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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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천수

[523] 제42장. 적천수/ 23.흑암(黑暗)의 동굴(洞窟)

[523] 42. 적천수(滴天髓)

 

23. 흑암(黑暗)의 동굴(洞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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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는 열정적인 제자들이 백차방에 모여서 담소하는 것을 보고 우창도 들어가자 가장 먼저 발견한 진명이 얼른 일어나서 차를 따르며 말했다.

어머나! 때마침 스승님께서 출현하셨네요. 호호호~!”

우창은 진명이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아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띠게 하는가 싶었는데 내가 등장하기를 기다렸더란 말인가? 어디 화제(話題)나 들어볼까?”

오늘 배운 경금(庚金)을 토론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경금이 주체라고 한다면 신금(辛金)은 무엇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막혀 버렸어요. 호호

진명의 말에 우창이 향긋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내일 공부할 내용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안 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예습(豫習)하는 것도 더 깊은 궁리를 할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꺼냈다.

오호! 이제는 배운 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아서 배울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겠다는 말이로구나.”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셨잖아요. 궁금하면 바로 풀어보라고요.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죠.”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차를 우려서 숙우(熟盂)에 따르고 있던 연화(緣和)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신()이 경()의 다음에 있다는 것을 시간의 의미로 본다면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주체가 존재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가 아리송해요.”

연화가 이렇게 말하는데 마침 점심 먹은 뒷설거지를 마친 춘매(春梅)가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서는 얼른 받았다.

어머나, 점심밥 먹은 것이나 소화라도 되거든 공부하시잖고서 이렇게 열심히들 토론하시는 건가요? 참 대단한 열정이네요. 호호~!”

, 춘매도 차 한 잔 마시러 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귀가 간질간질해서 무슨 공부를 나만 빼고 하시나 싶어서 얼른 왔죠. 호호~!”

잘 왔어. 어디 같이 생각해 봐야지. 무언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우창이 이야기의 방향을 일단 존재(存在)로 잡아놓고는 차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할 틈을 줬다. 그러자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던 채운(彩雲)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혹시 사상(四相)은 신금(辛金)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어느 스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인간은 자신이 실재(實在)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네 가지의 모양을 짓는다고 하셨거든요. ()의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라고 할 텐데 그 주인공에게 붙어있는 것이라면 이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어요.”

그래? 처음 들어보는 말인걸. 무슨 뜻인지 풀어서 설명해 봐. ‘네 가지의 모양이란 무엇을 말하지?”

우창이 관심을 보이며 묻는 말을 듣고는 신이 나서 말했다.

사상(四相)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말해요. 아상은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인상은 내가 사람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중생상은 내가 중생이라서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며, 수자상은 인간에게는 수명이 있어서 살아가는 동안에 지위를 얻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경()과는 무관해 보이는데 경이 밝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것이 음양의 이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혹 사상(四相)을 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인지를 생각해 봤어요.”

채운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도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오호~! 채운의 말이 일리가 있는걸. 계속 이야기해 보시게.”

스승님께서 말이 된다고 하시니까 신이 나네요. 그러니까 사상에 갇히면 중생이고, 이것을 벗어나면 부처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혹 본래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자성(自性)인 경()이 그 어두운 면이 있다면 이러한 집착(執着)이 아닐까요?”

오호! 맞아. 그 말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말이 되는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림자를 버리라는 뜻인가? 부처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말이지.”

채운도 그런 것으로 이해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음양(陰陽)은 불가분리(不可分離)라고 하셨잖아요? 여기에서 생각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호호호~!”

과연, 채운의 공부가 나날이 깊어지고 있었구나. 그건 나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인걸.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염재가 현담 스승님을 모셔 오는 것은 어떨까? 제자들이 공부하다가 막혔다고 하면 얼른 나오시지 싶은데.”

염재가 나가고 차 한 잔을 마시지도 않을 시간인데 현담과 같이 들어왔다. 그것을 본 연화가 난초꽃이 그려진 개완(蓋椀)에 차를 담아서 앞에 놓자 우창이 현담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쉬시는데 소란을 피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자들이 궁금하다고는 하는데 우창도 답을 할 자신이 없어서 스승님을 청했습니다.”

괜찮네. 마침 나도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려고 방을 나섰던 참이었으니 말이지. 그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뭔가?”

제자들이 신()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던가 봅니다. 채운이 말하기를 을 사상(四相)으로 봐도 되겠느냐?’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창은 선뜻 대답을 못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사상이라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그 사상을 말하는 것인가?”

현담이 바로 알아듣고서 되물었다. 그러자 채운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얼른 대답했다.

