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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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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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천수

[602] 제45장. 만행(漫行)/ 7.무용지용(無用之用)

[602] 제45장. 만행(漫行)/ 7.무용지용(無用之用)

[602] 제45장. 만행(漫行)

 

7. 무용지용(無用之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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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점심상을 받았는데도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생각에 잠긴 우창을 보면서 파향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자원은 우창의 마음을 헤아리고는 뭐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을 다 먹은 것을 본 낭자가 과일을 권하고 나가자 다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모두 가만히 과일을 먹는 소리만 공간을 맴돌았다.

“선생님!”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우창이 파향을 불렀다. 파향도 우창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 아무래도 우창은 기나긴 세월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로 허비했나 싶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을 벗 삼아서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자기의 삶에 충실한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창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는 파향을 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깨닫고 보니 세상에 있지도 않은 논리를 전개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했다는 생각조차도 들어서 자괴감(自愧感)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고 있었을 적에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하거니와 일단 이와 같음을 깨달았으니 오히려 헌 옷을 던져버리듯이 벗어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대를 따르는 이 제자들은 어쩌라고?”

“그것도 전생에 악연을 만난 것이겠거니 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이야 돌이킬 방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제라도 허망한 논리로 남을 속이는 짓을 그만두는 것이 앞으로나마 업을 더 짓는 것이나마 면하고자 합니다.”

“그렇기도 하겠구나. 허허허~!”

“예? 무슨 뜻인지요?”

“무슨 뜻은 뭘. 그대 말도 맞는다는 거지. 허허허~!”

우창은 더 할 말이 없어서 창밖을 내다봤다. 마당에 있는 화단에 낭자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파향이 음성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우창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볼 텐가?”

“부탁드립니다.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예전에 법달(法達)이라고 하는 화상이 있었다네. 이름이 법달인 이유는 스스로 법화경(法華經)을 좋아해서 읽고 외우는 것은 당연하고 남들에게도 열심히 설파(說破)해서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수천 명이었다지. 그러니까 법화경에 통달했다고 스스로 자신감이 넘쳐서 지은 아호였다더군. 허허허~!”

“예? 갑자기 불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창은 의외라는 듯이 물었으나 파향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법달이 전해 듣기를 어느 절에 생불(生佛)이 출현했다는 말이었네.”

“생불이라니 불교도(佛敎徒)에게 그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었겠습니다.”

“왜 아니겠나. 그래서 어떤 가르침을 펼치는지를 물었지. 그런데 그 생불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전해 듣고서는 분노(忿怒)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올랐다더군.”

“아무래도 가짜로 생불의 행세를 하는 사람임을 간파했나 봅니다.”

“법달이 알기에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500번의 생을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면서 수행해도 될까 말까인데 한순간에 마음만 깨치면 바로 부처라고 하는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더라지. 그도 그럴만하지 싶군.”

“그랬겠습니다. 중생이 수행해서 부처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대, 순식간에 마음을 한 번 깨치게 되면 그것이 부처라고 한다니 우창이 생각하기에도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어쩌면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들에게 헛된 꿈을 꾸게 만드는 가짜 도인이거나 부처 행세를 하는 사기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창도 법달이라는 사람의 말에 동조하면서 파향의 설명을 기다렸다. 무슨 가르침을 얻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도 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향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법달이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되지 않아서 찾아가기로 했다네. 찾아가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베풀어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기꾼인지를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야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급히 생불이라는 화상을 찾아갔다네.”

“이해됩니다.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불경을 공부하면서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정진하는 사람이 그러한 말을 들었다면 누구라도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그 절에 찾아갔더니 승속(僧俗)의 무리로 인산인해였다지. 그것을 보고는 더욱 한심해서 법의를 떨쳐입고는 생불이라는 화상 앞에 갔는데 아무리 그래도 예법은 있는지라 우선 불가의 방식대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던 생불이 호통을 치는 것이었네.

 

◆◆◆◆◆◆◆◆◆◆

 

“어디에서 온 물건이 이리도 교만한가~! 절을 하면서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 안에 교만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어디 네 안에 든 그것이 무엇인지 꺼내 보거라!”

비록 기선을 제압당했지만 그래도 법달은 허리를 펴고 생불을 바라보면서 밀했다.

