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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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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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천수

[607] 제45장. 만행(漫行)/ 12.갑자(甲子)와 을축(乙丑)

[607] 제45장. 만행(漫行)/ 12.갑자(甲子)와 을축(乙丑)

[607] 제45장. 만행(漫行)

 

12. 갑자(甲子)와 을축(乙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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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혹 자원의 풀이가 미천(微賤)하더라도 널리 헤아려 주신다고 말씀하셔야 하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괜히 주눅이 들어서 나오려던 말도 도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싶어서죠.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미리 뒷문을 열어놓으려고 말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파향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아무 염려 말게. 여기 누구도 그대를 탓할 사람은 없어 보이니 말이네. 그냥 생각한 대로만 이야기해 주면 또 이 늙은이의 안목을 넓히는 것에 공헌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허허허~!”

이렇게 다짐을 받고서야 비로소 말을 꺼냈다.

“태초에 바람이 있었어요. 그 바람이 씨앗을 만들었죠.”

“오호! 자(子)가 씨앗이니까 하는 말이로구나. 갑은 바람이라는 것도 이해가 될 듯하군. 풍목(風木) 진목(震木)이 모두 바람이라는 뜻도 되겠지?”

“맞아요. 그 선후는 몰라요. 씨앗이 먼저이고 바람이 다음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46억년 전에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쳐서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한 톨의 씨앗을 지었으니 이름하여 지구(地球)를 만들었던 것이죠.”

 


 

 

자원은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끌어들여서 더욱 부풀려서 설명하자 그것을 듣고서 우창이 미소를 지었다.

“오호~! 처음 듣는 말인데 참으로 그럴싸하구나. 그래서? 을축(乙丑)은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

파향은 이미 다음의 간지를 생각하면서 자원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고 물었다. 다행히 파향이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자원은 약간 자신감이 생겨서 말을 이었다.

“이 땅이 처음에는 불덩어리로 존재했으나 다시 수억 년의 세월이 흘러서 불은 점점 식었고 하늘에서는 끝없이 비가 내렸어요. 그렇게 해서 뜨거웠던 땅은 점점 식고 습기를 머금게 된 것이 축(丑)이죠. 여기에 처음으로 생긴 것이 풀때기예요. 처음에는 물속에서 이끼처럼 자랐으나 세월이 점점 흐르면서 해변(海邊)으로 보이고 강변(江邊)으로 이동하고 점차로 육지로 올라서 초원(草原)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것참 그럴싸한걸. 어쩐지 내가 어제 한 말에서도 응용이 된 듯한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만, 과연 자원의 총명함이 이와 같음을 알겠네. 그래서?”

“아이참, 모른척해 주세요. 선생님께 배운 것도 동원해서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까요. 호호호~!”

“내 말은 신기하고 뛰어난 응용력이 감탄해서 하는 말이라네. 어서 계속 설명해 주게. 병인(丙寅)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벌써 궁금해지는군. 허허허~!”

“병인은 말이죠. 그러니까 하늘에 구름이 비가 되어 모두 땅으로 내려서 물이 되고 나자 밝은 태양이 빛나게 되었고, 따뜻한 기후가 되자 식물들의 틈 사이에서 작은 동물들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 동물들은 땅속을 기어다니면서 더욱 기름지게 만들었죠. 말하자면 지렁이와 같은 동물이죠.”

“오호! 기가 막히게 착착 들어맞는구나. 그래서?”

“그 작은 동물들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자 오랜 세월을 이끼처럼 바닥에 있던 초목들은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나무들로 변화해서 하늘 높이 자라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니까 묘(卯)는 나무가 되고 정(丁)은 꽃이 되었다는 말이구나. 아직 인간은 등장할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지?”

“아직 멀었어요. 호호호~!”

“알았네. 그래서? 무진(戊辰)으로 넘어가나?”

“맞아요. 무진은 하늘과 땅으로 경계가 생기게 되었죠. 땅에는 식물이 자라고 하늘에는 질서가 생겨서 일월성진(日月星辰)이 운행하게 되었어요.”

“아니, 무진(戊辰)은 큰 산이 아니었던가? 처음 듣는 말인 걸 이게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이유를 설명해 주면 안 될까?”

