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 제41장. 유유자적(悠悠自適)
2. 변화(變化)의 조짐(兆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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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조용하게 단양을 바라보고 있자,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운봉의 질문에 답을 했다.
“옳지! 과연 운봉이 궁금한 것이 다른 제자들도 궁금할 만하겠네. 이러한 이야기는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해야지. 허허허허~!”
“고맙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만법(萬法)의 바탕이 되는 오행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것이 맞겠지? 왜 이렇게 묻느냐면, 기본적인 중심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만 추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따름인 까닭이라네. 어떤가?”
“그야 당연히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지. 가령, 꿈에 이웃 사람과 말다툼을 심하게 해서 싸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잠을 깨고 나서 그날 하루는 어떤 마음으로 생활하겠는가?”
단양의 질문에 운봉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마도 이웃 간에 싸움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겠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에는 말을 섞지 않고 조심하면서 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뭐, 반드시 정상이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 꿈은 꿈일 뿐이니까. 여하튼 그렇게 별일 없이 하루가 넘어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아마도 꿈이 미리 흉사(凶事)의 조짐을 알려줬기 때문에 조심해서 액난(厄難)을 피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일 비가 올 것이니 우산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외출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를 점괘로 얻은 것에 비해서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다른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같은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맞아, 아마도 단시점(斷時占)에 대해서는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조짐을 보는데 용이(容易)하게 응용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맞아, 이러한 것들은 『역경(易經)』을 펼쳐놓고서 하괘(下卦)와 상괘(上卦)를 찾아서 동효(動爻)를 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방법은 달라도 조짐은 같이 보여주지 않을까?”
“그렇겠습니다. 다만 기대하는 마음으로는 역경이 아무래도 단시점보다는 심오(深奧)하고 명료(明瞭)한 답을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일 비가 온다는 것만 알려준다면 단시든 육효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태사님의 가르침에 대한 뜻은 알겠습니다. 완전히 같은 결과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운봉이 헛된 기대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옳지~! 그렇다면 이제 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나?”
단양이 이렇게 말하자 운봉은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태사님의 가르침에 쌓였던 의문이 물 위의 거품처럼 하나씩 제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운용하는 오주괘(五柱卦)도 같은 맥락으로 봐서 역경의 해석을 대신해도 된다는 의미이겠습니까?”
운봉이 이렇게 말하자 단양은 금시초문(今始初聞)이라는 듯이 물었다.
“뭐라고 했나? 오주괘라니 그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처음 듣는 말인데 아마도 점괘인 듯하니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설명을 해보게.”
단양이 궁금해서 운봉에게 묻자 운봉이 우창을 바라봤다. 그에 대한 설명은 우창이 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우창이 설명했다.
“스승님께 말씀드립니다. 오주괘란 현재의 연월일시(年月日時)의 간지(干支)에 분각(分刻)을 하나 더 얹어서 오주(五柱)로 조짐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질문을 받는 순간에 조짐이 동하는 것으로 보고 자평법에 바탕을 두고서 풀이하는 것입니다.”
“오호~! 그래?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단 말이지. 음.....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안 될 이유가 없겠군. 왜냐면 원래 팔자라는 것도 태어나는 순간에 평생의 조짐을 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까닭이지. 그런데 어디에서 그러한 이치를 깨달았나? 아니면 기인(奇人)을 만나서 전해 받기라도 했나?”
“예, 스승님, 예전에 유람하다가 산동(山東)의 임치(臨淄)에서 이인(異人)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방법을 전해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가끔 응용하는데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답은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하던 단양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옳지~! 우창이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애환(哀歡)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임을 헤아린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선물을 안겨 줬구나. 그 비법을 전해 준 스승의 존호는 어찌 되는고?”
“예, 그 스승님의 존함은 고덕기(高德基)시고 아호는 도락(道樂)이라고 합니다.”
