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7. 도유체용(道有體用)

작성일
2017-04-30 08:35
조회
2210
[190]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7. 도유체용(道有體用)


우창은 역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으로 삼은 상병화(尙秉和)의 동의를 얻게 되자 나름대로 품었던 의문이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것 하나만으로 역경을 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역경이라는 이름에 눌려서 숨도 크게 못 쉬고 공감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형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이제야 비로소 체용(體用)의 이치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괘가 곤괘 다음에 놓이게 되는 것으로 인해서 말인가?”

“그렇습니다. 문왕의 선천역(先天易)에서 곤괘를 아래에 놓았던 것은 곤에서부터 양기(陽氣)가 나와서 천상에 어리게 된 것이 건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맞아. 참으로 일리가 있는 궁리였네.”

“그렇다면 역경에서도 건곤만 곤건으로 바꿔놓으면 일단 문제가 없다고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원래 건곤은 62괘의 부모(父母)거든.”

“앗~! 그러고 보니 모부(母父)라고 하지 않고 부모라고 하는 건 또 왜일까요?”

“부모? 정말 그렇군. 이것도 가정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옛사람의 계급(階級)의 관점으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원래는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자연발생적이라고 본다면 말이네. 하하~!”

“그렇겠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모부라고 했는데 남성의 우월(優越)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순서를 바꿨다고 하는 것에 동감합니다. 하하~!”

“그렇게 부모의 괘가 자리만 바꿨는데 분위기가 사뭇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것이 맞는다고 생각이 되네. 물론 우창이 생각하는 체용의 이치에도 부합이 되고 말이야.”

“잘 알겠습니다. 이제 궁금한 것이 다 풀렸습니다. 또 열심히 궁리하다가 막히는 것이 있으면 여쭈러 오겠습니다.”

그러나 상인화가 서운한 듯이 말했다.

“아니, 동생, 건인지 곤인지만 신나게 이야기하고는 휭~하니 가려고?”

“아, 누님 또 놀러 오겠습니다. 오늘은 갈망하던 답을 얻고 보니까 다른 것은 더 궁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쉬려고 그럽니다. 하하~!”

“그렇기도 하겠다. 그럼 잘 쉬고 또 다음에 봐.”

“예 누님과 형님도 편히 계십시오.”

그러자 상인화가 다시 말했다.

“동생, 그나저나 내 공부는 언제 시켜 줄 거야?”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공부를 조금 더해서 오겠습니다. 하하~!”

“그래, 기다릴게~! 그리고 자원도 좋은 사람 만났을 적에 꼭 붙잡는 거야. 우물쭈물하다가 후회하지 말고 알았지?”

“예~ 언니, 고마워요. 또 봬요~! 호호호~!”

이렇게 기쁨과 아쉬움을 갖고서 몽유원을 나온 두 사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의문이 풀린 우창이 더욱 흥겨웠다.

“령아~! 오늘 누님을 만나서 반가웠지?”

“예, 오라버니 덕분이에요.”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또 몰랐어.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겠네.”

“그게 살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로 인해서 이만큼 강하게 자랄 수도 있었으니까 또한 하늘의 뜻이려니 해요.”

“령아의 자태만 봐서는 과거에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었으리라고 상상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지.”

“공부하다 보니까 어두운 그늘이 하나씩 제거되나 봐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처소에 도착했다. 다시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적천수를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부딪치고는 마주 보면서 웃었다.

“아야~! 오라버니도 참 뭐가 그리 급하세요~!”

“쳇 남 말을 하는구나. 령아야말로 그리 급할 것이 뭐 있어?”

“저야 급하죠. 어서 공부해야 오라버니의 사랑을 받을 것 아닌가요?”

“공부만 한다고 사랑을 받나?”

“그럼요? 뭘 해야 사랑을 받죠?”

“이미 사랑을 받고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단 말이야. 하하~!”

“물론 알죠. 그렇지만 오라버니는 마구 뛰어서 달아나는데 우물쭈물하다가는 나중에는 말귀도 못 알아듣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 어찌 바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죠~!”

“그것도 맞는 말이네. 하하~!”

“자, 공부에 도움 안 되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글을 봐야죠. 설명해 주세요. 체용편에 대해서 시작을 해 놓고서는 뜬금없이 곤건(坤乾)인지 건곤인지를 해결하느라고 다 잊어버렸네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체용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을 사유하는 것은 결국 사주에서 체용을 보는 것과도 깊이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까? 어떻게 명학(命學)의 체용이 다르고, 역학(易學)의 체용이 다를까?”

