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제18장 면상의 기본/ 9. 실체(實體)의 작용(作用)
작성일
2017-05-1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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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제18장 면상(面相)의 기본(基本)
9. 실체(實體)의 작용(作用)
말하는 소리와 그 소리를 듣는 것에 대해서 생각에 잠긴 우창에게 상인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인들 그 의미가 없잖아?”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듣는 귀는 온전하냔 말이야.”
“예? 왜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모든 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들리는 걸까?”
“그야 특별히 귀머거리가… 아차, 귀가 들리는 사람이라면 같을 것 같습니다.”
“동생의 눈치가 나날이 늘어가는구나.”
“그럼요. 배웠으면 바로 활용을 해야 하니까요. 하마터면 귀머거리라고 할 뻔했잖습니까. 하하~!”
“소리가 잘 들린다고 해서 내가 듣는 소리가 동생이 듣는 것과 같다고 단언(斷言)을 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습니다만…….”
“동생, 생각을 해 봐. 어느 소녀가 사랑에 빠져서 황홀한 기분으로 구름을 밟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일 때에 꾀꼬리 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들릴까?”
“그야,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노래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어느 여인이 남편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도 않는데 시어머니는 들들 볶아서 고통이 극심할 적에 꾀꼬리의 소리가 들린다면 같은 느낌일까?”
“그건 다르겠습니다.”
“소리를 듣는 귀는 다 같은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그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뜻입니까?”
우창의 말을 듣고 상인화는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누님이 생각해도 제가 참 한심하지요?”
“아니, 재미있지 왜 한심해.”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는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것 같았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듣느냐는 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느꼈지?”
“예, 맞습니다. 괜히 상을 본다고 나불댈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지금 마악 깨달았습니다.”
“어? 그것까지 생각했다면 오늘 수확은 짭짤~한 거네?”
“짭짤이 다 뭡니까? 차고 넘칩니다.”
“그렇다면 상(相)을 잘 본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여태까지는 그 방법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까 그것을 보는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선입견(先入見)을 없애야만 올바른 면상(面相)을 살필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닦아야지요.”
“마음을 닦는다는 건 뭐지?”
“평상심(平常心)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이 이제야 뭔가를 깨달은 것 같네.”
“얼굴을 바라보는 자신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상대방을 평가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조차 합니다.”
“누구나 처음엔 그래.”
“누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새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마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 주니까 그것도 가능한 거야.”
“눈빛을 본다는 것도 우선 바라보는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달았습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그렇게 되면 눈빛으로 더 많은 것을 나타내고자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의 눈과 일반인의 눈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당연하겠습니다. 더욱 복잡한 의미가 전달될 것 같습니다.”
“맞아, 엄마는 말을 못 하는 아이의 눈빛과 대화를 하는 거야.”
“과연 그렇겠습니다. 자신의 눈, 자신의 귀를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두지 않는다면 올바른 판단은 아예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남의 얼굴을 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명백하게 알겠습니다.”
“동생은 골동품(骨董品)을 감정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어?”
“아뇨, 못 들어 봤습니다.”
“골동품이 말을 할까?”
“물건이 어찌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골동품의 전문가에게는 그 말이 들린다는 거야.”
“누님의 말씀이 다 옳습니다만, 그것은 동의하기 어렵겠습니다.”
“아니, 왜?”
“물건이 말을 한다는 것은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럴까?”
“예?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제가 뭘 잘못 알고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뭐, 잘못 알고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깊이 알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해 둘까?”
“가르쳐 주십시오. 귀에 담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귀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봤어?”
“금시초문입니다. 무슨 귀가 둘이나 됩니까?”
“심금(心琴)은 뭐지?”
“마음속의 거문고가 아닙니까?”
“마음속에 거문고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말이 안 되… 엇? 말이 되죠.”
“마음속에 거문고도 있는데 귀도 하나쯤 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제가 면상(面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맞기는 한 거죠?”
“맞아. 틀림없이 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그런데 왜 심오한 철학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까요?”
“그야 동생이 철학자니까 그렇지.”
“들을수록 더욱 깊어져서 나중에 출구도 찾지 못할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요?”
“출구는 애초에 없으니까.”
“예? 아하하~! 또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하하~!”
“목소리는 귀로 듣지만, 소리 없는 소리는 뭘로 들어야 할까?”
