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 제44장. 소요원(逍遙園)
7. 진신(眞神)과 가신(假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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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뭐지? 아, 진신(眞神)이구나. 용신(用神)이나 알면 되나보다 했는데 이제는 진신도 있었네? 이건 또 뭔지 궁금하잖아.”
“궁금하면 봐야지요. 누님을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하하하~!”
우창이 살펴보라고 하자 기현주가 책을 펼치고 「진신(眞神)」편을 읽고 또 풀이했다. 그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약간의 흥분이 뒤섞여 있어서 듣는 사람의 기분도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영상심진취득진(令上尋眞聚得眞)
가신휴요난진신(假神休要亂眞神)
진신득용평생귀(眞神得用平生貴)
용가종위녹록인(用假終爲碌碌人)
‘월령에 진신을 찾아서 있다면 참된 것을 얻은 것이고
때로는 거짓된 글자가 진신을 어지럽게 하기도 한다
진신으로 용신을 삼으면 평생을 귀하게 살지만
가신을 용신으로 삼게 되면 일평생 귀함이 없다’
다 읽고 풀이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맞아?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읽어도 뜻을 제대로 모르겠네.”
“잘 풀이하셨습니다.”
우창이 인정하자 기현주는 다시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야. 왜 월령에 있으면 진신(眞神)이라고 한다는 거야? 이것은 격국론의 잔재(殘在)가 아냐?”
“맞습니다. 보신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경도 선생의 말씀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이 구절도 가탁 선생의 견해가 아닌가 싶은 생각해 봅니다. 재론의 의미가 없는 것을 놓고서 진신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했으니 겉모양만 좋은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렇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이잖아?”
“그것은 중요한 핵심이 빠져있는 까닭입니다.”
“핵심? 그게 뭔데?”
“균형(均衡)이지요.”
“아, 오행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슬쩍 묻어버리는구나. 그렇다면 동생의 견해가 확실하구나.”
“이미 억부(抑扶)와 왕쇠(旺衰)에서 진정한 핵심을 다 보였는데 다시 진신(眞神)을 찾는다고 횡설수설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정말 동생에게 설명을 들으면 거부할 수가 없구나. 호호호~!”
우창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잘 알아들어 주니 우창도 유쾌해진 까닭이었다. 기현주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진신(眞神)에 대해서는 재론(再論)할 필요가 없는 거지?”
“아닙니다. 의미는 중요하니까요.”
“뭐야? 그렇다면 이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이야?”
“의미는 생각해 볼만 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들어야 알겠는걸?”
“진신(眞神)은 몰라도 됩니다. 다만 진용신(眞用神)은 알아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진용신? 용신에도 진가(眞假)가 있단 말이야?”
“꼭, 진가라고 할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성(重要性)을 말한다면 차이가 있다고 하겠고, 구태여 여기에 진가를 거론했으니, 이것을 응용해서 정리할 필요는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아하~! 알겠다. 용신으로 삼은 글자를 평가(評價)하자는 말이구나. 그렇지?”
“맞습니다. 누님께서 예를 들어보시겠습니까?”
“가령, 식상(食傷)과 관살(官殺)이 과다해서 일약(日弱)하면 인성(印星)이 필요한데 인성이 없으면 비겁(比劫)으로 용심을 삼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용신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는 말이잖아? 이러한 경우를 구태여 이름하자면 가용신이라고 할 수가 있단 말이지?”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듣는 가용신은 섭섭하겠지만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가용신이라고 할만하지 않겠느냐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재성(財星)이 많아서 일간이 약한데 비겁이 없어서 부득이 인성으로 용신을 삼을 수밖에 없다면 이것도 가용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요. 재성이 많으면 비겁으로 감당하는 것이 생극의 이치에 맞는데 필요한 것이 없으니까 부득이 재성의 공격받을 각오를 하면서도 인성을 용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니 흡사 전쟁터에서 사나운 적군들이 자녀를 공격하는 것을 어머니가 홀로 막고 있는 것과 같다고도 하겠습니다.”
“오호~ 설명만으로도 그 정경이 그려져. 눈물 나는 모성애구나, 그렇지만 현실은 힘으로 다뤄야만 하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으니 가용신이라고 한단 말이지?”
“제대로 잘 이해하셨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가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동생의 가르침이야말로 명쾌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과연 진가(眞假)의 내용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가 있겠어. 월령에 있다고 할 적에는 의아했는데 오히려 진가의 이치는 용신에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까 그대로 말이 되잖아.”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도 같이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겠습니까?”
“그래 이름이 진신(眞神)과 가신(假神)으로 나눴으니까 그게 좋겠구나. 내용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을 거지만 말이야. 호호호~!”
기현주는 다음 구절의 「가신(假神)」편을 읽고 풀이했다. 모두 귀를 기울였다.
진가참차난변론(眞假參差難辨論)
불명불암수둔전(不明不暗受迍邅)
제강불여진신조(提綱不與眞神照)
암처심진야유진(暗處尋眞也有眞)
‘진가(眞假)의 차이를 가리는 것이 어려우니라
밝지도 어둡지도 않으니 걸음 옮기기를 머뭇거린다
월령에서 진신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장간에서 진신을 찾는 것도 또한 진신이니라’
이렇게 읽고 난 기현주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야? 마지막 구절은 그래도 맘에 드네. 월령에 없더라도 진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이잖아? 이렇게 중요한 것을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의도는 또 뭐지?”
