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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학명인전⑦ 반자단(潘子端)】
차례
머리말 7
일러두기 13
주요 등장인물 17
제1화 무림(茂林)의 소년, 사람을 바라보다 23
제2화 상하이라는 신세계 53
제3화 반여차(潘予且)라는 이름 85
제4화 학교를 떠나다 121
제5화 서양사를 가르치는 명리학도 159
제6화 팔자(八字)라는 오래된 심리학 223
제7화 자평술을 과학으로 연구한다면 253
제8화 진강에서 만난 원수산(袁樹珊) 291
제9화 거대한 서고(書庫)의 주인 325
제10화 《적천수신주(滴天髓新註)》 351
제11화 중화서국(中華書局)의 편집자 377
제12화 사람의 마음이 가는 길 403
제13화 팔격(八格)과 인간의 마음 431
제14화 명리(命理)는 종교가 아니다 467
제15화 전쟁이 모든 것을 흩어놓다 493
제16화 다시 만난 원수산 535
제17화 같은 것을 보고도 597
제18화 같은 명리(命理), 다른 길 647
제19화 좋은 운은 좋은 일인가 705
제20화 사람은 하나였다 753
반자단 연보 803
작가의 말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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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다 쓰고 나서야 한 사람이 보였다
반자단에 대해서 쓰기 시작할 때는 《명학신의(命學新義)》가 먼저 보였다.
융의 심리학을 명리학과 연결하려 했던 사람.
육신과 팔격을 사람의 성정으로 다시 바라보려 했던 사람.
옛사람의 말을 그대로 외우기보다 왜 그런지를 묻고, 맞는다면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따지려 했던 사람.
그런 반자단이라면 쓸 이야기가 많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책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반서조(潘序祖)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던 청년이 있었다.
반여차(潘予且)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쓰던 작가가 있었다.
수요화제관주(水繞花堤館主)라는 이름으로 《명학신의》를 쓴 명리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반자단(潘子端)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번거롭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어쩌면 바로 그 여러 이름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고.
이름은 달라도 사람은 하나였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삶은 결코 한 줄로 가지 않았다.
학교를 옮겼고,
학생을 가르쳤고,
책을 편집했고,
소설을 썼고,
명리를 연구했다.
전쟁을 겪었고,
일본에 갔으며,
문학상을 받았고,
남경의 문학자대회에도 참석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한때 상을 받았던 바로 그 이름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 부분을 쓰는 동안 가장 오래 망설였다.
좋게 만들기는 쉽다.
나쁘게 만들기도 쉽다.
그러나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가 왜 그 자리에 갔는지,
상을 받으며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때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오늘의 우리가 모두 알 수는 없다.
기록은 행동을 남기지만 마음까지 남겨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록에 없는 마음을 만들어 그를 변호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쓸 수도 없고,
했던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지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그대로 두려고 했다.
갔으면 갔다고 쓰고,
받았으면 받았다고 쓰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남겨두었다.
이것은 반자단이 명리를 대했던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사람의 삶을 알고 난 뒤 사주에 맞춰 설명하는 것은 쉽다.
그 사람이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식상을 찾고,
부자가 된 것을 알고 재성을 찾고,
벼슬한 것을 알고 관성을 찾으면 웬만한 사주는 다 그럴듯하게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반자단을 쓰면서 이 질문을 여러 번 만났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명리를 공부한 나 자신에게도 돌아왔다.
나는 사람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사주를 보고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팔자 속에서 다시 찾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옛사람이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믿고 있는 것은 없는가.
내가 맞았던 기억은 오래 붙잡으면서 틀렸던 기억은 슬며시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내가 반자단에게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습은 어떤 비법을 발견한 명리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계속 묻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왜 그런가.
정말 그런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어려운 질문.
내가 틀렸다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학문에서 이보다 중요한 질문이 또 있을까 싶다.
《명학신의》의 모든 이론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융의 심리학과 팔격을 연결한 그의 시도도 오늘의 눈으로 다시 검토할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백 년 가까이 전에 명리를 종교처럼 믿지 않고 생각하고 검증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태도는 지금도 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반자단을 명리학을 완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묻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쓰는 동안 추인화라는 사람에게도 정이 많이 들었다.
복잡한 생각 속으로 끝없이 들어가는 서조를 생활의 자리로 잡아당기는 사람이었다.
서조가 어렵게 설명하면 간단하게 묻고,
무엇인가를 안다고 하면 다시 확인하고,
이름이 자꾸 바뀌어도 결국 한마디로 정리한다.
사람은 하나라고.
물론 인화를 비롯한 몇몇 인물과 여러 장면은 기록의 빈 곳을 잇기 위해 만든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 속 인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스무 화를 다 쓰고 난 지금 내 마음에 남는 말도 같다.
사람은 하나였다.
반서조도 그 사람이었고,
반여차도 그 사람이었으며,
수요화제관주도,
반자단도 그 사람이었다.
좋았던 때의 이름만 그의 것이 아니었고,
불편한 시대에 남겨진 이름만으로 그를 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한 사람의 생에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은 어렵다.
그리고 사람이 어려우므로 사람을 보는 공부도 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쓰면서 반자단에게서 하나의 답을 얻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좋은 책은 답을 많이 주는 책일 수도 있지만,
다 읽고 난 뒤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 하나를 남기는 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자단이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덮은 뒤 누군가 자신의 명조를 다시 바라보면서,
또는 상담하러 온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잠시라도 이렇게 생각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가 이 사람을 너무 빨리 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여덟 글자를 받았다고 그의 평생을 다 받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확인한다면,
반자단이 오래전에 던진 물음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물은 곧장 흐르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가고,
돌을 만나면 갈라지고,
때로는 흐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다시 흐른다.
반자단의 삶도 그랬고,
학문도 그러했으며,
사람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공부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제 이 책을 놓는다.
답을 다 적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다음 사람이 다시 물어볼 질문 몇 가지는 남긴 것 같다.
그것이면 되었다.
물은 그렇게 또 흘러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