“예, 법화경을 이미 3천 번 독송(讀誦)했습니다.”

법달의 대답을 들은 생불이 다시 호통쳤다.

“네가 비록 법화경을 일만 번이나 독송한다고 해도 그 뜻을 깨닫고 우쭐대는 마음이 없다면 나와 같이 앉을 수가 있으나 지금 네가 하는 것을 봐서는 아직도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구나. 내 게송을 들어라.”

 

예배하는 것은 본디 교만한 깃발을 꺾는 것인데

그대의 머리는 어찌해서 땅에 닿지 않는가

그 속에 아만이 있으니 그 순간에 죄업이 되지만

경을 읽은 공덕조차도 잊는다면 진실로 비교할 대상이 없다.

 

이렇게 게송으로 다시 꾸짖은 다음에 생불이 물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이미 기세가 절반은 꺾인 법달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법달(法達)입니다.”

법달이 이렇게 말하자 생불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말했다.

“네 이름이 법달이라니 어찌 법을 통달했느냐?”

이렇게 묻고는 답도 하기 전에 다시 게송을 읊었다.

 

이름은 법달인데 법에 통달하지도 못했고

법화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멈춘 적은 없으나

헛되이 소리만 높였을 뿐

마음을 밝히면 비로소 보살이라 하리라

내가 지금 인연이 있어

내가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오직 믿어라, 다만 부처는 말이 없으되

그 입에서 연꽃이 피어나느니라.

 

법달은 이 게송을 듣자 스스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도 깨닫고서 후회하면서 사죄했다. 

“조사(祖師)께서 가르쳐 주신 거룩하신 말씀에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겸손하고 스승을 공경하겠습니다. 과연 법달은 볍화경을 외우기만 했을 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조사께서 지혜가 광대(廣大)하시니 원컨대 경전의 뜻을 설명해 주십시오.”

 


 

 

법달이 이렇게 가르침을 청하자 생불이 말했다.

“법달이여, 법은 이미 지극히 통달하였건만, 네 마음을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전에는 본래 의심이 없으나 네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이 경전을 읽으며 무엇을 근본으로 삼는가?”

“저의 근성이 어두워서 지금까지 단지 글자에 의지하여 암송했을 뿐입니다. 어찌 그 깊은 뜻까지야 알겠습니까?”

법달의 말을 듣고서 생불이 말했다.

“그러냐? 나는 글자를 알지 못하니, 네가 경전을 외워보라.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해서 해석해 주겠다.”

법달이 법화경을 큰 소리로 읽어서 「비유품(譬喩品)」에 이르자, 생불이 멈추게 하며 말했다.

“그만 읽어도 되겠다. 내가 이미 그 법화경의 요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경전은 본래 인연을 따라서 세상에 나온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비록 많은 비유를 말하였으니 이 뜻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니 무엇이 인연인가? 모든 부처님은 오직 한 가지 큰일의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出現)한다. 이것이 부처의 지견(知見)이다. 세상 사람들은 밖으로 형상에 집착하여 미혹되고, 안으로 공(空)에 집착하여 미혹하게 된다. 만약 형상이나 무형, 즉 공을 떠날 수가 있다면 안팎으로 미혹되지 않는 것이니 이 법을 깨닫는다면 한 생각에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부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네가 지금 믿어야 할 것은 네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면 유형(有形)과 무형(無形), 유연(有緣)과 무연(無緣)의 분별을 떠나게 되는데 여기에 집착하게 되니 어리석어서 죄를 짓게 되고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심지어 해치기조차 한다. 너는 생각할 때 마다에 부처의 지견으로 관조할 것이며 중생의 마음으로 분별하지 말거라.”

법달이 옷깃을 여미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조사께서 말씀하신 뜻은 경전의 뜻만 깨닫고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참 답답하구나. 경전이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어찌 너의 독송을 내가 막겠느냐? 다만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한다면 그대 마음대로 법화경을 자유롭게 수레바퀴처럼 굴리게 되지만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경전의 수레바퀴에 네 스스로 깔리는 고통을 면치 못하는 것일 뿐.”

법달은 생불의 가르침을 듣고서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생불이 말했다.

“이제는 그대가 참으로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라 하겠다. 열심히 읽고 외우고 미혹한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거라.”

