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 戊 己 壬
申 午 酉 午
사주를 보고는 자원이 읽었다. “임오년, 기유월, 무오일, 경신시에 태어난 사람이네요.” “그래 잘 읽었네.” “그런데 여기에 무슨 그림자가 있어서 격(格)이 되었단 거죠?” “그림자가 안 보여?” “전혀요~!” “그럴 거야. 하하~!” “임싸부~! 지금 순진무구한 소녀를 갖고 놀리시는 거죠?” “아니~! 그럴 리가 있나. 하하~!” “그럼 그림자 보는 방법도 안 알려 주시고 보이느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이크~! 눈치를 챘구나. 하하하~!” “여기에 무슨 그림자가 있어요?” “을(乙)이 그림자야. 어디에서 나타난 그림자일까?” “예? 을(乙)이 그림자라고요?” 그러자, 우창이 말을 이어받았다. “을이라고 하는 눈치를 주니까 대략 짐작이 되네.” “예? 아니 진싸부도 감을 잡으셨는데 왜 저만 모르죠?” “글쎄 천성이 우둔한 것 같진 않은데. 하하~!” 고월의 농담을 듣고서야 다시 정신을 차려서 살펴본 자원이 경(庚)을 짚고 말했다. “아하~! 이것이 그림자를 만든 실체(實體)인 거죠?” “그만하면 훌륭한 자원일세. 맞아~!” 고월이 동의를 하자 자원이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아니, 경(庚)이 그림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을경합(乙庚合)이잖아요?” “맞아~!” “근데 을(乙)이 왜 그림자예요?” “아, 원래 그림자가 아니라 경도 스승님이 그림자로 보셨겠지.” “그러니까요. 왜 경도 스승님님은 그림자라고 하셨을까요?” “그야 없는 실체를 찾아서 있는 것처럼 논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없는 을(乙)을 경(庚)이 있음으로 을도 있는 것으로 간주(看做)한단 말인가요?” “맞아. 그 이야기라네.” “참,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것이 경도 스승님의 생각이었던가 보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경의 그림자만 찾아요?” “또 다른 그림자도 보이시는가?” “정(丁), 갑(甲), 계(癸)가 다 보이는데요?” “오호~! 간합(干合) 정도는 안다 이거지? 하하~!” “자꾸 놀리시지 말고 왜 하고많은 합(合) 중에서 을경합에 대해서만 논하는 것인지 그 이유는 있을 것이잖아요?” “물론 있지.” “그게 궁금하단 말이에요.” “을(乙)은 십성으로 뭐에 해당하나?” “일간(日干)이 무토(戊土)니까, 나를 극하는 것은 관살(官殺)이고, 음양이 다르므로 정관(正官)이에요.” “옳거니~!” “근데 이게 왜요? 왜 하필이면 정관을 그림자라고 하죠?” “거 참. 어지간히도 파고 들어가시네. 하하~!” “그야 한 번 물었으면 명줄을 끊어놔야지요. 으흐흐~!” “무슨 여인의 웃음소리가 그래.” “여인의 가녀린 몸속에도 흉측(凶測)한 악마(惡魔)가 남몰래 숨어서 살고 있답니다~! 크흐흐흐~!” “에구, 그러지 마시게. 하하~!” “그러니까 어서 말씀을 해 주셔야죠~!” “물론 고서에는 이 사주를 「합록격(合祿格)」이라고 한다네.” “고서라면 어느 책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호~! 파고드는 품이 자못 매섭군. 연해자평 2권을 말한다네. 하하~!” “아, 그래서 연해자평을 언급하셨구나. 알았어요. 그런데요?” “합록격이라는 말은 ‘합으로 인해서 녹(祿)을 끌어오는 격(格)’이란 말이라네.” “왜 그래야 하죠?” “사주에 정관(正官)이 없으니까.” “예? 왜 정관이 사주에 있어야 하죠?” “정관이 있어야 벼슬을 하여 출세하고 가문을 일으킬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있지도 않은 정관을 만들어 넣는다고요?” “당연하지. 어떻게 해서라도 정관은 있어야 하니까.” “이게 자연이에요? 아니면 의도(意圖)예요?” “물론 자연은 절대로 아니지. 살아가는데 잘 살게 하려는 의도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네.” “그렇게 의도하면 잘살게 되는 거예요?” “그냥, 안심부(安心符)라고 해야 하겠지.” “예? 안심부는 또 뭐예요?” “그냥 마음이나 편하게 살라고 해 주는 부적 말이네.” “그럼 아무런 영험(靈驗)도 없다는 것이잖아요? 그런 것을 왜 하는데요?” “기왕지사(旣往之事)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이 든 사람에게 죽기만 기다리라고 하기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야 그렇죠.” “그래서 부적을 하나 해 준다네. 