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坡州) 임진각(臨津閣)
(2023년 7월 20일)

파주는 출판단지에 일이 있어서 두어 차례 가봤던 곳이다. 그렇지만 임진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서 둘러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임진각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지질공부를 하면서 부터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파주에 있다는 「세계광물보석박물관」에 가볼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도 하다. 이것이 파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봐서는 지질학자가 65개 국을 돌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수집했다는 것이 대단해서 가보고 싶었기도 했다.

그러다가 잘 타고 다니는 차의 마지막 서비스 점검을 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야말로 겸사겸사 하루의 나들이가 된 셈이었다. 차는 마포에 있는 서비스센타에 입고시켜 놓고 동행하기로 한 세째 부부를 만나 자유로를 타고 북으로 향했다.

광물박물관은 10시부터 관람이 가능하다고 했다. 집에서 05시 30분에 출발했던 까닭에 9시쯤에 박물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까닭에 바깥에 방치같은 전시를 해 놓은 돌들을 보면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먼저 임진각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서 임진각으로 향하게 되었다.

파주에서도 임진각까지 한참 가는구나. 그리고서 잠시 후에 무슨 의미의 그림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임진각에 도착한 것은 틀림 없군.

넓은 주차장에는 임진각을 찾아오는 관광버스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이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DMZ여행이라는 안내문이 차에서 전광판으로 반짝인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같은 나라가 분단이 되어있는 곳이니까 호기심이 많은 여행객들에게는 관심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아마도 폭발하지 않은 폭탄이나 터지지 않은 화산을 방문하는 느낌일 수도 있지 싶다.

망배단(望拜壇)은 찾아가지 못하는 북쪽의 가족들을 그리면서 절하는 곳이구나. 모든 흐름이 끊겨 있는 곳이다. 그러니 몸은 가지 못하고 마음만 보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게 현장에 서서 살펴보면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된다.

잃어버린 삼십년의 비도 있구나.

아마도 이 30년은 앞으로 300년이 될지도 모르지. 러시아에서는 반란도 일어나려고 했던 모양인데 북쪽 땅은 요지부동인가 싶기도 하다.

임진각에 평화소녀상이라... 좀 어색해 보이는 느낌은 뭐지......?

먼 곳까지 찾아온 외국인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명하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열심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생소하다. 특이한 환경이기는 하지.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목조로 된 다리도 낯설다. 보존관리를 하느라고 예산도 꽤 들지 싶다.

그 다리도 끝에 가면 막혀 있다. 울타리 너머에는 경비병의 초소가 보인다.

증기기관차도 분단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구나.

폭탄을 맞아서 탈선했던 그 기관차가 또 자신의 자리에서 역사의 흔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상징물이 되었단다.

해설사가 93만 5천 번은 더 말했을 그 말을 다시 하고 있구나. 어쩌면 재미가 없을 법도 한데. 내용은 같아도 듣는 사람이 항상 달라지므로 느낌까지도 같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낭월도 맨날 천간지지를 말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느낌은 같지 않음을 비춰서 생각해 보는 셈이다.

철교의 중간쯤까지 갈 수가 있는데 돈을 내야 한다. 예전에는 그냥 갔었다는 누군가의 말도 흘러간다.

이름이 독개다리였구나. 왜 철교가 아니고.....?

다리에 가면 사진은 앞쪽만 찍을 수가 있고 옆은 찍으면 안 된다는 검표원의 말에 들어가볼 마음이 사라졌다. 대신에 지나가는 곤돌라를 본 연지님이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기에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매표소는 주차장 바로 앞에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다.

경로우대권이 여기에서도 적용되는구나. 고맙구로. ㅎㅎ

일일이 신상과 연락처를 적는 것은 배를 탈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도 해야 할 수순이었다. 누군가 곤돌라를 타고 갔다가 철책을 넘어서, 그러니까 미군 병사가 '하하하!' 하고 웃은 다음에 북을 향해서 뛰었듯이 그렇게 사라지면 확인을 해야 하므로 적는 것이겠거니 싶다. 물론 이해하고 말고. 귀찮기는 해도 어쩌겠느냔 말이지.

표를 샀으니 타러 가야지. 위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저 강을 건너가면 비무장지대란 말이구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은 임진강을 곤돌라로 구경하면서 건너가는 구간이다.

DMZ에서 한가롭게 개구리를 찾는 백로들....
생각해 보니까 임진강은 처음이구나. 북쪽으로 한탄강은 둘러 봤는데 여기는 첫걸음이다. 임진강을 생각하면 방화정(放火亭)이 떠오르고 율곡이 떠오른다. 그때 선조가 빗속에 몽진(蒙塵)을 했다는 임진강의 그 나루가 여기였을까? 몽진은 '너무 황급해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서 피신한다'고 해서 붙은 말이라고 한다. 전하는 말로는 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자 조용히 임진강변으로 가서 관솔로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자의 이름이 방화정, 그러니까 '불을 지르는 정자'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또 뒤로 하고서라도 참 재미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도라산역까지 가는 철교다. 지금도 운행은 하는 모양인데 거기까지 가볼 생각은 못 했구나. 강의 이름이 임진강(臨津江)인데 큰 강의 이름에 작은 나루터가 들어있다는 것은 좀 어색한 조합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강의 이름에 나루진(津)이 들어간 것이 임진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암벽은 숲이 우거져서 잘 보이지 않는구나. 숲의 틈으로 보이는 암벽의 색은 불거스럼한 것이 사암층의 퇴적암으로 보이는구나. 이렇게 곤돌라에 앉아서 척~ 바라보는 것만으로 암석을 파악할 수가 있다니.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ㅋㅋㅋ

금목상극(金木相剋)은 사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바위를 공부하는 데는 나무가 장애를 일으키고, 나무를 연구하는 데는 암석이 장애를 일으키니 이 둘은 영원하 하나가 될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ㅎㅎ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빨간 경고판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다. 그 가운데에다 곤돌라 정거장을 만들어 놨구나. 안전지대란 말이겠군.



