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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맹골도까지 선상유람

진도에서 맹골도까지 선상유람

진도에서 맹골도까지 선상유람기 

 

 

(여행일: 2025년 10월 24일)

 


 

 

 


 

폭염의 나날을 보내면서 지도를 살폈다. 맹골도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래 올 가을에는 맹골도를 둘러봐야 하겠구나. 하고 다짐을 했는데 기나긴 여름인 좀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세 번이나 일정을 미룬 끝에 드디어 맹골도로 출발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10월 23일이다. 23일 오후에 출발해서 진도에서 자고 아침 9시에 출항하는 섬사랑9호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구역을 표시해 놨으니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세월호의 상흔이 그 언저리에 배어 있어서 풍경보다 물에 잠겨드는 배의 영상이 먼저 떠오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따름이지만, 역사는 역사이고 여행은 여행이다.

 

 


 

 

항상 그렇듯이 바다나들이에는 풍랑이 주인이다. 풍랑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여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정을 잡아 놓고서도 풍랑주의보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내일(23) 오후에 출발할 일정인데 10월 22일의 해상풍경은 강풍주의보에 풍랑주의보가 겹쳐있다. 그러나 오늘부터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바다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지만 일정한 패턴은 있기 마련이다. 배를 탈 날은 모래이니 이틀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오히려 풍랑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바다는 잔잔해 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경험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얼마든지 몰아 쳐라.

 


다시 하루가 지났다. 아쉽게도 맹골도 해상은 여전히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았구나. 뭐 그래도 괜찮다. 내일이면 풀릴 테니까. 뭔가 모를 믿는 구석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지. 

 

 


 

진도읍에 숙소를 잡으라고 시켰더니 대동모텔로 3박을 잡았다. 전라남도는 특별재난지역이라서 숙박비를 3만원이나 할인해 주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까 3박이면 9만원을 절약할 수가 있구나. 다행이다.

 

 


 

24일 새벽이 되자 풍랑이 점점 멀어지는 그림을 보여 준다. 그럴 줄 알았다. 계획대로 오늘 배는 출항을 하겠구나. 어제와 그제는 배가 뜨지 못했겠군. 이런 절호의 타이밍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은 용왕님의 보우하심임을 잘 안다. ㅎㅎㅎ

 

 

 

 

[섬사랑 9호에 대하여]

 

섬사랑 호가 있다. 1호부터 있는 모양인데 진도에서 맹골도를 운항하는 것은 오직 9호 뿐이다. 목포에서 출항하는 섬사랑 10호가 있는데 이 배는 하루 종일 32개의 섬을 거쳐서 저녁에 서거차도에 도착하여 끝난다. 물론 맹골도는 가지 않는다. 그래서 맹골도를 가려면 선택지가 없다. 오로지 섬사랑 9호를 타야만 한다.

 

 


 

여행기를 쓰려고 혹시나 하고 여객선예매 어플을 켜보니까 맹골도가 뜬다. 이런!! 여행가기 전에 표를 사려고 아무리 맹골도를 찾아도 선사에 문의하라는 메시지만 보여서 결국은 해광운수에 전화해서 표는 당일 출발 전에 구하면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정부정보센터 화재 이후로 새롭게 업데이트가 된 모양인가? 그래도 이렇게나마 나오는 것이 어디냔 말이지. 

 

물론 미정이 뜬다. 선사에 문의하라는 이야기다. 예매를 할 수가 없는 것은 같다고 봐야지. 그래도 맹골도를 볼 수 있어서 훨씬 좋구먼. 예매를 할 수가 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풍랑이 하도 심한 항로여서 미리 표를 팔 수가 없고, 출항일 아침이 되어야 분명하게 결정이 나므로 예매가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과연 맹골도가 그 정도였구나. 

 


 

대동모텔은 꽤 괜찮았다. 금휘가 후기를 보고 괜찮아서 잡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만 하지 싶다. 23일 오후에 쉬고 아침일찍 적어도 8시에는 출발을 해야 8시 30분 이전에 팽목항에 도착할 수가 있을테니 일찍 쉬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모텔에서 푹 자고 7시에 옆에서 콩나물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돈을 내고 사 먹는 것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라 괜히 미안스럽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고마운 손님이겠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 해 주는 것보다 좀 거시기한 맘이 들기는 한다. 쓸데없는 오지랖이기는 하지만서도. ㅎㅎ

 


 

몇 년 안 와본 사이에 멋진 여객터미널이 생겼구나. 그래서 얼른 매표소로 갔더니 아직 표를 팔지 않는데 서거차도 매표소 앞에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었다.

 

낭월: 맹골도 배표도 여기에서 구매하나요?

남자: 예, 맞습니다. 여기에서 구매합니다.

 

그 친구 말만 믿었더라면 낭패를 당할 뻔 했다. 관련 자료를 보다가 섬사랑 9호는 배에서 표를 판다는 말을 읽은 것같아서 혹시나 하고 배턱에 나가봤더니 차량을 선적하고 있잖은가 말이지.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쯧쯧~!

 

 


딱 써 놨구먼. '선내에서 매표합니다.' 이렇게 안내하는 것은 혹시라도 섬사랑 9호를 타실 벗님이라면 착오없이 잘 이용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함이다. 반드시 낭월처럼 근거없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지.

 

보자... 맹골도까지는 거치는 곳이 11개구나.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맹골도다. 그리고 맹골도에서 다시 배는 진도항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하루 한 번만 운항하는 항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맹골도에서 일박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일정을 바꿨다. 그냥 선상에서 둘러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행여라도 풍랑이 일어나면 배가 뜨지 않을 수도 있고, 귀가하더라도 꼬박 이틀을 써야 하는데 정작 섬에 가봐도 막상 둘러볼 것은 배에서 보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자가최면을 걸면 되었다.

 


 

구 대합실은 그 용도가 끝났구나. 저 쪽에 멋진 건물이 진도항연안여객터미널이다.

 


 

오늘 하루 종일 배에서 바다와 섬을 보면서 놀면 된다. 9시 출항해서 오후 4시 귀항 예정이다. 그러니까 배를 실컷 탄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선상유람 코스인 셈이다.