“그야 마음의 귀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골동품을 보는 사람은 그 주인의 말을 귀로 들으면서 골동품의 말은 심이(心耳)로 듣는다는 거야.”
“이제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다. 무정물(無情物)도 말을 한다는 것이 그 뜻이었군요.”
“손끝만 봐도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부부지간(夫婦之間)이듯이 골동품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어야 골동품을 제대로 감정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런데 왜 특히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인지요?”
“원래 골동품은 고가의 제품이잖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자칫 위조(僞造)된 것을 수천 년이 된 것으로 알고 잘못 감정하게 되면 그 손실이 얼마나 크겠느냔 말이야.”
“아하~! 그렇겠습니다.”
“처음에 물건이 맘에 들게 되면 그 유혹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야. 원래 사기꾼들은 그러한 것을 노리지.”
“마음에 탐심(貪心)이 생기면 하찮은 모조품(模造品)도 명품(名品)으로 보인단 말씀이죠?”
“맞아.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수두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잖아.”
“수두자국이 뭐죠?”
“보통 그렇게 생긴 얼굴을 곰보라고도 불러.”
“아, 누님의 교묘한 말솜씨에 항상 감탄합니다. 하하~!”
“마음을 닦지 못하면 물건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사람의 목소리와 눈빛을 어떻게 읽고 판단할 수가 있겠어?”
“저는 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역시 공부는 스승을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바위도 법문하고, 나무도 진리를 설한다잖아. 그러한 것을 들을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어찌 사람의 내면을 살핀다고 할 수가 있겠어?”
“그 말씀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뼛속 깊이 아로새겨야 할 금언(金言)이라고 하겠습니다.”
“동생이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은걸.”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줄도 모르고, 눈이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항상 모든 이치에는 핵심(核心)과 주변(周邊)이 있는 법이야. 그래서 핵심을 얻지 못하면 백 년을 공부해도 헛된 노력에 불과한 거지.”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무슨 말?”
“목격도존(目擊道存)이라는 말입니다.”
“아하~! 그건 도인에게 해당하는 말인데?”
“맞습니다. 도를 아는 사람은 눈빛이 부딪치는 곳에 도가 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눈, 코, 귀, 입의 생김새를 보면서 길흉을 풀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린아이 장난과 같은지를 알겠습니다.”
“지금 동생의 목소리에 생동감(生動感)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아, 그렇습니까?”
“눈빛에서는 새로운 것을 바라본 경이로움이 넘쳐나고 있거든.”
“오호~! 참으로 감탄의 연속입니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알려 줄까?”
“지금 제가 누님의 말씀에 대해서 뭔들 사양(辭讓)하겠습니까?”
“다음으로 봐야 할 것은 손이야.”
“손은 얼굴이 아니잖습니까?”
“물론 얼굴이 아니지만, 얼굴 대신이라는 의미에서는 매우 중요한 관찰점이기도 한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몸에서 얼굴과 함께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무엇일까?”
“얼굴에 접촉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론이야.”
“그야 당연히 손이죠. 눈, 귀, 코, 입에 항상 손이 왔다 갔다 하잖습니까?”
“그래서 손의 모습도 목소리와 눈빛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거야.”
“듣고 보니 일리가 있겠습니다.”
“서장(西藏)의 화상들은 손으로만 말하는 법도 알고 있어.”
“그것을 수화(手話)라고 합니까?”
“동생도 들어봤구나. 맞아. 손짓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혹시, 그래서 여인의 손이 섬섬옥수(纖纖玉手)인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가요?”
“맞아, 말로 다 못하는 것은 손으로 대신하니까. 짧고 굵은 손이 표현하는 것과, 가늘고 긴 손이 표현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겠지?”
“느낌이 팍~ 옵니다.”
“그래서 손은 두 번째의 입이라고 하는 거야.”
“눈빛은 천어(天語)이고, 목소리는 인어(人語)라고 한다면, 손은 지어(地語)가 되는 거야. 외부와 소통하는 천지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천지인을 또 그렇게 가져다 붙입니까? 참으로 교묘한 누님의 말 재능이십니다. 하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실한 것인지는 눈빛을 보면 알고, 그 사람이 듣고 있는 것이 제대로인지를 알려면 손을 보면 되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이치입니까?”