법달은 비로소 막혔던 것이 시원스레 뚫리면서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흘렸다.

 

◆◆◆◆◆◆◆◆◆◆

 

이야기를 마친 파향이 우창에게 물었다.

“법화경에 무슨 허물이 있으며 자평학에 무슨 허물이 있겠느냔 말이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중생의 번뇌를 끊어주고 자유롭게 한다면 또한 같은 의미가 아니겠나? 문득 우창의 말을 들으니, 법달이라는 사람이 떠올라서 생각이 나는 대로 말했거니와 어떤가?”

우창은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과연 무슨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인지 명료하게 깨달았다.

“법화경에 허물이 없듯이 오행에도 허물이 없다는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갑자년이 언제부터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알 방법도 없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다만 그 이치를 통해서 번뇌에 시달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나눠주고 기고만장해서 절을 해도 이마가 땅에 닿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는 흉운(凶運)의 암시를 예고해서 교만함을 꺾도록 하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이제부터 우창은 사주를 보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겠네. 허허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알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일말의 안타까움은 있습니다. 과연 오늘이 어떤 연유로 갑술(甲戌)일이라는 근거를 알아낼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습니다. 혹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주시겠습니까?”

우창의 진심어린 말을 듣고서 파향이 크게 웃었다.

“허허허~!!”

무슨 말을 해 주려나 하고 기다리다가 우창이 흠칫 놀라서 파향을 바라봤다. 한바탕 웃은 파향이 비로소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직도 우창은 방편(方便)을 모른단 말인가?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내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 황새가 물어다 줬다고 답하고, 조금 자라서 물으면 다리 아래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그야 어린아이에게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대충 거짓말을 하는 것이잖습니까?”

“그걸 젊잖은 말로 ’방편‘이라고 한다네. 거짓말은 내가 무슨 이익을 바라고서 속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임을 모르겠는가? 허허허~!”

“아, 그렇습니다.”

“자, 생각해 보세. 오행의 이치를 적용하면 말이 되던가?”

“당연히 말이 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조짐을 볼 적에도 예측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늘 확인했으니, 그것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자평법에 많은 이해를 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떻습니까?”

“그런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세상에서 출세하여 벼슬하는 방법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 밖을 겉돌면서 부귀영화에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에만 관심이 많았던지라 이런저런 방술(方術)에 대해서 잡지식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네.”

“어쩐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이미 간지의 이치를 상당히 깊이 알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모아서 익히셨던 것입니까?”

“그냥, 되지도 않는 엉터리에게 속지 않을 만큼은 알고 있다네. 우창의 간지학에 대한 심경을 들으면서 나도 내심 감동했지 않은가. 허허허~!”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순간적으로 공부한 것에 대해서 회의심(懷疑心)이 들어서 어찌할 줄을 몰랐을 만큼 얕은 믿음이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런 말 말게나. 어쩔 줄을 몰라서 당황하는 그 표정에서 그동안 진심으로 추호(秋毫)의 의심(疑心)도 없이 간지의 이치를 궁구했다는 것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었다네.”

“과연 옳으신 말씀입니다. 여태까지 그렇게 믿고 공부하고 잘 적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득한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보니까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은 생각이 사무쳐 들었던 것입니다.”

“기실(其實).”

우창은 파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그렇다네.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다 맞고, 틀렸다고 생각하면 다 틀린 것이란 말이지. 그리고 내가 아까 봤던 공룡의 이빨이라고 생각하고 그 시절을 떠올리지만, 과연 실체를 알고 보면 말이네.”

우창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파향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실은 아까 본 것은 공룡의 이빨이 아니란 말이네.”

“예? 그렇게 선명한 이빨이며 턱까지도 갖춰졌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뜻밖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룡의 이빨이 오랜 세월에 삭아지고 소멸이 되어서 텅빈 공간이 되었을 적에 다시 화즙이 흘러 다니다가 그 틈을 채우게 되지않았겠나? 그렇게 다른 광물이 그 자리를 채워서 또 아득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렇게 발굴하고 보니까 공룡의 이빨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것조차도 신기합니다.”