 


 

맹골도를 둘러보면 멀리 떨어진 섬들은 대체로 둘러보는 셈이지 싶다. 여객선이 있는 곳일 경우에 한해서 말이지. 태안군에 있는 격렬비열도는 여객선이 없어서 갈 수가 없네. 그렇다고 낚시배를 타기 위해서 거금을 쓰기에도 좀 부담스럽고 해서 관광유람선이 생기면 가보려고 보류하는 곳이다. 

 

출항 시간이 다가오니 차량들도 자리를 잡는다. 우리는 차를 갖고 갈 필요가 없어서 주차장에 두고 가볍게 배를 탔다. 연지님은 배만 타면 바로 객실로 직행이다. 흔들리면 멀미를 하는 까닭에 미리 멀미 약을 먹고 선실에서 베개 하나 차지하고 드러 눕는다. 그냥 모텔에서 쉬겠느냐고 해도 그건 또 심심해서 안 되겠는 모양이다.

 


 

하늘은 쾌청하고 바다는 잔잔하다. 배 타기 딱 좋은 날이구나. 24일로 잡은 것은 짝수일이라야 서거차도에 기항한다는 안내문을 봤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배에서 바라볼 망정 골고루 봐야 하지 않게느냔 말이지. ㅎㅎ

 

 

 

아니, 왜 맹골도가 아니고 죽도지? 

 

 

 

멀리 있는 섬을 당기려고 400mm 망원렌즈를 장착했다. 그러다보니 뿌연 해무가 끼어들어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윤곽은 보인다.

 


 

다도해 해상공원의 지질은 대체로 한 가지로 나온다. 

 


 

언제나처럼 5만분의1 지질도를 찾았는데, 상조도까지만 지질이 표시되고 그 아랫쪽에는 모두가 깜깜하구나. 아니, 이럴 일이 아닌데... 싶어서 25만분의1 지질도로 바꿨더니 비로소 모두가 나타난다.

 

 

맹골도까지도 모두 같은 그림으로 되어 있구나. 구태여 맹골도에서 하루를 보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중생대 백악기의 유문암, 그리고 유문암질 응회암으로 구성되었다고 안내해 준다. 그림만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퇴적암이 볼만 하지. 응회암이라고 하니까 희끄무레한 회색빛 풍경이 떠오른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전복되거나 침수된다면 이 녀석을 단단히 붙잡아야 하겠군.  

 


 

첫 기항지는 슬도구나. 

 


 

 

 

 독거군도에 속한 섬으로 슬도(瑟島)이다. 19명(2021년 기준)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배를 타려고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슬도에서 다음 기항지는 독거도이다.

 

 

 

 

 

 


 

 독거도(獨巨島)였구나. 독거도(獨居島) 인줄. 

 


 

 

 

 


 

혹시나 하고 살펴봐도 섬이 이름표가 없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름표도 하나 없이...

 


 

 

 

 


 

 

 

 


 

낙도를 이어주는 섬사랑 9호는 그래서 꼭 필요한 여객선이다. 자체로 운영이 되지 않아서 정부지원금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섬사랑호는 모두 그런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더구나 9호는 풍랑이 심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니 더욱 고마운 항로이기도 하다. 매표원에게 물었다.

 

낭월: 어제는 운항했습니까?

선원: 아뇨, 그저께도 운항을 못 했습니다.

낭월: 그런가 싶었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뜬 것을 봤거든요.

선원: 오늘 정말 날을 잘 고르신 겁니다. 26일에는 또 결항이 될 예정입니다.

낭월: 정말 날씨 복을 잘 탔나 봅니다.

 

말인즉 24일 25일만 확실하게 운항하고 26일은 미지수라는 이야기로구나. 그래서 맹골도는 용왕님이 돌봐 주셔야 여행할 수가 있는 코스인 걸로. 

 

선원: 어디까지 가십니까?

낭월: 맹골도까지 갔다가 하선하지 않고 귀항할 예정입니다.

선원: 아, 그러니까 배만 타고 갔다 온단 말씀이지요?

낭월: 그렇습니다. 그렇게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선원: 맹골도에 갔다가 풍랑이 심해서 기항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낭월처럼 이렇게 돌아오는 사람은 흔치 않은 모양이구나. 왕복으로 배표를 사고는 섬구경에 빠져들었다.

 


 

어? 그런데 다음 기항지가 지도에서 보이는 대로 하자면 탄항도와 혈도인데 뱃머리가 향하는 곳은 청등도이다. 그래서 다시 선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탄항도와 혈도는 7,8월의 미역철에만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는 무인도라서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을 해 준다. 그래서 안내문에도 개항의 요청이 없으면 배를 대지 않는다고 해 놓은 모양이지 싶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청등송도이고 그냥 청등도라고 하는 모양이다.

 


 

안내전광판은 나오는 배에서 찍은 것이다.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맹골도까지 가면서 풍경을 감상하고 배를 돌리는 것을 보고서야 선실로 들어갔더니 이름표가 떠 있기에 오면서 나오는 것을 찍어뒀지. 이렇게 써 먹으려고. ㅎㅎ

 


 

청등도(靑藤島)라니 푸른 등꽃이 피는 섬이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엇? 그런데 오른쪽의 섬에 보이는 것은? 관매도의 풍경이구나. 청등도에서 관매도는 이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관매도의 방아섬이 이렇게 가까이 보였구나. 물론 망원렌즈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서도.

 


 

처음에는 내일 관매도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선원의 말을 듣고 계획을 바꿔서 조도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청등도의 배 위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관매도를 본 것으로 퉁쳐도 되지 싶어서 괜찮았다. 해변의 퇴적암도 볼만 하구나. 

