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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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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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 제45장. 만행(漫行)/ 10.동물(動物)과 식물(植物)

[605] 제45장. 만행(漫行)/ 10.동물(動物)과 식물(植物)

[605] 제45장. 만행(漫行)

 

10. 동물(動物)과 식물(植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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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물어볼까? 식물과 동물 중에서 누가 주도권(主導權)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나?”

파향의 질문에 우창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동물이 아니겠습니까? 식물은 동물의 먹이로 존재하는 줄을 누가 모른단 말입니까? 오히려 그것을 묻는 선생님의 뜻이 궁금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런데 실상은 그 반대라고 하는 것이 재미있다네.”

“예? 반대라니 그렇다면 식물이 주도해서 동물을 부린다는 뜻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만 보통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보진 않는 것일 뿐이지. 허허허~!”

“정말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뒤집히는 신기함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습니다. 어떤 연유인지 가르침을 청합니다.”

우창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자, 파향이 다시 말했다.

“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직도 이해하려면 멀었다고 봐도 되겠네. 실은 바위를 녹여서 흙을 만들고 그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이 풀이기도 하니 말이네. 실로 ‘풀’이라는 말에는 ‘바위를 풀어 헤친다’는 뜻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 단단한 바위를 풀어 놓는 것이 풀이라고 생각이나 해 봤으려나 모르겠군. 허허허~!”

우창은 파향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무심코 봤던 것들이 실은 주도면밀(周到綿密)한 인연에 의해서 생성되고 유지되고 또 소멸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에 잠겼다. 힘없이 밟히고 꺾이고 뽑히는 풀에 대해서도 경외심(敬畏心)을 갖게 된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파향이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은 풀이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나?”

난데없는 질문에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그야 심어진 곳에서 일생의 수명을 다하는 것이 식물이니 당연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창의 당연하다는 대답에 파향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떤가? 육신(肉身)에 심어졌으니 일평생은 식물인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어려운 물음인가?”

“그야 당연히 인간은 동물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일평생을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인데 이것을 식물과 비교해서 말씀하시니 무슨 뜻인지 잘……”

“돌아다니는 것은 육신인가? 아니면 정신인가?”

우창은 이야기가 뭔가 큰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단순하게 초목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뚜렷하게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물었다.“가르쳐 주십시오. 인간이 식물과 다름없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우창이 잘 못 이해한 것입니까?”

“그럴 만도 하지. 이 풀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듯이 영혼은 육신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고 생각해 보게. 여기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는가?”

파향의 말에 우창은 물론이고 여초도 마음을 집중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역력했다. 다른 제자들도 당연히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마음을 집중했다.

“한 알의 씨앗을 영혼이라고 해 볼까? 그 씨앗이 땅에 떨어졌고 싹이 텄네. 그렇다면 그 씨앗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러니까 말씀인즉, 영혼이 바람따라 업을 따라서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육신에 떨어지면 그곳에서 일평생을 살아간다는 뜻이 아닙니까?”

“옳지~!”

파향이 동조하자 우창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영혼이 태중(胎中)으로 들어가는 것이 땅에 씨앗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네.”

“일단 육신에 들어간 다음에는 영혼이 어디를 가더라도 육신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말씀인즉 동물과 식물이 하등 달라야 할 것도 다르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오히려 동물은 식물보다도 못한 것은 아닐까?”

“예? 아무리 그래도 식물보다 못할 수가 있습니까?”

“식물만큼 목마름을 견딜 수가 있나? 식물만큼 더위를 견딜 수가 있나? 심지어 식물만큼 추위를 견딜 수가 있나? 실로 생각해 보면 딱히 식물보다 더 낫다고 할만 한 것도 별로 없어 보이네만. 허허허~!”

“그건……”

우창도 생각해 보니 알쏭달쏭해서 딱히 파향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 열심히 생각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온 산천을 뒤덮는 것이 무엇인가?”

“예? 그야 식물이 아니겠습니까?”

“덮는다는 것은 동적(動的)인가 정적(靜的)인가?”

“매우 동적인 말입니다.”

“그래서 식물을 초록동물(草綠動物)이라고 한다네.”

“아니, 초목이 초록색의 동물이란 말입니까?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선입견에 갇히면 눈앞에 전개되는 것조차도 보이지 않는 법이지.”

“선입견이란 말씀입니까? 오히려 선생님의 말씀이 편중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우창은 자기도 모르게 수긍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물었다. 상식적인 사람에게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면 그 기준이 무엇일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동안 생각했던 초목에 대한 상식이 완전히 뒤범벅이 되어버리는 듯한 생각도 들어서 약간 혼미했다. 우창의 표정을 본 파향이 말했다.

