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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행

울릉도① 가는길에 갓바위도 참배하고.

울릉도① 가는 길에 갓바위와 장군바위 참배

 

(참배일: 2026년 5월 30일)

 

 

지질 돌멩이를 보러 다니느라고 부처 돌멩이를 잊었나 보다.ㅎㅎ

매년 한 차례는 참배하러 다녔던 갓바위를 3년 사이에 못 갔었던 모양이구나.

울릉도 여행일정을 잡아 놓고 길을 보니 팔공산을 스쳐 지나가게 되어 있어서 모처럼 맘을 냈다.

특별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갓바위 약사여래불은 아련한 추억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증샷 찍구로 얼굴 내밀어라~!

청원과 금휘가 포항까지 운전하겠다고 해서 동행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금강휴게소에 들려서 아침을 해결했다.

든든하게 먹어야 산에 올라가기 쉽지.

 


 

용주암길을 택했다. 선본사는 길을 공사하느라고 파헤쳤다고도 하고

옛날 생각하면서 용주암에서 오르는 갓바위 길도 청원에게 알려주고자 함이다.

 


 

용주암 입구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된다.

실제로 거리도 가장 가깝다.

 


 

대략 30분이면 가능한 거리다.

거리는 500m라고도 하고 400m라고도 하는데 지도는 834m라고 하는구나.

그야 아무래도 좋지. 한 걸음 걸으면 한 걸음 만큼 줄어들테니까.

 


 

숲이 우거져서 햇살을 피할 수가 있으니 그것도 고맙다.

 


 

 

 

 

 


 

 

 

 

 


 

 

 

 


 

 

어? 볼 수 없는 곳에 대한 정보도 길에 만들어 놨구나. 몰랐네. ㅎㅎ

누군가 위에서 내려다 봤던 모양이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도착한다.

 






 

보물 Treasure

경산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 慶山 八公山 冠峰石造如來坐像 

Stone Seated Buddha at Gwanbong Peak in Palgongsan Mountain, Gyeongsan

 

경산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은 갓을 쓴 듯한 모습 때문에 ‘갓 바위 부처님’이라고도 불린다. 

불상과 받침대는 하나의 바위로 만들어졌고 머리 위의 보개*는 별도로 만들어 올린 것이다. 

불상 뒤쪽으로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자연스럽게 광배 역할을 하고 있다. 

받침대를 포함한 불상의 전체 높이는 593.9cm이고, 무릎 너비는 319.6cm에 달한다.

불상의 손 모양은 왼손을 가부좌한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의 형태이다. 

그동안 왼손에 둥근 물건이 올려져 있는 듯 보여 약사여래불로 알려졌으나 

최근 삼차원 스캔 조사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손바닥 위에 얹고 있는 형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손가락 표현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 본존불상에서도 나타난다.

불상의 양식은 9세기경 양식이나 하양 지역의 연혁, 인문 지리, 행정 등을 기록한 「화성지花城誌」에는 

신라 선덕여왕 632~647 재위 때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본사사적」과 「전통사찰총서」에도 선덕여왕 7년 638에 의현 스님이 조성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 여래 좌상은 오래전부터 영험한 부처로 알려져 있으며, 

누구나 이 불상 앞에서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특히 불상 위의 보개가 학사모와 비슷하여 불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수험생에게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1872년에 작성된 지방지도인 「하양현 지도」에도 관암 봉우리 위에 갓을 쓴 불상의 모습으로 또렷이 표현되어 있다.

  • 보개 : 탑이나 불상에서 보륜寶輪 위에 덮개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 광배 :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원광

 


 

언제나 갓바위는 갓바위다. 항상 기도객들로 발길이 끊기지 않는 성지이기도 하다.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 보물 慶山 八公山 冠峰 石造如來坐像

소재지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 정상에 앉아 계신 부처님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불상의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나 

머리 위에 마치 갓을 쓴 듯한 자연판석이 올려져 있어 속칭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알려지고 신앙되어 왔다. 

부처님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하는 광배가 없는데, 마치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불상과 대좌 모두가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어, 매우 큰 한 바위로 조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민머리 위에는 둥글고 큰 육계가 뚜렷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풍만하며 탄력이 있으며, 

백호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부처님의 상호를 나타내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고,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으로 대좌 윗부분을 덮은 상현좌裳懸座로 되어 있다. 

이러한 대좌의 모습은 군위 제2석굴암의 본존불 대좌형식과 유사하다. 

무릎 위에 올려진 두 손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불상의 왼손바닥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있어 이 불상의 존명을 약사여래좌상이라 한다. 

근엄한 얼굴, 거대한 체구에 밀착되어 흐르는 유려한 옷주름선은 선각화線刻化 되어 

긴장감과 탄력성이 다소 배제된 점으로 보아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갓바위의 지질도를 찾아 본다.

아마도 화강암이겠거니 짐작하면서.

 


 

 

 

 

 


 

현생누대 중생대 쥐라기~백악기

화강암

측운모화강암과 각섬석흑운모화강암

 


 

입자가 굵은 것이 심성암(深成巖)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구나.

지의류들이 달라붙어서 언젠가는 흙으로 변할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 나와서 용주암으로 향했다.

 

용주암은 16세가 되던 가을(1972 壬子)에 입산해서 행자생활을 했던 인연처다.

모친과 갓바위에 동행했고, 용주암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당시 주지스님이셨던 윤원상 화상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예불하러 가시려고 가사장삼을 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맘이 변했다.

나도 그 옷을 입고 살 수 있느냐고 물었고, 화상은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모친은 혼자 귀가하시고 그날부터 행자생활이 시작되었었다.

