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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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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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천수

[608] 제45장. 만행(漫行)/ 13.인류(人類)

[608] 제45장. 만행(漫行)/ 13.인류(人類)

[608] 제45장. 만행(漫行)

 

13. 인류(人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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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흥겨웠던 풍경들이 비몽사몽(非夢似夢)으로 아련히 떠오른 우창이 해가 솟은 다음에서야 일어나서 밖으로 나섰다. 산들바람이 산수호(山水湖)의 물안개를 흩으면서 잔물결이 일어나면서 윤슬이 반짝여서 순간적으로 수면에 은비늘이 깔린 듯했다.

호숫가에 나무계단을 만들어서 풍경을 보면서 걷기에 좋아 보여서 천천히 걸으면서 어제 파향과 나눈 이야기들을 되새겼다.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했거니와 여전히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듯한 아쉬움이 진하게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뭔가 이야기를 더 들으면서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했다. 이제 물을 봐도 예전의 물로 보이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아주 작은 이끼와 같은 생명들이 서서히 피어올라서 육지로 향하고 있는 듯한 환상도 느껴졌다.

 

  

 

길을 걷다가 쉬도록 만들어 놓은 곳을 발견하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옛날에는 이곳도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그 어느 시절에는 우창도 이끼나 소금쟁이로 살았을 시절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인기척이 느껴져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우창을 아까부터 바라보고 있었다는 듯이 여초가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다가 우창과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창 선생 일찍 나오셨군요. 편히 쉬셨는지요~”

옅은 하늘색의 바탕에 소박한 꽃무늬가 있는 짧은 소매의 송대(宋代)에 여인들이 즐겨 입었을 법한 형태의 옷을 입고 웃음을 띠는 모습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소주에 있을 서옥(瑞玉)이 떠올랐다. 웃는 모습이 서옥과 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덕분에 잘 먹고 마시면서 흥겹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푹 자고 나서 산보를 나왔는데 풍경에 취해서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잘 쉬셨는지요?”

“즐거우셨다니 다행이에요. 우창 선생의 인연으로 인해서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어서 여초(如草)도 또한 무척이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파향 선생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감로정(甘露井)과 같아요.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 재미있었네요. 호호호~!”

“그러셨다면 나그네도 보람이 있습니다. 하하~!”

우창은 여초의 마음 씀이 고마웠다. 행여라도 나그네가 부담이라도 갖게 될까싶어서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한동안 머물렀던 기현주의 소요원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산수원이 편안했다. 흡사 오래전부터 여기에 머물러 왔었던 것처럼.

호수에서 물결이 일어났다. 뭔가 싶어서 바라보니 형형색색의 비단잉어들이 몰려와서 생긴 물결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여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물결이 이는 곳에 흩뿌리자 갑자기 한 바탕 소란이 일었다.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우창의 손에 한웅큼 쥐어줬다. 받아보니 잉어들이 즐겨 먹는 사료였던 모양이다.

“뿌려줘 봐요. 녀석들도 간식을 주는 사람을 좋아한답니다. 호호호~!”

우창이 시키는 대로 그 옆에다 뿌리자마자 잉어들이 다시 물속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듯이 요동이 일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모두 어디론가 흩어졌다.

“얻어먹을 것을 다 먹고 나니까 저마다 좋아하는 곳으로 되돌아갔나 봐요. 정신이 없죠?”

“역동적인 힘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생선을 파는 좌판의 함지박에서 팔딱이는 것만 봤는데 이렇게 자유로운 잉어들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녀석들도 아침에 사람 그림자가 보이면 얼른 모여들거든요. 어쩌다가 깜빡하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호호호~!”

우창이 즐거워하는 여초를 보니 선녀가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아무런 속박도 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노니는 모습에서 참 복이 많은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집 쪽에서 딸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조반(朝飯)이 준비되었나 봐요. 들어가시지요.”

여초는 우창이 앞장서기를 기다려서 조용히 뒤따라 걸었다. 차관에는 이미 아침을 먹으려고 모여 앉은 일행들이 담소하다가 우창을 발견하고는 일어섰다. 기현주가 우창을 보고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일찍부터 안 보인다고 생각했더니 주인마님과 산보하러 갔었구나. 어서 이리 와서 앉아. 속도 좀 풀어야지. 호호~!”

식탁에는 잣과 호두를 갈아 넣고 끓인 죽이 마련되어 있었다. 원하는 대로 먹으라고 삶은 고기와 과일도 마련되어 있어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문득 파향이 보이지 않아서 여초에게 물었다.

“파향 선생이 안 보입니다?”

“원래부터 조반은 먹지 않고 차만 드셔서 따로 드렸어요.”

