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⑤ 가래칠기해변
(탐사일 : 2026년 10월 13일)

대연평도에서는 소연평도처럼 다양한 지질 풍경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지질도를 보면서 소연평도와는 너무 다르게 한 가지의 지질로만 표시되어 있어서다.
우선 조기역사관에서 나와서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니까 평화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해 놓은 곳으로 보인다.










분단의 현실이 생생한 전시장이었다.
다음 목표로 향해서 이동한다. 가래칠기해변이다.

출입문이 잠기면 들어갈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밀물의 시간이라서 바다에 물이 가득하고 한쪽에서는 무속인이 소원을 빌고 있었다.
눈길을 주면 혹시라도 부담이 될까 봐서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떨어졌다.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아마도 병풍바위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연평도에서 아마도 가장 절경이 될 것으로 짐작이 되는 풍경이기도 하다.
연평도의 지질 공부부터 해 보자.
대연평도의 바위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래칠기해안의 바위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 대연평도의 지질도를 펼쳐 보았다. 풍경으로만 바라보던 해안도 지질도와 함께 살펴보니 그 속에 담긴 오랜 시간이 조금씩 드러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섬 대부분을 차지한 황갈색이다. 이 색으로 표시된 곳에는 ‘대연평도 석영편암(石英片岩)’이 분포하며, 지도에서는 ‘Xdq’라는 기호로 나타낸다. 황갈색은 암석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 칠한 색이므로 실제 바위의 색깔과는 다르다. 지도에 표시한 가래칠기해안도 이 석영편암 분포 구역의 서쪽 가장자리에 자리한다. 해안에서 만나는 바위가 대연평도의 몸체를 이루는 암석과 이어져 있는 셈이다.
석영편암이라는 이름은 ‘석영’과 ‘편암’으로 나누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석영(石英)은 모래의 주요 성분이기도 한 단단한 광물이다. 편암(片岩)은 암석이 지하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성질과 조직이 달라진 변성암(變成岩)의 한 종류다. 따라서 석영편암은 석영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편암이라는 뜻이다. 석영이라는 광물의 이름과 편암이라는 암석의 이름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다.
암석이 변성작용을 받으면 그 속의 광물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되면서 결이 발달하기도 한다. 이를 편리(片理)라고 한다. 책장을 포개 놓은 듯한 결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겠다. 다만 바위에 보이는 줄무늬를 모두 처음 퇴적물이 쌓일 때 생긴 지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원래의 퇴적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지만, 이후 열과 압력을 받으며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달라진 조직도 있기 때문이다. 편암의 결에는 바위가 땅속에서 겪은 변화가 담겨 있다.
이 암석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지질도 정보창에는 ‘선캄브리아시대, 원생누대, 고원생대, 스타테로스기’라고 적혀 있다. 낯선 이름이 길게 이어지지만, 큰 시간 단위에서 작은 시간 단위로 차례차례 좁혀 들어간 표시다. 그중 스타테로스기는 약 18억 년 전부터 16억 년 전까지에 해당한다. 공룡이 등장하기도 아득히 전, 지구 역사의 매우 오래된 시기로 분류된 암석을 지금 바닷가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암석의 나이와 해안 풍경의 나이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질도에 오래된 시대로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지금의 절벽과 해안선까지 그때부터 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는 뜻은 아니다. 암석의 재료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변성작용을 겪고, 지표에 드러나 파도에 깎이는 일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날 수 있다. 오래된 바위가 훨씬 뒤에 해안을 이루고, 그 해안이 오늘날에도 계속 변해 가는 것이다.
가래칠기해안을 바라볼 때도 이러한 시간의 순서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바위의 성질과 결은 그 몸체가 겪어 온 역사를 보여 주고, 바깥으로 드러난 윤곽은 풍화(風化)와 침식(侵蝕)이 빚어 온 모습을 보여 준다. 단단한 암석도 틈이나 결을 따라 약한 부분이 먼저 벌어지고 떨어져 나갈 수 있다. 파도는 그 틈을 거듭 두드리고, 떨어진 돌을 움직이며 해안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
그러고 보면 가래칠기해안은 오래된 암석과 지금도 움직이는 바다가 만나는 자리다. 지질도의 ‘Xdq’라는 짧은 기호 안에는 한눈에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이 들어 있다. 그 뜻을 알고 다시 바라보니, 바위의 결 하나와 갈라진 틈 하나도 무심히 지나치기 어렵다. 눈앞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에, 그 풍경이 생겨난 시간을 더듬어 보는 즐거움이 하나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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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서너 군데 회색으로 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주로 산봉우리 쪽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노두는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래도 지질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봐야지.

