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망의 인연 (1992년)
♠ 홈페이지 제작 이전 (역학동호회 시절)
♠ 인터넷에 오픈 (1997년 10월)
♠ 1차 업그레이드 (1997년 12월)
♠ 2차 업그레이드 (1998년 봄)
♠ 3차 업그레이드 (1998년 가을)
♠ 역학전문쇼핑몰 개설 (2005년 여름)

♠ 서버이전과 카드결재 도입 (1999년 2월 4일)
♠ 더 넓은 공간으로의 이사 (2000년 12월 16일)
♠ 유료회원제 운영 (회원제-1년 단위)
♠ 서울에 낭월명리학당 개설과 폐쇄
♠ 전국에 40여개의 지부 증설과 해지
♠ 현공풍수학 도입과 중지(2005년 5월)
♠ 동영상강의실 개설과 확장
……기타추가된 내용은 아래를 봐주세요

1. 통신망의 인연

일단 대우의 386컴퓨터 시대로부터 시작이 된 낭월이의 컴퓨터 인연이 씨앗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당시(1992년)에 386 SX에 2매가 램을 달고 하드는 200메가였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운영체제는 MS-DOS 5.0 버전에 한글윈도우 3.0이 깔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프린터를 함께 구입했는데, 당시에 도트프린터를 80만원에 샀어요. 대우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물건을 모르면 돈을 많이 주라고 한 말이 여기에서만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더군요. 그대로 바가지를 쓰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컴퓨터와 관련해서는 대우를 쳐다 보지도 않는 알레르기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 당시의 컴퓨터 하드웨어의 상황은 386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가려고 하던 와중이었던 모양인데, 당시 서니암 시절의 상황으로써는 부도를 각오하고 구입한 물건이었으니까 그 심정을 짐작하실 만한 벗님도 있으실 걸로 봅니다. 여하튼 그 놈을 사다 놓고서는 부지런히 매달렸지요. 그래서 매월 한번씩 보내는 엽서를 찍기도 하고 간단한 문서도 만들면서 아래한글 2.0 버전과도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전문가 버전도 당시 거금을 내고 구입했지요. 불법카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선배도 없었으니까 도리 없었는데,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어서 그냥 정품을 사용한 셈입니다.

그러다가 통신망에 연결을 할 수도 있다는 글을 윈도우3.1의 사용설명서에 터미널 이라고 하는 아이콘을 발견하고나서 일은 점차로 복잡해 지더군요. 그걸로 통해서 천리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천리안에서 운영하던 동호회 중에서 초보자들의 모임에 가입을 해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통신망의 매력에 슬슬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봐야겠군요. 그러다가 정액제의 매력에 이끌려서 하이텔로 사용처를 바꾼 것은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었지요.

바둑동호회에서 1년 정도 바둑을 즐겼습니다. 다호라 리그전에도 두어번 출전하고, 그 과정에서 물개조의 우승을 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하수로써의 실력은 인정을 받았는데, 그렇게 신선놀음을 하다가 한의사 통신 동호회에서 역학동호회에 대한 글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낭월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셈입니다. 이때가 아마도 계유년(1993)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최초의 명리강의에 해당하는 왕초보사주학의 입문편에 해당하는 원고들이 한방동의 [역학모임] 게시판에서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당시에 함께 시간을 보냈던 많은 회원들이 오래된 지기로 남아서 언제나 만나면 반갑기만 하지요. 참 의미있는 모임이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역학동호회는 하이텔에서 동호회로써 출범을 하게 되었고, 또 과분하게도 초대와 2대의 대표시삽이 되어서 운영자의 중임을 맡게 되었던 것은 일복이 많았던 탓으로 돌리고 싶네요. 아마 시기는 갑술년(1994) 가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구성을 짜고 만남을 거쳐서 회의를 한 후에 비로소 정식으로 [하이텔 역학동호회(go ohaeng)]가 출범을 하게 된 것이지요. 국내에서는 아마도 최초로 만들어진 역학관련 통신동호회였을 겁니다. 여기에 대한 회원들의 자부심도 상당했지요. 그 후로 여기저기에서 많은 역학관련 통신모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많은 벗들을 역학동호회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고 밤을 새워서 토론도 나누고 했지요.

하이텔 역학동호회는 기묘년(1999)으로 출범 5년째를 맞이하고 있네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정진하는 모습들을 변함없이 만날 수가 있습니다. 매년 겨울과 여름에 갖는 연수회도 역시 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들이지요. 근래에 낭월이는 시간이 분주하다는 일로 마음만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시간 들이었습니다. 혹 하이텔을 사용하신다면 동호회에 가입을 권유 드립니다.