“내가 뭐랬나? 태초에는 바다에서 살고 있던 풀이 육지로 올라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셨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이동이 동물처럼 움직였을 것으로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서 일평생(一平生)은 오래인가? 잠깐인가?”

“그야 순식간(瞬息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잠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던 우창이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선생님께 여쭙습니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원래부터 이 땅에 영혼이 존재했습니까? 언제부터 영혼이 윤회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현명하신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우창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파향도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바로 말했다.

“오호! 영혼의 본질에 대해 묻는구나. 나도 그 부분이 궁금해서 늘 생각했던 것인지라 쉽게 답할 수 있으니 또한 다행이로군. 허허허~!”

이렇게 말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말을 이었다.

“최초의 생명체가 풀, 즉 식물이었듯이 최초의 영혼도 아마 그랬을 것으로 짐작이 되기도 한다네. 그리고 쉰 떡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봤는가?”

“예? 쉰 떡 말씀입니까? 그야 떡이 쉬면 곰팡이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그 곰팡이는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닐 것입니다. 원래는 없었는데 공기 중에 바람처럼 떠다니다가 문득 쉰 떡을 발견하고는 착상(着床)해서 떡을 먹고 번식했을 것입니다.”

“오호! 제법 잘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그 곰팡이가 떡에 앉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뭔가 작용을 해야 눈으로 볼 수가 있는데 공중을 떠다니는 것은 눈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부터 기인(起因)한 것인지는 알기가 어렵겠습니다.”

“이제 답이 되었나?”

“예?”

“최초에 영혼이 어떻게 윤회를 시작했는지 묻지 않았던가?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이며 대답이라네.”

“아, 그러니까 그것은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혹시라도 선생님께서는 어떤 해답을 얻으신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우창이 다소 실망했다는 듯이 말하자 파향이 크게 웃었다.

“허허허허~!”

우창이 파향을 바라보자, 웃음을 멈추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세상에는 궁리해서 알 수가 있는 것이 있지. 가령 이 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네. 대개의 현학(顯學)은 구체적인 물체가 있으므로 그것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까닭이라네. 그런데 현학(玄學)은 어떤가? 아득한 세월을 흐르면서 얽히고설킨 정황들을 속속들이 읽어 낼 방도가 없단 말이네. 그야말로 파초허질(芭蕉虛質)인 거라네. 허허허~!”

“예? 파초허질이라면……?”

“파초의 껍질 말이네. 까도 까도 줄기는 안 보이고 껍질만 계속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잖은가?”

“그야 알고 있습니다만, 현학(玄學)이 그렇게나 종잡을 수가 없는 문제였다는 것은 의외입니다.”

“그래서 부처에게 제자가 물었을 적에도 그렇게 답을 했다더군.”

“어떤 물음에 어떤 답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매우 유명한 이야기라서 들어봤을 수도 있지. 「독전유(毒箭喩)」라고 한다네. 어떤가? 알고 있는 이야기인가?”

“한 번쯤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만, 명료하게 알기 위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잘 들어보게. 예전에 어느 왕이 전쟁터에서 적이 쏜 화살을 맞았다네. 화살촉에는 독이 묻혀 있어서 상처는 이내 시퍼렇게 감염되고 있어서 얼른 뽑지 않으면 이내 목숨을 잃을 수가 있는 지경이었다더군.”

“그야 당연하겠습니다.”

“신하들이 서둘러서 화살을 뽑고 감염된 곳을 긁어내고 해독제를 발라야 하기에 서두르고 있는데 정작 왕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더군. 이 독이 무슨 독인지 알아봐야 하고, 언제 만든 화살촉에 독액을 발랐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버텼다더군.”

“아, 말씀을 듣고 보니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가 물었던 것은 파초허질과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삼계(三界)가 불타고 있거늘 서둘러서 해탈의 수행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수행해야 하는지, 수행하면 언제 해탈이 되는지, 그보다 더 빨리 해탈할 지름길은 없는지를 물었던가 봅니다.”

“옳지! 잘 이해하셨군. 현학(玄學)의 원류(源流)를 찾기로 든다면 참으로 안개와도 같아서 종잡을 수가 없으니 문득 독전유가 떠올랐던 것이네.”

“그렇긴 합니다만, 우창은 그 왕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상황은 급박합니다만, 과연 수행법은 모두가 올바른 것인지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수행법이 저마다 최선이라고 주장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라면 오히려 그것을 하나하나 규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 틀렸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 오해하셨군. 중요한 것, 즉 수행법이라던지 번뇌의 단절법이라던지 이러한 것을 물었다면 부처가 그렇게 말했겠나? 별 쓸데없는 것에 집착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터에 마치 이 땅은 누가 받치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말할 텐가?”