파향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전해 졌다고 해요. 그런데 우창 싸부가 어느 기인(奇人)으로부터 얻은 비급을 통해서 무(戊)가 산이 아니라 허공(虛空)이라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것참 놀랍구나. 설명을 부탁하네.”

“무(戊)는 지구의 생명을 지켜주는 의미로 창인 과(戈)가 있고, 땅에서 질서를 어기면 엄벌(嚴罰)하는 별(丿)이 있는데 이것은 검(劍)과 같은 의미가 되죠. 그래서 하늘에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어서 춘하절(春夏節)에는 하늘이 열려서 만물이 소생(甦生)하고 추동절(秋冬節)에는 하늘을 닫아서 만물을 사멸(死滅)시키죠. 이것을 적천수에서 말하기를 ‘정흡동벽(靜翕動闢)하여 만물사명(萬物司命)이라’고 한 이치가 여기에 있어요.”

“적천수라. 내가 책이라고는 제법 섭렵(涉獵)했는데 금시초문(今始初聞)이로군. 그러니까 천지양분(天地兩分)이 무진(戊辰)이란 말이지? 신기하군.”

자원이 이야기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서 파향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알고 계시기로 인간은 언제 생기게 된 것일까요? 말씀으로 봐서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닐테고 최초가 있다면 그것인 언제부터인지가 궁금해요.”

“아, 그것 말인가? 그럴 만도 하군. 일반적으로 나타난 결과로는 대략 400만 년 전인 것으로 합의를 본 모양이더군. 합의를 봤다는 것은 그또한 눈으로 사물을 본 듯이 확실하게 단언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겠지?”

“예? 400만 년 전이라고요? 그렇다면 간지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참으로 얼마 되지 않은 최근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렇겠지? 남겨진 기록으로 봐서는 7천 년 전이라고 하는데 적어도 1만 년 전에는 문자(文字)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해 본다면 대략 그 언저리가 맞지 않을까 싶군. 그러니까 최초의 갑자는 7천 년 전부터라고 보면 되겠지?”

“그렇다면 대충 계산해도 120갑자가 지났다고 보면 되겠네요?”

“아마도 그렇게 되겠나? 그나저나 그게 뭐 중요한가? 올해가 계유(癸酉)라는 것만이 중요할 따름이잖은가? 허허허~!”

“문득 이렇게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의미가 있지. 서인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서 최초의 인간은 6천 년 전에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더군. 이렇게 보면 역사학자가 말하는 400만 년 전의 이야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또한 그렇거나 저렇거나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란 말이네. 허허허~!”

“과연 선생님의 사유(思惟)는 참으로 유연하시네요. 역시 잡다한 세속의 논리들이며 논쟁들에 대해서는 초연하신 것으로 보여요. 호호호~!”

“공론(空論)은 공론으로 두고 무론(無論)은 무론으로 두고 그냥 오늘을 즐기면 된다는 말이네. 그런 점에서 장자(莊子)가 옳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따져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던 것으로 보이니 말이네. 허허허~!”

자원은 파향과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전신의 힘이 쭉 빠지기도 하고, 또 신명이 나기도 해서 종잡을 수가 없이 느껴졌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것을 아시면서도 갑자의 순서에 대해서 궁금하세요? 이미 쓸데없다는 것도 알고 계시잖아요?”

“다른 의미는 없네. 그냥 재미있잖은가? 고인들이 육갑의 순서를 정할 적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게 궁금한데 마침 자원의 설명을 들으니 얼마나 생동감이 넘치느냔 말이네. 무(戊)를 하늘이라고 하니 이런 이야기는 들을수록 재미있지 않으냔 말이네. 그러면 되었지. 그리고 그렇게 사유하고 적용하면 또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결과를 갖다주지 않는가? 여기에 또 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어서 기사(己巳)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게. 허허허~!”

파향은 참으로 자유로운 사유로 자연의 이치든 학문의 논리든 궁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서 자원도 다시 기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선생님 말씀에 ‘화즙(火汁)이 지하(地下)에서 흘러 다닌다’고 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기사(己巳)를 떠올렸어요. 하늘과 땅이 무진(戊辰)에서 나눠지고 나니까 이제 지하의 화즙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어떤가요?”