“쳇, 실언(失言)했어요.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호호~!”

“음, ‘도유체용(道有體用)’이라, 도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단 말이로군. 이것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어때?”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역학이든 명학이든 모두 체용으로 논하면 되니까 한 가지로 고집하지 말라고요.”

“오호~! 응용력(應用力)은 기가 막힌다. 하하~!”

“저도 이해가 되었으니 다음 구절을 봐요.”

“다음은 ‘불가이일단론야(不可以一端論也)’로군.”

“불가(不可)는 안 된다는 뜻이잖아요?”

“맞아, 그렇다면 일단(一端)만으로 논하면 안 된다는 뜻이겠군.”

“그게 뭐죠? 누가 일단으로 도(道)를 논할까요?”

“아마도 경도 스승님이 듣기에는 도를 일단으로 논하는 경우도 있었지 싶네.”

“그렇다면 양단(兩端)으로 논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아니, 먼저 공부할 적에 이야기를 듣고서도 다 잊어버린 거야?”

“무슨 이야기를요?”

“영향요계(影響遙繫)를 벌써 잊었단 말이야?”

“아, 영향요계~! 그러니까 무조건 정관(正官)을 찾는다는 거 말이죠?”

“그건 기억하고 있군.”

“싸부의 말씀으로는, ‘일단으로 구한다’는 것은 ‘정관만 찾는다’는 말인 거예요?”

“그렇게 보이는걸. 령아는 어떻게 생각해?”

“듣고 보니 그게 맞겠네요. 그러니까 영향요계의 뒤를 이어서 ‘일단으로 구하지 말라’는 의미는 오로지 정관만 찾는 것을 경계(警戒)한 것이었단 말이죠?”

“당연하지.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대목에서 달리 일단에 대해서 거론을 할 만한 것은 없잖아?”

“맞아요. 정확하게 짚으셨네요. 오라버니는 되는데 저는 왜 같이 배워 놓고서도 그게 되지 않을까 몰라요. 흐흑~!”

“왜? 울고 싶어?”

“그렇잖구요. 아까 몽유원에서도 놀라운 오라버니의 추리력(推理力)에 령아도 감탄했지만 이미 공부가 깊으신 두 분도 놀라시던걸요.”

“그야 잔재주가 기특해서 격려해 주신 거야. 하하~!”

“잔재주가 뭐예요. 문왕과 강태공의 대화는 실제로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던걸요.”

“그랬어? 상 누님의 표정을 보니까 그럴싸하긴 했나봐. 하하~!”

“그럼요. 누가 들어도 설득력이 있었는걸요.”

“그 이야기는 이제 됐고, 일단의 이치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으면 다음 구절을 봐야지.”

“아, 참 맞아요. 다음 구절이 왠지 중요할 것 같아요.”

“다음은 ‘요재부지억지득기의(要在扶之抑之得其宜)’라고 했군.”

“그러니까, ‘중요(重要)한 것은, 부억(扶抑)에서의 그 옳음을 얻는 것’이란 말인가요?”

“이제 령아도 적천수(滴天髓)를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준이 되었나 보다.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면 말이지.”

“저도 모르게 어느 사이에 약간의 공부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대략 어떤 느낌인지 전달이 알싸~하게 오거든요. 호호~!”

우창이 칭찬을 하자 자원도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싸부가 하시는 말은 뭐든 듣기 좋아요. 그래서 행복이 가슴속에서 뭉클뭉클 솟아오른단 말이에요.”

“참 좋은 일이지 뭐야. 하하~!”

“그런데 부억(扶抑)이 뭐죠? 부는 부지(扶持)하는 것이고, 억은 억제(抑制)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이게 맞는 걸까요?”

“틀림없을 것으로 봐.”

“그렇다면 ‘도(道)는 부억(扶抑)이다.’라는 말이 되는 건가요?”

“요약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겠네.”

“정리하면, ‘도가 체용이고, 체용에 따라서 부억(扶抑)한다.’는 말이네요?”

“아마도 여태까지 공부한 적천수의 핵심(核心)이 여기에서 드러난다고 봐도 되겠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우창이 문을 열어보니 고월이 먹을 것을 가득 들고 왔다.

“아니, 고월이 아닌가?”

“잘 계셨는가? 여전히 공부하느라고 여념이 없으시군.”