2. 홈페이지 제작 이전

처음에는 텍스트화면이 당연한 통신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사이에 그래픽 화면으로 바뀌게 되었군요. 익스플로러가 나타나고 네스케이프가 등장을 하면서 그렇게 급변하게 된 모양입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윈도우95를 몇 번이나 다시 깔았는지 모르겠네요. 전화접속 불량 메시지는 너무나 지겹게 만나는 단골 메뉴였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속을 썩어가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게 되면서 또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인터넷과 친해지면서 푸른화면에 하얀 글씨 보다는 보다 화려한 웹 브라우저가 더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인터넷으로 방향을 바꿨지요.

3. 최초로 인터넷에 오픈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부터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WWW가 뭔지부터 이해를 해야 이놈을 의지해서 뭘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다 보니까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를 주는 놈은 컴퓨터더군요. 연지님을 꼬드기고 속여서 결과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몇차례의 눈물겨운(?) 시도를 한 끝에 지금은 펜티엄2 MMX 166에 32메가 램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또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한 끝에 노트북도 한 대 구입을 했지요. 물론 연지님은 잘도 속아 주시는데 아마도 모두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홈페이지에 대해서 엄두를 내게 된 것은 남계선생 덕분입니다. 그 분이 맨처음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서는 재미있다고 하기에 그런가 싶어서 하이텔에 계정을 확보하고서 index.html을 띄워 올렸지요. 이것이 처음으로 인연이 된 것이고, 그 때가 아마도 정축년(1997) 여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 놓고서는 그래픽과 텍스트의 사이에서 많은 시간을 작업으로 보냈습니다. 지금의 대다수 문서들은 당시에 제작된 그대로가 많습니다. 특히 명리공부방에 있는 자료들 중에서 초기에 만들어진 것은 그렇지요.

여하튼 2~3개월 작업을 한 끝에 정식으로 야후코리아에 등록을 시도한 것은 그해 10월 이었으니까 오픈을 했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리고 방문객 카운터는 1번으로 기록을 하면서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당시의 이름은[낭월명리연구실] 이었고, 하이텔에서 운영을 했기 때문에 주소는
http://www.hitel.net/~nangweul/ 이 됩니다. 아직도 이 주소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주소가 여기저기 역학사이트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등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등록을 시켜주는 벗님들이 있어서 또한 힘을 얻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터넷에 낭월이가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2006년8월추가) 하이텔이 없어진 상황에서 검색을 해보니까 하이텔이 파란으로 바뀌면서 삭제가 되었던가 싶습니다. 추억의 도메인으로 남게 되었네요.

4. 1차 업그레이드 작업

맨 처음에는 텍스트위주로 작업을 했습니다만, 남의 사이트를 돌아 다니면서 점차로 낭월이 홈페이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중노동을 한 긑에 그래픽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서 일주일 정도는 기분이 좋았지요. 그런데 또 이번에는 속도가 맘에 들지를 않아서 되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거치면서 그나마도 발전을 하는가 봅니다. 여하튼 당시에는 거의 모든 시간들을 인터넷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12월 경에 비로도 약간 짜임새가 있는 버전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남의 손은 전혀 빌리지 않았지요. 남에게 줄 돈도 없었지만, 그보다는 스스로 배우면서 만드는 것이 더 재미가 있었던 탓이었을 겁니다.

5. 2차 업그레이드 작업

단순한 보여주는 홈페이지에 게시판과 방명록을 달아야 한다는 생각은 홈페이지 관련 서적들을 사 나르면서 알 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키의 게시판]을 다운 받아서 설치하고 잘 되지 않아서 다시 또 지우고 하기를 많은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방명록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생각을 해보면 주로 경로 문제에서 고생을 했고, 또 chmod(뭔말인지 모르세요? 그럼 홈페이지가 없으시다고…하하~)로 인해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cgi에 대한 인연도 만들어 갔지요. 그렇게 해서 그런대로 홈페이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는 약간 전반적인 홈페이지의 구조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된 다음이었으므로 대화방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6. 3차 업그레이드 작업

3차에서는 대대적으로 도메인 네임을 확보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웹사이트의 면모로 승격한 셈이군요. 적어도 갈매기(~) 표를 주소에서 떼어 버릴 수가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큰 마음 먹고 인터닉에 도메인을 신청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웹호스팅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아주 저렴한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얻은 이름은 []이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계룡산 감로사라고 하는 이름으로 오픈을 했었는데, 시작이 반이라고…. 급기야에는 하이텔에 있는 홈페이지를 이곳으로 이전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검색기에도 등록을 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한번 링크에 올리기는 쉬운데 수정을 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이트에서는 그대로 예전 주소가 링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오시는 벗님을 서운하게 할 수가 없어서 에전의 주소도 그대로 관리하고 있지요.

