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제18장 면상의 기본/ 10. 마음의 거리와 몸의 거리

작성일
2017-05-20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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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제18장 면상(面相)의 기본(基本)

10. 마음의 거리와 몸의 거리

상인화의 말에 격한 감동을 느낀 우창이 잠시 그대로 있었다. 상인화도 그 모습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잠시 정적만이 방안에 감돌고 있었다.

그렇게 차 한 잔이 식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고 나서야 우창은 고개를 들어서 상인화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경외(敬畏)가 가득 배어 있었고 감격한 나머지 촉촉한 습기까지도 배어있었다.

“누님~! 저에게는 부처와 같은 스승이십니다.”

상인화는 그렇게 말하는 우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나도 동생에게 명학을 배우게 되면 그렇게 경이로움으로 잔뜩 존경심을 갖고 이야기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아, 그럴 리가 있습니까? 사실 제가 누님께 뭘 가르쳐 드릴 것이 있기나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약간 있듯이, 동생이 보고 듣고 깨달은 것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동생만의 깨달음이니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야.”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저도 조금은 공부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이해를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책에 나온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겪고 깨달은 것이거든. 난 그렇게 생각해.”

“저도 누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치 개인의 경험은 사소(些少)한 것이고, 책에 적혀 있는 이야기는 위대(偉大)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공부의 길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맞습니다. 책의 가르침도 누군가의 경험을 적어놓은 것이기에 소중합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제 앞에 마주한 사람이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맞아~!”

“그래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앞에 둬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당연한 이야기야. 모든 학문은 여기에서 출발하게 된다면 오류를 최소화하고 깨달음에 다가갈 수가 있으리라고 봐.”

“그렇다면 이론과 실제에서는 당연히 실제가 앞선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생각해. 이론은 실제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거야.”

“잘 알겠습니다. 면상(面相)을 공부하면서도 얼마든지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에 도가 없는 곳이 있을까?”

“아, 그렇게 되는 거로군요. 하하~!”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듣네?”

“당연하죠. 천지자연이나 기어가는 미물에도 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하~!”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혹 본다고 해도 뜻을 모르거나, 혹 뜻을 한다고 해도 활용을 못한다면 모두가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

“당연하겠습니다. 그냥 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깨달았다고 하긴 어렵다는 말씀이잖아요?”

“아는 것은 지식(知識)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지혜(智慧)가 되겠지?”

“맞습니다. 지식은 지혜의 도구로 쓰일 적에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누님께서 제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그것이지요?”

“동생이 제대로 이해를 했어.”

“누님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사람을 보고 어떤 판단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연이 이치를 관조(觀照)하노라면 그러한 것도 저절로 보일 것이라는 해석이 되는데 제가 잘 이해를 한 것일까요?”

“아주~ 잘 이해한 거야.”

“이제야 상학(相學)에 대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절대로 서둘지 않겠습니다. 하하~!”

“동생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네.”

“그런데 누님은 왜 웃음소리가 없으십니까?”

“그야 천성인 걸 어쩌겠어?”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고 하잖습니까?”

“동생은 내가 웃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미소로 논한다면 천하제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소리도 중요하잖습니까?”

“다 소용없는 거야. 마음이 웃으면 찡그리고 있어도 웃는 것이고, 마음이 울고 있으면 아무리 큰 소리로 웃어도 슬플 뿐인걸.”

“알겠습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혹 일부러 웃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여쭤본 것입니다.”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지만, 사유하는데 그것도 장애물(障碍物)이 될 수가 있거든. 그래서 괜히 기운을 소모하지 않는 거야.”

“예? 그건 의외인데요?”

“웃는데도 기운이 빠져나가는 거야. 히죽거리고 웃는 사람은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

“역시, 엄격하십니다. 하하~!”

“그렇다면 상학(相學)은 더 배울 것이 없겠지?”

“에구, 무슨 말씀을요. 이제 시작인걸요. 또 무엇을 가르쳐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걸요.”

“사실은 핵심은 다 전해 준 것 같은걸.”

“예? 겨우 세 가지를 배웠을 뿐인데요?”

“백 가지를 배운다고 해도 정작 쓸모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고, 한 가지만 배웠는데도 무궁무진한 활용처(活用處)를 찾는다면 이미 다 배운 거라고 해도 되는 거야.”

“왠지 누님께서 가르쳐 주시기가 귀찮으신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듭니다.”

“그럴 리가 있나. 이제부터는 온갖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그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 봐.”