 

관매도는 어선으로 한 바퀴 돌아 봐야 하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당일에 들어가서 섬을 유람하고 마지막 배를 탄다는 것이 무리였다. 그렇다면 부득이 하루를 자야 하는데 그러자니 또 모레(26일)에 바다의 상황을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내일(25일)은 안전한 하조도 상조도를 차로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결정에 연지님도 좋아한다. 섬에서 하루 묵는 것이 꽤 불편하기 때문이고, 풍랑으로 인해서 자주 발이 묶여 본 적이 있었던지라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지 싶기도 하다. ㅎㅎ

 


 

청등도 옆에 섬이 송도였다. 그래서 청등송도로 묶어서 호칭하는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그 뒤로 보이는 두 섬은 형제섬이겠고, 관매도에서 유람선을 타면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겠는데 오늘 이렇게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싶다. 

 


 

청등도에서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차는 탔다. 

 


 

관매도를 보면서 배는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관매도는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으로 하고 이렇게 바라보면서 약간의 아쉬움을 달랬다.

 


 

초록색의 여객선은 진도항에서 하조도(창유항)를 왕래하는 배다. 새섬누리구나. 꽤 크다. 저 배는 어쩌면 내일 타게 될 수도 있지 싶다. 진도에서 창유는 배가 두 회사에서 번갈아 운항하는 모양이다. 

 


 

섬사랑 9호도 창유에 들린다. 다만 아직 한 군데 더 들렸다가 가야 한다. 앞에 보이는, 그러니까 진행하는 배의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바로 하조도(下鳥島)이다. 그 윗쪽에는 상조도(上鳥島)가 있고, 이 주변의 섬들을 모아서 조도군도(鳥島群島)라고 한다. 이 지역에는 군도도 많다. 독거군도, 조도군도, 거차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맹골군도다. 

 


 

 

 


 

 

 

 


 

 

 

 


 

이번 기항지는 죽항도구나.

 


 

이름표가 없어서 허전하군. 

 


포구 항(港)인가 했더니 죽항도(竹項島) 였구나. 목 항이로군. 배는 다시 방향을 돌려서 하조도로 향한다.

 


 

섬사랑 9호의 항로가 이렇게 생긴 것은 도서민을 위한 항로라서인 모양이다. 

 


 

왼쪽으로 하조도를 끼고 북향한다. 응회암 절벽이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위에 있는 등대는 하조도 등대겠군.

 


 

 

 


 

 

 

 

 

 

 

 

 

 

내일 하조도를 둘러본다고 해도 이 풍경은 볼 수가 없다. 육로에서 이동하게 되면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봐 놔야 한다. 

 

 

 

 

 


 

세월을 두고 쌓인 흔적들이다. 

 


 

내일 가보게 될 곳이다.

 


 

등대 벼랑을 돌아서니까 비로소 진도 하조도의 안내판이 큼직하게 보인다. 

 


 

하조도의 창유항이 다가온다. 섬사랑 9호의 항로 중에 가장 큰 기항지이기도 하다.

 


 

잘 써먹는다. ㅎㅎ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알려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섬이 154개구나. 새 떼라고 할만 하지.

 


 

저 다리는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조도대교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또 하나의 다리를 지난다.

 

 

 

하조도에서 나배도로 건너가는 다리이다. 그러니까 하조도에서는 상조도와 나배도를 들릴 수가 있도록 두 개의 연도교가 마련되어 있다.

 

 

 

다음 항로는 꽤 길다. 창유항에서 상하죽도까지 한참 가는데 파도가 제법 거칠다. 육지에서 떨어진 느낌이 든다.

 


 

지도에 그려진 항로를 따르지 않고 약간 다른 방향으로 진행한다. 아마도 파도가 일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요렇게 말이지.

 


 

 

 

 

 


 

그 덕분에 암벽을 자세히 볼 수가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 풍경은 서거차도에 속한 절벽이다.

 


 

 

 

 


 

 

 

 


 

왼쪽은 죽도의 암벽인데 서로 비슷하다. 같은 지질일 것이니 당연하다고 하겠다.

 


 

 

 

 


 

 

 

 


 

주민수도 표시되지 않았구나.

 


 

 

 

 


 

죽도가 상하로 나뉘어져서 상하죽도다. 작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상하죽도를 떠난 배는 다음 기항지인 서거차도로 향한다.

 


 

짝수일에 배를 타야 서거차도를 들어가 볼 수가 있다는 것도 참고사항이다. 

 


 

 

 

 

 


 

풍경은 특별할 것이 없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그냥 평범한 외진 섬이다.

 


 

 

 

 


 

이름표가 붙어 있구나. 반갑다.

 


 

서거차도는 목포에서도 배가 온다. 섬사랑 10호가 32개의 섬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다.

 


 

 

 

 

 


 

 

 

 


 

 서거차도에 대한 내용이 좀 있구나. 

 

 

명칭 유래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군도를 ‘거차군도()’라고 하는데, 거차수도()의 서남쪽에 있는 서거차도(西)와 동거차도()를 비롯하여 윗솔섬, 아랫솔섬, 솔섬, 북섬, 항도 등이 이에 속한다. 백제시대에 제주를 내왕할 때 선박들이 이곳을 지나갔다 하여 거차군도라 불렀으며, 거차군도의 서쪽에 있으므로 서거차도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거차도는 백제시대부터 어획 조업에 긴요한 지점으로, 무역선과 여객선이 ‘거차()한다’는 뜻에서 '거차도’라 하였다는 설과 거차군도 일대 해역의 ‘물길이 거친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는 설도 있다.

변천

1600년대 말 한양 조()씨 조천배의 선조가 하조도 육동에서 처음 이곳으로 입도하였다. 그 후 1700년대 초에는 밀양 박씨, 김해 김씨, 전주 이씨, 인동 장씨 등이 들어왔다. 이들은 하조도, 상조도, 관매도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거차도리라 하였다.

자연환경

섬 전체가 반월형()으로, 지질은 대부분 산성 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낮은 산지(최고높이 136m)가 북동쪽 해안 가까이에 분포하며, 그 밖의 지역은 완만한 경사지가 대부분이다. 해안은 암석 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곳곳에 발달하여 있다. 남동쪽 해안은 돌출한 갑() 사이에 깊숙한 만이 있고, 만의 입구에는 방파제 구실을 하는 섬들이 위치하여 천연의 양항()을 이루고 있다.

