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8. 억부(抑扶)의 핵심(核心)

작성일
2017-05-01 06:32
조회
2225
[191]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8. 억부(抑扶)의 핵심(核心)


잠시 차를 마신 우창과 자원은 고월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集中)했다.

“억(抑)에는 약자의부(弱者宜扶)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네.”

“그 말은, ‘약한 자는 부지(扶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어떤 간지의 상황이 되어야 약자(弱者)라고 하지?”

“일간(日干)의 힘이 전체의 상황에서 5할이 되지 못하면 약자라고 할 수가 있겠네.”

“전체의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일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글자의 균형을 보는 것이라네.”

“전에 말한 영향요계(影響遙繫)는 한 글자만 보거나 없는 글자를 찾거나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것은 일단론(一端論)이라고 한 것이지.”

“아, 일단론이었구나. 그러니까 치우쳐서 한쪽으로만 답을 구하는 것은 버리라는 말이로군.”

“체용이 있는데 일단으로 구하는 것은 불가하단 말이잖은가?”

“과연 그렇군. 그러니까 필요한 것만 찾지 말고 일간에 대한 강약(强弱)의 균형을 먼저 살펴야 한단 말이지?”

“이것이야말로 경도 스승님의 핵심적인 사상(思想)이고 주장(主張)이며, 적천수의 본론(本論)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 정도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걸. 이렇게 심오한 것을 우리끼리 어떻게 해 보려고 했으니 될 턱이 없지. 하하~!

“맞아요. 역시 임싸부가 계셔야 공부가 되는 건 맞아요. 호호호~!”

“괜한 호들갑 들은 자제해 주시고. 하하~!”

“그런데 억부(抑扶)라고 하지 않고 부억(扶抑)이라고 한 것은 같은 뜻일까?”

“같으면서 다르다고 봐야지.”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또 뭔가?”

“같은 것은 글자이고, 다른 것은 의미(意味)가 되겠지.”

“글자가 같은 것은 알겠네만 의미는 앞뒤가 달라짐으로해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

“부(扶)를 앞에 놓으면, 약한 자를 먼저 생각한다는 자애심(自愛心)이 보이고, 억(抑)을 앞에 놓으면 강한 자를 먼저 대접한다는 권위심(權威心)이 보인단 말이지. 하하~!”

“아하, 그렇게 살피는 법도 있었구나. 그 차이까지는 생각을 못 했군.”

“그래서 경도 스승님은 약자를 우선한다는 의미로 ‘부지억지(扶之抑之)’라고 하셨나보구나. 역시 힘없고 약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시는군.”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억부법(抑扶法)이라고 하니까 크게 봐서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이네. 다만 글에서 부(扶)를 앞에 두었으니 그대로 살펴볼 뿐이라네.”

“알았네. 약자(弱者)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해 보도록 하지.”

“우선, 약자인지 강자인지를 봐야 하는 것이 순서라네.”

“왜 그런가?”

“사주나 사람이나 그 상황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필요로 하지 않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나?”

“사람으로 놓고 이해하니까 바로 느낌이 오는군. 당연히 타당하다고 하겠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단지 여덟 개의 글자에서 그 모든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잖은가?”

“맞아. 그래서 ‘살얼음을 밟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라네.”

“오호~! 살얼음… 여리박빙(如履薄氷)처럼 조심해서 접근하란 뜻이로군.”

“사실, 학자들이 억부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네.”

“고월은 무엇으로 그걸 알 수가 있나?”

“앞에서 팔격(八格)을 논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억부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알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진정으로 경도 스승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형상(形象)도, 방국(方局)도 팔격(八格)도 아니었단 말인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네. 왜냐하면 그 대목들을 설명할 적에는 단 한 번도 ‘도(道)’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잖은가. 이로 미뤄서 짐작을 해 보는 것이라네.”

“아니, 겨우 ‘도’라는 글자를 사용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어쩌면 편견(偏見)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네만, 본론을 말하기 전에 일반론(一般論)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하겠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네.”