“오호~! 그거 멋진 말인걸. 이제 땅속의 사정까지도 꿰뚫고 있단 말인가? 과연 자원의 사유는 내가 감탄하겠는걸. 허허허~!”

파향이 재미있다는 듯이 자원을 부추겼다. 자원도 그 말은 싫지 않아서 흥이 났다. 내친김에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우창을 바라보니까 우창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싶어서 더욱 힘을 내서 말했다.

“경오(庚午)를 보면 지하를 흘러 다니던 화즙이 폭발해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흘러내렸어요. 그래서 화즙이 지상으로 솟구쳐 나와서 용암(鎔岩)이 되었죠.”

“과연 일리가 있어~!”

“신미(辛未)가 되자 대지에 바위가 덮이게 되었고, 다시 아득한 세월이 흘러서 바위에 물이 모여서 연못이 되었어요. 이것을 임신(壬申)이라고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럴싸한걸. 허허허~!”

“다시 물이 흘러 다니다가 지상으로 솟아올라서 개울을 이루고 강을 이루면서 바다로 흘러들어서 계유(癸酉)가 되었어요. 호호호~!”

자원은 스스로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웃자, 파향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자원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해 보니까 도교의 경전에서 읽었던 글이 떠오르는걸.”

파향이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이 이마를 찌푸리면서 말하자 우창이 말했다.

“혹시 선생님께서 떠올리신 것은 「축사문(逐邪文)」이 아닌지요?”

“아니, 우창은 그것도 알고 있었단 말인가?”

“간지(干支)에 관한 것이라면 최대한 섭렵(涉獵)해 보려고 애를 쓰던 중에 그러한 글이 있다는 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각대로 보통의 내공이 아니로군. 예전에 만났던 이인(異人)이 귀신들이 등쌀을 대면 피할 것이 아니라 이 경문을 외우면 모두 달아난다고 해서 웃스갯소리로 흘려들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단 말이네. 허허허~!”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떠올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우창이 경을 외웠다.

 

천개어무자지방(天開於戊子之方)

지벽어기축지방(地闢於己丑之方)

인생어경인지방(人生於庚寅之方)

천지인출입지문(天地人出入之門)

 

“아, 맞다 맞아~! 이런 경(經)을 듣고서 어느 귀신이 도망가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甲子)부터 계유(癸酉)까지의 설명을 듣다 보니까 문득 무자(戊子)며 기축(己丑)이며 경인(庚寅)의 뜻이 궁금해졌단 말이네. 이것에 대해서 풀이를 해 줄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도 여기에 대해서는 풀이를 해 줄 수가 있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정도(正道)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사악(邪惡)한 잡귀(雜鬼)들은 그 강력한 힘에 제압당해서 범접(犯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우선 하늘은 자(子)에서 열린다고 했으니, 무(戊)가 하늘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합니다. 우창도 이러한 의미를 예전에는 몰랐는데 그 의미를 알고서야 대단한 경문(經文)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말을 듣고 보니까 과연 천도(天道)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무자(戊子)는 천도이므로 자월(子月)에 열린다는 말이니 정흡동벽(靜翕動闢)의 순리에 따라서 동벽(動闢)은 자월의 동지(冬至)에 열린다는 말이지 않은가? 과연 알고 보니 참으로 의미심장하군.”

“그렇게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지도(地道)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기축(己丑)은 지도가 되므로 축월(丑月)에는 땅의 기운이 열려서 비록 하늘은 한랭(寒冷)하나 겨우내 닫혔던 것이 열리고 있으므로 땅도 그 기운을 받아서 열리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기(己)는 땅이고 축(丑)은 한겨울의 얼어붙은 동토(凍土)에 해당하지만 이미 이때 자연에서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옳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겠지? 무(戊)가 앞에 있으니, 하늘이 먼저 열리고 뒤따라서 기(己)가 나오니 땅도 열린다는 의미란 말이지? 참으로 오묘하군. 이렇게 재미있는 궁리가 있는데 육갑이 의미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논하는 것이야 무슨 소득이 있단 말인가? 오히려 수긍하고 즐기는 것만 못 하단 말이지. 허허허~!”

