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인연이 되셔서 고맙습니다
05.22 · 금
오주괘 →
소설적천수

[579] 제44장. 소요원(逍遙園)/ 22.은원(恩怨)

[579] 제44장. 소요원(逍遙園)/ 22.은원(恩怨)

[579] 44. 소요원(逍遙園)

 

22. 은원(恩怨)

==============================

 

우창이 밖을 바라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마음을 쓰는 가운데 자원이 조용히 육갑패를 꺼내서 손이 가는 대로 다섯 장을 뽑아서 탁자 위에 펼쳐 놓자 모두의 눈길이 이번에는 탁자 위의 육갑패로 향했다.

 

 

 


점괘를 들여다보던 자원이 우창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싸부, 아무래도 피를 보게 될까요?”

? 느낌이 불길한가?”

연월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오래된 원한으로 보여요. 임자(壬子)와 무오(戊午)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아서 말이에요.”

정화(丁火)는 누님이 되는 걸로 봤지?”

맞아요. 갑자기 해수(亥水)를 깔고 있는 모습도 불길한데 계수(癸水)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상대가 만만치 않아 보여요.”

그렇겠군. 다만 계수의 아래에 미토(未土)가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게 대단한 위세를 발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아마도 원인의 제공은 장행성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도 들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월간(月干)의 무토(戊土)를 짚었다.

무토는 상관이지 않은가?”

그러니까요. 남자 조카가 되는데 장행성의 평소 행실로 봐서 뭔가 과거에 저지른 일로 인해서 화근(禍根)이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점괘가 너무 혼탁하잖아요?”

자원이 못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조용히 하라고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면서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당신에게는 볼일이 없고 아들놈이나 나오라고 하시오.”

아들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기현주는 남자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묻자, 화가 솟구친 남자가 다시 소리쳤다.

사람을 죽이고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아들놈에게 볼일이 있으니 어서 나오라고 하지 않고 무슨 딴청을 부린단 말이오.”

기현주는 그제야 장행성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그런 일이라면 현령을 찾아가서 물어야 할 일인데 왜 여기에서 이러는 거죠?”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자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봐하니 그놈의 자식에 그 어미로구나. 아무래도 곱게 말해서는 통하지 않을 모양이군. 자식을 내어놓으면 조용히 형님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렇게는 안 될 모양이로군.”

이렇게 말하고서는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펼치자 날카로운 쇳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촤라라라랑~!’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면 어떻게 해요? 주인의 체면을 차리느라고 가만히 있었더니 무례하기 짝이 없네요. 한 번만 더 억지를 부리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기현주도 화가 치밀어서 언성을 돋궈서 말했다. 느낌으로는 죽은 황부자의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는 트집을 잡는 것 같아서 께름칙했으나 지금에 와서 달리 어떻게 해볼 수도 없어서 이렇게 소리를 쳤다. 그 사이 안에 있던 장행성이 소란을 듣고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오다가는 밖의 분위기를 보고서 소스라쳐 놀라며 삼진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저놈은 전에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죽은 황부자와 의형제였거든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선악을 막론하고 끼어들지 않는 곳이 없는 놈인데 이렇게 찾아 왔으니 아무래도 뭔가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장행성의 말을 듣고서 자원이 다시 점괘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분주(分柱)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싸부, 아무래도 갑인(甲寅)은 자원이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세요? 이대로 간다면 감정만 격해져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잖아요? 자칫하면 피를 부를 수도 있겠어요. 지금 저놈의 태도를 봐서는 그냥 순순히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자원이 감당할 수가 있겠어? 오히려 미토(未土)를 맡는 것이 옳겠는걸. 그다음에 갑인은 내가 맡는 것으로 하지. 그래야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보여서 말이지.”

우창의 말에 장행성은 염려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아무래도 직접 나서시는 것도 걱정입니다. 결자해지라고 했으니 익현(翼弦)이 나서서 해결하고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것이 옳겠습니다. 행여라도 스승님께는 불편함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말은 고맙네만, 지금은 익현이 나설 때가 아닌 것으로 보이니 조금만 기다려 보게. 우선 자원이 나가서 바람을 좀 잡고서 지켜보는 것이 좋겠어.”