기념 삼아서 건너와 본 것이고, 임진강을 건너보고 싶어서 곤돌라를 탔으니까 그 것만으로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콩가루 미숫가루 듬뿍 넣어서 한 그릇 만들어 준 팥빙수가 먹을 만 했다. 네 사람이라서 네 개를 시켰더니 주인이 하나만 시켜서 드시고 부족하면 더 시키라고 하더란다. 장사도 할 줄 모르는 주인이었구나. 과연 한 그릇으로 네 사람의 더위를 모도 내쫓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강을 건넜다. 임진각의 관람은 이렇게 잘 마무리 했다.

이제 광물을 보러 가야 할 시간인데, 점심부터 먹고 움직이자는 의견에 따라서 장단콩으로 만들어 준다는 콩요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위치가 박물관으로 가는 입구이니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는 관심들이 없는지라 길가 편한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DMZ에서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콩으로 만들어 준단다. 콩이야 어디에서 수확했던 맛이 없을 수가 없긴 하다만. ㅎㅎ

테이블마다 모니터가 놓여있어서 앉아서 주문만 하면 되었다.

계절로 본다면 겨울이 제철이겠지만 철을 가리지 않고 콩요리는 정답이다. 순두부와 청국장을 시켜서 든든하게 먹었는데 맛에 예민한 여인네들은 발효에 약간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단다. 쓴맛이 강하다지. 여하튼 낭월은 쓴 것을 좋아해서 전혀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아마도 여름이라서 발효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었겠거니 싶기는 하다.

점심을 먹고는 세계광물보석박물관으로 가서 두어 시간 세계광물보석박물관에서 관장을 만나서 이야기도 들으면서 광물들을 구경한 이야기는 건너뛴다. 따로 정리할 기회가 있으면 하는 걸로. ㅎㅎ

구경을 다 마치고 나오는 길에 들린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烏頭山)으로 향했다. 지도에서 통일전망대를 검색하면 동해의 고성과 여기 오두산전망대가 나온다. 만약에 무심코 통일전망대를 누른다면 동해로 가게 될 수도 있다. ㅎㅎ

이름이 재미있구나. 까마귀 대가리라니. 원래 오두(烏頭)는 도교의 도사들이 쓰는 관(冠)을 말하기도 하는데 산 이름이 그 무엇인가를 닮았던가 싶기도 하다.

지도를 스카이뷰 모드로 보게 되면 이렇게 모두가 가려져서 나온다. 군사시설 때문이겠거니 싶다.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인데 지금은 큰 관심은 없어서 지나는 길에 놓칠 수가 없는 안내판이려니 하고 흔적을 남겨둔다.

고성통일전망대는 동해에 있고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서해가 아닌 한강과 임진강의 강변에 있다. 이렇게 해서 공백으로 비어 있던 뇌지도에 점을 하나 찍어 놓는다.

여기도?

임진각에 있으면 되었지 여기에도 있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사자들은 이것도 고마울 수가 있겠거니 싶다. 북한 땅이 보이기만 하면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를 수도 있을테니까. 그런데 부조신위(父祖神位)가 좀 어색하기는 하다. 부모신위(父母神位)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남자들만 상상되는 이름을 적어 놔서 이 또한 편견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라고 적어놨다고 해서 할머지 할아버지가 서운해 할 일도 아닐 테니 말이지.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도 또 누구의 부모인 바에야 어색한 느낌이 드는 비명(碑銘)은 반댈세~! 이 글은 필시 상투를 튼 영감님이 썼을 것으로. ㅋㅋ

멋진 어르신도 계셨구나. 고당 조만식 선생의 동상이다.

아무리 올바른 생각으로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이다. 그래서 영웅의 죽음이 더 안타깝기도 한 것이지....

항상 느끼지만 전망대의 망원경은 성능이 아쉽다. 조정하는 장치도 없어서 그냥 들여다 볼 따름이다. 강 건너에 뭔가 관심꺼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으면 배낭에서 100-400mm렌즈를 꺼낼 수도 있지만 쓱~훑어봐도 그럴 필요는 없지 싶다.

한강과 임진강의 만나는 풍경 정도일 뿐이다. 날씨도 멀리까지 바라보기에는 안개인지 해무인지 뿌옇게 보여서 이 정도로 만족하면 되지 싶다.

그리고 여기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3시가 되기 전에 일정을 마쳐서 다행이다. 이제 부지런히 집을 향해서 가자~! 지금 출발하면 어둡기 전에 귀가하겠구나. 돌아가는 길에 또 생각해 본다. 다음에 다시 올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여기를 다시 올 시간이면 한탄강으로 가서 현무암 지질공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사의 분단 현장에서 잠시 둘러본 만큼의 의미는 있었던 걸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