“귀는 소리를 들을 때나 안 들을 때나 항상 열려 있고, 움직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잖아?”
“그렇습니다.”
“눈은 말하는 것이고, 목소리도 말하는 것이라면 손도 말하는 것이니 사람에게 말하는 기관은 세 곳이 되는 거야.”
“누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저는 여태까지 무슨 공부를 했나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태 한 공부가 아니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겠어?”
“예? 그게 무슨 관계가 됩니까?”
“이런~! 쯧쯧~!”
“왜요? 제가 멍청한 말씀을 드렸군요?”
“왜 공부하는 것인지를 아직도 몰랐단 말이야?”
“그야 모르는 것을 배우려고요.”
“에구~! 다시 한 번 쯧쯧이야.”
“그렇습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누님.”
“공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야. 단지 심기(心器)를 키우는 것뿐이거든.”
“심기를 키운다면 마음의 그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마음의 그릇. 그게 무슨 뜻인가요?”
“한 되의 물을 담으려면 그릇은 얼마나 커야 할까?”
“그야 아무리 작아도 한 되는 되어야 하겠습니다.”
“도인의 그릇은 열 섬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알아들으려면 그릇도 그만큼은 되어야 하겠지?”
“그렇겠습니다.”
“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그릇을 그만큼이나 키웠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담기는 거야.”
“예? 정녕 그런 것이었습니까?”
“당연하잖아~!”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 효과까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슨 공부라도 하면 그릇은 커지는 거야.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담을 수가 있지.”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담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네요?”
“아무리 작은 그릇이라도 그나마 비어 있으면 그만큼은 담기겠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지요?”
“간장 종지만한 그릇에 그나마 온갖 아만(我慢)과 사념(思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단 한 마디도 담길 자리가 없단 말이야.”
“…….”
우창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슴에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서 전신을 진동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벅차오르는 감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고, 화산이 터지는 것과 같다고 해도 좋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을 말로 하려다가 도로 삼켜버렸다. 무슨 말로도 그 느낌을 상인화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 모습을 본 상인화가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
“제가 무슨 말을 못 하고 있는지도 감지하셨습니까?”
“벅찬 감동을 말할 방법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거잖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상인화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짜릿한 진동을 느꼈다. 그러고는 새삼 상인화의 모습을 우러러봤다.
9. 실체(實體)의 작용(作用)
말하는 소리와 그 소리를 듣는 것에 대해서 생각에 잠긴 우창에게 상인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인들 그 의미가 없잖아?”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듣는 귀는 온전하냔 말이야.”
“예? 왜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모든 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들리는 걸까?”
“그야 특별히 귀머거리가… 아차, 귀가 들리는 사람이라면 같을 것 같습니다.”
“동생의 눈치가 나날이 늘어가는구나.”
“그럼요. 배웠으면 바로 활용을 해야 하니까요. 하마터면 귀머거리라고 할 뻔했잖습니까. 하하~!”
“소리가 잘 들린다고 해서 내가 듣는 소리가 동생이 듣는 것과 같다고 단언(斷言)을 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습니다만…….”
“동생, 생각을 해 봐. 어느 소녀가 사랑에 빠져서 황홀한 기분으로 구름을 밟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일 때에 꾀꼬리 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들릴까?”
“그야,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노래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어느 여인이 남편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도 않는데 시어머니는 들들 볶아서 고통이 극심할 적에 꾀꼬리의 소리가 들린다면 같은 느낌일까?”
“그건 다르겠습니다.”
“소리를 듣는 귀는 다 같은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그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뜻입니까?”
우창의 말을 듣고 상인화는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누님이 생각해도 제가 참 한심하지요?”
“아니, 재미있지 왜 한심해.”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는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것 같았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듣느냐는 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느꼈지?”
“예, 맞습니다. 괜히 상을 본다고 나불댈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지금 마악 깨달았습니다.”
“어? 그것까지 생각했다면 오늘 수확은 짭짤~한 거네?”
“짭짤이 다 뭡니까? 차고 넘칩니다.”
“그렇다면 상(相)을 잘 본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여태까지는 그 방법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까 그것을 보는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선입견(先入見)을 없애야만 올바른 면상(面相)을 살필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닦아야지요.”
“마음을 닦는다는 건 뭐지?”
“평상심(平常心)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이 이제야 뭔가를 깨달은 것 같네.”