우창의 말에 자원이 일어나서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검을 꺼내서 허리에 매고 밖으로 나가서 사내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말했다.

잠시 실례하겠어요.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신세를 지고 있는 주인이 난데없이 나타난 불한당에게 핍박(逼迫)받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끼어들어야 하겠어요. 도대체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까닭이 뭐죠?”

차갑고 냉랭한 음성으로 따지듯이 말하는 자원의 모습을 본 기현주가 내심으로 깜짝 놀랐다. 웃음기 가득했던 자원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치켜세운 눈썹 아래에서 형형한 광채를 뿜어내는 안광에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검까지 보자 내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래 온화한 마음으로 세상을 생각하고 있었던 기현주에게 이러한 돌발 상황은 난처했는데 자원의 등장으로 인해서 일단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아니, 동생은 나서지 않아도 돼. 내 일이라면 내가 해결해야지. 뒤로 물러나 있어.”

좀 더 친밀해 보이려고 자원에게 동생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것을 눈치챈 자원이 남자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귀하께서 철선(鐵扇)을 든 것으로 봐서 짐작하건대 태극신공(太極神功) 곽길(郭佶)의 후예이신 듯한데 그의 신공을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지 소녀가 견문을 넓혀봐야 하겠어요. 만약에 한 걸음만 다가오면 오행검(五行劍)이 춤추는 것을 보게 될 테니 잘 생각해서 움직이세요!”

난데없이 등장한 낭자의 카랑카랑한 소리와 예리한 눈빛에 잠시 찔끔한 듯이 움찔한 남자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소리쳤다.

뭐라고? 이런 방자한 년이 있나~! 그래 태극신공의 위력을 맛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렇다면 오행검인지 뭔지 맛을 좀 봐야 하겠다!”

이렇게 말을 마친 남자는 큰 부채를 치켜들고 자원의 가슴을 겨누고 찔러왔다. 그것을 본 자원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가볍게 몸을 돌리면서 남자의 뒤통수를 칼등으로 가볍게 내려찍자, 남자의 머리에서는 선혈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열혈(熱血)이 꼭대기에 올라 있어서 피가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

남자가 잠시 비틀거리다가는 다시 중심을 잡고서 이번에는 머리 맞은 것을 갚아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자원의 백회를 찍으려고 달려들었다. 자원이 미쳐 피할 사이도 없이 내리쳐 오는 철선을 보고는 고개를 돌리자 빗겨나간 부채는 자원의 어깨를 쳤다. 그 힘에 자원도 몸을 움찔했다. 남자의 힘이 보기보다 강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기현주는 조바심이 났다. 자원에게 괜찮겠느냐는 듯이 눈짓을 보내자, 자원이 걱정말라는 듯이 눈웃음을 치고는 다시 남자를 향해서 일검(一劍)을 날렸다.

목식(木式)을 받아욧~!”

말과 함께 날아간 검은 남자의 옷소매를 잘라버리고 어깨까지 드러났다. 남자가 잘려 나간 옷을 보면서 화가 머리까지 치솟았다. 그 순간에 자원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화식(火式)의 뜨거운 맛이에요!”

자원이 허리를 굽히더니 마치 불이 타오르는 듯이 검날을 휘저으며 눈을 향해서 찔러 갔다. 그러자 갑자기 당황한 남자는 뒷걸음질을 세 번이나 쳤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외쳤다.

토식(土式)의 맛도 봐야지요~!”

연이어서 이번에는 거의 바닥에 엎드리듯이 한 자원이 칼로 바닥을 쓸었다. 그러자 발목을 잘리게 생긴 남자는 재빠르게 위로 치솟아 올라서 피하고는 엉겁결에 비틀거렸다. 그 순간에 다시 자원의 외침과 함께 칼이 움직여서는 남자의 가슴을 향해서 일격(一擊)을 날렸다. 검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자원의 옷소매는 바람을 가득 머금어서 팽팽해진 채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금식(金式)이에요. 심장을 조심하세요~!”