“그래? 도락이란 말이지? 수록만당(壽祿滿堂)의 두남(斗南)이 내 제자라네. 도락에게 그런 비기(秘技)가 있었단 말인가? 참 의외로군. 허허허~!”
“아니, 스승님께서도 알고 있는 분이셨습니까? 어쩌면 스승님께서는 오주괘를 운용(運用)하기 전에 뵈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수록만당의 두남 선생님과도 며칠 묵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랬군. 알만한 사람일세. 도락은 답답하고 꽉 막혀서 내가 뚫어주려고 애도 많이 썼었는데 고집스럽게 말을 듣지 않아서 말았지. 아마도 그 후에 기연(奇緣)을 만났던 것이 분명하군. 그래서 저마다 인연이 있다고 하는 걸세. 허허허허~!”
“그러셨나 봅니다. 분각(分刻)의 이치는 한 시진을 12지(支)로 나눠서 간지를 부여하는데 그 방법은 오서법(五鼠法)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어디 지금의 오주괘를 뽑아보겠나? 궁금하군.”
단양이 궁금해서 말하자, 우창이 회중시계(懷中時計)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고는 간지를 뽑아서 적었다.

“스승님, 지금의 오주괘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살펴보십시오.”
우창의 말에 단양이 점괘를 살펴보자 다른 제자들도 앞에 앉은 사람들은 간지가 보였으나 멀어서 보이지 않는 제자들은 궁금해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큰 소리로 불러 줬다.
“지금 적은 오주괘는 임인(壬寅) 을사(乙巳) 병오(丙午) 무술(戊戌) 경신(庚申)입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됩니다.”
우창이 불러주는 대로 모두 적어놓고는 나름대로 공부가 된 제자들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양도 훑어보고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니, 일기통관(一氣通貫)이 아닌가? 어쩌면 이러한 점괘가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기이(奇異)한 일이로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하면 되겠는가? 어디 우창이 풀이해 보게.”
“해석하는 방법은 자평법과 같습니다. 다만 오행용신(五行用神)을 논하지 않고 목적용신(目的用神)을 논하는 것이 다를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기통관이 나온다면 무슨 일을 물었더라도 만사형통(萬事亨通)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스승님께서 물으셨으니 일간(日干)의 병화(丙火)는 스승님으로 놓고 대입하면 되겠습니다. 하하~!”
“오호! 그렇지! 바람처럼 구름처럼 걸림이 없이 살아온 것은 병오(丙午)로 보면 되겠구나. 제자들 무리에 둘러싸인 것은 시주(時柱)의 식신(食神)인 무술(戊戌)이겠고, 즐거운 결실을 누리는 것은 경신(庚申)이란 말이지? 이렇게 보면 된단 말이로구나. 그래 이렇게 된다면 어찌 역경과 비교를 할 수가 있겠나. 간지(干支)를 공부한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절묘(絶妙)한 비법(秘法)이 없겠네. 묘(妙)하고 또 신묘(神妙)하도다. 허허허허~!”
단양이 호쾌하게 웃었다. 모든 제자도 일기통관으로 나타난 간지의 조합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기통관이란 연간(年干)에서부터 분지(分支)까지의 오행이 서로 멈추거나 장애물이 없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괘가 자신의 점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제자들도 있었다. 우창이 대중이 둘러보면서 말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점괘를 잊지 말고 부단(不斷)이 정진(精進)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우창이 오주괘를 배운 이후로 이렇게 대길상(大吉祥) 점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태사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모두가 자유인이 될 조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미리 축하해도 되겠습니다. 오행원의 무궁한 발전을 예고(豫告)하는 조짐입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제자들도 합장하고는 자신의 점괘로 받아들이면서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단양을 보고서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 아직 아뢰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뭐라고? 이보다도 더 중요한 이야기가 또 있단 말인가?”
“실은 얼마 전에 「육갑패(六甲牌)」를 얻었습니다.”