“그 일반론은 옛부터 계속해서 중요하다고 각인(刻印)되어서 전해지는 이론을 말하는 것이겠지?”

“맞아, 그래서 ‘형상(形象)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수용하고, ‘방국(方局)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수용하고, 마침내 ‘팔격(八格)이 중요하다’는 이론도 일단 수용하는 듯한 몸짓을 보여준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몸짓’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그렇게 생각이 된다는 건데 뭔 상관인가? 하하하~!”

“물론 생각은 자유이네만,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 것이라네.”

“일반론으로 시작을 한 다음에 자기 생각을 표하는 것이 흐름에서도 타당하다고 보네.”

“그야 일리가 있다고 하겠군.”

“앞서 형상에서는 전체적으로 보는 이야기를 논했으니 이로써 경도 스승님이 주장한다면, ‘내가 전체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셈이지.”

“아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역시 고월의 분석력은 탁월(卓越)하군.”

“다음으로 방국에서도 남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나도 분명히 언급했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말이라고 보이네.”

“옳거니~!”

“마지막으로 남들이 나름대로 최첨단(最尖端)의 이론이라고 소란을 피우는 팔격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는 확증(確證)을 남기는 것이지.”

“물론 격국의 논리에서 영향요계는 털어버린다는 주장조차도 수용한다는 의미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네.”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놀라운 판단이군.”

“이렇게 모든 정리(整理)를 한 경도 스승님이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할까?”

“고월의 말을 듣고 보니까, 정리가 아니라 정지(整地)를 한 것이라는 생각조차 드는걸. 뭔가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에 허드렛일들을 먼저 해치운다는 느낌이라서 말이네. 이제 준비가 끝났으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맞아, 그래서 비로소 그렇게 하고 싶었던 ‘도(道)’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이라네.”

“아, 그렇게 심중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군. 연속적으로 감탄을 하게 되네.”

“동의를 해 주니 고맙네. 역시 나를 알아주는 자는 우창일세. 하하~!”

“무슨 말씀이세요. 자원도 있답니다. 기억해 주세요. 호호호~!”

“아, 그렇군. 자원도 열심히 따라와 주니 고맙지. 하하~!”

“당연하죠~! 이러한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답니다.”

우창은 몽유원에서 들은 자원의 내력이 문득 생각이 나서 더욱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마음의 시련을 겪고, 몸의 단련을 받으면서 이 여인이 오늘을 누리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월의 생각에 경도 스승님은 이 항목을 말하기 위해서 많이도 참아 왔다는 것이 보인다는 말이지?”

“그렇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을 풍기고 싶으셨던 거야. 그것은 ‘도유체용’에서 알 수가 있지. 도유체용이 아니라 ‘명유체용(命有體用)’이라고 했더라도 뜻에는 별반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명료했을 것이네.”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네. 명(命)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도(道)라고 씀으로써 자신의 말에 힘을 가득 담아내는 것이라네. 무공으로 말한다면 단전에 가득 서린 내공을 실어서 사자후(獅子吼)를 하는 것이었네.”

“아항~! 사자후를 하게 되면 웬만큼 내공이 강하지 않으면 고막이 터지고 허약한 사람은 피를 토하고 죽는 거잖아요? 그걸 임싸부가 또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참 신기해요.”

“귀가 효도를 한다네. 오다가다 들었던 이야기들이란 말이네. 하하~!”

“역시 견문(見聞)이 많아야 사유(思惟)도 풍부하다는 것을 알겠네요. 저도 많이 보고 많이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겠어요.”

그 말에 우창이 장단을 쳤다.

“암, 그러셔야지.”

“경도 스승님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부지억지(扶之抑之)’였다는 것을 ‘도(道)’의 한 글자를 통해서 주목해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네.”

“더구나 그것을 체용(體用)의 관점으로 보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지?”