맞아요, 태사님!”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은 고개를 채운에게 향하고 다시 물었다.

사상은 중생의 그릇된 집착(執着)을 말하는 것인가?”

,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집착을 벗어나야 한다고도 가르쳤겠지?”

맞아요~!”

채운이 답하기를 기다렸다가 찻잔의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신 다음에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음양의 이치로 본다면 빛과 그림자와 같아서 경()이 빛이라면 신()은 그림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만약에 그렇게 볼 수가 있다면 이것은 분리가 될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로(思路)가 막혀 버렸어요. 호호~!”

그야 무슨 문제인가? 빛을 없애면 그림자도 자연히 없어질 것이잖은가?”

? 빛을 없앤다면 온 천지가 깜깜해지지 않을까요?”

채운의 말에 현담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물었다.

채운은 우주의 실상이 뭐라고 생각하나? 밝은 것인가? 아니면 어두운 것인가?”

그야 대명천지(大明天地)이니 밝고도 밝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

현담이 채운의 말에 흥미롭다는 듯이 짧게 되물었다.

지혜는 밝은 것이고, 부처는 지혜를 얻으신 분이니 당연히 밝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제자가 뭘 잘 못 생각한 것일까요?”

현담이 바로 되묻자, 채운도 약간 자신이 없어졌는지 소리가 작아졌다. 그것을 본 현담이 다시 물었다.

낮에는 하늘에 무엇이 보이던가?”

태양이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양만 보인다는 말이지 않은가?”

? 그러니까...... 맞습니다. 태양만 보이죠. 그렇다면 밤에는 태양이 없는 대신에 무수한 별이 보이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 다시 물어볼까? 우주의 실상은 태양일까? 천공(天空)을 가득 메운 별들일까? 어디 또 말해 보겠나?”

채운이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태사님의 말씀으로는 낮에는 태양에 가려서 실제의 하늘이 보이지 않으나 태양이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하늘의 본래 보습이 드러난다는 뜻인가요? 태양만 생각했을 뿐 어둠이 실제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흐물흐물 무너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태양은 천간으로 논한다면 병()의 영역이 아니던가요?”

부처가 말하기를 본성(本性)이 불성(佛性)이고 불성은 백천(百千)의 등불을 밝힌 것보다도 더 밝다고 했으니 이것은 병인가 경인가?”

태사님의 말씀으로는 병은 쏘는듯한 빛이라면 경은 내면에서 뚜렷하게 밝은 빛을 의미하는 것이네요? 그렇다면 태양은 경()이고 어둠은 신()인가요?”

채운이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하자 현담이 웃었다.

태사님, 여전히 이해되지 않아요. ()은 사상(四相)이 아니라 우주의 실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의 별명이 암석(巖石)이라면 신()의 별명은 무엇이지?”

그야 보석(寶石)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옳지,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은 흡사 무엇을 닮았는가?”

그야 금강석(金剛石)을 뿌려놓은 듯이 영롱하죠. 그렇다면 신()이 보석이라는 말도 이치에 타당하다는 뜻인가요?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형용사(形容詞)라고 생각했는데요.”

채운이 답을 하면서도 의아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던 현담이 이번에는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의 생각은 어떤고? ()이 보석이라는 말은 일리가 있나?”

우창은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엉겹결에 대답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봐서는 일리가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다만 우창이 이해하기로는 신()은 흑체(黑體)라서 깜깜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석이라는 말이 나와서 일순간 당황스럽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실로 신금(辛金)은 깜깜한 동굴 속과 같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지.”

? 그 말씀은......”

밤하늘의 별들은 실재(實在)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닙니까? 자미성(紫微星)이니 태백성(太白星)이니 하는 이름까지도 있는 별들이니 말입니다.”

다만 알 수가 없는 일이라네. 하하하~!”

우창은 무슨 의미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보석이 반짝이는 것은 맞는가?”

그렇지 않습니까?”

빛이 없어도?”

아하! 보석도 빛을 받아야 비로소 반짝이니 빛이 없으면 빛을 잃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빛이 없다는 의미입니까? 그런데 왜 보석을 말씀하셨는지요?”

밤하늘에 보이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방황하게 되지. 그래서 밤하늘의 짙은 어둠은 차마 보지 않고서 밝게 빛나는 성월(星月)만 바라보면서 생각할 따름이라네. 하하하~!”

그러니까 실체인 어둠은 잊고 허상인 별빛만 좇는다는 말씀인가요?”

옳지~!”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래도 명쾌하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채운이 사상(四相)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채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채운도 몽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태사님.”