“육갑패?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단양이 관심을 보이자 우창이 품에 넣고 다니던 육갑패를 꺼내서 단양에게 건넸다. 단양이 육갑패를 받아서 보고는 의아한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이것은 간지(干支)가 아닌가? 이것은 또 무엇인가? 나도 처음 보는군.”
단양이 의아해하자 우창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스승님께서 보시는 대로 육갑(六甲)을 적은 패(牌)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60장이 되겠습니다. 오주괘를 운용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어서 만들게 되었고 이것을 사용해 본 결과 징험(徵驗)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주괘를 보지 않고 육갑패를 통해서 조짐을 읽고 있습니다. 방법은 오주괘와 같습니다만, 연월일시에 매이지 않고 즉시로 다섯 장을 추첨(抽籤)하게 되므로 해석에 많은 자유로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자마자 단양도 바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알았네. 마작패(麻雀牌)를 응용한 것이로군. 이것을 통해서 조짐을 살핀다는 말이렸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마작패를 생각해서 이러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맞아, 예전에 누군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을 하면 갖고 있던 마작패를 늘어놓고 한 개를 뽑아서 그에 나온 결과를 갖고 길흉을 점쳐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다가 육갑(六甲)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군. 과연 우창은 총명함에 영감(靈感)까지 겸비했으니 천재로군 허허허허~!”
“스승님 고맙습니다. 다만 이것은 특별한 영감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대에 오주괘를 설명하려니 재미가 없어서 무슨 방법이 없을지를 궁리하다가 생각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스승님께서 마작패를 말씀하셔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만, 투패로 점을 쳐서도 결과는 신묘(神妙)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어떠셨습니까?”
“당연히 절묘(絶妙)했지, 무엇이든 물으면 늘어놓은 패 중에서 자패(字牌)가 나오면 그 일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추진이 되었고, 수패(數牌)가 나오면 무슨 짓을 해도 안 되는 것으로 확인하고 풀이했는데 만약에 나쁜 패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서 못 믿겠다는 듯이 그 사람이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을 해도 결과는 비참했으니까. 허허허허~!”
“그렇게 영험(靈驗)한 마작패라면 왜 사용이 활성화(活性化)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우창이 의아해서 단양에게 물었다. 그러자 단양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했다.
“아니, 품격(品格)이 문제가 아니었겠나? 허허허~!”
“품격이라면 마작패는 품격이 떨어진다는 말씀이신지요?”
우창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단양에게 묻자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게, 어떤 사람은 마작패로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심하면 목숨까지 버리기도 하는 도구로 점신(占神)을 영접(迎接)한다는 것이 뭔가 찝찝하지 않겠는가? 우창은 아무래도 세상의 인심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허허허허~!”
그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된 우창이 말했다.
“아하~! 그렇겠습니다. 도박(賭博)하는 도구(道具)를 써서 조짐을 본다면 상대의 입장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육갑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다.”
“내가 뭐랬나? 그래서 우창이 천재란 말이네.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도 같기는 합니다만 누구라도 육갑신의 조짐을 살펴서 추길피흉(趨吉避凶)을 할 수가 있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으며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스승님께서 인정해 주시니 우창은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점괘는 보시지 않아도 알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겠나? 까마귀라고 하면 보지 않아도 털빛이 검은 줄을 알고, 백로라고 하면 또한 보지 않아도 털빛이 흰 줄을 알 수가 있듯이 이미 우창의 말만 들어도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니 수고롭게 점괘를 볼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허허허~!”