소연평도의 갈매기 섬 주변에서 만났던 것과 같은 지질이구나. 석류석-운모 편암이다. 같은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면 되겠다.

파도를 본 연지님은 내일 배가 데리러 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신 모양이다.
그러면 좋지만 그 정도로 기상 악화는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썰물 때를 기대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지질은 하나 뿐이라서다. 파식대가 형성되었다는 설명도 없다.
그러면 물때와 상관없이 보여주는 것만 보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백령도의 두무진과 비슷하다고 해도 되겠다.
두무진이 형인가? 연대가 어떻게 되나 궁금하면 자료를 찾아보면 된다.
대연평도와 두무진, 바위에 새겨진 서로 다른 시간
대연평도 가래칠기해안의 지질도를 살펴보다가 백령도 두무진(頭武津)의 지질도도 나란히 펼쳐 보았다. 같은 서해의 섬이고 바닷가에 드러난 바위들이 빼어난 풍경을 이루지만, 그 바위가 품은 시간과 만들어진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대연평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석은 석영편암(石英片岩)이다. 석영이 풍부한 암석이 지하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된 것으로, 지도에서는 ‘Xdq’라는 기호로 표시한다. 반면 두무진은 ‘Ydu’로 표시된 두무진층에 속하며, 대표 암상에는 ‘사암, 이암 협재’라고 적혀 있다. 사암(砂岩)은 모래가 굳어진 암석이고, 이암(泥岩)은 고운 진흙이 굳어진 암석이다. 협재(挾在)는 어떤 지층 사이에 다른 종류의 암석층이 끼어 있다는 뜻이다. 어려운 지질 용어를 풀어 쓰면, 두무진층은 주로 모래가 쌓여 만들어졌으며 그 사이사이에 진흙이 쌓인 층도 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두무진을 규암(硅岩)으로 소개한 설명도 있다. 규암은 석영이 풍부한 사암이 변성되어 만들어지는 단단한 암석이다. 실제 국가유산 안내문에서도 두무진의 암석을 사암과 규암으로 설명한다. 다만 지금 보고 있는 지질도와 백령·대청 지질공원의 설명은 사암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으므로, 두무진 전체를 한마디로 규암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사암이 주를 이루는 두무진층’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이 자료에 잘 맞는다.
그렇다면 어느 쪽 바위가 더 오래되었을까.
지질도에서 대연평도 석영편암은 고원생대(古原生代)의 스타테로스기로 분류되어 있다. 약 18억 년 전부터 16억 년 전까지에 해당하는 시대다. 두무진층은 그보다 뒤인 중원생대(中原生代) 스테노스기에서 신원생대(新原生代) 토노스기에 걸친 시대로 표시되어 있다. 스테노스기는 약 12억∼10억 년 전, 토노스기는 약 10억∼7억 2천만 년 전이다. 두 곳 모두 선캄브리아시대의 오래된 지질에 속하지만, 대연평도의 석영편암이 훨씬 앞선 시대로 분류되는 것이다.
