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2 · 금요일
낭월명리학당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을 영원처럼
인연이 되셔서 고맙습니다
05.22 · 금
오주괘 →
소설적천수

[559] 제44장. 소요원(逍遙園)/ 2.제강(提綱)과 생시(生時)

[559] 44. 소요원(逍遙園)

 

2. 제강(提綱)과 생시(生時)

==============================

 

기현주가 쉬라고 하고 나가자 시동도 기현주를 따라서 나가고 우창 일행은 그대로 자리에 남았다. 기현주가 쉬러 갔지만 우창은 잠이 오지 않았다. 기현주로 인해서 어찌 생각해 보면 피상적(皮相的)으로 생각했던 적천수의 내용이 입체적(立體的)으로 다가와서 자꾸만 생각이 떠오르게 되어서였다. 그야말로 무채색(無彩色)의 그림에 알록달록한 색채(色彩)로 꾸며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기현주가 사라진 쪽을 향해서 자기도 모르게 합장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인연을 심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사부도 언니에게 감동했구나. 그렇죠? 호호호~!”

정말 그런가 보다. 이런 느낌도 참 오랜만이구나.”

이제 그만하고 쉬어요. 내일도 있으니까요.”

 

우창이 푹 자고 눈을 뜨자 이내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의 해가 돋기 전에 일어나서 화원을 산책하는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벌과 나비가 꿀을 찾으러 꽃송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모습도 싱그럽다. 여전히 기현주는 벌써 일어나서 화원의 잡초를 뽑고는 꽃가지를 솎아서 들고 오다가 우창을 보고는 반갑게 말을 건넸다.

, 동생도 일찍 일어났구나. 참 좋은 아침이지?”

그렇습니다. 이 시간의 고요함 중에 서서히 움직이는 듯한 느낌은 언제라도 항상 좋습니다.”

대기에 온통 목기(木氣)로 충만(充滿)된 순간이기 때문일 거야. 더 둘러볼 거야? 아니면 들어가서 차를 마실까?”

차를 마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시동 소호(小胡)는 이미 물을 끓이고 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자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하고는 차호(茶壺)에 녹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윽한 차향(茶香)이 실내를 감돌아서 정신을 상쾌하게 했다.

앉아봐. 실은 일찍 잠을 자러 갔지만 정신만 점점 말똥말똥해서 도저히 그냥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적천수를 다 읽었지뭐야. 도무지 잠이 와야 말이지. 그래서 정신(精神)편의 다음 구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다가 겨우 잠이 들었어. 참 재미있더라.”

그러셨습니까? 참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차를 따르겠습니다.”

소호가 조용히 찻잔을 앞에 놓고는 차를 따랐다. 잔을 들던 기현주가 옆에 서 있는 소호에게 말했다.

소호도 같이 마셔. 우리가 재미있다고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없지?”

아닙니다. 마님. 깊은 이치는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같이 나와서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소호의 말에 기현주는 미소를 머금고 차의 맛을 음미했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잠이 깼는지 자원과 삼진이 세면장(洗面場)에서 나오다가 우창을 발견하고는 얼른 차탁(茶卓)으로 다가와서 인사하고 앉았다.

차향이 참 좋아요. 녹차로군요. 용정(龍井)인가요?”

맞아! 자원은 차도 잘 아는구나. 도대체 모르는 것이 뭐야?”

온통 모를 것 천지죠. 다만 이렇게 향기로운 차라면 용정차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호호호~!”

그랬구나. 넘겨짚는 것도 능력이라고 봐야 할밖에. 호호호~!”

동향(桐鄕)은 서호(西湖)가 멀지 않으니 짐작컨대 여기에서 나는 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호가 반쯤 남은 찻잔에 다시 차를 따라주는 것을 보며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모두 모였으니 또 귀한 가르침을 들을까?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단 말이야.”

누님은 참으로 공부를 좋아하시는군요. 아마도 안연(顔淵)의 환생(還生)인가 싶습니다. 하하하~!”

, 맞아! 나도 예전에는 안연이고 싶었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야. 호호~!”

기현주는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갖고 와서 펼쳤다.

여기 월령(月令)편이야. 읽어볼게.”

 

월령내제강지부(月令乃提綱之府)

비지택야(譬之宅也)

인원위용사지신(人元爲用事之神)

택지정향야(宅之定向也)

불가이불복(不可以不卜)

 

다 읽은 기현주가 이어서 설명까지 했다.

 

월령(月令)은 투망(投網)의 손잡이와 같은 핵심부이니

비유한다면 가족이 모여 살아가는 가택(家宅)과 같다.

