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주역의 육효까지 접목(接木)을 시켜보겠단 거지. 대단해~!”
“아, 얼굴 형태만으로 이와 같은 상징(象徵)과 의미(意味)를 유추(類推)해 낼 수가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는지도 몰라.”
“그 뜻은 ‘모든 법은 하나로 통한다.’는 뜻이로군요. 공감이 됩니다.”
“역경(易經)과, 얼굴의 기본형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네. 그런데 명학(命學)에서는 또 여기에 대해서 연결을 시킬 이치가 없을까?”
“명학에서의 천원(天元)은 천간(天干)을 말합니다. 지원(地元)은 지지(地支)를 말하고요. 마지막으로 인원(人元)은 지장간(支藏干)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장간은 지지(地支)의 변형이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천간보다는 지지에 더 가깝습니다.”
“그야 상학에서도 같아. 인원은 지원의 확장이라고 보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역명상(易命相)을 관통하는 이치가 되겠네. 신기해~!”
“그러니까, 인간도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의 형상과 땅의 형상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원방각(圓方角)의 이치를 적용시켜서 면상(面相)의 기본을 이해한다면 대략 큰 틀은 잡을 수가 있다고 보겠어.”
“천상(天相)의 동그란 얼굴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나누면 음양(陰陽)으로 구분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인상(人相)에서 음양으로 나누듯이 천상에서도 그렇게 보면 되겠지.”
“그런데, 동그랗게 놓고 본다면 아무렇게 돌려놓는다고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해답을 못 찾겠습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동그라미에서 벗어날수록 천양(天陽)인 형태로 보면 되는 거야.”
“아니, 누님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도 늘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떻게 질문을 하자마자 바로 답이 나오시는지 참 신기합니다.”
“어쩌면 보통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형이 이에 속하지 않을까 싶어. 동글동글하면서도 약간 길쭉한 모양? 보통 계란(鷄卵)의 형태라고 할 수가 있는 거지.”
“아, 계란이 이에 해당하는군요.”
“알은 천상(天相)이잖아. 꿩알은 완전한 천상으로 동그랗게 생겼으니까 천음(天陰)으로 보고, 달걀은 약간 길쭉하게 생겼으니까 천양(天陽)으로 보면 되겠네.”
“참으로 절묘한 대입이십니다. 하하~!”
“그렇다면 천양의 형태는 지적(知的)이면서도 인적(人的)인 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아마도, 대부분 사람은 이에 속할 거야. 왜냐면 동물 중에서 하늘의 기운을 가장 많이 갖고 태어난 것은 인간이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그래봐.”
천음(天陰)은 동그란 얼굴
천양(天陽)은 갸름한 얼굴
인음(人陰)은 역삼각 얼굴
인양(人陽)은 삼각형 얼굴
지음(地陰)은 장방형 얼굴
지양(地陽)은 정방형 얼굴
“이렇게 역경(易經)의 육효(六爻)와 같은 형태로 정리를 하면 되겠습니까?” “아주 잘했어. 그렇게 해 놓으니까 뭔가 있어 보이잖아.” “정말입니다. 천지인을 음양으로 나누게 되니까 여섯 가지의 형태가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상법은 누가 창안(創案)한 것입니까?” 누가 창안했느냐면… 아, 상인화라는 여인이 창시했다더라.” “누님께서 생각해 낸 것이네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궁리하는 것은 상학(相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평소에 늘 생각했던 거야.” “그렇다면 이것은 「상씨상법(尙氏相法)」이로군요. 하하~!” “아이~! 그렇게 놀리지 말아~! 그게 뭐라고 거창하게 소란을 피우는 거야.” “그러니까 상씨상법에 의하면, 둥근 형의 얼굴은 하늘의 뜻이 출입하는 얼굴이고, 세모 형의 얼굴은 인간적인 마음이 출입하는 얼굴이라면, 네모 형의 얼굴은 땅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넉넉한 품성의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맞아, 그렇게 보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지상(地相)을 하고 있는 사람은 수동적(受動的)이고 고지식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융통성(融通性)은 부족하고 충직(忠直)한 성향이 강하다고 하겠지. 왜냐면 땅은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으니까 말이야.” “타당합니다. 인상(人相)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항상 활동(活動)적인 성향이 강하고, 변화(變化)에도 잘 대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어떤가요?” “일리가 있어. 