조도군도와 서거차도 인근 지역의 지질은 진도 서부 해안으로부터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암류이다. 주요 암상으로는 유문암 및 유문암질 응회암이며, 경사가 급한 산지 지형과 독특한 해안 지형이 형성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서거차도 토양 특성은 유문암류 풍화층에 기인한 잔적토로 구성되어 있으나 기반암의 노출이 심하여 토양층의 발달이 미약하다. 한편 사면에서 운반된 풍화토는 경사가 완만한 산록과 곡저부에 퇴적되어 붕적토와 충적붕적층을 형성하고 있다.

서거차도의 주요 식생은 곰솔 군락으로 관목층은 주로 졸참나무, 진달래가 출현하고 있으며, 사스레피나무, 작살나무, 자금우, 마삭줄, 자귀나무, 청미레덩굴 등도 기록되었다. 민가와 휴경지에 칡 군락, 고사리 군락, 개망초 군락, 망초 군락, 환삼 덩굴, 억새, 수크령 군락 등이 출현하였다.

서거차도에 서식하는 육상 동물은 인근의 조도와 유사할 것이다. 곤충은 강도래목, 나비목, 날도래목, 노린재목, 딱정벌레목, 매미목, 메뚜기목, 벌목, 잠자리목, 파리목, 하루살이목 등 11목 260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류는 88종이 관찰된다. 법정 보호종은 총 9종이며 이 중 멸종위기Ⅰ급은 노랑부리백로이다. 멸종 위기Ⅱ급은 6종이다. 멸종 위기Ⅱ급은 노랑부리저어새, 물수리, 붉은배새매, 새호리기, 큰기러기, 팔색조이다. 천연기념물은 소쩍새(324호), 황조롱이(323호)가 알려져 있다.

진도 지역은 지리적으로 다도해의 중심부에 위치한 해양성 기후 지역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이 13∼14℃이며 최난월(8월)의 평균 기온은 25∼26℃, 최한월(1월) 평균 기온은 1∼3℃이다. 진도 일대는 비교적 강수가 많은 지역에 속하며 하계다우형 계절풍 기후 특성을 보인다. 연평균 강수량은 1200∼1500mm 정도이며 진도는 섬 지방이므로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수분 공급이 충분하므로 강수량이 많다. 그러나 여름철에 비가 적게 내리고 태풍도 내습하지 않을 때는 가뭄으로 저수지의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강수 일수는 연간 110∼120일 내외이고 상대 습도는 연평균 76∼78%로 역시 높은 편이다. 연평균 풍속은 2∼4m/s로 다른 기후 지역보다 강하고 일조율은 47∼61%이다.

현황

2022년 12월 말 기준, 인구는 99명(남 48명, 여 51명)이고 세대수는 62호이다. 서거차도의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경지 면적은 논 5.0㏊, 밭 30.2㏊, 임야 22ha이다. 밭농사 중심의 농업과 연승 중심의 어선어업, 자연산 해조류 채취를 생업으로 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이고 쌀, 보리, 마늘 등이 소량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삼치, 우럭, 병어, 붕장어 등의 어류가 잡히고, 해조류는 자연산 돌미역과 톳이 주를 이룬다. 주 소득원이자 특산물은 낭장망으로 잡는 멸치와 자연산 미역이다.

서거차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대흑산도의 흑산항과 함께 어업 전진기지로 지정되었다. 선착장의 물양장 부근 녹지 공간에 ‘서거차항 준공기념비’가 서 있고, 물양장 가운데에는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북쪽과 서쪽의 해안선은 단조롭지만 남쪽과 동쪽의 해안은 소규모의 만()이 형성되어 있다. 만 입구의 작은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한다. 모래사장은 협소하고 해안은 암석 해안으로 절벽을 이룬다. 서거차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지만, 급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간이 상수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우물도 사용한다. 서거차도 주민들의 주 생활권은 목포시이며, 부 생활권은 하조도이다.

진도와 목포항에서 출발하는 서거차항까지 정기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조도초등학교 거차분교가 있다. 공공 기관으로는 조도면 거차출장소, 서거차해경파출소, 서거차보건진료소가 있다. 1981년 12월 23일에 제14호 국립공원으로 지정(건설부 고시 478호)되어 섬 전체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되었다.

서거차도에서 멀지 않은 남해는 동지나해로 근해어장의 중심지이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일본어선을 중심으로 파시가 열렸다. 1937년 당시 1종 요리점이 들어서고 여인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일본 이주자들이 많아 윗마을 일대에는 소유주가 일본 사람 이름 그대로 남아 있는 집터가 11필지나 있다. 광복과 더불어 일본 어선단이 물러가며 항구는 다시 한산해졌다. 그러다 1969년 삼치잡이 어선이 300여 척 몰리며 다시 파시가 형성되었다. 이때 서거차도 사람들은 술보다 식수 파는 재미로 살았다고 한다.

이 해역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서거차도에 해군 기지가 들어섰다. 한일국교 정상화와 맞물리며 도내 4대 어업기지의 한 곳으로 선정되는 등 섬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서거차출장소가 들어서고 방파제와 물양장 시설 공사를 맡은 남화토건이 사무실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주민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1984년 남화토건 현장사무실이 철수하고 방파제와 물양장 시설을 제외한 냉동, 급수, 제빙 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삼치마저 흉어를 이루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거차도 [西巨次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거차도를 지나니 다시 망망대해에 홀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서거차도에서 곽도로 가는 항로에서 왼쪽으로 아득히 멀리 보이는 섬이 바로 병풍도다.

 

 

 

제법 많이 떨어져 있다. 세월호가 마지막을 맞이한 곳도 이 언저리 해역이겠구나.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떠오른다. 잠시 그 외로운 304위 영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병풍도는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서거차도 가까이에서 바라본 병풍도는 이렇게 보인다. 어떻게든 윤곽을 살려보려고 라이트룸에서 별 짓을 다 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너무 멀어서 뭐 어쩔 수가 없다. 선원에게 물었다. 오늘 병풍도가 보이겠느냐고, 선원이 답했다. 해무 속에서 흐릿하게라도 보일 것이라고. 뭐 항상 그랬을 게다. 해무가 없는 날이 있으랴.