월지(月支)의 지장간(支藏干)은 일하는 신()이라

집으로 보면 그 집의 좌향(坐向)과 같은지라

이것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풀이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내가 풀이한 것이 본론에서 크게 어긋난 곳은 없어?”

멋지게 풀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말이야.”

기현주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완전히 팔정격(八正格)에 부합하는 논리로 보이는데 이렇게 생각한 것이 맞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앞에서 체용(體用)과 정신(精神)에서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팔정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는데 여기에 다시 월령의 격국(格局)을 논하는 까닭이 뭐냐는 거지.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탁월한 촉감(觸感)이십니다. 하하하~!”

뭐야? 내가 느낀 것이 맞단 말이야? ?”

우창도 그 대목을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읽고 외웠습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앞의 구절과 서로 섞이지 못한다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래서 아마도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서 가필(加筆)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推定)했습니다.”

어머나! 정말?”

물론 짐작일 뿐입니다. 어쩌면 이 대목을 써넣은 고인은 풍수학(風水學)에 밝았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다음에 있는 생시(生時)편의 구절까지 포함해서 본다면 내용은 완전히 풍수에서 논하는 관법(觀法)을 취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풍수에 밝은 스승을 모시게 된 것으로 인해서 알게 되었지만요.”

그랬구나. 정말이야. ()에서 풀리지 않았던 것이 또 을()을 만나는 것으로 인해서 갑까지도 풀리는 경험은 자주 하니까. 그래서?”

기현주는 자신의 느낌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해서 우창에게 답을 재촉했다.

누님도 그러한 느낌을 단박에 알아채셨으니 어찌 하루 이틀의 내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오랜 시간을 궁구(窮究)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적천수를 더 일찍 만났더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드네. 지금에 만난 것이 절호(絶好)의 기회(機會)라고 하겠고, 그 순간에 동생이 찾아와 준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해야겠어.”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하하~!”

우창이 기현주의 과장된 표현에 멋쩍어하며 말했다.

아니야. 제자가 스승을 찾을 줄 모르니 스승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제자는 스승을 부를 수만 있지 찾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진리를 찾는 제자는 흡사 어린 아기와 같아서 엄마를 부를 수는 있어도 걸을 수가 없으니 찾아가지는 못하잖아? 그러니까 스승은 엄마와 같아서 아기가 부르듯이 제자의 소리를 듣고 찾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야.”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런데 말이 되기는 합니다. 재미있네요. 하하~!”

내가 진리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것을 마음으로 듣고서 동생이 찾아와 줬으니 말이야. 그리고는 이렇게 수밀도(水蜜桃)의 즙()과 같은 향기로운 감로수(甘露水)를 힘도 안 들이고 빨아먹으니 얼마나 행복하냔 말이지.”

누님도 참. 하하하~!”

그래서? 풍수학에 밝았던 스승이 가필까지 하면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뭘까?”

이 대목은 팔격(八格)편의 다음에 삽입(揷入)되었더라면 조금은 더 감쪽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걱정이 많은 고인께서 적천수를 펼쳐서 체용과 정신을 읽고서 걱정이 되셨던 게지요. 아마도 급하게 써넣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걱정이라니? 무슨 걱정이지?”

행여라도 후학이 격국론(格局論)을 잊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노파심(老婆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원래 풍수학(風水學)은 다소 보수적(保守的)인 면이 강한데 그러한 관점으로 체용과 정신을 읽었다면 분명히 걱정되셨을 것으로 짐작이 되기도 하거든요.”

오호라~ 그 말이었구나. 동생의 말이 이해되네. 충분히.”

더구나 얼마나 걱정이 되셨으면 불가이불복(不可以不卜)’이라는 말까지 덧붙였겠습니까? ‘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 모르긴 해도 경도 선생이라면 이러한 구절은 생각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듣고 보니까 정말 일리가 있구나. 역시 동생의 안목은 탁월(卓越).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

아마도 이렇게 써 놓고서뒤 내용이 어색했던지 어느 주석(註釋)에서는 복()을 취()자로 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가 되니 훨씬 부드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면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정말 기가 막힌 풀이로구나. 청산유수(靑山流水). 호호호~!”

기현주가 우창의 설명에 감탄하자 우창이 말을 이었다.

다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령 진월(辰月)에 태어난 사람이 중기(中氣)인 계수(癸水)가 사령(司令)한 시기인 3일 중에 태어났다면 이 집의 방향은 정좌계향(丁坐癸向)이 된다는 말이니. 풍수지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겠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만약에 초기(初氣)인 을목(乙木)의 사령에 태어났다면 좌향은 신좌을향(辛坐乙向)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과연 체용편과 정신편에 이어서 나와야 할 내용이겠습니까?”

