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5. 불치하문(不恥下問)

작성일
2017-04-2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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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5. 불치하문(不恥下問)



그러자,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상인화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이제야 그 잘난 오라버니의 궤변(詭辯)이 얼마나 허망한 사상누각(沙上樓閣)이었는지를 깨달으셨죠?”

“아니, 누이가 그렇게까지 말을 할 줄은 몰랐는걸. 내가 무슨 궤변을 늘어놓았단 말인가?”

상병화는 정색을 하고서 상인화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걸 확인까지 하느냐는 듯이 말을 받았다.

“당연하죠. 이치에 크고 작은 것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작은 미물도 음양으로 짝을 이루고 아무리 큰 코끼리도 음양으로 짝을 이루는데 어떻게 유독 역경만 우주니 뭐니 하면서 관점이 다를 수가 있어요?”

“어허~! 오늘 누이가 작심을 했구나.”

“그럼요. 맨날 오빠에게 눌려서 있다가 오늘 동생 때문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은걸~!”

이렇게 말한 상인화는 우창에게 한쪽 눈을 찡긋~! 하고는 잘 해보라는 듯이 손뼉을 쳤다. 우창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내가 생각해 봐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는 걸 인정하네.”

“그러시다면, 우주론(宇宙論)과 지상론(地上論)에서 어느 것에 비중을 두시겠습니까?”

“지상론은 이미 주역에 나타난 논리이고, 우주론은 내가 생각해 본 것이니 아무래도 지상론에 비중을 둬야 하겠군.”

“고맙습니다. 흔쾌히 인정을 해 주시니 학문의 심연(深淵)에서는 위아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는 아량에 감동입니다.”

“이제 우창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야 하겠군. 건괘가 앞에 놓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나?”

“제 생각으로는 주역은 제왕의 관점으로 쓰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그건 또 왜?”

“건괘에서 거론하는 동물은 오직 용(龍)이지요?”

“알고 있는 그대로네, 건괘에서는 용을 논한다네.”

“천하의 걸작(傑作)이라고 꼽는 역경의 첫 괘에서 용이 나온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호~! 그랬더니 용은 제왕들이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더란 말이지?”

“맞습니다. 그래서 역경을 쓴 사람은 제왕이겠다는 추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실제로 역경은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썼다고 전하니까 왕의 관점이 맞는다고 하는 것을 인정해도 되겠네.”

“남자이고 왕이 된 사람이 역경을 썼다면 저의 추론도 일리가 있는 것일까요?”

“당연하지. 참 재미있는 발상을 하셨군.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네~!”

그러자 듣고 있는 상인화도 거들었다.

“어쩐지, 동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정말 탁월한 혜안(慧眼)을 갖고 있었구나. 멋져~!”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고 누님께서도 인정을 해 주시니 사실인지는 뒤로하고 마음은 구름을 탄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우창의 생각으로는 첫 괘는 곤괘였어야 한다는 건가?”

“맞습니다. 형님.”

“음 곤이라…….”

“아무래도 좀 대책이 없는 발상이겠지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나도 생각을 좀 해 보느라고. 왜 나는 그러한 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고.”

“괜히 어줍잖은 생각으로 형님의 통찰력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허물이 있다면 그대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먼저 입문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본질적인 이치는 오히려 우창이 먼저 깨달았다고 해야 할 것이니 오히려 나의 스승이 된 셈이네.”

그러자 자원이 손뼉을 치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와~! 정말 멋진 말씀이세요. ‘먼저 입문한 자’와 ‘먼저 깨달은 자’의 차이에 대해서 명쾌(明快)하게 정리를 해 버리시네요.”

“그것을 알아주는 것을 보니, 낭자도 공부가 만만치 않으시구나.”

“낭자라고 하지 마시고 자원으로 불러 주세요. 언니의 오빠면 제게도 오빠이신데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어쩌나요? 호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인화도 정리에 한마디 했다.

“맞아, 호칭은 대화에서 매우 중요하니까 그렇게 정리해야 하겠네. 자원은 동생이니까 오빠도 말을 편하게 해요.”

“알았네. 그럼 그렇게 하지.”

“고마워요. 상 오라버니~! 호호호~!”

“그럼 다시 우창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역경을 적지 않은 시간 궁리했지만 이러한 발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도인의 법문을 듣는군.”