 


 

맹골도에 가까워지자 병풍도의 모습도 달라졌다. 길이로 봐서 이것도 제대로 전체가 보이는 것이 아님은 알겠지만 여기까지다.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 없기에 라이트룸에서나마 최대한 살려봤다. 마음 같아서는 유람선이든 어선이든 타고서 한 바퀴 돌아봐도 좋겠지만 여기까지가 현실적인 한계임을 잘 알고 주어진 만큼만 즐기면 된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실루엣을 보자니,  문득 백도의 풍경이 떠오른다. 지질공부의 효시가 되었던 백도와 뭔가 조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맹골도의 노두가 훅~ 다가온다. 병풍도를 보느라고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ㅎㅎ

 

 

 

 

 

 

 

 

 

 

 

 

 

 

 

 

 

 

 

 

 

 

 

 

 

 

 

 

 

 

 

 

 


 

 

 

 

 


 

보통은 석영맥이 침투하지만 여기에서는 검은 암석이 파고 들었구나. 

 

 

 

오른쪽에 맹골도, 왼쪽에 곽도. 이것은 곽도의 풍경이다. 

 


 

 

 

 

 

 

 

 

 

 

 

 

 

곽도에서 사람이 살기에 배가 들어가겠지...

 

 

 

항로를 보니 왜 이 배의 이마에 '진도 ↔ 죽도'라고 써 놨는지 알겠다. 맹골도에서 가는 마지막 섬이 죽도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항로가 달랐다. 

 

 


 

 이렇게 돌았다. 그야 선장님 마음이다. ㅋㅋㅋ

 


 

곽도항의 풍경이다. 좀 쓸쓸하달까...

 

 

 

 곽도(島)는 콩잎 곽이다. 콩잎처럼 생겼다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곽도를 돌아서 죽도로 향한다. 죽도가 참 많기도 하다. 상하죽도 죽항도도 그렇고. 대나무들이 많이 자랐던가 싶기도 하다.

 

 

 

날씨가 좋아서 천만 다행이다. 이렇게 잔잔한데도 맹골도의 파도를 보니까 먼 바다로 나온 느낌이 확~ 든다.

 

 

 

 

 

 

 

 

저 멀리 뾰족한 여가 보인다. 이름이 있을까? 

 

 

 

여가 표시되어서 보이긴 하는데 이름이 없구나. 혹시 네이버지도에는 나오는 수도 있으니까 어디...

 

 

 

위치는 나온다. 확대해 보면 이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역시 네이버지도값을 한다. 이런 소소한 것에서 힘을 발휘하는 네이버지도다. 기특~ 정보를 보니 간여는 낚시꾼들의 황금어장인 모양이다. 그 이야기로 온통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

 


 

저만치 보이는 섬이 맹골죽도인 모양이다. 위치가 그렇다.

 


 

암벽은 맹골도의 풍경과 흡사하구나.

 

 

 

 

 

 


 

 

 

 

 


 

맹골죽도와 맹골도는 지척이다.

 

 

 

 

 

 

 

드디어 마지막 기항지 맹골도구나.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이 상세하여 읽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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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도는 목포항에서 67.3km 거리에 있는 고도 중의 고도이다. 면적 1.39km2, 해안선 길이 5km의 맹골도는 1973년도에 39가구 208명, 초등학교 어린이 89명이 공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24가구 74명이 살아간다.

 

근래에는 방파제 시설이 잘 갖춰져 어선이 10여 척 있고, 민박을 하면서 낚싯배도 운영한다. 이곳은 진도대교가 있는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울둘목 다음으로 물살이 거세다. 유속이 6노트, 시속 11km에 이르러 이 수역이 조력발전 후보지로 지정되었다. 조력발전소가 설립되면 맹골도의 가치는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이곳 주민들은 하루속히 그 날이 올 것을 학수고대한다. 암초도 전혀 없고 바다의 깊이도 30m 넘는다지만, 지난 10년간 58차례나 사고가 난 곳이 맹골도 주변이다.

 

몇 년 전까지 진도 팽목항에서는 정기항로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면 6시간 30분 이상이 걸리는 멀고도 먼 오지의 섬이었다. 반대로 지금은 목포 가는 배는 끊어지고 그 대신 진도 팽목항에서 버스를 타고 목포로 나간다. 짐이 많은 할머니들은 목포행 직행 여객선을 원하지만 코스가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이제는 진도 팽목항을 통하여 버스를 타고 목포로 간다. 배를 통한 목포 문화권이 자동차 중심으로 바뀌고, 그에 따라 생활권이 변해가는 중이다.

 

지금도 맹골도에 가려면 아주 큰 맘을 먹고 가야 할 만큼 멀고도 외로운 섬이다. 맹골도는 우리나라 제일의 바람따지(바람을 받는 곳)인 서남해의 모서리에 있고, 또 서해와 남해의 물살이 직각으로 교류하며 소용돌이치는 험한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봄철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서 여객선 결항률이 높다.

 

맹골군도는 진도의 서남쪽 모서리 가장 끝에 있는 섬으로 맹골도와 부속섬 곽도와 죽도, 즉 '맹골 3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 맹골군도는 진도 섬들의 방풍, 방파제 역할을 한다.

 

섬주민들은 주로 자연산 미역이나 톳, 돌김 등을 채취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은 아주 오래 전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맹골도는 곽도와 죽도를 포함하여 드라마 <패션70's>의 배경지로 등장하여 알려지기도 했다.

 

맹골도 가는 길

소용돌이치는 험한 바다는 한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불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 일쑤이다. 그래서 맹골도 섬주민들은 입도조(섬에 가장 먼저 들어와 후손을 퍼뜨린 조상)들을 원망할 때, '맨 골탕만 먹이는 섬'이라고 할 만큼 멀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파도가 높아서 해안에 배를 붙이기가 어려워 마을 앞에서 되돌아가곤 하는 곳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부두시설이 잘 되어 있다. 태풍주의보가 아니면 걱정 없을 정도로 회항하거나 결항하는 날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목포항에서 짝숫날 12시 30분에 신해페리호가 출항했으며 6시간 30분이 걸렸다.