천상(天相)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두루 원만한 것과도 비교할 수가 있을 거야.” “누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면상(面相)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니까 이것도 파고 들어가면 여간 재미있는 분야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미가 동하는걸요.” “그러니까, 면상(面相)을 보면 처음에 봐야 할 것은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아니라 전체적인 윤곽(輪廓)부터 살피게 되는 거야.” “매우 타당하겠습니다. 전체적인 윤곽을 보면서 바탕에 대해서 관찰부터 하는 것이 이치에 타당하겠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동생이 이해를 잘 했어.” “그러고 보니까 누님의 얼굴은 천상을 닮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둥그스름한 얼굴의 윤곽에서 그렇게 봐도 되지 싶은데요?” “맞아, 상부(上部)는 천상(天相)을 닮았고, 하부(下部)는 인상(人相)에 가까운 지상(地相)을 했다고 보면 되겠네.” “아하~! 그래서 원만한 느낌과 포근한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처음부터 누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아마도 그랬을 수가 있을 거야. 특별한 개성이 없다고도 할 수가 있다고 하겠네.” “그래서 원만(圓滿)해 보이는 인상(印象)으로 인해서 누구에게나 친근(親近)한 느낌을 주는 모습인가 싶습니다.”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거야. 저마다 자기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물의 형상을 보면서도 느낌은 같지 않아.” “그렇게 되면 상학(相學)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당연하잖아? 명학은 안 그런가?” “명학은 아직 공부가 깊지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 누님께서 한 수 알려 수세요.” “모든 학문의 기본 틀은 같다고 하겠지만 그것에서 느끼는 기운이 마음에 닿아서 반응(反應)하는 점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이 일률적(一律的)으로 같을 수가 없는 거야.” “그렇다면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아무래도 그로 인해서 오차(誤差)가 많이 벌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이야.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객관적인 관점으로 관조(觀照)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수행(修行)의 차원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정말 그렇겠습니다. 오늘 누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같은 사주의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학(相學)도 마찬가지야. 기본형은 같다고 배우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저마다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하게 되어서 해석에서는 차이가 생길 것이니까 말이야.” “아하~! 그것은 편견(偏見)과 정견(正見)의 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올바른 견해를 호수(湖水)같이 잔잔한 마음으로 관찰하게 된다면 보다 핵심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가 있겠네요.” “그래서 공부를 좀 하게 되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것에서 한계를 깨닫게 되고는 면벽수련(面壁修鍊)에 들어가서 자신의 견해를 지우고 자연의 관점을 체득(體得)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거야.” “정말 누님의 자상한 가르침에 또 하나 깊은 이치를 깨닫습니다. 감동입니다. 하하~!” “그야 동생이 말귀를 알아들으니까 나도 즐겁잖아. 그렇게만 하면 상학도 마냥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봐도 될 거야.” “기대됩니다.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들어가게 되나요? 우창은 삼원(三元)의 이치가 얼굴에도 있음을 알게 되자, 신기한 마음과 그다음에는 어떤 이치가 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 그리고 상인화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그 잔잔한 호수 같은 눈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됨을 느꼈다. “얼굴에서 천지인에 대한 이해를 한 다음에는 오형(五形)을 보게 되는 거야.” “예? 오형(五形)이라면 다섯 가자의 형태를 구분한다는 말인가요?” “맞아, 오행(五行)의 의미를 형태로 얼굴에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아하. 삼원(三元)을 이해한 다음에는 오행(五行)이라. 참 멋진 대입이라고 하겠습니다. 명학에서도 오행은 천원(天元), 지원(地元), 인원(人元)을 논한 다음에 살핀다고 했는데, 면상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