과연 핵심을 잘 찾았구나. 꼭 맞는 말이네. 전혀 의미가 없는 내용으로 변해 버리니 말이야.”

더 살펴볼 것이 있겠습니까?”

우창이 다 설명했다는 듯이 기현주에게 물었다.

아니, 이미 충분해. 괜히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다음 구절도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대략 살펴보고는 가야겠지?”

실은 이후의 몇 편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씩 논거(論據)하면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하하~!”

알았어, 그럼 생시(生時)편을 읽어볼게.”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음 구절을 읽었다.

 

생시내귀숙지지(生時乃歸宿之地)

비지묘야(譬之墓也)

인원위용사지신(人元爲用事之神)

묘지혈방야(墓之血方也)

불가이불변(不可以不辨)

 

읽고 난 기현주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정말이구나. 여기에 바로 묘혈(墓穴)이 나왔구나. 이제 나도 동생의 말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알겠어. 정말 적천수 공부의 또 다른 재미가 여기 있었잖아. 호호호~!”

기현주가 재미있어하자 우창도 즐거워서 말했다.

참 간단하지 않습니까? ()은 양택(陽宅)을 말하고 묘()는 음택을 말하니 월주(月柱)에서 삶을 즐기면서 놀다가 시주(時柱)에서 임종을 맞이하여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지명불이(地命不二)를 몸소 보여주고 계시니 말입니다.”

지명불이? , 지리(地理)와 명리(命理)를 아우른다는 말이야?”

정말 누님은 척하면 착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해? 호호호~!”

의미도 좀 살펴보시겠습니까?”

, 그렇지? 풀이해 볼 테니 잘 들어봐.”

이렇게 말하고는 차근차근 글자를 짚으면서 풀이했다.

 

생시(生時)는 돌아가서 잠을 잘 자리이니

비유(譬喩)한다면 묘()와 같다

시지(時支)의 장간(藏干)은 용사(用事)의 신()이니

()의 혈()이 향하는 곳이다

이것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풀이한 기현주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참 이상하네? 여기에서 말하는 지장간은 시지(時支)를 말하는 것이 맞는 거지?”

맞습니다. 시주(時柱)를 다시 팔각(八刻)으로 나누는 것이지요. 가령 진시(辰時)라고 한다면 처음 이각(二刻)은 을향(乙向)이고, 다음 일각(一刻)은 계향(癸向)이 되며 나머지는 무향(戊向)이 된다는 이야기니까요.”

뭐야? 그게 말이 되는 거야? 태어난 시간을 어떻게 지장간까지 나눠서 적용한단 말이지?”

그래서 이것은 경도 선생의 글이 아닐 가능성이 구할(九割)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없어야 할 내용이지만 주석(註釋)을 붙일 수는 있어도 삭제(削除)하는 것은 고민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아니, 동생과 같은 명쾌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잘라내지 않으면 또 누가 칼을 들겠어?”

그렇기도 합니다만, 혹시라도 그 안에는 우창이 상상도 못할 깊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의 관점에서 그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어머나! 거기까지 생각했던 거야? 정말이지 동생은 내가 못 미치는 곳에 머물러 있구나. 진실로 감탄했어.”

항상 문자(文字)는 조심스러우니까요. 누구라도 글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으로 봅니다.”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지금은 쓸데없다는 뜻을 이해했지만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는 후학에게 남겨두기로 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말이지. 어때?”

과연 누님이십니다. 그렇게 해 놓고 넘어가는 것이 옳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책장을 넘기려던 기현주가 문득 손을 멈추고 우창을 보며 말했다.

, 그런데 말이야. 왜 가탁(假託) 선생이 이런 내용을 써넣었을까? 그거에도 어떤 이유는 있지 않았을까? 혹시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면 말해 줘.”

누님도 참 집요하십니다. 가탁 선생은 또 뭡니까? ‘누군가 사족(蛇足)을 달았다는 뜻이 아닙니까? 막상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보니 그것도 근사합니다. 하하~!”

, 경도 선생이 쓰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내용에는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냥 모인(某人)이라고 하는 것보다 낫지 싶어서 말야. 그러니까 아무리 풍수학의 기준이라고는 하더라도 이렇게 적천수에 첨언(添言)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어떻게 생각해?”

이런 생각은 해 봤습니다. 아마도 한날한시에 태어난 두 사람의 삶이 서로 달랐던 것을 접하게 된 가탁 선생이 그 다른 점을 궁리하다가 이러한 생각에까지 미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아하~! 그 봐. 그렇다니까. 자꾸 물어야 생각할 자료가 생겨나잖아. 듣고 보니 그럴싸하구나. 그렇다면 비록 시지(時支)의 선후(先後)에 따라서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야 당연하잖아?”

