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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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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조각들

[8] [낭월이 하건충 선생을 만남-2] 40갑자만 써놓은 까닭은?

[8] [낭월이 하건충 선생을 만남-2] 40갑자만 써놓은 까닭은?

[낭월이 하건충 선생을 만남-2] 40갑자만 써놓은 까닭은?

 

 

(그의 저서 천고팔자비결총해에서 40갑자만 써놓음)

 

 

(프롬프트)

낭월스님이 하건충 선생에게 묻는다 

선생은 책에서 60갑자의 성향을 분석하면서 

왜 40개만 풀이하고 나머지 20개는 풀이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그것을 찾느라고 무척이나 고생했다고. 

그러자 하건충 선생은 그렇게 한 까닭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3000자 분량의 원고를 써줘

 

 

  


 

 

《공백의 이유 – 낭월스님과 하건충 선생의 문답》

산사의 이른 봄 아침.
차가운 기운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정진당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고요히 퍼지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매화가 막 피어나려는 기척이 감돌고, 어딘가엔 고요한 풍경소리가 울렸다.

그 자리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회색의 장삼을 입은 60대의 한국 스님, 낭월(朗月).
불법을 근간으로 삶을 가꾸며, 사주명리학을 심신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수행자다.

그리고 그 앞에는 30대의 젊은 학자, 하건충(何建忠) 선생이 있었다.
대만에서 명리학의 정밀화를 이룬 학인으로, 특히 ‘60갑자의 성향 분석’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내면을 밝힌 저명한 인물이다.

스님은 천천히 다관에 물을 부었다. 김이 피어오르고, 차향이 방 안을 맴돌았다.
그제야 낭월스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오래전부터 여쭙고 싶었던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하건충은 찻잔을 받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십시오. 스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저에게 배움입니다.”

낭월스님은 살짝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선생님의 저서, 특히 60갑자에 대한 성향 분석 편은 제가 수년간 참고하며 공부한 귀중한 지침이었습니다.
그 성향 분석은 단순히 간지의 조합을 해석한 것을 넘어서, 인간의 심리와 기질을 세밀히 밝혀낸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60개 중 40개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풀이가 있었고,
나머지 20개는 빠져 있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생략이라 생각했지만, 책 전체의 흐름을 보며
‘이건 일부러 비워두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공백을 스스로 채워보려 애쓰다가
수없이 길을 헤맸습니다.

오늘 이렇게 직접 뵙게 되었으니 묻습니다.
왜 60갑자 중 40개만 풀이하시고,
나머지 20개는 남겨두셨습니까?”

하건충 선생은 고개를 들고 스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스님께서 그 점을 짚어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그것은 편집상의 생략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인 ‘공백’이었지요.”

“공백이라고요?”

“네. 저는 명리학이 단순히 통계를 쌓고, 해석을 꿰어내는 기술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60갑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고,
각 간지 조합은 그 자체로 ‘존재의 모델’이 됩니다.
제가 분석한 40개는,
수많은 실제 사례와 통찰을 통해 일정한 성향이 뚜렷이 드러났던 조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0개는
오히려 양면성, 혹은 다중성(多重性)을 지니고 있었지요.
일정한 해석으로 고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 조합의 ‘가능성’을 닫는 결과가 될 수 있었기에
저는 그 20개를 공백으로 남겼습니다.”

낭월스님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선 그 공백을
해석의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의 여백으로 두신 것이로군요.”

하건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이를테면 ‘을축(乙丑)’이나 ‘병오(丙午)’ 같은 조합은
이론적으로는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 인물들의 성향은 매우 다양하고 역동적입니다.
양의 기운과 음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정반대의 성질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를 억지로 하나의 해석으로 정리해버리면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진실을 놓치게 됩니다.”

낭월스님은 두 손을 모았다.

“저도 수행 중에,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때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공백이 하나의 ‘공(空)’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해석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었겠지요.”

하건충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스님,
60갑자는 곧 인간 유형의 총체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단순히 ‘형태’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파악되지 않는 흐름, 말로 정의되지 않는 성향,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 수 있지요.

저는 제 책이
독자들에게 해석의 완결이 아니라,
사유의 입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엔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차가 식지 않도록 다시 뜨거운 물이 다관에 부어졌고,
맑은 차향이 다시 방 안을 채웠다.

낭월스님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선생님,
저는 그 20개의 빈칸을 채우려 수없이 고민했고,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알았습니다.
그 빈칸은 ‘미완성’이 아니라,
저마다의 완성으로 가는 ‘개별의 길’이었음을.”

하건충은 조용히 찻잔을 들고, 스님의 잔과 마주쳤다.

“학문이란 결국,
공백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가 고생한 것은,
곧 자신의 언어로 다시 60갑자를 쓰기 위한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창밖으로 바람 한 자락이 불었다.
매화 한 송이가 마침내 터져 피었고,
그 아래에서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말의 끝에서
사이의 진리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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