 시 한 수가 두 영혼을 위로하면서 자리하고 있다.

 

나도 여기에 발자취 하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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