물론입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다고 봐야지요. 만약에 乙木을 용신으로 삼는 사주에서 진시초(辰時初)에 태어났다면 말년에 삶의 풍경이 좋아진다고 할 수가 있겠고, 진시말(辰時末)에 태어난 사람은 말년까지도 고단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비록 같은 진시(辰時)라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초기(初氣)에 태어난 사람은 희망을 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어? 간단하게 풍수가의 허언(虛言)이라고만 할 것은 아니지 싶은데 어때?”

기현주의 말을 듣고 우창도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라서 잠시 생각해 보고는 다시 설명했다.

일리는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에 모시(某時) 모각(某刻)까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사주라면 적용을 해봄 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명료한 사주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날짜만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니 실제로는 크게 논할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누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장차 세월이 흘러서 출생의 순간이 정확해진다면 그때를 대비해서 가탁 선생의 혜안은 덮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으로 봐서는 그러한 차이를 확인하기가 어렵고 또 확인한다고 해도 진토(辰土)가 묘목(卯木)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실제로 그로 인한 차이는 미미(微微)하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막상 적용한다고 해도 미미한 것은 마찬가지겠구나. 혹 사시(巳時)라고 하더라도 경금(庚金)이 사령했다고 한들 그 짧은 순간에 병화(丙火)의 틈바구니에서 큰 작용을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더구나 시간(時間)이 명료하지 않을 때는 전혀 쓸모가 없으니 말이지.”

그렇습니다. 경도 선생은 그러한 것에 마음을 쓰는 것조차도 시간과 정력(精力)의 허비라고 봐서 언급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우창도 깊이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과연, 내가 괜한 것을 붙들고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나 싶구나. 그런데 동일(同一)한 사주(四柱)라도 삶의 모습이 같지 않은 것은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는 생각해 봤어?”

기현주는 아직도 이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자꾸만 질문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의 말씀도 맞아요. 예전에 쌍생아(雙生兒)를 본 적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신체가 건장(健壯)한 남자로 자랐는데 다른 한 사람은 몸이 허약하고 더구나 하체가 불구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두 사람의 삶은 달랐는데 생일도 같고 다만 시각(時刻)에서만 차이가 난다면 가탁 선생의 의견도 음미해 볼만 하겠어요. 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도 다시 우창에게 말했다.

그 봐, 자원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잖아. 이런 경우를 당해서 감명가(鑑命家)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기현주의 물음에 대해서 우창도 신중한 마음으로 설명했다.

누님께 여쭙겠습니다. 사람이 일평생을 살아가는데 오롯이 사주팔자의 이치로만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겠습니까?”

? 그건 무슨 말이야? 태어난 팔자대로 살다가 팔자 도둑질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 당연하잖아?”

기현주는 우창의 물음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같은 팔자를 갖고 태어난 두 사람이 있다고 할 적에 한 사람은 좋은 명당(明堂)에 조상을 모시고 조석으로 정성을 들이며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는 사람과 궂은 터에 조상의 묘를 쓰고 되는대로 살아간다면 두 사람의 삶은 같을까요?”

우창이 이렇게 묻자 기현주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싸부, 비록 확인할 수는 없을지라도 논리적으로 봐서는 같을 수가 없겠는데요? 만약에 같다고 한다면 풍수지리(風水地理)는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선행(善行)으로 일상(日常)을 살아가는 사람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드네요.”

기현주도 자원의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맞아, 내가 생각해봐도 그렇잖아? 자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봐.”

그렇다면 또 여쭙겠습니다. 한날한시에 왕가의 궁궐에서 왕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와 어촌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우창이 다시 묻자 기현주도 잠시 생각하고는 답했다.

정말이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각()을 나눠서 살펴보는 것은 실로 한낮에 촛불이 있고 없고를 논하는 것이나 비슷하겠다.”

우창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의문이 풀렸어. 더 중요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것으로 길흉을 논한다는 것은 실로 별 의미가 없다고 해도 되겠어. 잘 알았어. 이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끔히 잊어도 되겠어. 호호호~!”

기현주는 비로소 홀가분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때 소호(小胡)가 다가와서 조반(朝飯)이 마련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자 모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아침밥을 먹고서 잠시 화원을 둘러보는데 마차가 한 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소호가 얼른 나가보고는 크게 외쳤다.

현령 나리께서 왕림하셨습니다~!”

그 말에 일행이 모두 현관으로 나가자 만면(滿面)에 웃음을 띤 현령이 마차에서 내렸다.

 

 

 

목록으로 — 소설적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