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인연이 되셔서 고맙습니다
05.22 · 금
오주괘 →
소설적천수

[604] 제45장. 만행(漫行)/ 9.호숫가의 산수원(山水園)

[604] 제45장. 만행(漫行)/ 9.호숫가의 산수원(山水園)

[604] 제45장. 만행(漫行)

 

9. 호숫가의 산수원(山水園)

===========================

 

숙소에서 푹 자고 난 일행이 나들이 준비를 하자 여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를 대령하고 말들의 등을 곱게 쓸었다. 말들도 푹 쉬었던지라 새로운 원기가 펄펄 넘치는 듯했다. 모두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는 마차에 올랐다. 채찍을 든 여정이 기현주에게 물었다.

“어느 방향으로 진행할까요?”

“호반을 끼고 서문을 향해서 출발~!”

“옙! 분부받습니다~!”

여정이 신나서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마차의 바닥을 발로 내려쳤다. 그러자 음이와 양이가 하늘 높이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르고는 서쪽을 향해서 힘차게 달렸다.

서호를 끼고 유람객들로 붐비는 호심정(湖心亭)을 지나서 그렇게 두어 시진(時辰)을 달리자, 웅장한 서문이 나타났다. 기현주는 추억이 떠오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반짝 뜨면서 말했다.

“아, 서문이구나. 조금만 더 가면 오른쪽으로 아담한 호수가 하나 나올 거야. 이름은 산수호(山水湖)인데 거기로 가면 돼.”

이렇게 말하는데 기현주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자원만 빼고는 아무도 몰랐다. 조금 더 달리던 마차는 산수호를 발견하고는 자원이 시키는 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오리(五里)쯤 나아가자 과연 산수원(山水園)이라고 쓴 편액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말했다.

 


 

 

“다 왔어. 여기야.”

입구의 넓은 공간에는 먼저 도착한 듯한 마차가 십여 대나 있었고, 마부들이 서로 둘러앉아서 담소도 하고 마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여정이 빈자리에 마차를 대고는 모두 내리기를 기다려서 한쪽으로 옮겨놓고 말들은 그대로 둔 채로 기현주를 따라서 안으로 향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방문객을 맞이하는 입구에서 초로의 남자가 일행을 향해서 포권하며 물었다. 맨 앞장을 서서 걷던 기현주가 말했다. 

“동향현(桐鄕縣)의 기현주라고 전해 주세요.”

“예예~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려 주시면 바로 전달해 올리겠습니다.”

문지기가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기현주가 일행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예전 모습 그대로구나. 달라진 것은 그사이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숲을 이뤘다는 것이네.”

그 모습을 본 우창이 궁금해서 물었다.

“누님께서 이러한 멋진 곳에 인연이 있으셨을 줄은 또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응, 그야말로 화초(花草)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 나도 여기에서 화초의 이치에 대해서 약간 배운 것으로 소요원을 가꿨던 거야. 호호호~!”

안으로 들어갔던 문지기가 중년의 품위가 있어 보이는 여인을 대동하고 나오는 것이 보이자, 기현주가 말을 멈추고 두 팔을 벌렸다.

“언니~! 현주가 왔어요~!”

여인이 기현주를 보고서는 반갑게 포옹하며 말했다.

“아니, 공화가 왔구나. 참으로 오랜만이네, 내가 놀러 간다고 하면서도 뭐가 분주한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 잘 지냈지?”

“그럼요! 언니야 항상 풀때기 연구하느라고 바쁜 줄 잘 알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세월이 흘러도 고운 자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풀이랑 살면 그렇게 되는 건가요? 호호호~!”

“네 호들갑도 여전하구나. 어서 들어가자. 동행도 있으셨구나.”

비로소 눈길을 돌려서 일행을 보면서 알은 채를 했다.

“어서 들어가요.”

여인이 기현주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 인사는 들어가서 하자는 의미였다. 일행은 말없이 뒤를 따라서 잠시 들어가자 단아하게 꾸며놓은 차루(茶樓)가 나타났다. 기현주와 여인이 차루로 향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누추하지만 들어가시지요.”