그러면서 말하지. ‘이 부적을 지니면 몸에 있는 병이 다 소멸하고 건강하게 됩니다.’라고 말이지.” “아하, 그래서 안심부였군요. 그야 그럴 수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당연하지. 살아가는 방법이라고나 해야지.” “명학(命學)은 명색이 학문인데, 어떻게 그런 속임수로 사람을 평생 동안 속일 수가 있단 말이에요?” “물론 말도 안 되지. 그렇지만 무지한 사람은 그렇게 알고 평생 벼슬을 한번 해 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살다가 죽겠지.” “그건 너무 심한 희망고문(希望拷問)이잖아요?” “왜 아니라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렇다면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알려 줘야죠.” “왜 아니겠나. 그래서 지금 경도 스승님이 말씀하셨잖은가?” “아참, 그렇죠. 괜히 흥분했네요. 호호~!” “계면쩍게 웃은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다시 보니 정관은 어디에도 없군요.” “아마도 이 사주의 주인공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자손(子孫)이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본다네.”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있죠? “그러니까 공부를 할 만큼 한 학자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겠지.” “하긴요. 전혀 모른다면 을경합의 이야기도 만들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지.” “그럼 이 사주는 어떻게 해석이 되는 거예요?” “아마도, 사주의 주인을 향해서 ‘이 사주는 대귀(大貴)를 누릴 사주입니다.’라고 했겠지.” “어머, 왜요? 사주에 이렇게 정관도 없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무리수가 아닌가요?” “정관이 그림자로 따라다니는 것처럼 일평생 벼슬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보는 것이라네.” “뭐,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네요.” “어차피 상담하는 대상도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희망을 키워주고 북돋아 주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는 되지.” “다만, 그것을 이론이라고 감히 연해자평과 같은 책에 실어 놓는다는 것이 문제네요. 후학들은 또 그것을 믿고 그대로 답습(踏襲)을 할 것이잖아요?” “왜 아니겠는가. 그래서 경도 스승님이 이렇게 칼을 빼 든 것이라네.” “아무리 그래도 쉽게 해결이 될까요?” “어렵겠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이렇게 알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긴 그렇네요. 정말 적천수를 만난 것은 천만다행(千萬多幸)이에요.” “물론, 우린 그 적천수조차도 수정(修整)을 하면서 공부하지만.” “그래서 더욱 행복한 자원이예용~! 많이 감사해요~!” 고월이 다시 하나의 자료를 적었다.庚 癸 乙 癸
申 丑 丑 酉
고월이 사주를 적어놓는 것을 보고 있던 자원이 나섰다. “이번엔 제가 나서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누가 말리겠나. 어서 설명해 보게.” “계수(癸水)가 어디에도 정관(正官)이 없어요. 그런데 연간(年干)의 계수(癸水)가 무계합(戊癸合)을 하여 정관인 무(戊)를 불러와요. 이것으로 이 사람은 벼슬을 하여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게 돼요.” “오호~! 그 정도라면 장안에 가서 개업해도 되겠는걸. 하하~!” “정말요? 열심히 가르쳐 주신 덕택이옵니다. 호호~!” “이제, 왜 그림자로 된 격은 모두 허망하다는 말인지를 이해하셨나?” “당연하죠.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알았어요.” “총명한 사람은 그렇게 단박에 알아보는 것이 이치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