“여, 오랜만이군~!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디에서 나타난 건가? 어서 들어와. 뭘 이렇게 가득 들고 온 건가?”

고월이 찾아오는 바람에 공부는 중단되었다. 그보다도 과일이며 과자들을 갖고 와서 자원이 더 좋아했다.

“호호~! 임싸부 덕에 입이 호강하네요. 고마워요. 호호~!”

“그런데 어디 좋은 곳에 다녀왔는가?”

“아, 예전에 알던 벗이 있는데 성혼(成婚)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녀왔다네. 천진까지 다녀오느라고 며칠 걸렸지 뭔가. 하하~!”

“그러셨군. 이렇게 보따리를 들고 오느라고 더 고생이 많으셨겠는걸.”

“이것은 청도(靑島)에 들려서 공부에 여념이 없는 도반들에게 뭔가 입맛이라도 다실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몇 가지 구해 온 것이라네.”

“덕분에 자원이 저리도 좋아하는군. 잘하셨네. 잘 먹겠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둘이 공부하다가 뭔가 허전했는데 마침 돌아온 고월을 보니 더 반가웠다.

“고월이 없는 동안 공부도 별로 하지 못했다네. 물어볼 수가 없으니 공부도 재미가 없었고.”

“괜한 핑계인 줄을 내가 모르겠는가. 얼굴을 보니 너무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쓰여 있는 것이 보이는군.”

“그랬나? 과연 고월의 눈매는 여전히 매섭군.”

그러면서 그 간의 일에 대해서 담소하면서 나눴다. 다만 자원의 옛날 인연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즐겁지 않은 이야기는 한 번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고월이 말했다.

“그런데 무슨 공부를 하고 있었나?”

“먼저 하던 것에 이어서 체용장을 보고 있는데 그렇잖아도 딱 막혔지 뭔가.”

“그래? 어디에서 막히던가?”

“내용을 봐서는 ‘도(道)는 부억(扶抑)에 있다’는데 이것에 대해서 자원에게 정확히 말을 해 줄 수가 없어서 마침 난감하던 순간에 고월이 나타난 것이라네. 그러니 구세주이지 뭔가. 하하~!”

“아, 그 대목이었군. 나도 매우 좋아하는 대목이었는데 하마터면 놓칠 뻔했군.

“부억(扶抑)과 체용(體用)과 일단(一端)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상(昭詳)하게 설명해 주셔보게.”

“그 대목이야말로 적천수에서 논하는 핵심(核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러니까 경도 스승님이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여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벌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라네.”

“글이 뜻만 봐도 그런 것 같은 느낌은 들었네.”

“여기에서 말하는 체용은 사주의 여덟 글자를 체로 삼고, 그 글자들의 쓰임새를 용으로 놓고 말하는 것이라네.”

“어쩐지, 뭔가 허전했어. 이제야 제대로 해석이 해석다워지는군.”

“잘하면서 뭘 또 엄살을 부리시나? 하하~!”

“그러니까, 사주를 체로 삼고 해석을 용으로 삼는단 말인가?”

“맞아, 사주에 맞는 해석은 올바른 용도가 되고, 사주에 맞지 않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 일단(一端)이든 한쪽이든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단 말이네.”

“도대체 얼마나 균형을 잃은 사주풀이가 난무(亂舞)했길래 이렇게도 구구절절(句句節節)하게 간곡한 억부(抑扶)의 균형을 강조하는 거란 말인가?”

“분위기만 봐도 당시의 명학계(命學界)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이론으로 운명을 다뤘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내 말이 그 말이네. 그래서 비록 체용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그 속에 깃든 슬픈 현실은 많은 여운(餘韻)을 남기는 거지.”

“한 줄의 글을 보면서 그 옛날의 풍경을 그려내니 고월도 참 대단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학자로군.”

“뭐, 상상력으로 논한다면 우창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텐데 뭘.”

“그건 무슨 말인가?”

“아니, 몰라서 묻나? 문왕과 강태공의 이야기는 생동감조차 느껴지잖은가? 나도 그러한 상상을 할 수가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거든.”

“그런가? 재미있기는 하지? 하하~!”

“억부의 이야기는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라네. 그래서 다시 궁리를 해 봐야 할 대목이라고 하겠네. 차근차근 생각해 보세.”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에 자원이 차를 만들어서는 잔에 따라서 각자의 앞에 놓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합장(合掌)하고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