차루는 고색창연(古色蒼然)했고, 특별히 꾸민 것은 없으나 우아한 품격이 느껴졌다. 주인의 자태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조용히 뒤를 따라서 탁자에 앉았다.

“자, 이리 앉아요. 내가 소개해야지!”

기현주가 일행이 앉기를 기다려서 여인에게 소개했다. 모두 소개하는 대로 따라서 합장하거나 공수하면서 인사하고 나자 말없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 여인이 말했다.

“잘 오셨어요. 공화랑 인연이 되셨으니 필시 보통 분들은 아니실 테고,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며칠 푹 쉬시면서 천천히 둘러보시고요. 나는 소환(蘇歡)인데 그냥 여초(如草)라고 불러주세요. 환은 기쁠 환(歡)이에요. 대대로 외자 이름을 사용해서 환이 되었나 봐요. 호호~!”

우창은 여인의 내력이 궁금했으나 나중에 기현주에게 물어보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현주가 소관음의 내력을 말해 줬다.

“보나 마나 동생은 언니의 내력이 궁금할 테지? 내가 간략히 소개하면 동파(東坡) 선생 소씨(蘇氏) 식(軾)의 후예(後裔)로 평생을 초목(草木)과 더불어 한거(閑居)하고 있다고 소개하면 되겠네.”

이렇게 말하면서 소관음을 바라보자 조용히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빙긋 웃었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젊은이가 찻잔에 차를 따르고는 뒤로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자, 차를 들면서 천천히 담소해요~!”

그윽한 차향이 차루를 감돌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신 기현주가 소관음에게 물었다.

“입구에 보니까 마차가 많이 있던데 다들 어디로 갔어요?”

“아, 저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러 흩어져서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 차를 마셨으면 우선 객사(客舍)로 가서 여장부터 풀고 둘러보면 되겠지?”

소환의 말에 기현주가 일행을 데리고 객사로 가서 저마다 방을 하나씩 잡아주고는 여정에게 말들도 휴식할 수 있도록 마원(馬苑)에 풀어주도록 했다. 말들을 위한 초지(草地)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특이했다.

“분부대로 하고 왔습니다.”

여정이 돌아와서 말하자 기현주가 일행을 이끌고 한 건물 앞으로 갔다. 현판에는 「열대초목원(熱帶草木院)」이라고 되어 있었다.

“여기는 언니가 가장 공을 많이 들여서 가꾸는 곳인데 그사이에 또 어떤 식물들이 늘어났는지 나도 궁금하네.”

기화요초(琪花瑤草)라고 하더니 열대초목에는 대략 500여 평은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을 후끈한 온실로 꾸며져 있고, 초목들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형태로 저마다 꽃이나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이 이국적(異國的)이었다.

열대초목원을 둘러보는데도 한 시진이 걸렸다. 기현주가 앞서 다니면서 설명을 해 줬으나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신기한 것은 처음으로 보는 식충식물(食蟲植物)이었다. 동물이 식물을 먹이로 삼는다는 이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식물이 동물을 먹이로 삼는다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우창의 표정을 본 기현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식물(植物)의 힘이야. 나도 이런 식물이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그사이에 언니가 어디에서 구해 심었나 봐. 신기하게 생겼지?”

“예, 흡사 주머니처럼 생긴 것이 달린 것도 참 신기합니다. 이 식물이 어떻게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야 언니에게 물어봐야지. 아 마침 저기 오시네.”

일행을 찾아서 열대초목원으로 오던 여초가 일행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 왔다. 여초를 보자마자 기현주가 물었다.

“언니, 식충식물을 보고 싶다고 하시더니 마침내 구해 오셨네요? 생긴 것도 참 특이해요. 어떻게 동물을 잡아먹는지 모두 궁금하다잖아요. 언니가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줘봐요. 나도 궁금하고요.”