“예? 이 땅을 누가 받치고 있느냐고요?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혹자는 그것도 궁금하지 않을까?”

“일리는 있습니다. 그래 누가 받치고 있다고 답을 합니까?”

“인도교(印度敎)에서는 거대한 네 마리의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다고 말한다더군. 그래서 제자가 또 궁금했던 거지. 그 네 마리의 코끼리는 누가 떠받히고 있는지를 말이네. 허허허허~!”

“어쩌면 그 답은 또한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받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우창의 눈치가 제법 빠르군. 허허허~!”

“그런 질문이라면 참으로 끝이 없겠습니다. 그래서 독전유가 나온 것이로군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으로는 언제부터 갑자(甲子)를 쓰게 되었던 간, 언제부터 하루가 12시진(時辰)이었던 지 간에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오늘 할 일에 집중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 아닙니까?”

“맞아! 바로 이해했군. 아득한 옛날에는 달도 지금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이 붙어있었다더군 그래서 바닷물의 조수(潮水)도 더 빨랐고, 하루의 해도 더 빨라서 때로는 하루가 10시진(時辰)이었던 때도 있었다고 하니 그러한 것을 일일이 따져서 언제부터 하루가 12시진(時辰)이었는지를 알아봐야만 자평법을 연구하겠다고 한다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 아니겠나? 허허허~!”

우창이 생각해 보니까 파향은 참으로 합리적으로 사유(思惟)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정관념(固定觀念)에 얽매여서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진리를 생각하고 바로 깨닫는 그 순간에 그대로 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로 우창도 평소에 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확실하게 느꼈다.

“과연 선생님의 말씀이 지당(至當)합니다. 앞으로 또 세월이 흘러가면 하루가 13시진(時辰)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간지(干支)의 조합은 또 어떻게 될지 그것도 고민이기는 하겠습니다. 하하~!”

“오호! 말 잘하셨네. 양인(洋人)들이 즐겨 사용한다는 점성술(占星術)에 대해서 들어 봤는가? 하늘에는 열두 자리의 별이 있다고 하네.”

“자세히는 모르고 있습니다. 이참에 그 말씀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서인(西人)들은 하늘의 별자리가 이동하는 것을 보고서 세월을 논하고, 우리 동인(東人)들은 이 땅의 초목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서 세월을 논하게 된다는 것을 자세히 알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라네.”

 


 

“그렇습니까? 시선이 서로 정반대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창은 파향의 해박한 지식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 경탄(驚歎)스러웠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임을 생각하고는 궁금한 것을 최대한 알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본 파향도 기분이 더욱 좋아져서 흥겹게 말을 이었다.

“우창이 관심이 있어 하니 나도 재미있군. 그렇다면 잘 들어보게. 가령 춘분(春分)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가?”

“춘분이면 경칩(驚蟄) 다음에 들어오는 24절기의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산천에 얼음이 녹고 초목이 새싹을 틔우려고 움직이는 시절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것을 서인들은 백양좌(白羊座)의 별자리가 보인다고 해서 ‘양자리’라고 한다네. 그러니까 천구(天球)에서 양자리가 보일 때는 지구(地球)에서는 춘분이 된다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물론 춘분에서 곡우(穀雨)까지의 한 달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그것은 백양좌가 한 달간 보이다가 곡우를 만나게 되면 다음의 별자리로 바뀐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네.”

“참 신기합니다. 동서양의 역법(曆法)이 서로 통하는 것이 있었다는 점이 말입니다. 그런데 자평법에는 절(節)을 시작으로 삼는데 서인들은 기(氣)를 시작으로 삼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것은 왜 그렇습니까?”

“어허~! 파초허질! 허허허~!”

“또 괜한 궁리를 한 것인가 봅니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풀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우리의 학문에도 절입일(節入日)을 시작으로 하지 않고 15일이 지난 다음의 기입일(氣入日)을 시작으로 삼는 것은 「육임신과(六壬神課)」가 있다네. 들어 봤는가?”

“아, 그 귀신도 숨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절묘한 신점(神占)이 아닙니까?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가? 그건 난 모르겠지만 여하튼 육임학(六壬學)에서는 월장(月將)이라고 해서 절입(節入)을 쓰지 않고 중기(中氣)를 쓰니까 뭔가 서로 통하긴 한다고 볼 수 있겠지?”