 

지금은 진도 팽목항에서 오전 9시에 신해9호를 타면, 12시 반경에 맹골도에 왔다가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맹골도에 오면 쉽게 민박을 할 수 있다. 서거차도에서 맹골도에 이르는 남서방향의 대각선 뱃길은 서해와 남해의 다른 섬여정에서 만나기 어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서거차도와 동거차도는 우리나라에서 멸치와 삼치가 가장 많이 나는 섬이다. 삼치는 멸치를 먹이로 하기 때문에 멸치와 같이 다닌다.

 

서거차도 부두에서 보면 방파제 사이의 가물가물한 수평선 위로 병풍처럼 두른 섬이 다가온다. 그 섬은 생긴 모습 그대로 이름이 병풍도이다. 병풍도는 맹골도에서 조도쪽으로 가면 정면으로 만날 수 있다. 병풍도의 풍광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홍도나 거문도와는 또 다른 원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섬은 꽤 크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무인도로 남아 있다. 섬 전체가 사방팔방으로 병풍을 친 듯 해안까지 몇 겹의 주름으로 겹쳐 있다. 여름에는 관광유람선이 조도에서 병풍도 주변 해상관광을 위해 자주 다닌다.

 

맹골도 둘러보기

1992년 가을, 탐사선 등대호를 타고 왔다가 당시 이곳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구자웅 목사님을 만났다. 교회 건물을 시멘트 블록으로 지었지만 미장을 하지 않아서 미관이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아마도 도회지 기준으로 보아서 그런지 모른다. 워낙 먼 섬이다 보니 교통이 불편하여 미장 기술자를 데려올 수 없고 그래서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나 싶었다.

 

그러고 나서 2008년도에 MBC '느낌표' 촬영을 지원하면서 6개월 간 게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세 번, 그리고 그 뒤로도 두 번이나 더 맹골도를 방문하여 섬을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섬 중앙에 높이 3백 미터의 깃대산이 있으며, 마을은 섬 북쪽해안의 선착장 부근에 몰려 있다. 낚시가 워낙 잘되어 낚시꾼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섬이지만, 미역이 한참 자라는 시기인 봄부터 여름 미역철까지는 낚시꾼들의 해안 출입을 전면 금지시켜 미역 보호에 나선다.

 

다음은 최성민 기자가 쓴 기행문 기사이다. 이 글을 보면, 섬의 면모가 보이는 것 같다.

 

풍랑이 조금이라도 일면, 목포에서 출발한 배가 맹골도 앞까지 왔다가도 사람들을 다시 싣고 서거차도로 가버린다. 부근 바다에는 고기가 우글우글해서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역시 배를 못 대고 침만 흘리며 돌아가기 일쑤다. 그래서 맹골도 사람들은 자조 섞인 푸념으로 맹골도를 "맹탕 골탕만 먹이는 섬"이라고 부른다.

 

뭍에 나가기가 힘들다보니 맹골도 사람들은 급한 병이 생기면 헬리콥터를 타고 목포의 병원으로 간다. 자동차는 못 타도 비행기를 자가용처럼 타는 셈이다. 그러나 자연조건이 이렇다 해서 맹골도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맹골도 사람들은 오히려 원시의 자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바람과 풍랑이 세고, 배 대는 시설이 없어 사람들이 배를 제대로 못 부리기 때문에 맹골도 주변에는 고기와 조개, 해초류가 낙원을 이루고 있다. 물고기 중에서도 특히 흑돔 · 홍돔이 많아서 뭍의 낚시꾼들은 불편한 교통을 무릅쓰고 한사코 이 섬을 찾아든다. 해삼과 전복도 새까맣게 널려 있지만, 맹골도에는 노인밖에 없어서 이웃섬의 해녀들이 와서 돈을 내고 따 간다.

 

바닷가에 자라는 미역이나 돌김, 톳, 청각 등 자연산 해초류만이 맹골도 사람들의 손길에 맡겨져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을 뿐이다. 해초는 맹골도 사람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큰 바다에서 거센 물살에 단련되며 자란 것들이라 깨끗하고 영양분이 가득하며 훨씬 진한 맛을 낸다.

 

맹골도 사람들은 무척 낙천적이다. 여행객들이 맹골도에 첫발을 디디면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인데도 모두 갯가로 달려 나와 마중한다. 거센 파도가 치는 갯가에는 그물 손질 하는 아낙네들의 함박웃음이 꽃피고, 험한 뱃길에 주눅 든 나그네는 섬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에 저절로 피로가 풀린다.

 

1998년 내연발전소가 들어서 3개 섬(맹골, 죽도, 곽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내연발전소는 마을 바로 옆에 있지만 길이 구조상 제법 멀다. 선착장에서 바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연발전소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타고 내려오면 붉은 벽돌로 된 조그마한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두 기의 비석이 보인다. 두 기 다 열녀비다.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다. 남편이 죽어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홀로 자식을 잘 키웠다는 내용이다.

 

이 앞바다는 해안이다. 바로 앞 약 500m 거리에 무인도인 '명섬(明島)'이 있다. 일명 '멍섬'이라 하는 곳으로, 섬 자체는 목초지이고 조류가 세다. 방파제 옆으로 예전에 선착장으로 사용되었던 크기가 아주 작은 경사제가 있다. 맹골도는 두 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는데, 명도 외에도 동쪽 끝에 '몽덕도(夢德島)'가 있다. 약 3km 떨어져 있는 국유지인 섬이다.

 

마을은 아늑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오른쪽은 제법 높은 임야가 있고 왼쪽은 나지막한 언덕의 초지가 있다. 섬은 좌우가 작지만, 마을 뒤로 이어진 능선은 참으로 길다. 그 능선을 타고 전신주들이 길게 이어져 곽도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맹골도 생활

맹골도는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이 지키고 있는 섬이다. 24가구가 살고 있는데, 실제 거주인구는 20명 정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미역, 톳, 돌김, 청각 등은 주요 소득원이며 깊은 바다에서 자란 것을 채취한 것이라 영양이 더 풍부하다.