“그래? 생긴 것도 좀 특이하긴 하지? 여기 조가비가 벌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물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도 있지? 조가비처럼 생긴 것은 작은 곤충을 가둬서 잡아먹고 물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은 물에 빠트려서 잡아먹는 거야. 이런 것을 보면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이렇게 말하면서 짐짓 우창을 바라봤다. 혹 생각이 있으면 대답을 해 보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마침 궁금했던 것을 묻고 싶었다.

“여초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식물은 보통 햇볕과 물을 의지해서 생장(生長)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그러한 상식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형태의 삶을 누리게 되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살아갈 환경이 열악해서 햇볕도 없고 물도 마땅치 않았던 것일까요?”

“어머나! 우창 선생이랬나? 벌써 그런 생각까지 했더란 말이야? 대단한걸. 호호호~!”

우창에게 칭찬하면서 말을 이었다.

“맞아! 그렇게 진화된 것으로 봐도 될 거야. 물론 나도 잘은 모르지만 발상이 기가 막히잖아? 감히 동물을 잡아먹으려고 생각하다니 말야.”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일도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어제는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아, 참으로 재미있는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하하~!”

우창이 곡원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자기도 모르게 말할 뻔했다. 그 말을 듣던 여초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곡원의 파향 선생을 만났었나 보구나?”

여초의 말에 기현주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언니도 그분을 알고 계세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언니도 알고 계신다니 그것도 놀라워요. 호호~!”

“서로 가까이 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오가게 되지. 마침 잘 되었네. 오찬(午餐)에 초대해야겠어.”

이렇게 말하고는 수하에게 몇 마디 일러두고는 다시 돌아와서 말을 이었다.

“이 포낭(包囊) 흡충(吸蟲)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 어찌 초목의 세상만 이러하겠느냐는 것도 떠올려 보고 말이야.”

우창은 여초의 설명이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한 우창을 보고는 기현주에게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서호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고 있지?”

“알죠, 옛적 송대(宋代)에 소씨 동파 어른께서 나라를 위해서 자기의 청춘을 바친 서시(西施)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판 호수잖아요. 그래서 이름도 서호인 것까지는 잘 알고 있어요.”

“맞아, 나의 12대 조(祖)이신 동파 할아버지께서 시이광(施夷光)의 공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만든 호수야. 그런데 시이광을 생각해 봐 그녀의 삶이 범려(范蠡)로 인해서 오 왕(吳王)인 부차(夫差)를 유혹해서 미색(美色)에 빠져들게 해서 서시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하여 결국은 월(越)에게 나라를 바친 꼴이 되어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도 하지.”

“시이광이 서시인가요?”

“그랬다더구나. 저라산 마을에는 시씨의 성을 쓰는 여인이 두 명 있었는데 동쪽 마을에 사는 여인을 동 시(東施)라고 한 것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서시가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더구나.”

“의외네요. 그 유명한 절세미녀의 이름이 그런 연유로 붙여졌다니 말이죠. 그런데 경국지색은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미녀’라는 뜻일 테니 부차의 마음을 물주머니에 가둔 저 포낭흡충과 닮았다고 봐도 되겠어요. 신기한걸요.”

“그렇지? 결국 인간도 정신을 못 차리다가 물주머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죽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나 싶었어. 이것은 남자에게 빠진 여인의 입장에서도 같은 것으로 봐도 되겠지?”

“맞아요. 시이광도 범려를 사모하게 된 까닭에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적국 오나라의 왕과 동침하고 그 마음을 빼앗아야만 했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삶도 참 기구(崎嶇)하다고 해야 하겠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삶을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보여주는 바가 적지 않지?”

“정말이네요. 자연을 보면서 인생을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그런데 저 나무는 무슨 나무길래 흡사 뿌리가 위로 가 있는 형태를 하고 있죠? 아마도 저 나무도 더운 곳에서 자라는 것이겠죠?”

“어디? 아, 후면포수(猴面包树)를 말하는구나. 생긴 형태가 좀 특이긴 하지? 이름도 그래서 특이해 ‘원숭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 나무’라니 말이야. 원래 가뭄이 워낙 심한 지역에서 살았던 나무라서 이렇게 나무 속에 물주머니를 담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러니까 나무들은 모두 저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갈 궁리를 하고 그렇게 진화하는 것이 참 신기하지?”