남자가 비틀거리면서 애써 넘어지지 않으려고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때 우창이 밖으로 나서서 두 사람을 가로막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아니, 좋게 이야기해도 될 일이라면 말로 풀어야지 이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고는 이내 자원에게 말했다.

사매(師妹), 그렇게 악랄한 수법까지 쓸 필요는 없잖은가. 마지막 수식(水式)을 쓴다면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처리해야 하고 또 사람을 죽인 죄로 현령에게 불려 가서 문초를 받아야 할 테니 말이야.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도 납득이 안 되면 그때는 사매의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잠시 멈추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우창의 말에 남자가 부채를 거뒀다. 자원도 아쉽다는 듯이 남자를 노려보고는 칼을 도로 꽂고서 앞서 들어가서 탁자에 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나운 눈빛은 거두지 않고 있었다. 행여라도 도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였다. 모두 자리에 앉자 좌중을 둘러본 우창이 물었다. 자고

선생은 어떤 사람인데 이곳에 찾아와서 무례한 짓을 한 것이오?”

우창이 조용하고 부드러우나 깊이에는 강경한 힘이 깃든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남자도 지고 싶지 않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오. 내가 아끼는 형님의 죽음에 대해서 따질 것이 있어서 외다. 듣자니 이 댁의 자식이 몹쓸 짓을 했다고 하기에 찾아와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니 괜히 나서지 말고 당사자를 불러 주시오.”

, 그렇소? 그렇다면 은원을 가려야지요. 그런데 그대가 아끼는 형님이라는 분은 혹 황부자를 말하는 것이오?”

잘 알고 계시는구려. 맞소이다. 그의 죽음에 의문이 있어서 몇 가지를 물어야 하겠소.”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우창은 조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연히 석연찮은 점이 있으면 풀어서 확인해야지요. 그런데 왜 현령을 찾지 않고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오? 범죄의 혐의가 있으면 현령에게 고소(告訴)해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옳은 것이 아닙니까?”

소문에는 현령도 한통속이라는 말이 있소. 그래서 아무도 믿을 수가 없기에 직접 그 진상을 캐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자원이 칼집에서 칼을 반쯤 꺼냈다가 도로 꽂았다.

챙그렁~!’

그 소리에 남자는 움찔하는 듯하더니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다시 우창에게 말했다.

선생은 어찌 되는 인연이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주제넘은 것이지 않소?”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더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언성을 높였다.

아니,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가 막히네요. 왜요? 고인이 된 황가가 용돈을 주지 못하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건가요? 그래서 적당히 얼러서 돈이라도 몇 푼 뜯어낼 심산이었나 보군요. 그런가요?”

자원이 싸늘하게 말하자 남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자원이 그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서 다그쳤다.

그래서 귀찮아서 몇 푼의 돈을 던져주면 며칠 잠잠하다가 또 찾아와서 이런 식으로 행패를 부려서 두고두고 봉을 잡았다는 듯이 죽은 형님의 뼈를 사골 우리듯이 하다가 결국에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뜯어내기라도 해보겠다는 건가요? 그런 꼴을 볼 바에는 오늘 내가 당신을 요절내어 버리고 말겠어요. 내가 자세히는 몰라도 유가족들도 현령의 심판에 만족한다고 했거늘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렇게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단 말이죠?”

행패라니 말이면 다요~!”

남자는 악을 썼다. 그러자 우창이 자원을 제지하면서 말했다.

가만~! 감정적으로 대해서 무슨 해결이 된단 말인가? 내가 말할 테니 조용히 좀 해주면 좋겠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은 화를 못 참겠다는 듯이 탁자에 있던 차관(茶罐)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차관은 박살이 나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남자에게 말했다.