“얼굴을 바라보는 자신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상대방을 평가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조차 합니다.”
“누구나 처음엔 그래.”
“누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새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마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 주니까 그것도 가능한 거야.”
“눈빛을 본다는 것도 우선 바라보는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달았습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그렇게 되면 눈빛으로 더 많은 것을 나타내고자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의 눈과 일반인의 눈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당연하겠습니다. 더욱 복잡한 의미가 전달될 것 같습니다.”
“맞아, 엄마는 말을 못 하는 아이의 눈빛과 대화를 하는 거야.”
“과연 그렇겠습니다. 자신의 눈, 자신의 귀를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두지 않는다면 올바른 판단은 아예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남의 얼굴을 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명백하게 알겠습니다.”
“동생은 골동품(骨董品)을 감정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어?”
“아뇨, 못 들어 봤습니다.”
“골동품이 말을 할까?”
“물건이 어찌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골동품의 전문가에게는 그 말이 들린다는 거야.”
“누님의 말씀이 다 옳습니다만, 그것은 동의하기 어렵겠습니다.”
“아니, 왜?”
“물건이 말을 한다는 것은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럴까?”
“예?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제가 뭘 잘못 알고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뭐, 잘못 알고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깊이 알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해 둘까?”
“가르쳐 주십시오. 귀에 담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귀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봤어?”
“금시초문입니다. 무슨 귀가 둘이나 됩니까?”
“심금(心琴)은 뭐지?”
“마음속의 거문고가 아닙니까?”
“마음속에 거문고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말이 안 되… 엇? 말이 되죠.”
“마음속에 거문고도 있는데 귀도 하나쯤 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제가 면상(面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맞기는 한 거죠?”
“맞아. 틀림없이 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그런데 왜 심오한 철학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까요?”
“그야 동생이 철학자니까 그렇지.”
“들을수록 더욱 깊어져서 나중에 출구도 찾지 못할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요?”
“출구는 애초에 없으니까.”
“예? 아하하~! 또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하하~!”
“목소리는 귀로 듣지만, 소리 없는 소리는 뭘로 들어야 할까?”
“그야 마음의 귀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골동품을 보는 사람은 그 주인의 말을 귀로 들으면서 골동품의 말은 심이(心耳)로 듣는다는 거야.”
“이제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다. 무정물(無情物)도 말을 한다는 것이 그 뜻이었군요.”
“손끝만 봐도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부부지간(夫婦之間)이듯이 골동품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어야 골동품을 제대로 감정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런데 왜 특히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인지요?”
“원래 골동품은 고가의 제품이잖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자칫 위조(僞造)된 것을 수천 년이 된 것으로 알고 잘못 감정하게 되면 그 손실이 얼마나 크겠느냔 말이야.”
“아하~! 그렇겠습니다.”
“처음에 물건이 맘에 들게 되면 그 유혹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야. 원래 사기꾼들은 그러한 것을 노리지.”
“마음에 탐심(貪心)이 생기면 하찮은 모조품(模造品)도 명품(名品)으로 보인단 말씀이죠?”
“맞아.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수두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잖아.”
“수두자국이 뭐죠?”
“보통 그렇게 생긴 얼굴을 곰보라고도 불러.”
“아, 누님의 교묘한 말솜씨에 항상 감탄합니다. 하하~!”
“마음을 닦지 못하면 물건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사람의 목소리와 눈빛을 어떻게 읽고 판단할 수가 있겠어?”
“저는 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역시 공부는 스승을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바위도 법문하고, 나무도 진리를 설한다잖아. 그러한 것을 들을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어찌 사람의 내면을 살핀다고 할 수가 있겠어?”
“그 말씀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뼛속 깊이 아로새겨야 할 금언(金言)이라고 하겠습니다.”
“동생이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은걸.”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줄도 모르고, 눈이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항상 모든 이치에는 핵심(核心)과 주변(周邊)이 있는 법이야. 그래서 핵심을 얻지 못하면 백 년을 공부해도 헛된 노력에 불과한 거지.”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무슨 말?”
“목격도존(目擊道存)이라는 말입니다.”
“아하~! 그건 도인에게 해당하는 말인데?”
“맞습니다. 도를 아는 사람은 눈빛이 부딪치는 곳에 도가 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눈, 코, 귀, 입의 생김새를 보면서 길흉을 풀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린아이 장난과 같은지를 알겠습니다.”