“과연 연륜이 느껴집니다. 알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는 대로 수용하고, 알 수 없는 것은, 또 없는 대로 즐기면 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하하~!”

“그래서 경인(庚寅)의 뜻은 뭔가?”

“예, 인월(寅月)은 겨우내 쉬었던 사람이 휴식을 멈추고 새로운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것임을 의미하고 그래서 천지인의 도에서 인도(人道)에 해당하는 것으로 경인(庚寅)이 되었습니다.”

“인월은 알겠는데 인(人)과 경(庚)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설명을 해 주겠나? 언뜻 생각키로는 바윗덩이만 떠오르니 말이네.”

“그러실만도 합니다. 하충 스승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경(庚)은 주체가 되고 정신이 되고 영혼이 되는 것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자아(自我)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기(己)가 자기(自己)를 나타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허공인 무(戊)에서 토양인 기(己)가 생성되었고,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출산(出産)이 된 아기는 경(庚)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월로 본다면 인월의 입춘(立春)이 되고, 자평법에서는 인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있던 파향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런 말도 있었더란 말인가? 참으로 고인의 지혜는 놀랍기가 한량없구나. 땅에서 생겨난 것이 초목이고 동물인데 인간도 결국은 땅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잖은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이치가 되고 재미있는 것은 육갑의 순서로 본다면 25는 무자(戊子)가 되고 26은 기축(己丑)이 되며 27은 경인(庚寅)이 되는데 이 땅이 46억 년 전에 태어났다는 것과도 서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숫자에서 우창은 내심으로 경이(驚異)롭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아,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구나. 그것참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막측(神奇莫測)이로구나. 허허허~!”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면 육갑의 순서에서도 미처 알지 못하는 심오한 이치가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다만 지력이 미치지 못하여 그 모두를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그것은 근심할 일이 아닐세. 아는 만큼 누리고 그만큼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한 까닭이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한탄하는 시간조차도 얼마나 아깝겠느냔 말이네. 그냥 아는 만큼만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천지신명이 기뻐할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네. 허허허~!”

“과연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서 가끔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을 해 볼 때도 있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아니겠나. 조짐(兆朕)이란 이유는 몰라도 이 순간에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오묘한 이치를 보여주니 불타의 독전유(毒箭喩)를 떠올리지 말고 조짐이 하늘의 뜻임을 믿고 그대로 풀이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잖겠나? 허허허~!”

우창은 파향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 한구석에 쌓여있던 간지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말끔히 해소할 수가 있었다. 알 수가 없는 것은 궁리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너무 귀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스승님으로 호칭하겠습니다. 지구의 세월하며 간지에 대한 관념(觀念)까지도 모두 정리가 되었으니, 이보다 큰 가르침이 또 있겠나 싶은 정도입니다. 참으로 공덕무량(功德無量)입니다.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정색하고 말하자 파향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닐세 그렇게 말을 할 일이 아닌 것은 나도 우창을 만나서 새로운 가르침을 많이 배웠으니 나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니 피차일반이라고 해도 되지 싶네. 그러니 스승님은 가당치 않고 그냥 도반이니 선생으로만 불러줘도 충분하다네. 허허허~!”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풀의 이치도 감동이었습니다. 또 가르침을 주실 것이 있으면 경청하겠습니다.”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기현주가 합장하고 말했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奇人異士)도 많다고는 합니다만 이렇게 깊은 가르침을 받게 될 줄은 공화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어요. 하물며 초목조차도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은 감동이에요. 초목도 암석도 모두 생각이 있고 지혜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보니 이제부터는 자연의 풀 한 포기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맞아. 지혜로운 현인(賢人)들은 바위옆을 지나가도 조용히 합장하고 경배한다고 하더군. 왜 그러겠나? 적어도 5천 만 년이나 그 자리에서 사유하고 많은 세월을 지켜봤을 테니 얼마나 많은 사유를 했겠느냔 말이지 이미 그것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한 까닭이라네. 거목(巨木)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으면 그 아래를 지나가면서도 경외심(敬畏心)을 품는 것도 좋을 것이네. 허허허~!”