인터닉에 도메인이 등록되고, 정식 이름이 나오게 되면서 이제는 전문가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누구든지 할 일이 마땅치 않다고 하면 인터넷을 살펴보라고 권유합니다. 뭔가 일꺼리가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여하튼 인터넷은 넓고 가능성은 아마도 많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름도 낭월명리연구실에서 [낭월명리학당]으로 변경을 했습니다. 이제는 배움터가 되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겨서이지요. 그러니까 연구실은 혼자 실험하면서 연구하는 곳이라는 의미였다면 학당은 그 공부를 나눠드리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될까 싶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주소로 시작을 한 서버에서 윈도우NT에서 리눅스 버전을 병행하면서 저렴한 비용이 매력적이어서 변경하는 바람에 또 한동안 불편사항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메일이 증발되고 반송되는 바람에 많은 벗님들이 불편을 겪었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회원제의 운영]이 시작된 것이지요. 감로사에서 공부를 하고 싶으신 벗님은 와서 하시면 되지만, 그렇게도 못하는 경우에는 자료를 보내주고 질문을 받아주면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는 의견이 자주 나오게 되면서 해결방법으로 회원전용 페이지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은 순서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회원관리의 문제가 또 속을 썩여서 이번에는 아예 cgi 관련 서적을 붙잡고 살았습니다만, 역시 맘대로 되지를 않아서 천상 전문가의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회원관리의 메뉴가 추가되었지요. 이때가 아마도 무인년(1998) 가을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또 한단계 발전을 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꾸준한 발전을 하게 된 이면에는 항상 관심을 갖고 살펴봐 주시는 벗님들의 성원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메일함에는 아침마다 수십통의 메일이 쌓여 있거든요. 그리고 그 메일을 읽으면서 웹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또한 재미라고 생각이 되네요. 성원에 항상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네스케이프를 사용했는데, 어느사이 익스플로러로 바뀌었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익스플로러는 메일계정을 다중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 과감하게 바꾸도록 유도를 하는 군요. 네스케이프의 메신저에는 하나의 계정만 등록이 가능하거든요. 하이텔 메일이랑 감로콤 메일을 함께 써야 하는 낭월이로써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메일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지요.

7. 서버이전과 신용카드 결재 도입

비교적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불편없이 사용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인가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대화방을 운영하면 안 되니까 당장 없애달라고 하는 서버로 부터의 일갈이었습니다. 그 메일을 본 순간 그만 기분이 확 잡쳐 버렸지요. 낭월이에게는 대화방도 하나의 기능으로써 중요한데, 없애라고 하는 것에는 큰 불만을 발생시키는 요소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주더라도 대화방에 대해서 간섭을 받지 않는 서버를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물색을 한 끝에 서버의 이전을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고 이전을 마친 것은 바로 얼마 전인 기묘년(1999) 2월 4일 이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변경된 서버에서 적응을 하느라고 다소 불안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안정이 된 것으로 보이네요.

또 한가지는 상담실을 찾아 주시는 손님이나 공부를 원하시는 회원 님들께서 입금을 하시기가 불편하신 경험을 살려서 신용카드로 결재를 하는 시스템을 설치하게 된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발전의 과정으로 봐야 하겠네요. 이 시스템은 SSL 보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기능적인 면에서는 별로 손색이 없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외국에서 입금을 시키게 될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실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 계시는 벗님들이 개시를 해 주셨네요. 의외로 반응이 좋다고 생각 됩니다.
(수정 : 잠시 중단되었던 카드시스템을 2001년부터 다시 도입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8. 더 넓은 공간으로의 이사 (2000.12.16)

오랫동안 사용하던 안정된 서버의 이용도 용량이 넘치면서 작별을 고하게되었습니다. 이제 보다 넓은 공간을 향해서 찾아나섰지요. 그 결과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사짐을 옮긴 것이 12월 16일입니다. 이번에는 상당히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아마도 한참은 잊어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벗님들의 방문과 활동이 더욱 왕성해 진다면 아마도 또 이사를 해야 하겠지요. 물론 행복한 타령이네요.

9. 유료회원제 운영 (회원제-1년 단위)

동영상을 통해서 공부하실 방법을 제공해 드리는 방법입니다. 기초에 해당하는 입문반부터 실전반까지 동영상을 보시면서 궁금한 점은 게시판으로 질문을 하실 수가 있는 방식입니다. 감로사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실 여건이 되지 못하시는 경우에 이용하시면 도움이 되시겠습니다.