겨울을 나고 따사로운 봄이 되자, 어느 객승이 지나가다가 들려서 물었다.

 

"스님인가? 행자님인가?"

"예, 행자입니다."

"주지스님 아들이신가?"

"아닙니다. 출가하러 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여기에서 시간낭비 말고 큰 절로 가거라."

"예? 여기도 좋은데요?"

"나중에는 아무렇게 살더라도 지금은 큰 절로 가거라."

 

그 이야기를 곰곰 생각해 보고 아무래도 의미가 있겠지 싶어서 하직했다.

겨우내 골짜기 아래에서 20리터 물통을 져다가 기도하러 온 불자님들에게

급수공덕을 한 결실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그리고 계룡산의 맑은 물을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 공덕이겠거니 싶다.

그렇게 같은 팔공산의 동화사로 가서 행자노릇 잘 하다가 또 병이 났다.

통도사 학인이 자기 은사님에게 가서 사제가 되자고 살살 꼬드기는 바람에 또 팔랑귀~

그렇게 해서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대사와 인연이 되었다. 이 모두가 짜여진 각본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팔공산 용주암의 산신님께 54년 만 참배를 드렸다. 

출가수행하기로 발심한 청원에게 역사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도 1%는 있었다.

오싱이 말년에 손녀던가? 데리고 다니면서 옛날 이야기를 해 주는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산신님, 보살펴 주신 인연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기억 속의 산신탱화는 아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추억 속의 산신님께 삼배를 드리고 또 길을 서둘렀다.

또 하나의 추억어린 곳으로 가보기 위해서다.

 


 

작은 안내푯말이 붙어있다. 나사못을 박은 것은 좀 안 되었지만...

 


 

그 어렸던 시절에 걸었던 익숙한 길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기도왔던 접신 보살들이 제물을 좀 갖고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섰던 길이기도 하다.

추억이 몽글몽글한다. 그때 하산하고 처음 찾는 길이기도 하다.

 


 

지도에서는 다시 산을 내려가서 다른 길로 가라고 알려 준다.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길이 아닌 길로 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능선을 따라서 이동하던 길이다. 

대략 30분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와~! 나무 가지 사이로 장군바위의 모습이 보인다.

세월이 흘렀어도 예전 그대로네. 그래봐야 54년 밖에 안 되었는데. ㅋㅋㅋ

 


 

마침내 도착했다. 50분 걸렸구나. 생각보다 멀었군.

어린 시절에 펄펄 날아다니던 기억이 왜곡되었던 게지. ㅎㅎ

낭월은 뭐 추억어린 곳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동행들은? ㅋㅋㅋ

무슨 고생이냔 말이지. 뭐 그래도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못 보 것이 서 있구나. 전설에 그런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팔공산 능선에서 명마산이라니 좀 뚱맞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낭월이 알고 있는 장군바위 전설

(당시 주지스님 원상화상에게서 들음)

 

어느 사업하는 부부가 무속인을 따라서 기도하러 왔다.

용주암에서 불공을 드리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다음 코스는 장군바위다.

같이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위에서 작은 돌멩이가 떨어져서

제주인 남자의 머리에 떨어져서 피가 주루룩 흘렀다.

무속인은 깜짝 놀라서 부정이 타서 그렇다면서 혼냈다.

남자 부부도 할 말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미안해 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 다음해에 그 남자가 혼자 갓바위에 왔다가 용주암에 들렸다.

옛날에 그 사람이라는 말을 해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항상 편두통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더란다.

그런데 기도하고(돌을 맞고) 나서부터 

신통하게도 편두통이 사라졌더란다.

그래서 부처님과 장군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배하러 왔더란다.

 

그러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장은 흉한 조짐인가 싶어도 세월이 흘러가 보면 안다는 말씀

어린 나이에도 그 이야기는 신기해서 기억해 뒀던 모양이다.

가끔 길흉에 대한 상황을 생각하면 떠오르곤 하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장군바위 전설이다. 찐 전설 말이다. ㅎㅎ 

 

 

 

김유신 장군이라서 장군바위라고 했나? 그건 처음 본다만...

참 언제 봐도 우뚝한 모습이 당당하다.

모르긴 해도 여기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대단할 것이라는 짐작만 해 본다. 

이제 서둘러서 차로 돌아가야 하는데 3시니까 4시까지는 충분하다.

그런데 금휘가 열심히 검색을 하더니 꼭 왔던 길이 아니라도 괜찮으면 능성동으로 가는 길이 있단다.

30분이면 된다니까 당연히 그 길로 가야지.

다행인 것은 청원이 갓바위에서 108배를 하고 나더니 너무 힘든다면서 차에서 쉬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뉘간에 전화하더니 차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으로 했다. 

 


 

소요시간은 1.1km에 37분 예상이구나. 조금 가깝기는 한 모양이다.

여하튼 앞서 가는 금휘를 따를 뿐이다.

 


 

 

 

 

 


 

오르기는 좀 힘들지 싶다. 내려가는 길이라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길은 완만해 지는 형국이다.

 


 

능성동 내릿골 당산 천왕의 표지석이 나그네를 반긴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여기도 찾아보고 싶은데 지금은 여유가 없구나.

설마 이 나무가 천왕이라는 뜻인가? 그건 아니겠지...

 


 

그렇게 해서 차를 만났다. 소요 시간은 거의 30분 남짓 걸린 모양이다.

여기까지가 갓바위와 장군바위 참배이야기다.

이제 포항으로 부지런히 가면 된다. 무사히 둘러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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