사상이야말로 별빛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이 허상(虛像)인 줄을 알라는 뜻이라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모두 허공의 별빛과 같이 무상(無常)한 것인데 그것에 집착하여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니 점점 밝은 본성과는 멀어질 따름이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아하~!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밤은 그냥 밤일 따름이라네. 그리고 어둠이 산기슭에 내려앉으면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편안한 휴식에 들면 되는 것일 뿐이지.”

그건 너무 단순하지 않나요?”

그럼 단순하지 않도록 음양상교(陰陽相交)를 하던가.”

? 그것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 부부화락(夫婦和樂)을 말하는 것이지 무슨 말이겠나. 하하하~!”

부부가 정을 나누는 그 순간은 사상(四相)도 없고 명암(明暗)도 없이 오로지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노닐 따름이니 이것이야말로 법성산(法性山)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부처님의 가르침은 금욕(禁慾)이 아닌가요?”

현담의 말뜻을 겨우 알아듣고서 채운이 반발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다시 차를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부처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야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밝은 스승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우주의 이치가 무엇인가?”

모르죠~! 그것을 알면 이렇게 경신(庚辛)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겠어요? 호호호~!”

채운도 할 말이 궁색해지자 이렇게 얼버무리며 웃었다. 그러자 현담이 조용하고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에 부처가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다면 금욕을 논하지 않았을 것이고, 금욕을 주장했다면 그는 우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니 부처라고 할 수가 없지 않겠나?”

그건......”

채운이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이번에는 우창이 대신 답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생각해 보건대, 우주의 이치는 자연의 이치와 같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자연은 음양이 상교(相交)하여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것일 테니 금욕은 이치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다네.”

그렇다면 출가하여 불제자가 된 화상(和尙)은 독신(獨身)으로 수행(修行)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나?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음양의 이치나 자연의 모습에서 본다면 그들은 자연(自然)을 초월하고 싶은 사람들인 게지.”

다시 여쭙습니다. 자연(自然)이 아닌 것이 부자연(不自然)이라면 부자연은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부처의 뜻이야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중생이 오욕(五慾)에 집착하여 수행의 길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것을 벗어나게 하려고 방편을 설한 것인데 이번에는 그 방편설에 집착해서 욕망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만 바라보면서 수행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의 집착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우창도 채운과 마찬가지로 현담의 말이 귓가를 맴돌기만 할 뿐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담이 말했다.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나. 애초에 사상(四相)도 없고, 탐욕도 없는 것이라네. 없는 것을 만들어 놓고서 그것을 벗어나라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부처의 첫 번째 허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스승님의 말씀은 부처의 말이라고 해도 다 옳은 것이 아니라는 뜻인지요?”

난 부처가 아니니 부처의 마음은 알 도리가 없네. 다만 자연주의(自然主義)와 신비주의(神秘主義) 간에 간극(間隙)이 있다면 그것조차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테지. 나는 자연의 이치를 따를 뿐. 허망한 신비주의는 따를 마음이 없을 뿐이라네. 그래서 졸리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을 따름이고 춘하추동의 사시(四時)는 믿어도 사상(四相)은 군더더기라고 생각할 따름이지.”

참으로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우창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우창은 자기도 모르게 합장하고서 현담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운은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태사님께 다시 여쭙고 싶어요. 그렇게 허망한 사상을 태사님은 왜 알고 계시는지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은 그것도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서가 아닌가요?”

당연히 필요하니까 알고 있지.”

언제 필요한가요?”

세상의 이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건만 그것이 전부인 줄로 알고 온통 그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을 만났을 적에는 그보다 더 적절한 법문이 없단 말이지. 하하하~!”

그 말씀은 사상도 이치가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채운은 내심으로 깊이 존중하고 틈만 나면 배우려고 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흙발로 밟아버리는 듯한 현담의 말에 내심 반발이 생겨서 따지듯이 물었다. 그것을 본 현담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부처는 방편법(方便法)의 귀재(鬼才)라네. 하하하~!”

? 그 말씀의 뜻은....?”

부처야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방편으로 한 말을 진리인 줄로 알고 매달리는 꼴은 흡사 지월견지(指月見指)일 따름이지.”

그러니까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볼 줄 모르고 손가락만 보면서 달이 손가락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인가요?”

아무렴~! 하하하~!”

태사님께 다시 여쭙겠습니다. ()은 무엇인가요?”

채운은 집요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답을 얻고 싶었다. 이렇게 묻자 이번에는 현담이 간단히 답했다.

흑동(黑洞)!”

? 흑동이라면 깜깜한 동굴이라는 뜻인가요?”