우창은 단양의 말에서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구구절절(句句節節)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것은 과감하게 생략할 줄도 안다는 것을 보면서 중후(重厚)한 힘이 느껴졌다. 그 육갑패의 신뢰감에 한 치의 의혹도 품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과연 그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잘 알겠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또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것은 하수(下手)의 호기심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오히려 우창이 부끄럽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에 대해서 더욱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자들도 마음 깊이 공감하고는 스스로 간지(干支)의 이치와 자연의 조짐에 대해서 신뢰감이 과연 우창의 반도 미치지 못함을 자인(自認)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심 우창의 소탈(疏脫)함에 대해서도 감동했다. 명색이 일문(一門)을 이끄는 장문인(掌門人)으로 자신의 실체에 대해서 아무런 사심이 없이 말한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고, 그것을 제자들이 보는 앞이라는 점을 생각하다가 보니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속에서부터 배어 나왔다. 이렇게 생각들을 하느라고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肅然)해진 것을 보자 운봉이 다시 단양에게 물었다.
“다시 태사님께 여쭙습니다. 육효(六爻)나 오주괘(五柱卦)나 나아가서 마작패조차도 모두가 간절(懇切)하면 점신(占神)의 영험을 보여준다고 헤아리면 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요?”
“암! 여부가 있겠나.”
단양도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이 한 마디로 잘라서 말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한마디의 힘이 더 크게 전해지는 까닭이다. 단양의 말이 운봉도 뭔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의문이 정리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참으로 귀중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상통천문(上通天文)하여 국사(國事)의 미래를 손바닥처럼 살펴보거나, 하달지리(下達地理)하여 땅속의 정황을 눈앞에 있는 물체를 본 듯이 읽어내는 목적은 결국 인간의 행복(幸福)과 불행(不幸)을 미리 알아서 액운(厄運)은 막고 길운(吉運)은 불러들여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문지리를 몰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만 이점에 대해서도 한 말씀 청합니다.”
운봉의 집요함도 대단했다. 자신의 의문이 풀리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파고들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단양이 말했다.
“옳거니~! 자고로 공부는 파고드는 자의 몫이라고 했는데 오늘 운봉을 보니 딱 그러한 형상이로군. 당연히 천문지리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러한 것을 알게 됨으로써 살아가는데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게. 허허허허~!”
“아니, 태사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알아서 안 될 것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천기누설(天機漏洩)과 같아서 알면 천벌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까?”
운봉이 놀라서 묻자 단양이 다시 말했다.
“가령 하나의 나라가 망할 조짐을 미리 알았다고 생각해 봐. 그것의 원인을 보면 백성(百姓)이 도탄(塗炭)에 빠져서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왕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면 왕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 말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그러한 말을 한 것에 대한 죄를 묻지 않겠나? 그렇다고 모른 척을 하려니까 수없이 많은 인명(人命)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차라리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단 말이지 무슨 천기누설의 벌이 있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단양의 말을 곰곰 생각하던 운봉이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태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창 스승님께서 가장 현명하게 도법(道法)을 펼치고 살아가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나라의 큰일은 운에 맡기고서 찾아와서 고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러한 것을 해결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으시니 말입니다. 찾아와서 물으면 답을 해주고, 묻지 않으면 알고 싶지도 않은 것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당연하지. 그러니 그대도 입을 잘못 놀려서 천자(天子)의 형벌(刑罰)을 받지 않도록 각별하게 조심을 해야 할 것이네. 허허허허~!”
“예? 그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운봉은 이미 그 뜻이 국가의 경영에 있었던 것 아닌가? 그대가 주역의 이치를 물었을 적에 벌써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파했지. 그대가 오행원에 은거(隱居)하면서 오행을 공부하고 있으나 그 웅지(雄志)를 어찌 숨길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에 그 뜻을 꺾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오행원을 떠나는 것이 우창과 도반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여기에서 머물고자 한다면 헛된 망념은 말끔히 내려놓고 자신의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야망(野望)은 결국 재앙(災殃)을 남길 테니 말이지. 허허허~!”
단양은 참으로 허허롭게 웃었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내 알 바가 없다는 듯이 초연(超然)한 표정은 단호해 보였다. 그리고 속진(俗塵)의 찌든 때가 얼마나 영혼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달관을 한 듯이 말하는 것을 보고는 운봉이 다시 물었다.