10. 서울에 낭월명리학당 개설 (2000년 12월 26일)과 폐쇄

그 동안 감로사에서만 공부를 하셨는데, 이제는 서울지역에서도 동참을 하시도록 개설한 공간입니다.

[2005년 10월 부로 사정에 의해서 폐쇄가 되었습니다.]

11. 전국에 40여개의 지부 증설 (2003년 10월 30일)과 해제

서울에 낭월명리학당지부를 개설한 이후로 약 3년여가 흐른 시간입니다. 그 사이에 계속해서 감로사에서나 각 지부를 통해서 공부를 하신 벗님들이 각기 인연이 있는 지역에다가 낭월명리학당을 개설하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12월 31]자로 전국의 지부는 해지하게 되었습니다. 각기 나름대로 정진을 하여 자신의 길을 갈 정도로 공부가 되기도 했고, 또 시간이 경과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어서 고민 끝에 해지하게 되었습니다.

 

13. 4차 업그레이드 (2003년 11월 11일)

대대적으로 변신을 한 셈이네요. 그 동안에는 나름대로 혼자서 html로 문서를 만들어 올려드리고 게시판으로 관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탈태환골의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자꾸만 주변에서 홈페이지를 다시 손보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가 있어서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보시는바와 같은 멋진 모습으로 벗님을 뵙게 되었네요. 오랫동안 관리해온 묵은 게시판들을 정리하느라고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는 작업팀의 소식도 있고 보면 참으로 오랫동안의 인연들이 정리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깝게도 일부 게시판은 못쓰게 되기도 했습니다. 초기의 문답게시판과 불교문답의 일부 자료는 복구가 불가능하게 되어 부득이 포기를 했습니다. 열 손가락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못쓰게 된 자료는 참 아깝네요. 그래도 또 다시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14. 현공풍수학 도입 (2005년 5월)과 중지

2005년에 새롭게 공부를 하게 된 학문이 현공풍수입니다. 자명스님의 인연이 되어서 연구하면서 가을에는 <<신나는현공풍수-입문편>>을 함께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답산을 다니면서 현공풍수의 묘한 이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로사에서 가을에 개강한 내용에서도 현공풍수를 자명스님 초청으로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4월) 일년여를 연구하던 현공풍수를 중지하고 다시 연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생각하고 달려들었으나, 대만에 가서 관련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현공풍수에도 그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며 각각의 대가마다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기법에 해당하는 현공풍수만 알아서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날을 주는 것과 같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어서 다시 형세법부터 차근차근 공부하여 접근할 생각으로 풍수마당을 닫게 되었습니다.

 

15. 역학전문쇼핑몰 개설 (2005년 여름)

벗님들이 공부를 하시다가 보니까 아무래도 중국에서 나온 책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크셨던가 봅니다. 문의를 하시는대로 답변을 드리다가, 약간의 서적을 소개하는 것에서 진일보 하여, 전문쇼핑몰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자꾸만 커지는 모양이네요. 마침 낭월의 손이 되어서 일을 해주는 화인이 있어서 전부 맡길 수가 있기에 엄두를 냈습니다만, 진행하는 과정에서 책이나 나경을 구입하기 위해서 연락을 많이 주시고, 책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신다고 하는 연락을 들을 때에는 분주한 만큼의 보람도 느끼겠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쇼핑몰을 개설하게 되면서, 다시 카드결재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상담실이나 수업료에 대해서 일시로 지불하시가 부담스러우신 회원께서는 즐겨 이용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16. 동영상 강의실 개설과 확장(2004월부터)

동영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시청각의 공부가 되어서 인식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다 알고 계시는 일이겠습니다. 2004년 5월부터 시작된 강의는 현재(2006년8월)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인터넷 강의실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입문반(기초과정)
연구반(연구과정)
용신반(용신분석 공부)
임상반(실제사주풀이 공부)
적천수반(적천수신주-수요화제관주 지음) 적천수신주 강의 동영상 
심리반(60갑자 심리분석)

이와 같은 내용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각각의 반별로 수강기간은 1년으로 잡았습니다.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는 보람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스스로 노력을 하신 결과이면서도 말이지요. 늘 감사드립니다.