“정말이네요. 저쪽에 있는 선인장(仙人掌)이 통통한 것과도 많이 닮았어요. 생긴 것만으로도 메마르고 물이 귀한 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어요. 호호~!”

기현주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면서 열대수목원의 풍경을 훑어보면서 여초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데 그사이에 파향이 수목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나! 파향 선생님을 여기에서 다시 뵈오니 더욱 반갑습니다.”

“어허! 얼마나 멀리 가셨나 했더니 산수원에서 만날 줄은 나도 몰랐구려. 이건 또 무슨 인연이오?”

파향의 물음에 여초가 기현주와 얽혔던 과거의 인연을 설명해 줬다. 그러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제는 돌밭에서 돌의 역사를 공부하시더니 오늘은 풀밭에서 풀의 역사를 공부하신단 말인가? 그것도 괜찮은걸. 허허허~!”

파향의 말에 우창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돌의 역사는 놀랍고도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풀의 역사도 있단 말입니까? 지식의 바다는 과연 넓고도 깊은가 봅니다. 오늘도 귀한 가르침을 기대하겠습니다.”

“그야 알아봐야 먹고 사는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네. 그래도 궁금한 것을 해결한다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자꾸 파고들다가 보니 새로움을 깨달아가는 즐거움이야 또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지 않겠나? 허허허~!”

“과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역사가 46억 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셨는데 풀의 역사는 또 얼마나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풀의 역사는 그보다는 짧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만 어떻습니까?”

“맞아, 돌이 땅속에서 솟아올라서 식기 시작하면서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네. 높은 곳은 산이 되고 낮은 곳은 검푸른 바다가 되기를 20억 년간 이어졌다네. 그러는 중에 물속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생명체라고는 전혀 없던 죽음의 땅에서 초록색을 한 생명체가 출현하게 되었으니 말이네.”

“과연 검은 회색의 땅에 초록색의 풀이 생겨났다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처음에 생겨난 풀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지금의 형태에서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파향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마도 가장 근접한 것을 비유해 본다면 여름날 하천에서 이끼처럼 생긴 것이 있지 않던가?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예? 그러니까 물속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까?”

“맞아, 최초의 이 땅에는 지상에서는 아무 것도 살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더군. 다만 물속에서는 사정이 달라서 녹색의 동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억 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풀이 상륙(上陸)해서 마른 땅에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다네. 그것조차도 지금부터 따진다면 대략 6~7억 년 이전의 풍경이라고 봐야 할 것이네.”

“그럼에도 까마득한 옛날이었군요. 최초로 바다에서 땅으로 올라온 식물들이 어떠했을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아름다운 꽃으로 삭막한 대지를 아름답게 덮었을까요?”

“꽃말인가? 허허허~!”

우창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은 파향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여초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자자, 이야기도 좋고 공부도 좋은데 이제 점점 온실이 더워지니까 차실로 옮겨서 담소해도 좋겠어요. 자리를 옮겨도 좋겠지요?”

여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온실이 더워졌다는 것을 느낀 일행이 모두 차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에 다과(茶菓)를 차려놓은 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파향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꽃은 누굴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나?”

“예? 그야 식물이 번식을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까?”

“생각해 보게. 꽃을 좋아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음, 꽃을 좋아한다면 아무래도 봉접(蜂蝶)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인간도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본다면 사람도 포함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처음부터 꽃이 있었겠나? 벌도 없고 나비도 없는 천지에 풀들이 꽃을 피웠겠나?”

우창은 잠시 무슨 말인가 싶어서 멀뚱하게 생각하다가 보니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풀만 있다고 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최초의 풀은 꽃이 없었겠습니다. 종자의 번식은 바람을 의지해야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습니까?”

“맞아, 그것도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지. 그나마 흔적이 남아있는 식물이 있는데 혹 떠올릴 수가 있으려나?”