, 내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같이 유가족을 만나보러 가는 겁니다. 그리고 선생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보상을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에 따를 것입니다. 만약에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면 그때는 아마도 사매의 칼날이 인내심의 한계를 맞이하게 될 것인데 그래도 좋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오라버니! 이런 놈은 단칼에 목을 날려버리는 것이 최선이에요. 넓은 화원 한쪽 구석에 명당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으로나마 자손이나 잘 살도록 해줍시다. 더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겠어요.”

남자는 자원의 검술이 자기보다 한 수 위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라 조용히 앉아서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의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에 대해서는 위안을 드립니다. 다만 이렇게 찾아와서 맘대로 분풀이라도 하시겠다는 마음이라면 그나마 하나뿐인 목숨이나마 보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이 있으면 관가에 고하고 현명한 답을 구하라고 관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고서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으면 또 관찰사를 찾아서 고해야지요. 오늘 선생의 해결책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내가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하는데 좀 짧았던 것 같소. 멀리 갔다 와서야 비로소 형님이 운명하셨다는 말을 듣고서 주변에 물어서 달려왔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좀 성급했던 것 같소.”

그제야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제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다만 일에는 선후가 있으니까 일단 그것만 가려서 처리한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그렇다면 선생이 결정하시지요. 이 길로 관아에 찾아가서 하소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댁 주인의 배려로 약간의 노잣돈이라도 받아서 떠나시겠습니까?”

우창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하자 남자도 관아에 가서 고할 마음은 없었던지라 조용히 말했다.

배려해 주신다니 그것으로 충분하겠소이다.”

알겠습니다. 생전의 인연을 생각해서 아쉬워하시는 마음에 약간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은 성의를 드릴 테니까 받아 주시기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여정에게 말해서 은자 다섯 냥을 가져오게 해서는 전해줬다. 돈을 받아 든 남자는 내심으로 매우 만족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안타까움은 있겠으나 생사의 길이 서로 다르니 고인을 위로해 주시고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우창의 말에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하니 나가버렸다. 잠시 후에 기현주가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다.

아니, 동생은 어쩌면 그렇게 순간적인 기지(奇智)를 발휘할 줄도 알았어? 조용하게 학문의 이치에 대해서나 생각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구나. 정말 잘했어. 호호호~!”

누님께 얻어먹은 밥값은 해야지요. 하하하~!”

이렇게 말하고는 자원을 보며 말했다.

자원이 오히려 애썼네. 자원에게 매운맛을 보지 않았다면 저렇게 순순히 물러갈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서슬이 퍼렇게 눈을 부릅뜨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니까. 하하하~!”

싸부, 분주(分柱)의 갑인(甲寅) 노릇을 하시느라고 애썼어요. 덕분에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죠. 호호호~!”

기현주가 자원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정말 잘 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 뭐라고 했지? 태극신공 곽길이랬나? 그건 또 어떤 인물이기에 바로 알아봤어?”

기현주의 물음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 허언이죠. 그런 사람이 있을 턱이 있나요. 부채를 들고 하는 것을 봐하니 시늉만 내는 불량배라서 기선을 제압했는데 그런 것이 제대로 먹혔죠. 쇠 부채를 들고 다니는 것은 자원도 처음 봤어요. 그래서 가짜로 행세만 하면서 사람들을 겁주는 정도로 봤는데 알아보는 척을 하자 자신이 가짜라는 것이 들통이 날까봐 바짝 쫀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어요. 호호호~!”

어머! 정말? 난 또, 어찌나 당당하게 말하던지 자원이 그런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뭐야. 나조차도 감쪽같이 속았잖아. 호호호~!”

대결하게 되면 허세가 반은 차지하거든요. 특히 제대로 무공도 연마하지 않았으면서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보이는 자들은 다짜고짜 무기부터 들이대고 보죠. 그래서 단박에 허접하다는 것을 알아봤죠. 그래도 무사 대접해 준 것은 혹시라도 나중에 언니를 다시 찾아와서 괴롭히기라도 할까 싶어서 아예 뿌리를 잘라버린 거죠.”

