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7 · 금요일(癸丑日)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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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 · 금(癸丑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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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한담

[809] 『사주학명인전④ 장신봉』 편이 출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폭염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모쪼록 더위에 지지 마시고 안전하게 잘 견디시기만 바랍니다. 장정도 퍽퍽 쓰러지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일 87일이 입추(立秋)입니다. 절기는 가을이라서 달력을 보면 그래도 위로가 되는데 현실은 또 따로 노는 것 같지요? 아무래도 병오(丙午)년이라서 그런가 싶은 위안을 해 보기도 합니다. 물론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은 잘 아시지요? ㅎㅎ

 

역학명인전을 쓰고 나서 다시 맘을 일으킨 것이 사주학명인전을 써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어떤 인물들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선택된 인물들이 현재까지 13명입니다.

 


1. 사주학명인전에 선발된 선생들
 

선택 기준은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이론을 남겼느냐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처음에는 한 50명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것 빼고 저것 빼다가 보니까 결국은 최종적으로 13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특히 책은 남았는데 이론이나 주장이 다소 약하다고 생각된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일단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연해자평(淵海子平)을 편집한 당금지(唐錦池)삼명통회(三命通會)를 집대성한 만육오(萬育吾)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냥 버려 둘 수는 없고, 따로 명인전을 쓰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부분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장신봉(張神峰) 편입니다.

 

이번 장신봉 편은 이 열세 명 가운데 네 번째 이야기이면서, 앞의 세 권보다 두 배 이상 긴 가장 풍성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장신봉이 연해자평을 만나고, 만민영의 문하에서 삼명통회의 방대한 이론을 익힌 뒤, 허황된 격국과 외격의 오류를 하나씩 깨뜨리며 명리정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명리학의 이론과 한 학자의 삶이 서로 얽혀 흐르도록 구성했습니다.

 

특히 장신봉이 허황된 공식과 외격을 비판하고, 사주의 이치를 실제 삶과 연결하여 살피려 했던 태도는 오늘날의 사주상담가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쓰고 보니 이 책은 한 명리학자의 삶을 그린 소설을 넘어, 사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되묻는 상담가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01 이허중(李虛中 唐 761-814)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

02 서자평(徐子平 오대-송초) 명통부(明通賦)

03 서대승(徐大升 송말-원초) 13세기 중후반 연해자평, 계선편

04 장신봉(張神峰 명대 16세기) 신봉통고(神峰通考) 명리정종(命理正宗)

05 진소암(陳素庵 1605-1666) 명말청초(明末淸初) 명리약언(命理約言)

06 심효첨(沈孝瞻 1739-1757 진사합격기록, 건륭연간) 자평진전(子平眞詮)

07 임철초(任鐵樵 1773-?)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

08 원수산(袁樹珊 1881-1952?) 명리탐원(命理探原)

09 서낙오(徐樂吾 1886-1949) 자평평주, 적천수보주, 징의 조화원약평주

10 반자단(潘子端 1891-1961) 반서조(潘序祖) 명학신의(命學新義)

11 위천리(韋千里 1911-1988) 천리명고, 고고집(呱呱集)

12 양상윤(梁湘潤 1930-2013) 오행대의금주 외

13 하건충(何建忠 1955-1987) 팔자심리추명학

 

이렇게 정해 놓고서 이허중(李虛中), 서자평(徐子平), 서대승(徐大升)까지는 무난하게 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신봉(張神峰)에 와서 자꾸 생각의 조각들이 흩어져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바로 연해자평과 삼명통회의 위력 때문이지요. 그에 비하면 장신봉의 명리정종(命理正宗)은 오히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의 허황된 공식들을 파헤치고 합리적인 논리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삼명통회는 청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도 있고,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당당하게 올라갔음에도 명리정종은 그러지 못했던 것을 보면 선택에서도 저자의 이름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2. 연해자평(淵海子平)의 당금지(唐錦池)를 제외한 이유 

장신봉을 선택하기까지 여러 가지로 구상을 했습니다. 우선 송말(宋末)의 서대승(徐大升) 편을 완성하고 보니까 그다음이 캄캄했습니다. 캄캄한 이유는 후보들이 너무 많아서였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순서를 정한다면 당연히 연해자평(淵海子平)입니다. 서대승과 그 문인들이 쓴 내용을 명대(明代)의 당금지(唐錦池)가 편찬해서 출간했으니까 당연히 그를 다음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궁리 끝에 탈락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 저술한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해자평을 출판한 것은 대단하지만 직접 저술한 내용이 뚜렷하게 없으므로 명인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견문이 좁은 낭월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3. 삼명통회(三命通會)의 만민영에 대한 고민 

다음으로 떠오른 책은 명실공히 자평학의 백과사전이라고 하는 삼명통회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명인전에 추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삼명통회12권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명리학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벗님이라면 그 이름은 들어보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분도 천하의 명리 서적을 수집하여 편찬한 공로는 실로 대단하다고 하겠는데 직접적으로 자신의 주장으로 드러난 것은 아무래도 미흡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오대(五代)~북송(北宋)의 서자평(徐子平)이나 남송(南宋)의 서대승(徐大升)과 비교해서 본다면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명리학사에 뚜렷하게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인데 그냥 제외하기도 껄쩍지근했던 것이 맞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따로 한 권의 명인전으로 쓰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라고 하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묘수(妙手)가 떠올랐습니다.