“아, 그러셨군요. 혹시 떠나버리셨나 싶었습니다. 더 여쭐 것이 많은데 내심 가버리셨으면 어쩌나 했습니다. 하하~!”

“모처럼 파향 선생도 담소하는 것이 즐거우셨는지 떠나실 생각이 없으신가 봐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셔도 되겠어요. 호호~!”

조반을 마치고 바로 차(茶)를 마련하자 파향이 나타났다. 모두 일어나서 합장으로 맞이하자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 기운들이 좋으시구먼. 산수원의 지기(地氣)가 워낙 좋기도 하거니와 편안하게 잘 쉬었나 보군. 허허허~!”

“그렇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안팎으로 포식(飽食)했습니다. 하하~!”

“그러셨다면 다행이고, 실은 나도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서 한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여전히 배울 것은 많고 시간은 짧다는 것이 실감 된다네. 허허허~!”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웬만하면 그 정도의 풍부한 지식이면 더 배울 것이 무엇이랴 싶기도 하겠는데 선생님의 열정적인 모습은 후학에게 큰 귀감(龜鑑)이 됩니다. 더욱 열심히 분발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구나. 허허허~!”

“아침에 잠시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선생님께 여쭙고 싶었습니다. 아침부터 번거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합니다만.”

“원 그럴 리가 있겠는가. 늙은이의 잡다한 지식이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다고 말이네. 무엇이든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시게.”

“어제 천지인(天地人)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 덕분에 나도 무자, 기축 경인의 깊은 이치를 배웠으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짭짤했다고 봐야지. 그런데?”

“실은 인(人), 즉 인간(人間)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계속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봐서는 애초에 이 땅에 인간도 없었는데 어딘가에서 출현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아니셨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400만 년 전쯤에 인간의 조상격에 해당하는 유인원(類人猿)이 생겨났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들을 남방고원(南方古猿: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라고 한다네. 남방은 더운 나라에서 최초에 그들이 생활한 흔적이 화석(化石)으로 남아 있어서 알게 된 것이라네.”

“아, 남방의 옛날 원숭이라는 뜻이군요. 그들도 일개의 동물이었을 텐데 어떻게 인간의 조상이라고 하게 되었던 것입니까?”

“분류의 가장 큰 특징은 직립보행(直立步行)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어떤 동물이든지 활동하는데 일어서서 두 발로 걷는 것은 원숭이류를 제외하고는 없으니까 말이네.”

“곰은 두 발로 일어서지 않습니까?”

“일어설 수는 있을지 몰라도 걸을 수는 없다는 것에서 구분이 된다네.”

“무슨 말씀인지 이해됩니다. 그런데 왜 그 고대의 유인원(類人猿)은 두 발로 걷게 되었을까요? 호랑이나 개나 말을 봐도 네발로 잘 뛰어다니고 사냥도 잘하는데 말입니다. 하물며 나무를 오르는 것으로 본다면 표범이 더 잘 타지 않습니까?”

“그야 앞발의 용도를 깨달았기 때문이라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에 두 발로만 걸을 수가 있다면 앞의 두 발은 다른 용도로 쓸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지. 그것을 앞발이라고 하지 않고 손이라고 하게 되는 원인이 된 것이기도 하고.”

“어떤 용도였겠습니까? 혹 답변하기 곤란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그래도 궁금하여 드리는 말씀이니 혹 답하기 곤란하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우창은 파향이 답하기 곤란한 것을 물어서 난처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자 파향이 대중을 둘러보고서 말했다.

“아니, 난 말이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내가 답할 수가 없어서 얼굴이 붉어질 수가 있을 정도의 내용을 물어주기만 바라고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허허허~!”

“그러시다면 마음 놓고 여쭙습니다. 우창이 생각하기로는 두발로 걷고자 했던 것은 앞발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자 함이었을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 용도가 네발로 걸으면서 날쌔게 뛰어다니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이해됩니다.”

“그런가? 이미 답을 얻은 셈이로군. 허허허~!”

“돌을 갈고, 망치를 만들고 칼을 만들고 불을 일으켜서 음식을 익혀먹게 된 것으로 시작해서 서로 소통할 수가 있는 문자를 만들고 문자를 바탕으로 하여 깊은 사유의 세계를 기록하고 연구하면서 문명(文明)의 꽃을 피우게 되었을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파향은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오호~! 정말 대단한 발상이로군. 나는 오랜 세월을 두고두고 연구하고 궁리를 한 것이 겨우 이 정도인데 불과 하루 사이에 그러한 경지까지도 꿰뚫을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군.”