“과연 박학다식(博學多識)은 선생님을 두고 말한 것임을 알겠습니다. 그런 것도 다 알고 계시니 말입니다. 하하~!”

“그러자니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얼마나 많은 파초껍질을 까봤겠나? 그러니 웬만한 것은 다 생각해 보고 배워보고 실행도 해 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허허허허~!”

“뿐만이 아니라 돌이며 풀이며 하늘의 별자리까지 두루 꿰고 계시니 아마도 선생님은 더 궁금한 것이 없으실 듯싶습니다.”

“이제 원만한 궁금증에는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봐야지. 그래도 가끔은 병이 도지듯이 궁금증이 살금살금 머리를 쳐들곤 한다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서인들은 왜 하늘을 보며 살고, 동인들은 또 땅을 보며 살았는지가 궁금합니다. 혹 그 연유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점점 갈수록 태산이로군. 허허허~!”

“죄송합니다만 이 궁금증을 멈출 방법이 있으면 그것도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하하~!”

“그런 방법이 있으면 내가 도리어 배우고 싶은 지경이라네. 허허허~!”

이렇게 한바탕 웃음을 나눈 다음에 다시 파향은 진지하게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쉽지 않겠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면 오랜 세월 농경(農耕)을 주업으로 하고 살았다고 봐도 되겠지?”

“그렇겠습니다.”

“그러자니까 언제 씨앗을 뿌려야 하는 때인지를 살펴서 밭을 일구고 또 언제 결실이 완성될 때인지를 살펴서 창고를 수리해야 한단 말이네. 그러자니 당연히 언 땅이 녹는 경칩(驚蟄)이며, 빗물이 흘러내리는 우수(雨水), 햇살이 따뜻한 청명(淸明)으로 한 해를 기억하는 것이 수월했던 것이지.”

“그랬겠습니다. 그래서 24절기가 생겨난 것은 이해됩니다. 그런데 서인들은 왜 하늘을 보면서 살았을까요?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아무것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우창은 그 점이 못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궁금했다. 그래서 파향의 다음 말이 잔뜩 기다려졌다.

“우창은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예? 갑자기 중심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의 중심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네.”

우창은 순간 당황했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는 대답했다.

“그야 이 안에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 몸이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이 올바른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또 물어봄세. 부처는 중심이 어디라고 했나?”

“우창이 알기로 부처는 내 마음이 중심이라고 했지 싶습니다.”

“맞아! 노자는 어떤 말을 했을까?”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했으니 대자연의 산천경계를 중심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창은 생각이 드는 대로 말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지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파향의 질문공세가 급하게 몰아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자연과 나 자신에 중심이 있다고 보면 되겠나?”

“그렇지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비가 올지 알고 싶은 것을 제외하고서 하늘을 올려볼 일이 있겠나?”

“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항상 눈만 뜨면 밖에서 보는 것이 하늘이니 그것을 일삼아서 올려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신기하지 않으냔 말이지. 서인들은 밤낮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네.”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살아왔습니까?”

“그들은 중심이 하늘에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은 심증(心證)만 있을 따름이라네.”

“중심이 하늘에 있다니 그건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창조주(創造主)도 하늘에 있고, 구세주(救世主)도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하늘만 보게 되었던 것이고 낮에는 태양이 있으나 밤에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그것도 처음에는 단지 황홀하게 보일 따름이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백 년 천 년을 보게 되면 나름 질서를 읽어 낼 수가 있지 않겠나?”

“그렇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늘의 별이 순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백양좌(白羊座)이니 금우좌(金牛座)이니 하면서 기억하기 쉽게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네.”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감탄스럽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서인들은 왜 구세주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아니, 그걸 또 설명해 달란 말인가?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허허허~!”

“참으로 염치는 없습니다만, 궁금증을 풀 곳이 선생님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귀찮으시더라도 가르침을 청합니다.”

“알았네. 내가 어찌 아끼겠느냔 말이지. 우선 그들은 천부적(天賦的)으로 노예(奴隷)의 근성이 있었나 싶더군. 우리는 주인(主人)의 근성이 있어서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니 그들을 폄하(貶下)할 생각은 전혀 없네.”

“알겠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섬기는 주인이 있다면 우창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구세주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겠나?”

“모릅니다. 어떻게 부릅니까? 옥황상제(玉皇上帝)라고 하진 않을 것이니 말이지요.”

“그들은 기도하면서도 ‘주(主)여~!’라고 한다더군. 그 주는 나의 주인(主人)이라는 뜻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싸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도 많은 세상입니다. 그 주인은 하늘에 계신다는 의미겠지요?”

우창은 파향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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