 

 

 

 

 

 

 18. 대만의 진춘익(陳椿益) 선생님을 만남 (2005년 1월)

대만의 선생님들을 찾아서 나선 길에 만난 분이 대북의 진춘익 선생님이었습니다. 당시 일행들과 함께 방문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음에 시간을 내어 공부하러 오겠노라고 약속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서 2007년에도 다시 방문하여 귀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로 심리분석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낭월과는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하건충선생님의 이론에 대해서 정통하고 있어서 인연이 있다고 하겠네요. 보다 실질적인 응용에 대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19. 대만의 곽목량(郭木樑) 선생님을 만남 (2006년 2월)

인연이 되기 시작하면 또 연쇄적으로 선생님을 만날 인연이 피어나는가 싶습니다. 서점에서 발견한 곽목량 선생님의 저서인 <<팔자신기묘괘(八字神機妙卦)>>가 인연이 되어서 대중(臺中)에 살고 있는 선생님을 방문하여 자평명리학의 새로운 응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실전적인 가르침은 이론에 치중하는 감이 있는 낭월의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서 방문자가 찾아 온 시간으로 관찰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2007년 여름에는 다시 시간을 만들어서 한 보름동안 눌러붙어서 진을 빼고 왔습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다고 하겠습니다.
 

 

20. 감로사 낭월명리학당은 잠정적 중지 (2007년 7월)

대략 십여년 정도의 기간으로 감로사에서 꾸준하게 자평명리학에 대한 열정을 갖고 찾아오는 벗님들과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개성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에 대해서 감당하기가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2007년 봄까지만 학당을 개설하고 다수의 연구생을 수용하는 기회는 잡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연이 있어서 공부하고 가신 많은 선생님들의 앞 길에 더욱 좋은 학문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
 

 

 21.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자는 개인지도로 할 예정 (2007년 8월)

공동으로 공부하는 것의 장점은 서로 토론하고 궁리하는 맛이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강의하는 것은 직접 수강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맞춰가게 되므로 효율적인 면에서 시간의 단축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감로사에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연구의 공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기초부터 공부를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있는 학자를 대상으로 삼고자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별도로 안내말씀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아래는 추가수정: 2010년 1월 31일자]

 

 22. 서울 봉천동에 대만역학서적과 용품 쇼핑몰 오픈 (2007년 11월)

오랜만에 문득 낭월학당의 발자취를 보니까 그 후로의 기록이 빠져있어서 보완을 합니다. 대만의 무릉출판사와 다수의 역학서적들을 수입하여 판매를 할 쇼핑몰을 개설하고자 서울의 봉천동에 조그만 공간을 빌려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주인은 화인입니다. 낭월은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강의일정을 잡아서 화인과 함께 <낭월명리학당 서울강의실>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다음에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신림동의 공간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운영이 어려우면 문을 닫고 쉬려고 했는데, 그래도 월세를 낼 만큼은 유지가 되었던가 봅니다. 다행히 수입서적도 많이 쌓여서 구색을 갖추고 나아가서 국내의 역학서적들도 점점 늘여가는 과정이 되었네요.

 

 

 23. 신림동 화인명리연구실에서 수강생 지도 (2008년 10월)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지도 2년이 되었습니다. 논산의 감로사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 대신 서울에서 강의를 하기로 하고 일정을 잡아서 인연이 있는 학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낭월의 서적을 통해서 공부를 하셨거나 혹은 발심을 하신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여기저기에서 습득한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한 경우에도 인연이 되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낭월명리학당의 강의실안내에서 살피실 수 있겠습니다.

 

 

24. 오주괘(五柱卦) 번역출판 (2009년 7월)

대만의 곽목량 선생님께 전수를 받은 오주괘에 대한 사용법을 정리하여 임상을 하면서 화인이 풀이를 한 것에 대해서 출판이 되었습니다. 책 이름도 <五柱卦>입니다. 원본은 곽목량 선생의 두번째 저서인 <팔자시공현괘(八字時空玄卦)>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오주괘를 소개하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연구하셔서 명리학으로 점괘를 활용하는 묘법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25. 서울에서 계룡산으로 이전 (2011년 2월)

서울살이의 분주함을 정리하고 계룡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쇼핑몰은 그대로 이전하여 다시 정상적으로 영업이 가능해졌습니다.

 

 

26. 시시콜콜 명리학시리즈 출판 (2010년 8월)

공부하는 자료는 많을 수록 좋습니다. 특히 가능하면 보다 더 쉬운 내용으로 기본적인 공부를 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벗님들의 의견을 이제서야 수용하여 <음양>을 시작으로 <오행>이 출간되었고, 계속해서 <천간> <지지> <간지>가 나올 예정으로 편집 중에 있습니다. 보다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찾아보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이상으로 경과를 안내해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벗님의 공부도 나날이 발전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6년 8월 28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최종수정일 2011년 4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