파향의 말에 우창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그로 인해서 잃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이치가 모두 음양적(陰陽的)인 관계를 이루게 된다고 보면 두 팔을 쓰게 됨으로써 잃게 되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한 것은 설마 없었던 것일까요?”

“과연~! 허허허~!”

“역시 그러한 것도 있었다는 말씀이로군요. 그것은 무엇입니까?”

“출산(出産)~!”

“예? 출산이라면 아기를 낳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다리가 일어서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골반이 좁아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네. 그렇지 않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지.”

“아하~!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출산이 왜 피해를 입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창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자 이번에는 여초가 대신 대답했다.

 

  

 

“여인네에게 그 재앙이 고스란히 남겨진 것이었어요? 동물은 새끼를 낳다가 죽는 경우가 매우 드문 반면에 여인은 아기를 낳으러 방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벗어놓은 신을 다시 신을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는 말씀이죠?”

“맞아! 인류의 발전에서 고스란히 떠안게 된 여인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미안해야 한단 말이네. 허허허~!”

파향의 말에 자원이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명색이 그렇게 변화하는 과정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적어도 300만 년의 세월을 거쳤다면 어찌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단 말이죠?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자원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자 파향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대비책도 강구(講究)했지. 그건 아기를 낳아야 하는 여인이 해결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네. 여하튼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여인네만 희생된 것에 대해서는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사과함세. 허허허~!”

“그게 뭐죠?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여인네는 아기를 낳다가 숨을 거두는 일이 드물지 않으니까요.”

자원은 파향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다시 따지듯이 물었다.

“골반이 좁아지면서 산도(産道)도 상대적으로 좁아지게 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해결책으로 미숙아(未熟兒)를 출산하는 방법을 택했다네.”

파향의 말을 듣던 자원이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소나 말이나 양은 새끼를 낳으면 촌각(寸刻)을 두고 바로 일어나서 뛰는데 인간의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되어야 겨우 걸음을 걷게 되는 것도 그런 의미가 되는 것이었네요.”

파향은 대답대신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말로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확실한 긍정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다시 물었다.

“그 외에도 대비책은 또 있을까요?”

“또 하나의 대비책으로 두개골(頭蓋骨)을 연골(軟骨)로 만들어서 낳게 되는 것도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하겠네.”

“연골이라고요? 그건?”

자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묻는 말에 우창이 아들을 키웠던 기억이 나서 대신 대답했다.

“그건 숨구멍을 말하는 것이잖아. 태어난 영아(嬰兒)의 정수리가 말랑말랑하고 발딱빨딱하는 장면을 본 것이 생각났어. 하하하~!”

“그렇군요. 그래서 아이도 키워봐야 해요. 호호호~!”

자원이 모르고있었던 것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게 말하자 기현주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큰 두뇌를 좁은 산도로 밀어내기 위해서 뼈조차도 여물지 않게 했다는 것이 참 놀라워요. 그렇게까지 했다면 조물주를 탓할 수만은 없겠어요. 그래서 옛 어른들 말씀이 ‘작게 낳아서 크게 키워라’라고 하셨던가 봐요. 지금 문득 그 말을 생각해 보니까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욱 심오하게 느껴지네요. 오늘은 그야말로 육체(肉體)에 깃든 선현들의 노고가 느껴져서 숙연해지기도 하네요.”

모두 기현주의 말에 잠시 숙연한 느낌이 들었다. 대대손손으로 이어지면서 이렇게 진화해 왔다는 것을 생각하니 오늘 이 자리에서 지혜를 논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공덕이 쌓여서 이뤄진 것임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또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고?”

“인류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보니까 문득 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실체가 보이니까 봐서 알겠는데 보이지 않는 세상도 있다고 보십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오호~! 이제 어쩌면 진실에 다가가고 있는걸. 허허허~!”

“예? 진실에 다가가다니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안계(眼界)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계(耳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냔 말이네. 즉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했다는 말이지않느냔 것이지. 이런 의미가 맞나?”

우창은 참으로 할 말이 없었다. 묻고 싶었던 것을 막연하게 꺼내 본 것인데 그 요지를 바로 파악하고 직입적(直入的)으로 핵심에 도달하도록 안내하는 파향의 지력(智力)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보니 과연 우창이 궁금했던 것을 잘 설파해 주셨습니다.”