“그러니까 가탁 선생도 경도 선생의 의도를 몰랐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건 왜지?”
“오행의 균형을 이루는 글자가 용신이라는 것을 가탁 선생도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절을 쓸 수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아니, 알았으면 알은 대로 할 일이지 월령은 왜 거론하는 거야?”
“고집(固執)입니다. 자신이 고서에서 배웠던 것을 훌훌 털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거나 미련이 남았을 테니까요.”
“정말?”
“다른 뜻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창이 생각하기에는 이렇게밖에 볼 방법이 없지 싶었습니다. 누님이 생각하시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보시는지요?”
우창의 물음에 기현주도 잠시 생각하고는 의견을 말했다.
“그러니까 경도 선생의 견해가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월령에 대한 비중을 모두 무시하고 대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것일 수도 있잖아?”
“결국 같은 말이 될 뿐이지 않습니까? 고집이란 말이지요. 하하~!”
“아, 그렇게 되나?”
“누님께 묻습니다. 월령(月令)이 중요합니까? 균형(均衡)이 중요합니까?”
“그야 당연히 균형이 중요하지.”
“맞습니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월령을 놓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정말이네. 고집일 뿐이구나. 알았어. 실로 예전의 고서에서는 모두 월령을 최우선으로 살펴서 용신을 정했기 때문인데, 이렇게 균형을 알고 보니까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 부분적인 이야기일 뿐이니 말이야. 호호호~!”
기현주가 이해하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 차를 한 잔 마셨다. 그러면서 내심으로 뿌듯한 보람이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누군가의 미망(迷妄)을 걷어주는 것이야말로 학자의 가장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였다.
“동생.”
“예, 누님.”
기현주가 갑자기 정색하고 부르자 우창도 정색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현주가 말을 이었다.
“만약에 이러한 동생의 관점으로 연해자평(淵海子平)이나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주석(註釋)한다면 그 내용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봤어. 아마도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차 한 잔 마시겠습니다. 하하~!”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왜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을 따름입니다. 하하하~!”
“하긴, 이렇게 간단한 적천수에서도 쓸 내용과 버릴 내용을 가려서 정리한 마당에 그렇게 방대한 내용을 거론한다는 것이 죽은 자식 불알을 만지는 꼴이라고 해야 하겠구나.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기현주가 책을 보더니 다시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나 봐. 그러니까 말이 되고 말고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좀 더 읽어보고 싶어.”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우창은 환영입니다.”
“알았어. 때로는 버릴 말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네. 호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시 다음 구절인 「강유(剛柔)」편을 읽고 풀이했다.
강유불일야(剛柔不一也)
불가제자(不可制者)
인기성정이이의(引其性情而已矣)
‘강함과 부드러움이 한 가지가 아니니
통제(統制)가 불가한 경우라고 하면
그 성정(性情)에 따르는 것일 뿐’
내용을 읽은 기현주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우창에게 물었다.
“어렵네. 이게 무슨 말이야?”
“스스로 ‘나는 바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하하~!”
우창이 웃으며 말하자 기현주는 더욱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동생의 말이 더 어려워.”
“이 내용은 가탁 선생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 거야?”
“강(强)이면 강이고 유(柔)면 유인 것이지, 강유가 한 가지가 아니라니 이렇게 빤한 말을 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인족 선생의 글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이런 구절은 ‘삭제(削除)!’라고 하면 될 일이니까 말이지요.”
“의미는 어떻게 되는 거야? 말이 되든 안 되든 간에 의미는 있을 것이잖아?”
“그야 당연하지요. 종격(從格)을 거론하고 싶은 것입니다. 거스르지 말라는 말은 극히 강왕(强旺)한 사주는 식상(食傷)으로 설해도 안 되고, 관살(官殺)로 극하는 것은 더욱 안 된다고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균형을 위반해도 한참을 위반한 것이니 얼른 내다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단언해도 되는 거야? 그래도 뭔가 말이 되는 뜻도 하나쯤 담겨 있을 만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성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은 균형(均衡)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도 통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주장은 즉시로 잘라버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니, 동생은 말은 부드럽게 하면서 이런 때는 그렇게 단호할 수가 있어? 참 알다가도 모를 동생이야. 호호~!”
“그야 누님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부드럽게 하지만 학문은 빈틈을 주면 잡초가 우거져서 진실을 덮어버릴 테니 사정(私情)을 둘 수가 없는 까닭이지요. 하하~!”
“알았어. 그래서 멋지다는 말이야. 다음 구절도 보고 싶어.”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음 편인 「순역(順逆)」을 읽고 풀이했다.