 

4. 명리정종(命理正宗)의 장신봉에 붙어가는 방법 

당금지와 만민영을 주연급 인물로 격상시키되, 이야기의 중심은 장신봉이 맡도록 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육오산인 만민영은 묘지명 덕분에 생몰연대가 1522년부터 1603년까지로 밝혀져 다행이지만, 장신봉의 경우에는 명료한 자료가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그의 사주를 명리정종에서 직접 밝혀놔서 1514(갑술) 경에 태어난 것으로 나온 자료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것조차도 정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다음 갑술(甲戌)1574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초기 목판본의 내용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왜냐하면 초판이 찍힐 적에 그 시기는 명() 만력(萬曆) 17년에 간행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 시기는 1589년이 됩니다. 그러니까 40여 년을 연구한 다음에 집필을 했다고 보면 아무리 꿰어 맞춰봐도 1574년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장신봉 1514년 출생

만육오 1522년 출생

 

이렇게 놓고 보니까 장신봉이 8년 연상인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추정이고요.. 소설은 소설이잖아요? 삼명통회를 통해서 만민영의 제자가 되어서 옳고 그른 내용들을 모두 섭렵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명리정종을 저술하게 되는 과정으로 그리는 것이 훨씬 소설스럽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丁 乙 庚 甲

丑 亥 午 戌

 

이 사주는 본인이 밝힌 자기 사주입니다


《명리정종정해》의 96번째 사주로 「逸叟自命」이라고 밝혔는데 노년의 호가 일수였습니다. '한가한 늙은이' 정도로 풀이하면 되지 싶습니다. 한가한 늙은이는 낭월의 로망이기도 합니다. ㅎㅎ 이에 비해 만육오는 삼명통회에서 자신의 사주라고 뚜렷하게 밝힌 사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학자는 자기부터 드러내 놓고 연구하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 대목이었습니다. 이 사주로 인해서 출생한 시기가 유추되기도 했습니다. 생몰연대가 미상이라고는 하지만, 사주가 있는 이상 적어도 출생 연도만큼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방향이 정해지자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으다 보니까 내용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앞의 세 권은 약 12만 자 정도로 완성된 데 비해, 이번 책은 26만 자가 넘는 분량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명리정종에 나온 장신봉 선생의 성품을 바탕으로 삼아서 이야기가 자꾸만 붙다가 보니 비대해졌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여하튼 나름대로 그만하면 장신봉을 소개하는 자료로는 꽤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해 봅니다.

 

5. 병오년(丙午年) 폭염의 절묘한 피서법 

날이 더워도 너무 덥잖아요? 이 폭염에 지질탐사를 갔다가는 살아서 돌아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주변의 압박도 피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관세음보살로 삼아서 이렇게 고인의 흔적을 펼쳐놓고 궁리하면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앞으로 쓸 내용도 많아서 노적가리를 쌓아놓고 방아 찧을 꿈을 꾸는 농부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 기대되는 곳은 임철초(任鐵樵)와 하건충(何建忠)입니다. 이야기가 청대(淸代)로 넘어오면서 자료도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니까 최대한 사료(史料)를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작업에 멋진 길동무가 되어 주는 인공지능(AI)의 협조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셈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때로는 합의를 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갔습니다. 자료 수집과 고증에 큰 도움을 받으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그럴 때면 절로 신명이 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명리정종이 목판으로 나왔을 텐데 흔적이 없어서 자료를 찾느라고 애를 썼는데 미국 국회도서관을 뒤져서 찾아내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위의 이미지입니다. 이런 자료가 중국이 아닌 미국에 있었다니요. 그래서 강대국인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또 새삼스럽게 해 보기도 했습니다. 자료 많으면 강대국입니다. ㅎㅎ

 

오늘 부크크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면서 품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집필의 사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장신봉의 삶과 명리정종의 사유가 궁금하신 벗님께서는 아래의 링크에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낭월의 고인과의 대화에 동참하시는 것도 공부에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ㅎㅎ 이 책이 벗님께서 명리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면 큰 보람으로 여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686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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