우창이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파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진실이야 누가 알겠느냔 말이네. 하물며 실체로 생각했던 것도 이러할진대 그 나머지야 말해서 뭘 하겠느냔 말이네. 그래서 아무것도 믿지 않고서 모두를 믿으면 된다는 이치를 약간 깨달았을 뿐이네. 허허허~!”

파향의 말에 여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앞뒤가 모순되는 것으로 들립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난감합니다.”

여정의 말에 기현주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했다.

“그건 내가 설명해 줄게. 무엇이든 믿기는 하되 빠지지는 말아야 하고, 어떤 것이라도 의심하되 수용하라는 말씀이야. 그러니까 자평법으로 말하면 팔자는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이 전적(全的)으로 모두를 감당하는 것이 아닌 줄을 알면 되고, 공룡의 이빨이 존재하나 그 또한 실체가 아닌 줄을 알면 된다는 의미인데 이렇게 설명해 주면 이해가 될까?”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살얼음판을 걷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얼음판을 믿되 믿지 말라는 의미가 그것이 아닐까요? 강을 건너기 위해서 얼음이 있음을 감사하나 실제로 얼음은 언제라도 깨어질 수가 있음을 생각하고 믿지 말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까?”

“옳지!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어.”

이렇게 대답을 한 기현주가 이번에는 파향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자평법을 아신다고 하니 반갑습니다. 그런데 다 믿지 말라는 말씀은 어디에 떨어지는 것인지 듣고 싶어요.”

“그런가? 이미 충분히 이해했을 텐데 그래도 확실하게 다지고 가자는 뜻이렸다? 허허허~!”

“맞아요! 지금 여쭙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후회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여쭙습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했으니까요. 호호호~!”

“그렇다면 잘 들어보게. 우선 오행(五行)은 생극(生剋)이 핵심(核心)인 줄은 알겠지?”

“공화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육행(六行)이나 사행(四行)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어쩌면 십행(十行)일 수도 있을 거고 말이네. 그것이 눈에 보이면 공룡 이빨인지 공룡 이빨자국에 들어간 돌인지를 알아보겠지만 보이지도 않는 존재인지라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알겠느냔 말이네.”

“과연 사려가 깊으시네요. 거기까지 생각해 보진 못했거든요.”

기현주가 내심으로 감탄하면서 말했다.

“비록 사행이든 십행이든 알 바가 없지만 오행으로 대입해서 전혀 엉뚱하거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던가?”

“아니에요. 만약에 위를 맞추면 아래가 어긋나고 왼쪽을 맞추면 오른쪽이 어긋난다면 진즉에 내다 버렸죠.”

“그러니까 말이네. 그냥 믿되 다 믿지 않으면 된단 말이지. 나도 한때에는 육갑의 이치가 참으로 오묘해서 푹 빠졌던 적이 있었지.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허황(虛荒)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네. 다만 흥미가 사라졌을 따름이지.”

“흥미는 왜 사라지셨지요?”

“왜냐면 돌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서지. 허허허~!”

“그러니까 연구하고 궁리하는 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말씀인 거죠?”

“당연하지. 공자의 인(仁)도 옳고, 장자의 소요(逍遙)도 옳고, 부처의 공(空)도 옳은데 이것을 제각각 옳은 대로 두면 될 일이지 구태여 하나로 뭉쳐서 유불선(儒佛仙)이라는 괴물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나?”

“과연 탁견(卓見)이십니다!”

우창이 파향의 이야기를 듣다가 감탄해서 말했다.

“실로 어떤 사람의 팔자를 적어놓고 풀이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과연 이 생년월일시가 실제로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도 태어나면서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부모가 알려준다고는 하지만 부모가 안 계시거나 혹은 정신이 혼미한 경우라면 올바른 명식(命式)을 구할 수도 없을 텐데 그것을 놓고서 풀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허망한 것이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말입니다.”

“옳지! 이제 우창이 내 말을 바로 이해했구나. 허허허~!”

“선생님의 말씀인즉, 그 사람의 생일이 정확하고 말고는 논외로 하더라도 오행의 이치도 과연 옳은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면 참으로 자유롭겠습니다. 우창도 이 순간 가슴에 엉어리져 있던 그 무엇인가가 탁 풀려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희열감이 들었습니다.”

“알지~ 알고 말고~! 허허허~!”