순역부제야(順逆不齊也)
불가역자(不可逆者)
순기기세이이의(順其氣勢而已矣)
‘순생(順生)과 역생(逆生)은 일정하지 않으니
거역(拒逆)할 수가 없는 사주라고 한다면
그 기세(氣勢)에 순응하는 것일 뿐’
“글자는 기가 막히게 잘 맞췄네. 이로 미뤄서 한 사람의 글임을 알겠고, 앞의 강유를 쓴 자의 같은 붓끝에서 나왔다는 것을 짐작하겠어. 그렇지?”
“잘 판단하셨습니다. 내용은 고하간에 생긴 것만 봐도 같은 집안의 형제임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하하~!”
“내용 중에서 ‘불가역(不可逆)’은 앞의 강유에서 말하는 ‘불가제(不可制)’와 같은 뜻으로 보면 되겠지?”
“그렇습니다.”
“제어할 수가 없거나 거역할 수가 없는 것이 뭐지?”
“결국은 종격(從格)으로 끌고 가고 싶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의도하는 바를 빤히 알고도 남겠습니다. 이 또한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에서 십만팔천리(十萬八千里)이니 삭제(削除)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듣고 보니 간명(簡明)하구나. 그럼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되겠다.”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책을 펼치고서 「한난(寒暖)」편을 읽었다.
천도유한난 생육만물(天道有寒暖 生育萬物)
인도득지 불가과야(人道得之 不可過也)
‘천도(天道)에는 차갑고 따뜻함이 있어 만물을 생육하니
사람도 이것을 얻음에 지나침은 불가하다’
“이 대목은 좀 색다른데? 조후(調候)를 언급하는 것으로 봐야 할까?”
“달리 보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천도(天道)는 천간(天干)을 말하겠지?”
“맞습니다. 하늘에는 한난(寒暖)이 있어서 만물을 낳고 기른다는 말이니 현실적인 모습과 부합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구절입니다.”
“다음 구절? 인도득지 말이야? 이게 왜 문제지?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천도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언뜻 생각하면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주제가 명학(命學)이지 않습니까? 명학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아니, 조후를 전적으로 논하는 『궁통보감(窮通寶鑑)』도 있잖아?”
“있지요. 『난강망(欄江網)』도 있고요.”
“아, 잘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왜 문제라고 하는 거지?”
“이 대목을 보면 명학을 연구한다는 주체를 상실하고 허공을 배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뜬금없이 천도를 왜 거론한단 말입니까?”
우창의 말에도 기현주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동생은 뭘 말하고자 하는 거야?”
“난데없이 하늘을 들고나오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뭐가 난데없냔 거지. 사주에도 한난이 있어서 추운 사주는 따뜻하게 해야 하고, 더운 사주는 시원하게 해야 하는 것이잖아?”
기현주의 질문에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물었다.
“누님, 팔자는 정신(精神)입니까? 아니면 육체(肉體)입니까?”
“어?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만약에 팔자가 신체라고 한다면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팔자의 주인공이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야 당연히 일간(日干)인 경금(庚金)이 주체이고 정신이라고 했잖아? 여기에 신체라는 말은 일지의 을목(乙木)을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주체를 논한다면 당연히 정신이라야 하겠네.”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조후론(調候論)은 자평법에서 언급되어야 할 이치가 1할이라도 있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듣고 보니까 그렇구나. 동생의 말이 타당하네. 그렇다면 궁통보감과 난강망은 뭐야?”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소식일 따름입니다. 자연의 구조를 논한다면 말이 됩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중요합니다.”
“아하~ 이 인족 선생이 그 이치를 몰랐구나. 그렇지?”
“어쩌면 습관(習慣)으로 인해서일 겁니다. 왜 조후에 대한 언급이 없느냐는 생각으로 허전해하다가 문득 스스로 써넣기로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에 뜬금없이 들어있는 이 한난에 대한 의미를 풀이할 방법이 없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인 조습(燥濕)도 마찬가지란 말이잖아?”
“그래도 풀이는 해 보셔야지요? 하하~!”
지도유조습 생성품휘(地道有燥濕 生成品彙)
인도득지 불가편야(人道得之 不可偏也)
‘땅의 이치에는 건조함과 축축함이 있어 만물을 낳아 기르니
사람도 이것을 얻어야 하지만 치우치면 안 된다’
다 읽고 풀이한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정말이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천지의 이치를 확대해석해서 사주팔자에 끌어다 붙였다는 것은 알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로구나.”
“과연 누님은 명석하십니다. 바로 이해하셨으니 말입니다.”
“동생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아직도 정신과 신체의 사이에서 분간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겠지. 이제 겨우 경계선이 보일듯하니 말이야.”
“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창도 더없이 즐겁습니다. 이렇게 주객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즐거울 수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이제야 행간(行間)을 읽으라고 하신 고인의 가르침이 이해되네.”
“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응, 글자만 볼 것이 아니라 글자의 사이를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이야. 자간(字間)과 행간을 잘 살펴서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글의 노예가 된다고 했거든. 그런데 오늘 동생의 말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 코뚜레를 벗겨낸 듯해서 너무나 상쾌하잖아. 참으로 고맙구나. 고마워.”
이렇게 말하는 기현주는 눈에 이슬이 맺혔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난다고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샘에서 이슬이 솟아났다. 이것은 감동이 가져다준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