“아, 숙제(宿題)를 남겨 주시는군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시니 감격입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것이 있을까?”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더러는 우연도 있기야 하겠지. 그러나 대부분의 모습들과 행동은 모두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말을 하면서 상인화는 두 손을 깍지 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아, 방금 누님의 말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어? 뭘?”

“이제 그만하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손을 깍지 꼈다는 것은, 할 말이 없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만하고 일어나라는 뜻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정말? 오호~! 기특한걸.”

“진심 그러한 마음이셨습니까?”

“맞아. 원래 아기는 자꾸 더 달라고 보채지만, 엄마는 얼마만큼을 줘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나 할까?”

“아하~! 그렇군요. 이제야 누님께서 왜 말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지를 알겠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공부는 잘되고 있는 거야.”

“또 심기(心器)를 더 키워서 오면 추가로 감로법문을 주실 거잖아요?”

“맞아. 오늘 이야기를 담기에는 이미 한계가 온 거야.”

“그런 것이었군요.”

“뭐든 약간 아쉬운 듯이 하는 것이 좋은 거야. 음식을 먹어도 7할만 먹고, 말을 해도 7할만 말하고, 잠을 자도 7할만 자면 되거든.”

“마무리를 하면서도 진리를 설하시는 누님이네요. 멋지고도 아름답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갔다가 다음에 또 내가 보고 싶거든 와.”

“그런데, 왜 누님이 보고 싶어질까요?”

“그야 아직 얻어먹을 것이 있어서이겠지?”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야 왜 사랑하는지를 물어야지.”

“예? 누구에게요?”

“누구긴 누구야, 자신에게 물어야지.”

“누님의 지혜와 품성이 사랑스러워서 그렇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사랑하면 되지.”

“그다음에는요?”

“뭐가 그다음이야?”

“사랑하는 사이라면 신체의 거리도 더 다가갈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착각이라고 하는 거야.”

“예? 착각이라니요? 사랑을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까?”

“몸이 다가가서 얻는 것은 자손인 거야.”

“자손은 아니라도 얼마든지 손도 잡고 입도 맞출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어. 다만 상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허용하지 않으면 상처(傷處)가 되겠네요.”

“좋게 시작한 인연이 상처를 남기면 될까?”

“내일은 상처가 될지라도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을 적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정신 차리는 것이 옳은 거야.”

“그렇다면 제가 누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정신을 잃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아이를 낳을 목적이 아니라면 이미 충분히 가깝잖아?”

“그래도 뭔가 허전한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욕망(慾望)이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그건 착각이야. 천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지.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욕망의 소리만 들리는 것에 속는 것이니까.”

“아, 아까 말씀하신 골동품 상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맞아, 탐하는 마음이 앞서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거든.”

“정말 누님은 빈틈이 없으십니다. 하하~!”

“이 정도로 말하면 알아들을 동생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방으로 들이지도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누님께서는 제가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될 것이라는 점도 이미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그야 처음에 보고 알았지.”

“정말 핵심을 꿰뚫고 있는 누님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요?”

“동생보다 쪼오끔 앞서가고 있을 뿐이야.”

그러면서 상인화는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의 첫마디를 눌러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니, 누님~! 하하하~!”

“왜? 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거야.”

“참,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셔봐.”

“자원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으로 생각하고 있지.”

“예? 그게 다입니까?”

“그래, 뭐가 또 있어야 하나?”

“혹시 연인(戀人)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없을까요?”

“그야 직접 물어보렴.”

“그걸 어떻게 물어봅니까? 괜히 물었다가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무안(無顔)하겠습니까?”

“그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제자로 아껴줘.”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가끔은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요.”

“자원이 아내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 봐. 동생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자원이 무슨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어?”

“아, 그렇다면 제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까?”

“당연하지 않아?”

“누님의 생각에 자원과 혼인을 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봐. 그러니까 그 마음은 속에 간직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니까. 공부에 제일 큰 마장(魔障)이 뭔지 알아?”

“가장 큰 마장이 뭐죠?”

“색욕(色慾)이야~!”

“그야 알고 있습니다만, 나이가 되어서 결혼하는 것도 색욕이라고 해야 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동생은 자신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어?”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겨우 공부한다는 이유로 이러게 밥을 얻어먹고 있는 처지인걸요.”

“아무 소리도 말고 3년만 열심히 공부해봐. 무슨 길이든 보일 거야.”

“그럼 되겠습니까?”

“그럼. 뭐가 돼도 될 거니까 그다음에 생각해.”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누님~!”

“고맙긴. 그럼 또 담에 봐.”

“편히 계세요. 누님 덕분에 나날이 성장하는 동생은 이만 물러갑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우창을 상인화는 미소로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