 

맹골도는 흑산 바다(서해)와 진도 바다(남해)가 만나는 모서리에 있어서 다른 곳보다 물살이 세고 바다가 거세기 때문에 양식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다. 100% 자연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맹골도에서 나는 자연산 미역 등 해조류는 거센 물결에 견뎌서 특히 강하고 영양분이 많다. 맹골도 미역은 '산모각'이라 하여 산후조리용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진도의 조도 돌곽(藿)은 최상품으로 수백년 동안 인기가 높아서 공동으로 어장을 관리하여 균등 배분되는데 가구당 소득은 연간 1,000만원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맹골군도에서 채취되는 자연산 돌미역은 조도면 전체에서 20%에 달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여파로 인하여 오염이 안 된 조도의 다른 지역 자연산 미역까지 소비자들이 찾지 않을까 진도군은 염려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분은 맹골도 발전소 소장이며 영동호라는 낚싯배를 가지고 있는 최세은 씨이다. 맹골도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만재도가 진도군에 속해 있을 때(현재는 신안군 흑산면에 속함)에 이곳 맹골도로 이사를 하였는데 20년 전의 일이다.

 

1965년도에는 농토가 부족한데다 흉년 때문에 진도군의 요청으로 31가구 191명을 진도군 팽목과 기타 지역에 이주시켰으나 농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부분 다시 만재도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때 최씨는 만재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뒤에 최씨가 만재도보다는 교통이 좋고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미역생산으로 유명한 맹골도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멸치잡이 때문이었다. 약 20년 간 멸치잡이를 하였으나 바다 수온의 상승으로 해파리 떼가 극성을 부려서 그만둔 지 오래 되었다고 하였다.

 

최씨가 맹골도로 찾아든 것은 큰 누나인 옥진씨가 일찍이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뒤 누나가 살고 있는 맹골도로 작은 누나 옥심씨를 데리고 만재도에서 이사를 왔다. 최씨는 "예전에 만재도가 고기가 엄청 많았어요. 오뉴월에 가라지들이 섬의 바위에서 뛰어오르면 잡아서 소금으로 염장해 가을에 팔아도 수입이 좋았지요. 그런디 고기흉년이 들고 농토는 없고 교통이 워낙 불편해서 고향을 떠나왔지요."

 

맹골도는 만재도보다 모든 조건이 좋아서 제2의 고향이 되었고, 발전소가 생기면서 발전소 직원으로 일하였다. 그의 아내는 교회를 맡아 전도사로 일한다. 배를 가졌으니 낚시객은 물론 이웃 섬 곽도나 죽도에 대절도 간다. 특히 미역철에 맹골도의 넓은 지역에 배를 대 주면 미역을 싣고 마을로 들어와 퍼준다. 그 대신 배 앞으로 미역 한 짓(1가구 분)이 더해진다. 맹골도와 곽도, 죽도 3개 섬 중에서 유일하게 맹골도에 선착장이 있어서 맹골도는 주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맹골도 이름 유래

맹골도라는 이름은 맹골도, 죽도, 곽도의 섬과 간댓여, 아랫여, 웃여 등 많은 여(암초를 이곳에서는 여라 부른다)가 대부분인 바위섬들로 이루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섬에는 매가 많다 하여 '매응골도'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도 '매응골도'란 이름으로 표기되고 있다.

 

맹골군도 좌우로 국제항로(매물수도), 국내항로(맹골수도)가 자리하고 있다. 망망대해에 위치하고 있어 예부터 '맹수같이 사나운 바다를 끼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맹골도라 하기도 했고,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어서 접근이 어려워' 맹골도라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거센 파도를 호랑이처럼 두렵게 여겼던 옛 사람들의 정감어린 표현으로 보인다.

 

맹골도 옆의 죽도 주민들이 항상 불안에 떨다 생각 끝에 대나무를 심어 호랑이 접근을 막기 위해 대나무 죽창을 만들었다 해서 '죽도'라 하였으며, 곽도는 바위섬에 미역이 많이 자란다 해서 '미역섬'이라고 했다.

 

맹골도 풍습과 유래

예전에는 정월에 초분을 하는 풍습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당제 역시 섣달 그믐에 올라 정월 초2일에 내려오며, 당굿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맹골이라 불리게 된 이유 중 '맹골 노총각 장가가다' 이야기가 있다. 맹골 노총각이 장가를 가기 위해 충청도에 갔는데 중매쟁이가 말하기를 "아저씨는 어디서 사는데 각시를 얻으러 왔는교?" 하니 총각은 "맹골서 삽니다" 했다 한다. 옛날에는 고을이라 하면 큰 곳으로 알았던 시절이라 '맹고을'로 알아들은 중매쟁이가 처자를 소개했다. 처녀는 목포로 와서 연락선을 타고 맹골을 들어오게 되었는데, 맹골의 크기를 보고 기절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리 왔다 갔다 해도 한 시간이면 몇 바퀴를 돌아도 될 그런 섬이 아닌가?" 그래서 처녀는 총각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맹골서 산다고 그러더니 이렇게 작은 섬에서 살면서 어째서 거짓말을 했습니까?" 하니, 총각이 답하기를 "이 섬이 맹골입니다"라고 하자, 처녀는 "에따, 못 살겠다" 하고 도로 충청도로 올라갔다고 한다. 작은 섬마을 그리고 고단하여 친정으로 되돌아간 처자의 아련한 정서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해남 윤씨와의 관련 역사

1400년 무렵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전하는데, 현재의 주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간 사람들의 후손으로 보고 있다. 기록된 바에 의하면, 1800년 초 완주 이씨 이동신의 선조가 섬에 들어왔고, 같은 시기에 제주 최씨 최형배의 선조가 섬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소유자인 윤흥중이 임진왜란 이전 사람인 것을 보면, 아마 그 이전에도 맹골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나 싶다. 윤흥중이 섬을 매입했다면, 그 당시에도 섬이 갖는 경제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이미 들어와서 살고 있는 유인도를 산 것으로 추정해 보는 것이다.