“지금 동생의 목소리에 생동감(生動感)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아, 그렇습니까?”
“눈빛에서는 새로운 것을 바라본 경이로움이 넘쳐나고 있거든.”
“오호~! 참으로 감탄의 연속입니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알려 줄까?”
“지금 제가 누님의 말씀에 대해서 뭔들 사양(辭讓)하겠습니까?”
“다음으로 봐야 할 것은 손이야.”
“손은 얼굴이 아니잖습니까?”
“물론 얼굴이 아니지만, 얼굴 대신이라는 의미에서는 매우 중요한 관찰점이기도 한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몸에서 얼굴과 함께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무엇일까?”
“얼굴에 접촉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론이야.”
“그야 당연히 손이죠. 눈, 귀, 코, 입에 항상 손이 왔다 갔다 하잖습니까?”
“그래서 손의 모습도 목소리와 눈빛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거야.”
“듣고 보니 일리가 있겠습니다.”
“서장(西藏)의 화상들은 손으로만 말하는 법도 알고 있어.”
“그것을 수화(手話)라고 합니까?”
“동생도 들어봤구나. 맞아. 손짓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혹시, 그래서 여인의 손이 섬섬옥수(纖纖玉手)인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가요?”
“맞아, 말로 다 못하는 것은 손으로 대신하니까. 짧고 굵은 손이 표현하는 것과, 가늘고 긴 손이 표현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겠지?”
“느낌이 팍~ 옵니다.”
“그래서 손은 두 번째의 입이라고 하는 거야.”
“눈빛은 천어(天語)이고, 목소리는 인어(人語)라고 한다면, 손은 지어(地語)가 되는 거야. 외부와 소통하는 천지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천지인을 또 그렇게 가져다 붙입니까? 참으로 교묘한 누님의 말 재능이십니다. 하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실한 것인지는 눈빛을 보면 알고, 그 사람이 듣고 있는 것이 제대로인지를 알려면 손을 보면 되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이치입니까?”
“귀는 소리를 들을 때나 안 들을 때나 항상 열려 있고, 움직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잖아?”
“그렇습니다.”
“눈은 말하는 것이고, 목소리도 말하는 것이라면 손도 말하는 것이니 사람에게 말하는 기관은 세 곳이 되는 거야.”
“누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저는 여태까지 무슨 공부를 했나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태 한 공부가 아니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겠어?”
“예? 그게 무슨 관계가 됩니까?”
“이런~! 쯧쯧~!”
“왜요? 제가 멍청한 말씀을 드렸군요?”
“왜 공부하는 것인지를 아직도 몰랐단 말이야?”
“그야 모르는 것을 배우려고요.”
“에구~! 다시 한 번 쯧쯧이야.”
“그렇습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누님.”
“공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야. 단지 심기(心器)를 키우는 것뿐이거든.”
“심기를 키운다면 마음의 그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마음의 그릇. 그게 무슨 뜻인가요?”
“한 되의 물을 담으려면 그릇은 얼마나 커야 할까?”
“그야 아무리 작아도 한 되는 되어야 하겠습니다.”
“도인의 그릇은 열 섬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알아들으려면 그릇도 그만큼은 되어야 하겠지?”
“그렇겠습니다.”
“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그릇을 그만큼이나 키웠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담기는 거야.”
“예? 정녕 그런 것이었습니까?”
“당연하잖아~!”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 효과까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슨 공부라도 하면 그릇은 커지는 거야.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담을 수가 있지.”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담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네요?”
“아무리 작은 그릇이라도 그나마 비어 있으면 그만큼은 담기겠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지요?”
“간장 종지만한 그릇에 그나마 온갖 아만(我慢)과 사념(思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단 한 마디도 담길 자리가 없단 말이야.”
“…….”
우창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슴에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서 전신을 진동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벅차오르는 감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고, 화산이 터지는 것과 같다고 해도 좋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을 말로 하려다가 도로 삼켜버렸다. 무슨 말로도 그 느낌을 상인화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 모습을 본 상인화가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
“제가 무슨 말을 못 하고 있는지도 감지하셨습니까?”
“벅찬 감동을 말할 방법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거잖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상인화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짜릿한 진동을 느꼈다. 그러고는 새삼 상인화의 모습을 우러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