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을 쥐면 음(陰)이 됩니다. 음은 뭉치는 성분이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손 안에 있소이다 하면서 이렇게 주먹을 불끈 쥐었지 싶습니다.
쥐었던 주먹을 펴면 양이 됩니다. 양은 무엇인가를 할 준비가 된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손은 쥐락펴락 하면서 뭔가를 하게 되어 있네요. 이것을 음양변화(陰陽變化)라고 합니다. 좀 거창하지요? 원래 사소한 것들을 갖고서 거창하게 늘어벌려놓고 노는 낭월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음양의 이치를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은 태어나서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해 온 것이기도 하지요. '잼잼' 하면 주먹쥐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이것은 '음음'이라는 말도 되는 셈입니다. 그런가 하면 '곤지곤지'를 알려줄 적에는 손바닥을 다른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것은 '양양'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억지라고요?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걸 갖고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하셨다면 또 다른 음양을 보여드립니다.
엄지는 양입니다. 하나니까요. 이것도 또한 음양의 도가 인간의 손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네요. 그렇다면 음은 뭐겠어요? 나머지 사지가 음이지요. 이것은 홀짝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주역(周易)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수학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간단히 언급을 했습니다만 음중지양(陰中之陽)과 양중지음(陽中之陰)의 도를 말씀드립니다. 글만 봐서는 참 대단해 보입니다만 그림으로 보면 간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한 손을 모델삼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것도 손의 음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엄지는 양(陽)입니다. 그리고 양중지음의 이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엄지에는 마디가 두 개로 만든 조물주의 용의주도한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음중지양은요?
이제 보이지요? 짝수로 된 네 개의 손가락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음중지양의 소식을 깨달으라는 하늘의 가르침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는 낭월입니다. 이보다 더 명료한 가르침이 없으니 문자도 필요없다고 하겠네요. 물론 이러한 관법을 알려주신 대만의 증사강 선생님께 감사의 일배(一拜)~!!
음양을 이해 한 다음에는 음양이 결합을 해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결합과 분리를 통해서 음양은 무수한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니 그 소식이 바로 이 소식입니다.
이렇게 엄지와 사지는 서로 만나는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벌써 뭔가 느낌이 쫘악~! 오지요. '문제 없어~!' 혹은 '다 잘 될 거야~!'라는 뜻을 느껴집니다. 이것은 음양이 만났기 때문에 나타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음양이 분리되고 나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다음에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기다릴 뿐이지요.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려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음양은 결합을 해야만 변화를 일으키는데 또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분리가 되어야 한다는 이치를 생각할 수 있다면 음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손가락의 오행 소식
이제 오행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손가락이 다섯 개이니 오행으로 대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왕초보 입문편에서 이야기를 했지 싶습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너무도 간단합니다. 그리고 왜 각각 목화토금수로 배당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왕초보를 보면 알 수 있으므로 중언부언 하지 않겠습니다.
4. 손가락의 십간
오행을 생각하면 다시 십간(十干)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자동으로 찾게 되는 것이 학습의 효과라고 해도 되지 싶네요. 오행이 있으면 오행의 음양인 십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또 알려드립니다.
손등은 양이므로 손톱이 있는 부위의 오행은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이 됩니다.
이번에는 음간입니다. 그러니까 손바닥 쪽은 음이므로 음간을 배치하게 되는 군요. 그래서 오행의 음양인 십간은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남는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이 아귀가 꼭꼭 들어맞는 절묘함을 느낍니다.
5. 손가락의 지지
이제 천간까지 했으면 지지(地支)도 가능하겠느냐고 묻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능하다고 보여 드려야지요.
이것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손바닥의 지지도(地支圖)입니다. 그리고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오른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원래 왼손에 표시하는 것은 오른쪽의 손으로 글씨를 써야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왼손을 쓰는 경우에는 오른손에 표시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두 마디는 놀고 있는 것이 맘에 걸리네요. 만약 원형으로 지지를 표시해야 할 이유가 간절하지 않다면 낭월은 다음과 같이 표시하고 싶습니다. 손가락이 열 두 마디인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손가락의 낭비도 없고 부족함도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봐야 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하실 벗님도 계시리라고 짐작을 해 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손가락의 끝은 무엇이든 생산하는 원천입니다. 손끝에서 모든 것이 탄생하니까요. 그래서 인신사해는 끝에서 창조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운데는요? 그야 자오묘유지요. 인신사해의 손끝이 자신의 마음대로 창조를 하도록 든든하게 바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술축미는 손바닥과 연결되어서 잡아주고 있는 역할을 하니 참 잘 어울리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삼합의 배열이나냐고 하고 싶으신 경우도 있지 싶습니다. 삼합은 무효라고 해 놓고서 손가락에다가 써 놓으면 헷갈리지 않느냐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럼 다시 바꿔서 적습니다. 뭐 어렵습니까... 흐~
어떻습니까? 이 쪽이 훨씬 더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인은 묘목이 밀어주고, 진은 목의 뿌리가 되어주니 호흡이 잘 맞아 보이네요. 이렇게 관찰을 해도 되고, 실은 이 모두를 다 관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음양과 오행과 천간과 지지가 모두 손에 있으니 도인이 보는 관점에서의 '이손 안에 있소이다'도 가능하지 않겠느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지요? 세상의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 주먹을 쥐락펴락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돈을 다 움켜쥐기 위해서 손을 내밀 수도 있겠지요. 여하튼 어떤 용도로 사용하더라도 이 손의 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려고 생각해 보니까 뭔가 약간은 섭섭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두리번거려 봅니다. 그러니까 손을 이야기 하면서 이 손을 제외하면 섭섭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가 싶습니다.
자, 세상 모두를 깨달은 이의 손입니다.
그리고, 2014년식 '내손 안에 있소이다'로 마무리 합니다.
잠시 손놀이를 해 봤습니다. 세상 일에 머리가 아프실 적에 잠시 손을 보면서 이렇게 놀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한 말씀 드려 봤습니다.
이제 기대감을 갖고 오셨다가 실망하고 돌아가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4년 1월 1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