“물론이네. 도(道)가 체를 이루면, 덕(德)은 용으로 베푸는 것이 ‘공이 이뤄지면 자연과 나누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

“엇? 갑자기 덕이 나오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걸? 무슨 뜻인가?”

“자연의 이치는 도가 되고, 그 이치를 따라서 베푸는 것은 덕이라네. 그래서 사주의 간지가 도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치에 맞게 적당하게 답을 찾는 것을 시덕(施德)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아, 사주를 제대로 풀이하는 것이 ‘덕을 베푸는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제대로 풀이하는 기준을 ‘부지억지(扶之抑之)’라고 했단 말인 거지?”

“물론이네. 이것을 간과(看過)하고는 올바른 체용의 이치에 따라서 사주를 풀이할 수가 없다고 본 것이지.”

“그 정도로 기준을 확실히 갖고서 적천수를 썼다는 이야기로군.”

“맞아. 매우 치밀하게 구상을 한 다음에 쓴 것임이 분명하다네. 그냥 오다가다 생각이 나는 대로 끄적거린 것은 분명히 아니란 말이지. 물론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지.”

“그러니까, 기존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서 견해를 피력(披瀝)했단 말이지?”

“나는 적천수를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지.”

“타당한 해석으로 생각되네. 나도 고월의 의견에 동의하겠네.”

“이해가 되셨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약자(弱者)를 부지(扶持)하여 도움을 주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볼까?”

“왜 아니겠나. 적천수를 읽을 수준은 적어도 고월의 수준은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도 이 대목에서 명료(明瞭)하게 알겠군.”

“초학자는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봐야겠지?”

“초학자가 다 뭔가, 웬만해서는 고급 수준의 학자라도 해석에서 혼란이 생길 가능성은 농후(濃厚)하다고 해야 하겠지 싶네.”

“그럴 수도 있지. 적어도 마음을 열고 접근하지 않으면 바로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네.”

“무슨 뜻인지 알았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얼음판을 걷듯이 하겠네.”

“부억(扶抑)은 강약(强弱)에 따른 불균형(不均衡)을 균형으로 바로 잡는 방법이고, 그것에 도가 있다고 본 것이 경도 스승님의 깨달음이지.”

“아하~! 그러셨군. 이해가 되네. 다만 강자(强者)와 약자(弱者)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 아닌가?”

“사실 그 문제로 인해서 명리학자들 간에도 대단히 큰 혼란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 같네.”

“왜? 보는 관법이 어차피 간지일 텐데 큰 혼란이 생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걸.”

“그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 맹인모상(盲人摸象)은 이런 경우에 쓰라고 만든 사자성어(四字成語)라네.”

“맹인이 저마다 자신이 만져 본 것을 코끼리라고 한다는 이야기 말인가?”

“그렇지, 눈으로 보면 알겠지만 그게 되지 않으니까 촉각에 의지해서 만져보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 큰 놈을 저마다 한 부분씩 만져보고는 그 소감을 말하는 것이 군맹평상(群盲評象)이라고도 하지.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이 되는군. 그렇다면 강약을 구분하는 기준의 모범(模範)이 있을 것 아닌가? 그것이 중요하겠는데 말이지.”

“물론 저마다 자기 방법이 최선이라고 하는 통에 공부하는 후학은 계속해서 혼란을 겪게 되겠지만 그래 가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정답에 다가가는 것이니 또한 의미는 있다고 해야겠지.”

“어려운 문제든 아니든 간에 고월은 강약의 기준을 잘 잡았을 것이 아니냐는 거지.”

“물론 내가 잡은 기준이 최선이라고 한다면 또한 다른 오류(誤謬)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일단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의 기준은 된다고 하겠네.”

“그만하면 충분하지. 일단 나와 자원은 고월의 경지에 편승(便乘)하고 그다음 문제는 또 다음에 생각하려네. 그래도 되겠지?”

“좋은 생각이네. 하하~!”

“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이치를 설명해 주게.”

“저도요~! 준비 완료되었어요. 호호~!

고월은 우창과 자원을 보면서 생각이 가다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