“아득한 옛날에는 처음 생긴 동물이 있었다네. 그들은 눈이 없었지. 그래서 맹인(盲人)이 문고리를 잡듯이 제대로 잡히면 문을 여는 것이고 잡히지 않으면 방 안에서 갇힌 채로 그냥 있을 따름이었다더군. 그들에게 빛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아니, 원래부터 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단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네만,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는 학자에게는 그 너머의 존재까지도 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듣고 싶습니다.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세상도 있을 수가 있다는 말씀에 갑자기 궁금한 것이 밀물처럼 밀려듦을 느끼겠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우창은 갈증이 느껴졌다. 연거푸 차를 두 잔이나 마셨다. 파향이 다른 대중을 살펴보자, 삼진의 눈도 반짝이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보였다.

“삼진이라고 했나? 그대도 이 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단 말이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삼진이 합장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리고 알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이러한 세계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미 보이는 것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임을 의미하는 까닭이지. 허허허~!”

“과연 놀랍습니다. 그것을 바로 간파(看破)하시니 말입니다.”

파향은 오랜만에 마음을 나눌 벗을 만났다는 듯이 약간은 설레는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는 우창에게 물했다.

“우창은 어쩌면 『장자(莊子)』를 읽었을 수도 있겠구나. 「제물론(齊物論)」에는 소리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아, 혹시 땅의 피리 소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거대한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울린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다소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다네. 바로 그 이야기지. 그래서 장주(莊周)의 통찰력은 우주의 이치를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 나도 물론 처음에는 미친 소리인 줄로 생각했었지만 말이네. 허허허~!”

“아니, 그러니까 실제로 자연의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허허허~!”

“참으로 궁금합니다. 눈의 경계와 귀의 경계와 코의 경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우창이 느끼고 보는 것과 실제의 모습이 과연 어떻게 서로 다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할까? 그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라네. 허허허~!”

우창은 파향의 말과 표정에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하게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에 찬 말에서 그것을 느끼고도 남을 정도였다.

“우창이 말했었지? 육갑(六甲)의 시원(始原)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냐고 말이네.”

“그렇습니다. 처음 지구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지요.”

“만약에 갑을병정(甲乙丙丁)의 기운을 능히 볼 수가 있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은 자가 그것을 관찰할 수가 있다면 어떻겠나?”

“예? 그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한 세계를 볼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게 뭐가 궁금한가? 그러한 현자(賢者)들이 모두 본 것을 문자로 남겨놓지 않았느냔 말이네. 천지의 소리며 갑을병정의 이치를 밝혀놓았으니 그대로 믿으면 되는데 문제는 믿지 못하는 분별심(分別心)이 장애가 될 따름이지. 그래서 맹인모상(盲人摸象)이 나온 것이라네. 허허허~!”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저마다 다른 코끼리를 말한다는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다만 눈이 밝은 사람은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는 순간에 바로 알아볼 수가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제 알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쉽게 풀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아득한 옛날에 동물은 있었으나 눈이 없었던 시절을 생각해 보게. 아니, 지금도 지렁이는 눈이 없지 않은가? 지렁이에게 봄의 꽃과 가을의 단풍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겠나?”

“그렇겠습니다. 지렁이에게 땅 위의 모습이며 하늘의 구름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이듯이 사람도 눈은 있으나 안계(眼界) 밖의 풍경은 볼 수가 없는 것이 맞겠습니다.”

“불경에 반야심경(般若心經)이 있음을 들어 봤는가?”

“알고 있습니다.”

“안계(眼界)며 무안계(無眼界)도 의미 없다고 하지 않는가?”

“맞습니다. 의식계(意識界)와 무의식계(無意識界)조차도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안계가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의미가 없다고 한단 말이네. 그 모든 것은 분별심(分別心)이 지은 것이라고 하는 까닭이지. 그런가?”

“맞습니다. 그래서 공(空)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문자에 속으면 모두가 없다고 생각하고 공은 텅 비어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단 말이네. 그런데 실제의 공은 어떤가? 너무나 가득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놀랍습니다. 간간이 그러한 생각도 했습니다만, 이렇게 말씀으로 듣고 보니 그 의미가 확연하게 전달됩니다.”

“옳지~! 말귀를 잘 알아들으시니 나도 말할 맛이 나는군.”

“그나마 열심히 생각한 소산(所産)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

우창은 파향의 칭찬이 듣기 좋았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학문에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있고 형이하학(形而下學)이 있지.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형이하학이라고 하고, 우주실상(宇宙實相)의 본질(本質)을 궁구(窮究)하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한다더군. 물론 그것조차도 의미가 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형상을 최고의 정점에 놓고서 연구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과 코에 맡는 향기와 혀에 느껴지는 맛에 대해서만 믿고 연구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 사람이 장자의 제물론을 읽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말인가 싶어서 책을 던져버리기 십상이지 않겠나?”

 

  

 

파향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뭔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한 줄기 비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나 싶어서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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