파향의 말이 끝나고 나자, 처음부터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산수원 주인인 여초가 밖을 향해서 손뼉을 두 번 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과 술을 든 시동들이 들어와서 순식간에 주연상(酒宴床)이 차려졌다.

“곤륜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니 드시면서 담소하세요. 차린 것은 없어도 너그럽게 양해를 해 주시고 즐겁게 드셔 주세요. 오늘은 이 여초도 너무 즐거운 날이니까요. 호호호~!”

 

주객이 어우러져서 향기로운 술도 나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이어갔다.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넓은 마당에는 등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그러자 어디에서 왔는지 십여 명의 악사(樂士)들이 저마다 악기를 한 대씩 들고 와서 자리를 잡고는 흥겨운 음악으로 분위기를 돋궜다. 음악을 듣고 있던 우창이 여초에게 물었다.

“이 음악은 무슨 음악인데 이리도 흥겹게 연주하는 것입니까?”

“아, 고금(古琴)으로 연주하는 「광릉산(光陵散)」이라는 곡이에요. 웅장하면서도 애절한 느낌을 담고 있는데 들을 만하죠?”

“주연에 음악을 곁들이니 풍요로움이 요순시절(堯舜時節)인가 싶습니다. 공부하고 나서 먹고 마시니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같습니다. 하하~!”

음악은 다시 변해서 우창도 아는 고산유수(高山流水)가 연주되었다. 산천경계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고쟁(古箏)의 연주였다.

“아, 이것은 무슨 곡인지 알 것 같습니다. 고산유수가 아닙니까?”

“어머나! 우창 선생도 음률에 조예가 있으셨구나. 호호호~!”

“아닙니다. 조예랄 것이 있습니까? 그냥 오다가다 얻어 들어본 기억이 났습니다. 문득 음률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부하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바람이 일렁이는 장원(莊園)에서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한 가운데서 향기로운 술과 함께 듣는 고쟁의 선율이 예사롭지 않아서 궁금해졌다. 우창의 말에 여초가 미소를 짓고는 조용히 말했다.

“설마 악기를 연주(演奏)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듣고 즐기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데 기왕이면 듣는데도 악도(樂道)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 어려울 일이 없지요. 악곡(樂曲)에 대한 고사(故事)를 이해하고 고저장단(高低長短)으로 조화(調和)를 찾아가는 선율(旋律)에 귀를 맡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호호호~!”

“말씀만 들어서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고산유수에 대한 고사가 궁금합니다.”

우창의 말에 여초가 이 곡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다.

“옛날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백아(伯牙)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금(琴)을 연주하는데 뛰어난 실력자였다고 해요. 그리고 그의 연주곡을 듣던 종자기(鍾子期)라는 사람은 또 소리를 듣고서 그 소리가 외외호지재고산(巍巍乎志在高山)하고 양양호지재유수(洋洋乎志在流水)임을 알아 보자, 백아는 놀라서 종자기에게 말하여 일평생의 지기(知己)가 되었다고 해요. 후에 종자기가 먼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고산유수라는 곡이 세상에 전해 진 것이라고 해요.”

“오호~!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서 연주를 들어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하하하~!”

“과연 우뚝하니 높은 기상은 높은 산에 있는 것과 같고, 넓고 넓은 뜻은 흐르는 물에 있다고 하는 풀이가 비범(非凡)하지 않죠? 호호호~!”

“과연(果然)입니다. 멋진 연주자가 지음(知音)을 만났으니 두 사람은 마음으로 순식간에 하나가 되었음을 헤아릴 만 하겠습니다. 과연 아름답습니다. 음악(音樂)에도 도가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세상에 도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요? 호호호~!”

“맞습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무한(無限)의 영광(榮光)입니다. 하하하~!”

문득 파향이 조용해서 바라보니 벌써 한쪽에 누워서 곤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음악은 점점 흥을 더해 가고 우창과 삼진은 권커니 자커니 하면서 몇 잔의 술에 거나하게 취기가 돌았다. 그러자 여초가 일어나서 두 사람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기현주와 자원에게도 눈짓하자 모두 일어나서 바람결에 버들가지가 흔들리듯이 음률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늘의 달빛도 휘영청 밝아서 장원을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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