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고,
작아도 할 것은 다 하는 것이 자연이다.
항상 초여름을 장식하는 빨간 우단동자(
羽緞童子)를 보면,
자연의 조밀(
稠密)함에 감탄하곤 한다.
우단(
羽緞)은 벨벳(
velvet)이다.
일본으로 가서 비로도(
ビロード)가 되었나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포르투칼 말로 비로드(
veludo)이란다.

3m에서 바라본 우단동자이다.
줄기에 온통 솜털을 뒤집어 쓰고 있어서 우단인가 싶다.
갸가 갸같다. 서로 비슷비슷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렇게 바라보면 딱 그만큼만 보이는 법이다.
그래도 우단동자를 본 것은 맞다.
그러나, 10cm로 바짝 붙어서 보면 또 다른 것도 보인다.

이렇게 한 송이만 볼 적에는 그런갑다.... 싶다.

이제 마악 피어나려는 송이를 보면 약간 달라지는 느낌이다.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꽃심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다소곳하게 모여있는 인체의 갈비와 같다.
이렇게 감싸고 있다는 것은 속에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직 공개할 준비가 덜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단 이러한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속으로 빠져든다.

차차로 빗장이 열리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낭월은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서로 다른 꽃을 찾아서 그 과정을 담는다.
한 송이에 고정카메라를 설치하고서
연속촬영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만
그러기에는 절차가 복잡하다.

차츰차츰.....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변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계속 피어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작년에도 봤고,
재작년에도 봤는데,
올해는 또 이런 모습으로 보인다.
같아도 같은 것이 아니다.
꽃이 다르고 바라보는 낭월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제 본 것과 오늘 본 것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음이다.

절정이다.
그래서 더 들이대 본다.
왕관이 보인다. 여왕님이 강림하셨다.
화알짝 열린 빗장 안에서는 이미 생의 역사가 진행 중이다.

이제 벌나비가 와도 된다.
완숙(完熟)이다.
음양의 조화(造化)가 일어나고 있음이다.
모든 것은 절정이 아름답다.
그래서 절정만 바라본다.
그러나 그 절정도 이전과, 이후가 있음을.....

절정의 이후이다.
꽃잎도 벌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다 했고,
빗장도 자신의 보호의무를 다 마쳤다.
이제부터가 우단동자의 본업이다.
결실을 갈무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현장이다.

혹시라도,
빨간 우단동자의 크기를 모르시는 벗님을 위해서
이 정도의 수고는 해도 되지 싶다. ㅎㅎㅎ
근데, 왜 빨간 우단동자냐고?
전에는 그냥 우단동자였다.
그런데.....

어느 화단에서 이렇게 하얀 우단동자를 봤기 때문이다.

색깔만 다를 뿐, 분명히 우단동자였다.
그래서 그후로는 빨간 우단동자라고 붙여줘야 했다.
어디에서 보이거든 한 포기 구해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