두무진의 시간을 조금 더 좁혀 볼 단서도 있다. 두무진층을 포함한 백령층군의 사암에서 작은 광물인 저어콘의 나이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가장 젊은 저어콘을 근거로 퇴적이 약 10억 4천만 년 전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해석했다. 모래 속에 섞여 있는 광물 알갱이가 먼저 만들어져야 그 알갱이를 포함한 모래층도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두무진이 정확히 그해에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퇴적 시기를 제한해 주는 단서다.
백령·대청 지질공원에서는 두무진을 약 9억 5천만 년 전까지 얕은 바다에 쌓인 모래가 굳어 만들어진 사암으로 설명한다. 여행자의 눈높이에서는 ‘약 10억 년 전 무렵의 바다가 남긴 기록’이라고 기억하면 좋겠다. 대연평도의 지도상 시대인 약 18억∼16억 년 전과 나란히 놓으면, 대연평도는 두무진보다 대략 6억∼8억 년 앞선 시대에 자리하는 셈이다. 다만 이것은 두 곳의 시간 규모를 쉽게 비교한 것이며, 두 암석의 정확한 형성 연대 차이를 측정한 값은 아니다.
두무진의 바위에서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옛 바다의 흔적이다. 사암에는 모래가 비스듬히 쌓인 사층리(斜層理)와 물결이 남긴 무늬인 연흔(漣痕)이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단단한 바위지만, 한때는 물살에 움직이던 모래였다는 증거다. 대연평도의 편암에서 변성작용으로 생긴 결을 살펴본다면, 두무진에서는 모래가 쌓이던 당시의 물결과 흐름을 읽어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바위의 줄무늬는 생김새만으로 판단하기보다, 퇴적층인지 변성작용으로 생긴 결인지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오늘날 두무진의 기암괴석은 그 오랜 모래층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암석이 굳은 뒤 지각변동으로 균열이 생기고, 풍화와 파도의 침식이 그 틈을 넓히면서 절벽과 동굴, 바위기둥이 만들어졌다. 암석에 담긴 퇴적의 역사와 눈앞의 해안 풍경이 빚어진 역사는 구분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같은 서해의 파도를 맞고 있어도 대연평도와 두무진의 바위는 서로 다른 시대를 들려준다. 대연평도에서는 더 오래된 암석이 열과 압력을 겪으며 달라진 모습을 만나고, 두무진에서는 약 10억 년 전 무렵 모래 위를 지나간 물결의 흔적을 만난다. 두 곳의 지질도를 나란히 놓고 보니 섬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그 바위들 사이에 놓인 시간의 거리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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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봐서는 비슷해 보이는 두무진은 약 10억 년 전 무렵의 기록을 품고 있구나.
지질도에서 표시된 시대로 보면 대연평도가 수억 년이나 앞서니 형님도 한참 형님뻘이군.