“예? 그러니까 지금도 바람에 의지해서 종자를 번식하는 식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뭘까요? 그러니까 벌과 나비와 같은 존재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 벌 나비가 모두 사라져도 멸종하지 않을 식물이기도 하다는 의미라네.”

“과연 듣고 보니 풀의 세계도 무궁무진(無窮無盡)합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감동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알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하하하~!”

우창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을 공부할 적에 느껴지는 희열감으로 마음이 살짝 흥분되었다. 우창의 표정을 본 파향이 설명했다.

“아직도 자신의 본성을 버리지 않고 이어져 오는 식물은 바로 송백(松柏)이라네. 스스로 꽃을 피우지만 바람이 불면 사방으로 화분(花粉)을 흩날려 결실을 이루게 된다네.”

파향의 설명을 듣고서야 봄날에 온 천지를 노란색의 가루로 뒤덮는 송화(松花)의 가루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예전에 바람이 흐르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허공에 송화가루를 흩뿌리던 지광이 떠올랐다.

“송화분(松花粉)을 모아서 다식(茶食)도 만들어 먹었죠. 소나무와 잣나무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은 또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자원이 재미있다는 듯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모든 식물이 그렇게 바람을 의지하면 될 텐데 왜 꽃을 만들어서 벌과 나비의 도움을 구했을까요?”

자원이 파향에서 물었다. 그러자 파향이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조물주(造物主)의 깊은 뜻을 뉘라서 헤아리겠는가. 다만 내 좁은 소견으로는 그로 인해서 꿀도 만들고, 서로 교류하니 또한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으냔 말이네. 그 꿀을 인간이 빼앗아 먹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네. 허허허~!”

“그런데 벌과 나비만 식물을 번식시키는 것입니까?”

우창이 궁금해서 물었다.

“대부분은 그렇지만 실은 나방도 돕고 새도 돕는다네.”

“예? 나방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가 꿀을 먹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그것은 금시초문입니다. 하긴 오늘 듣는 모든 이야기가 금시초문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어떤 새입니까?”

“봉조(蜂鳥)라고 부르는 새라네. 크기는 흡사 왕봉(王蜂)의 정도 되는 새인데 주둥이가 특정한 꽃에 맞춰져서 진화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웅묘(雄猫:팬더)와 같다고 할 수 있겠군.”

“웅묘라면 듣기에 사천(四川) 지역에서 살면서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는 곰이라고 알고 있는데 웅묘도 먹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 떠올렸습니다. 꿀만 먹는 동물도 있고, 대나무만 먹는 동물도 있는 것도 신기합니다.”

“우창이 웅묘를 말하니까 대나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는 것이 떠오르는군.”

“무엇입니까?”

“대나무는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대나무의 수명을 말씀하십니까? 항상 푸른 대나무만 생각했을 뿐 수명이 있다는 것은 모릅니다. 대나무의 수명은 어떻게 됩니까? 생각하기에는 생생불식(生生不息)하여 영원불멸(永遠不滅)할 것만 같은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웅묘는 평생 대대손손으로 먹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말이지요.”

우창이 묻는 말에 파향이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그럴 만도 하겠군. 사실 대나무의 수명은 일정하지 않다네. 때로는 20년에서 또 환경에 따라서는 60년이기도 한 까닭이라네. 그런데 정말로 큰 문제는 뭔지 아는가? 만약에 한 곳에서 대나무가 죽기 시작하면 그 일대의 모든 대나무가 일시에 죽어버린다는 것이라네. 실은 줄기가 죽는 것이고 뿌리는 살아있으나 웅묘가 먹는 것이 줄기이고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면 대나무가 죽게 되면, 웅묘의 먹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싹이 돋아서 죽림(竹林)을 이루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리 빨라도 5년에서 10년은 걸린다고 봐야지. 그러니 그동안 굶으면서 생존할 수가 없기에 웅묘는 그러한 주기(周期)를 만나게 되면 거의 절멸(絶滅)한다고 봐야지.”

“정말 큰 비극이로군요. 왜 웅묘는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우창의 궁금증은 끝이 없었다. 그것을 본 파향이 미소를 지었다.


목록으로 — 소설적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