그런 배려까지 했구나. 그것은 나도 전혀 몰랐어.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봐 조마조마했거든.”

기현주는 아직도 그 장면이 생각나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우창이 자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행검법은 언제 배웠어? 나도 처음 들었는데 그것도 임기응변이었나?”

당연하죠. 적당히 섞어서 이름을 붙인 거니까요. 그래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봐도 되겠죠?”

금식(金式)다음에 수식(水式)은 어떤 장면을 보여주려고 했어?”

그래서 잠시 고민했어요. 이치로 본다면 물이니까 피를 봐야 하잖아요. 이 아름다운 소요원에 허접한 놈의 피를 묻힐 수는 없으니까요. 호호호~!”

자원의 공이 컸네. 난 또 칼부림이라도 나서 귀한 동생이나 자원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잖아. 호호~!”

이제 불청객도 떠났으니 다시 공부해야죠. 언니, 어서 읽어봐요.”

자원이 말하자 기현주가 책을 읽으려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자원에게 말했다.

, 그 뭐랬지? 갑인(甲寅)의 역할을 하느라고 수고했다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인지 지금 생각났어. 혹 점괘를 본 것이었어?”

기현주가 궁금해서 묻자 자원이 육갑패를 뽑아서 풀이했던 내용을 설명하자 기현주도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랬었구나. 그 짧은 시간에도 점괘를 활용하다니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는 기인(奇人)들이구나. 호호호~!”

임기응변이 사촌보다 낫다잖아요. 호호호~!”

자원도 기현주를 보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그제야 기현주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다음 편을 읽어볼게.”

이렇게 말한 기현주는 소아(小兒)편을 읽고 풀이했다.

 

논재논살논정신(論財論殺論精神)

사주화평이양성(四柱和平易養成)

기세유장무착상(氣勢攸長無斲喪)

살관수유불상신(殺關雖有不傷身)

 

()와 살()을 보고 정신을 논하니

사주가 화평하면 길러서 성인이 되기도 쉬운데

기세가 유장하고 충극이나 손상(損傷)이 없다면

소아관살(小兒關殺)이 있다해도 몸을 상하지 않네

 

다 읽고 풀이한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나도 어느 사이에 동생을 닮아가고 있나 봐. 이렇게 읽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이 또한 하나 마나 한 말이구나!’싶으니 말이야. 이것도 병일까?”

병이라니요. 제대로 잘 이해하신 것이지요. 우창이 봐도 그렇습니다.”

맞아, 그런 거지? 아이나 여인이나 남자나 뭐가 다르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말을 왜 써놨을지를 생각해 봤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에서는 소아관살이 있어서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을 만나거든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위안을 주라는 뜻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

맞습니다. 아이를 낳기는 쉬워도 키우기는 어려운지라 귀한 아이를 얻어서 추명(推命)이라도 청하게 되면 온갖 관살(關殺)들로 인해서 낙정관(落井關)이 있어서 우물에 빠질 수가 있다거나, 탕화관(湯火關)이 있으니 뜨거운 물이나 불의 재난을 당할 수가 있다고 하거나, 심지어는 화상관(和尙關)이 있으니 집에 두면 단명하여 부모와 일찍 이별할 수가 있으니 절간으로 보내라고 하는 등의 말을 들으면 어찌 마음이 편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고 알려주면 그래도 작은 공덕이 될 것으로 보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기현주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어린아이를 절에 보내야 하는 관살(關殺)도 있는 거야? 그건 어떻게 되는 건데?”

, 그런 것도 있습니다. 가령 자오묘유(子午卯酉)일 생이 진술축미(辰戌丑未)시에 태어나거나, 진술축미일 생이 자오묘유시에 태어나거나, 인신사해(寅申巳亥)일 생이 인신사해시에 태어나면 이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창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묘일(卯日)의 축시(丑時)에 태어난 사람은 출가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런 셈이지요. ? 그러고 보니 누님도 화상관이 있었군요. 하하하~!”

 

 

 

 

목록으로 — 소설적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