왼쪽 산마루를 올려다보니까 조기역사관이 보인다. 그곳에서 여기를 내려다봤었구나.

노두는 황갈색으로 특색을 보여주고 있지만 눈길을 끌 정도의 경관은 부족하다.








선캄브리아 변성암치고는 좀 밋밋하다.
변화가 많은 소연평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일 줄도 알았지만 사실이 그렇구나.



바닥에는 굴러온 돌인지 박힌 돌인지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것도 반갑다.





회록색이라... 휘록암? 하얀 반정(斑晶)도 보이네.
평지에는 동산이 명당이고, 산중에는 평지가 명당이라더니
온통 적갈색의 노두로 이뤄진 가래칠기해변에서는 이 돌이 용신인 모양이다. ㅋㅋ
가래칠기해안에서는 회녹색 바탕에 흰 알갱이가 박힌 바위도 눈길을 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알갱이 중에는 짧은 쌀알이나 작은 막대처럼 길쭉한 것들이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어두운 바위인데, 가까이 다가서면 그 안에 숨어 있던 무늬가 하나씩 드러난다.
매끈하게 닳은 바위에서는 밝고 어두운 알갱이들이 촘촘하게 맞물린 모습이 보였다. 다른 노두(露頭)에서는 짙고 고운 바탕에 흰 알갱이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색깔과 무늬는 서로 닮았지만, 알갱이의 크기와 분포에는 차이가 있다. 표면이 풍화되고 닳은 정도 때문인지, 암석 자체가 다른 것인지는 사진만으로 가려내기 어렵다.
노두를 넓게 바라보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 틈도 눈에 들어온다. 바위는 그 틈을 따라 크고 작은 각진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 이 면에서는 얇은 책장을 포갠 듯한 결이나 길게 이어지는 층이 뚜렷하지 않다. 다만 암석의 결은 어느 방향의 면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날 수 있으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다.
처음 바위의 길쭉한 흰 알갱이에서는 사장석(斜長石)이 떠오른다. 만약 이것이 사장석 결정이고 그 사이를 어두운 광물들이 채우고 있다면, 휘록암(輝綠岩) 같은 화성암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생김새를 바탕으로 떠올린 후보일 뿐이다. 정확한 이름을 붙이려면 광물의 종류와 조직, 주변 암석과 맞닿은 관계를 더 살펴야 한다.
대연평도의 지질도에 석영편암(石英片岩)이 넓게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해변에서 만나는 모든 돌을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겠다. 작은 규모로 다른 암석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떨어져 나온 돌이 옮겨져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이 바위의 나이 역시 섬의 대표 암석에 표시된 연대를 그대로 가져다 붙일 수는 없다.
우선은 ‘회녹색 바탕에 흰 알갱이가 박힌 바위’로 기억해 둔다. 이름을 알아내는 것도 즐겁지만, 이름을 붙이기 전에 색깔과 알갱이, 갈라진 틈을 찬찬히 살피는 일도 재미있다. 같은 해변의 바위들인데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저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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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해국(海菊)의 계절이었구나.
2024년 11월에 둘러봤던 포항 지질탐사에서 만났던 모습이 떠오른다.
계절도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구나.
해국은 이름 그대로 ‘바다의 국화’다.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햇볕이 잘 드는 해안의 바위 지대에서 자란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꽃을 피우니, 시월의 가래칠기해안에서 만난 이 꽃도 제철의 모습을 보여 주는 셈이다.
꽃 아래의 잎도 들여다본다. 끝이 둥근 주걱 모양으로 도톰하게 생겼고, 가장자리에는 보송보송한 잔털이 보인다. 바위 가까이 모여 있는 잎 사이로 꽃대가 올라와 꽃을 받치고 있다. 활짝 핀 꽃 곁에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꽃봉오리도 있어, 한 포기 안에서도 가을이 조금씩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하다.
흙이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 좁은 틈이다. 그 틈에 뿌리를 두고 이만큼 꽃을 피웠다. 바닷바람을 맞는 자리에서도 잎을 펼치고 꽃을 올린 모습을 보니, 여린 꽃잎과는 다른 단단함이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는 바위에 담긴 아득한 시간을 생각했다. 이제 그 바위틈에서 피어난 올해의 꽃을 바라본다. 오랜 세월을 견뎌 온 바위와 한 철의 햇볕 속에 핀 해국이 한 장면 안에 들어 있다. 가래칠기해안의 가을은 바위의 색과 꽃의 빛깔을 함께 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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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김영갑 선생의 사진집에서 본 글이 떠오른다.
'내가 여기 있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찍었던 사진들과 함께 써 놓은 글이 짠했다.
'내가 가래칠기해변에 있었다.'



가래칠기해변에서 구리동해안도 가 보고 전망대도 가 봤는데 이건 내일 정식으로 둘러본 이야기로 소개하기로 하고 저녁 먹으러 간 이야기나 ㅎㅎ

연평도에서 식당을 검색하면 1순위에 나오는 미영식당이다.
그래서 동행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찾아갔다.

그러나, 우리가 저녁을 해결할 자리는 없었다.
이미 만석이고, 내일 점심도 예약해야 가능하다고 해서 예약해 놓고 나왔다.

뭐든 다 되는 식당이 그나마 영업을 하고 있었다. 고맙구로.





인천 막걸리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