“그러니까 운명의 판단이 맞아도 그만이고 안 맞아도 그만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세상에 이보다 자유로운 발상이 어디 있겠나 싶습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에 파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창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아득한 세월의 옛적부터 흘러온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으로 이렇게 고금(古今)의 성현(聖賢)이 남긴 가르침조차도 달관(達觀)할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어느 학문이든 깊이 파고 들어가면 서로 통달하는 길을 만나게 되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네. 아, 다만 학문 같지 않은 학문은 하다가 보면 자주 사로(思路)가 막힌다네. 그런 것은 즉시로 던져버리면 해결되는데 그것을 부여잡고 끙끙대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네.”

“맞습니다. 진리조차도 다 믿지 않거늘 하물며 진리도 아닌 것들이야 잠시라도 생각하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라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우창이 생각하는 진리도 어쩌면 쓰레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허허허~!”

“앗! 또 한 대 맞았습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도 이제부터는 진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파향이 미소를 짓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네. 처음에 세상에 없던 갑(甲)을 만들고 자(子)를 만든 사람이 어떤 자라고 생각되나? 그냥 일없이 놀다가 심심해서 끄적끄적 만든 걸까? 어쩌면 밝은 혜안(慧眼)의 소유자는 아니었을까? 그대가 적지 않은 세월을 오행과 놀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우창은 내심 흠칫 놀랐다. 맞아도 좋고 안 맞아도 그만이라는 듯이 말한 조금 전의 어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말하는데 사뭇 위엄(威嚴)조차 서린 말에 대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서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역시 우창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하시는 것에서 아득한 세월을 생각하다가 연월일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심(懷疑心)조차 들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아직은 그렇게 실망할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우창이 파향의 기에 눌린 듯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 파향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자(漢字)가 대략 10만여 글자라고 한다면 그 중의 최상(最上)의 정점(頂點)에 있는 글자들은 어떤 것이겠나? 아마도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육십사괘(六十四卦)와 함께 육십갑자(六十甲子)를 능가할 글자가 있겠나? 하물며 주역의 64괘조차도 간지(干支)의 22글자에 미치지 못할 것이네. 왜냐면 주역괘는 점사(占辭)를 얻을 적에나 쓰이는 것이지만 간지(干支)는 매년(每年) 매월(每月) 매일(每日) 매시(每時)마다 항상 붙어 다니는 것만 봐도 알지 않겠나? 이 글자가 그렇게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나?”

우창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파향의 말에 한마디도 반박할 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스스로 잘못 살지 않았다는 생각조차 들면서 내심으로 뿌듯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창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파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대략 7천 년전쯤에 문자를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가장 먼저 기록한 것은 거북의 껍질을 태워서 얻은 점괘를 적어놓는 용도였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아, 그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게나. 원시인(原始人)들이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하늘의 뜻이고 그렇게 얻은 점괘를 기록하기 위해서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 어찌 가볍게 생각할 일이겠는가?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크고 살찐 동물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의미하는 바는 요즘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냔 말이지. 아마도 환경은 달라졌어도 알고자 하는 것은 같지 않겠나?”

“실로 그렇겠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 보니 과연 대단한 일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하물며 그 논리가 실제로 잘 쓰일 수가 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겠고 말이지요.”

“수레를 고치는 기술이나 마음을 고치는 기술이나 궁극적으로 성현의 가르침으로만 적용한다면 어찌 경중(輕重)을 논할 수가 있겠는가?”

우창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자평법(子平法)에 관해서 만큼은 고수(高手)의 반열(班列)에 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파향의 말을 들으면서 넓은 것은 물론이고 깊이조차도 헤아릴 수가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고수 위에 달인(達人)이 있고 달인 위에 진인(眞人)이 있다는데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파향은 진인의 영역에서 노닐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파향에게 자기의 사주를 풀이해 달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말했다.

“선생님 이미 간지학(干支學)에 대단한 조예(造詣)가 있음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우창의 명을 풀이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창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자 파향이 우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말했다.

“자, 이제 차도 다 마셨으니 다시 돌 구경을 갈 텐가?”

파향은 아직도 보여주고 싶은 돌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는 일행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휘적휘적 돌 창고를 향해서 걸었다. 일행도 마다할 겨를도 없이 파향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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