“태사님께 죄송한 말씀을 여쭙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처음 뵈었을 적에 그 행색이 걸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천하를 경영할 만큼의 지혜도 있으셨으면서 어떻게 그러한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까? 설마하니 스승님을 떠보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면 그 연유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지금 그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또한 오행원의 안위(安危)가 흔들리게 될 따름이라네. 알아야 할 것과 알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 또 알아봐야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도 있고, 때로는 알지 않아야만 신상(身上)이 보전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말을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또 다른 억측(臆測)을 만들기도 할 테니 간단히 한마디만 해 두지.”
“정말 고맙습니다. 더는 여쭙지 않겠습니다. 그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운봉이 그 한마디라도 들어봐야 하겠다는 듯이 묻자 단양이 한마디만 했다.
“유기(劉基)가 궁성(宮城)을 떠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네.”
이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자 운봉도 더는 묻지 않았다. 운봉도 유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기의 자(字)는 백온(伯溫)이었고 세간에서는 그를 유백온이나 성의백(聲意白)라고 불렀는데 고향이 절강성(浙江省)의 청전현(靑田縣)이어서 유청전이라고도 불렸다. 대명(大明)을 건국(建國)하면서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었으나 공을 이루면 물러가야 한다는 시기에 대해서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는 신병(身病)을 핑계로 초야(草野)로 돌아갔다. 그러한 내막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운봉에게 그 이름 두 자는 어떤 정황인지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깊이 합장하고 허리를 숙였다. 잘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을 본 단양이 말을 이었다.
“그대들에게 꼭 해줄 말이 있으니 잘 들어라.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에 통달한 벗에게 내가 물어본 적이 있었지. ‘그대는 어디를 가도 두려움이 없겠구나. 그렇게나 무예에 능하니 말이지.’라고 했더니 그가 웃으며 말했어. ‘그런 말 말게 나도 병사 100명이 창을 들고 달려든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니까’라고 하더군.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지.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뛰어난 호신술(護身術)이란 말인가?’라고.”
이렇게 말을 한 단양이 다시 차를 마시자 연화가 옆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차를 따라서 잔을 채웠다.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던 단양이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말하더군. ‘가장 좋은 호신술은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 것이라네.’라고 말이지. 그 말을 듣고서 바로 도성(都城)을 떠나서 천하(天下)를 유람(遊覽)하게 되었는데 그제야 진실한 삶의 낙(樂)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지 뭔가? 그렇게 다니다가 도락도 만나게 되었고, 천하의 술수(術數)에 대해서도 많은 진인(眞人)과 달사(達士)를 만나서 약간의 소득이 있었네. 그러니 그대들이 청운(靑雲)의 뜻을 품는 것은 말리지 않겠거니와 백운(白雲)의 길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늙은이가 해주는 말임을 잊지 말게. 허허허허~!”
단양의 음성에서는 회한과 간절함이 함께 배어있어서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처연(悽然)하게 들리기도 했으나 중요한 것은 천성이 자연과 벗하기를 좋아했었다는 것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고 난 우창은 자신의 길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인연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마음으로 합장했다. 단양의 이야기는 긴 여운(餘韻)을 남기면서 끝났고, 오광과 연화가 부축하는 손을 잡고서 여여실로 돌아간 후에도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흩어질 줄을 모르고 저마다의 상념에 잠겨 있었다. 운봉이 남아있는 도반들을 향해서 소감을 말했다.
“운봉이 이해하기로 청운(靑雲)의 뜻은 왕가에서 출세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존망을 받으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다고는 하겠지만 이렇게 허공의 백운(白雲)처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자유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말끔히 포기하고 내면을 채우는 공부에 전념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아야 하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도반들도 오늘의 단양 태사님께서 가르침을 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셨기 바랍니다.”
운봉의 말을 듣고서 제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 깊이 그 의미를 새기고는 각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