 

맹골도는 근대에 와서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서남해의 섬들이 일제 하에서 소작쟁의 운동이 일어났듯이, 섬주민들과 지주인 해남 윤씨 종가 사이에 세금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분쟁의 중재자가 일본인이었다. 1905년 섬 주민 이근성, 이진경, 최종학 등은 죽도 등대장 일본인 장등(長藤)의 힘을 빌려 그 동안 해남 윤씨 가문의 무거운 세금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섬의 소유권을 정리하고 1917년에는 지선어장 3종 어업권을 취득한 기록이 보인다.

 

근대화 과정에서 섬주민들의 자각과 함께 그 동안 문서화되지 못하고 암묵적으로 묵인되어왔던 소유권에 대한 주장이 새롭게 정리되면서 이러한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화 과정에서 작성된 토지문서나 지적도, 어업면허 등의 문서는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맹골도 문서에는 당시 맹골도 주민들의 생활을 짐작해볼 수 있는 기록들이 담겨 있어 새삼 기록의 중요성이 느껴지며, 이 문서 기록을 통해 그동안 맹골도가 해남 윤씨 가의 소유였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지역의 대지주 해남 윤씨 가는 토지를 경영하듯이 바다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을 채취하여 이를 세금으로 바치게 했다. 바다를 통해서는 곡물 대신 수산물이 바쳐졌음을 알 수 있으며, 근대에까지 이곳에서 나는 수산물이 종가에 바쳐졌는데, 그 동안 섬사람들은 매년 도지로 보리 18섬, 미역 260뭇, 마른 고기 150미, 전복 30꼬지, 고기기름 7말, 납초(담배)대전 5냥을 내었다고 한다.

 

옛기록인 《해남 윤씨 문헌》을 살펴보면, 윤흥중(1518~1572)이라는 사람이 이곳 맹도와 죽도, 곽도를 매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맹골도는 400여 년 간 윤씨 종가가 소유해오다가 채무상환을 위해 1936년경 어업조합에 매도하였다고 한다. 해남 윤씨는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가진 가문으로, 당시 사람조차 살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의 섬인 맹골도를 매입함으로써 기제사 때 사용하고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해산물을 도제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한 일화

맹골도 그리고 곽도와 죽도 일원을 무대로 2007년 2월 MBC '느낌표'에서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참여하였던 이 프로그램에서 순천교도소에서 복역중이던 이곳 출신 청년이, 맹골도의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돌보아 달라는 간절한 편지를 서울 MBC에 보냈다. 그래서 오지 중 오지인 맹골도에서 이 섬주민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제작진은 그 분의 부탁을 받고 건강이 나쁜 어머니를 서울 아산병원까지 헬리콥터로 후송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적이 있다. 비록 복역중이지만 어머니를 향한 절절하고도 애끓는 마음이 시청자를 울린 것이다. 이 프로에 참여하면서 방송의 위력이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소외받고 있는 많은 섬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 속에서 6개월 만에 방송이 끝났다.

 

맹골도를 떠나면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때문에 적응된 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예전에는 가난하고 교통도 불편했기에, 여행은 경제력과 노동의 굴레를 벗어난 호사가들만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경제적인 수준의 향상과 주 5일제 근무, 육로와 해상 그리고 항공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여행 자유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섬 여행은 시간과 경비 때문에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맹골도와 맹골죽도 맹골곽도 같은 오지의 섬 여행은 역시 많은 시간과 경비가 소요된다. 진도 팽목에서 배를 대절한다면 하루에 해결이 되겠지만 그 대신 어마어마한 경비가 들어간다. 여객선을 탄다면 통상 3박4일은 걸려야 한다. 정기 여객선은 이틀에 한 번 가는 섬도 있고, 하루에 한 번만 가는 섬도 많이 있다. 그래서 육지와 달리 가보고 싶어도 쉽사리 가기 어려운 곳이다.

 

현대는 경제성장과 발맞추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었다. 주 5일 근무로 인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맹골군도도 그 신비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울릉도나 백령도, 거문도, 흑산도, 홍도 등 머나먼 곳도 쾌속선으로 몇 시간 달려가면 만날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유산과 더불어 섬마을 곳곳에서 배어나는 오염되지 아니한 문화유산의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섬 여행을 통해 우리의 삶의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탐사선 등대호를 타고서 섬 여행은 계속된다. 어디에 들어가 잠을 잘 것인가라는 계획도 없이 무조건 다니면서 저녁이 되면 배를 댈 수밖에 없는 섬에 들어가 정박을 한다. 이런 나의 습성에 대하여 열렬히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무계획적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좋다. 아무려면 어떠랴! 문전박대만 안 당한다면, 그들에게 꾸지람을 당한다 해도 좋은 것을 어쩌랴! 

 

[네이버 지식백과] 맹골도 [孟骨島] - 서해와 남해의 갈림길 (한국의 섬 - 진도군, 2021. 06. 15., 이재언)

 

 

 

9시에 진도항을 출항해서 맹골도에 오니까 12시 55분이다. 꼬박 네 시간을 달려 온 셈이구나. 이제 구경은 다 했다. 그리고 그만 쉬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비로소 선실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

 


 

그리고 기항지 안내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준비한 마차와 바나나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한 숨 자면 진도항이겠거니....

 

 

 

 

 

 

 

 

 

진도항으로~~~

 


 

 

 

 


 

 

 

 


 

섬사랑 9호는 풍랑주의보와 별개로 운항한다는 안내문이다. 오늘 무사히 잘 둘러 본 것이 용왕님의 도움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진도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16시 23분.

 


 

즐거운 선상유람이었다.

 

 

 

싼타모니카는 수리 중이란다. 11월부터 운항할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이렇게 해서 맹골도 유람을 잘 마쳤다. 내일은 7시에 출항하는 하조도 배를 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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