맞아~! 실낱같은 빛조차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깊고 깊은 동굴의 한가운데라고 보면 되네. 사람의 내면에는 이렇게나 깜깜한 동굴이 있다는 것을 밝힌 고인의 가르침이야말로 백천일월(百千日月)보다도 더 밝지 않은가?”

현담의 설명을 듣고서도 채운은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아서 눈만 껌뻑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 표정을 본 현담이 다시 말했다.

양극단(兩極端)에 머물면서 그 중간을 찾는 것이 음양이 아닌가?”

, 그건 맞아요. 이해되죠. 그런데.....”

영체(靈體)가 뚜렷하게 밝다면 흑체(黑體)는 깜깜하게 어두워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니까 태사님의 말씀인즉, ()은 영체라고 한다면 신()은 흑체라는 말씀이시네요? 그래서 경이 밝은 만큼 신은 어둡다는 의미이고요?”

이제 뭔가 조금 잡히는가?”

그렇다면 그 중간에는 어떤 상태라고 인식하면 좋을까요?”

불명불암(不明不暗)이지.”

밝은 것도 아니요, 어두운 것도 아니란 말씀인가요? 뭔가 애매한걸요.”

채운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현담은 다시 인내심을 갖고서 말했다.

무불(無不)이라네. 하하하~!”

무불이라면 없지 않다?’ 그럼 있다는 말씀인가요? 있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태인가요?”

옳지~! 이제야 귀가 열린 모양이로군.”

채운이 현담의 말을 들으면서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해서 다시 물었다.

그건 뭔가 흐리멍덩해서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설마하니 진리의 모습이 그와 같다는 뜻인가요?”

채운의 말을 듣고서 현담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잘 찾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 채운이 다시 물었다.

경과 신의 중간은 흐리멍덩하여 구분하려고 해도 분리할 수가 없는 그러한 상태여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밝음에 치우치면 어둠을 멀리하는 것이고, 탐욕에 치우치면 밝음과 멀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아하~! 그래서 신()은 흑암(黑暗)이요 동굴(洞窟)과 같아서 완전한 어둠이고 그것은 마음에 비유하면 탐욕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이제야 약간은 이해가 될 듯해요. 그러니까 결국은 경에도 머물지 말고 신에도 머물지 말라는 뜻인가요? 달리 말하면 무()에도 머물지 말고 기()에도 머물지 말라는 뜻도 될까요?”

채운의 영민한 두뇌는 쉬지 않고 먹이를 찾아서 광야를 누비는 사자와 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홍수와도 같았다.

()이면 경, ()이면 신()으로 이해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천간(天干)의 이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태사님의 가르침을 받고서는 그것조차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겠어요.”

현담이 말없이 차를 마시는 것을 본 연화가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줬다. 채운이 다시 물었다.

()의 허공에 머물 수도 없고, ()의 지하에 머물 수도 없어요. 그래서 천하(天下)와 지상(地上)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왜 진작에는 하지 못했을까요?”

그래서 알고 있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린다고 하지 않나? 하하하~!”

다시 생각해 보니 부처가 사상(四相)을 말씀하신 것은 틀렸다는 것이네요?”

아니지, 틀린 것도 없고 맞는 것도 없지. 다만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맞게 말했겠으나 그것을 전해주고 전해 받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따름이네. 부처는 분명히 중도(中道)를 말했을 터이니, 대성(大聖)이 설마하니 일구이언(一口二言)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도 되겠지.”

그제야 비로소 채운은 막혔던 것이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머리와 가슴이 상쾌하게 맑아졌다. 현담에게 합장하고 말했다.

태사님의 자상한 가르침에 감동했어요. ()에 머물면 사상(四相)에 묶인 중생이 되고, 그 중간에 머무르면 집착이 없는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나 가르침을 받고 나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어요.”

미소를 짓고 있는 현담을 보면서 염재가 한마디 거들었다.

태사님 문득 예전에 읽었던 경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법화경(法華經)에 이르기를, ‘허공에서 꽃비가 내리자. 그 꽃잎이 집착을 떠난 보살들에게는 스쳐서 흘러내리는데 아직도 수행 중인 존자들의 몸에 떨어진 꽃비는 떨어지지 않아서 그것을 떼어내려고 가사를 흔들고 손으로 떼어내려고 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그와 다르지 않겠습니다. 보살들은 꽃비가 오는구나하고 무심하게 받아들이는데 제자들은 몸에 꽃을 지니면 안 된다는 부처의 계율에 얽매여서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에 집착하게 되어서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자유로움이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되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명료하게 깨닫겠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 모두 신()에 대한 의미를 이해했다. 탐욕에 젖으면 신()의 노예가 되고 자유로우면 주인이 된다는 이치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현담이 돌아가고 모였던 제자들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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