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림에서는 계절감을 읽기가 쉽지 않다.
춘하추동의 색이 같으니 선비의 절개로 묘사된다.
대쪽같은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선비이기도 하다.
그래서 송죽은 꼬장꼬장한 선비의 기개와 절개로 묘사된다.

그러나......
절개는 죽은 정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기구한 것이 삶인 까닭이다.
그야말로 적나라하고 생생하고 순간순간의 시시각각 변화이다.

긴 겨울을 잘 살아났다는 흔적에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듯하다.
따사로운 봄날은 또 그렇게 봄날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괜스레 심각한 표정을 짓고 내일 지구가 무너질 듯이 한숨쉬지도 말라.

보송보송한 솜털에서 생(生)의, 봄의 찬가가 들린다.
사시사철 늘푸른 송죽에서는 도저히 맛 볼 수가 없는 즐거움이다.
다시 새로운 출발은 고귀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매일 결심하고 매일 포기하는 평범한 사람 용인 까닭이다.
다시,
여기에서 새로운 출발선을 만나게 된다.

송죽의 절개는 위대하다.
그러나, 매란(梅蘭)의 삶도 위대하다.

이 화창한 봄날의 아침에
삶의 모습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