“형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철부지의 망상조차도 간과(看過)하지 않으시니 용기를 내어 말이 되지 않는 줄도 모르고 중얼거려 보겠습니다.”

“긴 말은 필요 없네. 어서~!”

“저의 소견으로는, 곤괘(坤卦)를 앞에다 놓게 되면 화평(和平)해 보이고, 건괘(乾卦)를 앞에다 놓으면 위엄(威嚴)이 느껴집니다. 선입견(先入見)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그러한 느낌이 있는 것일까요? 형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과연, 멋진 생각이군. 그렇게 듣고 보니까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 계속하시게.”

“그렇다면 원래 문왕의 의도는, 역경을 자신의 통치 수단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목적이 뭘까?”

“왕은 권위(權威)가 있고, 위엄이 있고, 범접(犯接)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호~! 그래서?”

“그런데 문왕이 혼자서 역경을 만들었을까요?”

“전설에 의하면 강태공(姜太公)이 거들었다는 말이 있네.”

“강태공은 또 어떤 고인이십니까?”

“이름은 강상(姜尙)인데, 호를 강자아(姜子牙)라고도 했지. 그가 문왕을 만나서 태공(太公)의 벼슬을 받았기 때문에 보통 강태공이라고 한다네.”

“그렇다면 주역의 배열은 강태공이 한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무슨 이유로 인해서인가?”

“자신이 자기를 존대(尊大)한다는 것은 좀 우습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맨 앞에 건괘(乾卦)를 놓았다는 것은 매우 존귀해서 아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하늘과 같은 존재임을 나타낸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는걸.”

“태공은 참으로 총명하고 사려(思慮)가 깊은 지인(智人)이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봅니다.”

“그건 또 왜인가?”

“생각이 깊은 사람은 절대로 앞에 나서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자신을 보전(保全)하기 위해서이지요.”

“오호~! 사려가 깊은 것은 태공이 아니라 우창일세. 하하~!”

상병화 석연(石烟)한 마음이 흔쾌(欣快)하여 감탄을 연발했다. 젊은 학자를 만난 것에 대한 고마움도 그 안에는 묻어 있었다.

“형님의 격려가 어린 후학을 춤추게 합니다. 하하~!”

“여하튼 어서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시게.”

“강태공이 권력욕을 감추고 일인자(一人者)의 뒤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권력을 누리려는 원모(遠謀)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보통 그를 현인이라고 우러른다네.”

“과연 그런 말을 들어도 되겠다고 봅니다.”

“왜 그럴까?”

“벌써 천하의 역경에다가 왕을 앞세웠으니 왕도 마음이 편안하고, 대신들도 그의 겸양(謙讓)을 칭송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한 몸은 안전하게 지켜지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으음…….”

“자신의 권력이 낮을 적에는 왕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합니다만, 일단 권력의 서열(序列)에서 왕의 다음이 된다면 왕의 자리를 넘보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래서 소인배는 왕의 의심을 사서는 재앙을 면키 어렵게 됩니다.”

“역사상으로 그런 인물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라네.”

“그런데 강태공은 확실하게 이인자(二人者)의 자리에서 왕을 절대적으로 떠받들고 질서를 확실하게 잡았기 때문에 안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원래 가난한 사람이었다더군.”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를 지킨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현자(賢者)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역경에서 맨 처음 괘에 황제(皇帝)를 앉혀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목숨은 안전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첫 괘에 곤(坤)을 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저의 소견으로는 강태공도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뭐라고? 과연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란 말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형님.”

“뭘 말인가?”

“학식(學識)이 미천(微賤)한 저도 건괘와 곤괘에 대해서 의혹을 품을 정도라면 천하의 강태공이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심히 부끄럽군.”

“아, 죄송합니다. 다만, 이것은 형님의 탓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의 탓인가? 괜히 위로하지 않아도 되네. 우창. 하하~!”

“제대로 역경의 이치를 배우신 인연으로 체계를 흐트러뜨린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門外漢)이 자유로운 망상으로 사고를 쳐도 크게 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망상이라니, 지나친 겸양일세. 오도송(悟道頌)이라고 해도 될 것이네.”

“저는 자유롭습니다. 잃을 것이라고는 목숨 하나밖에 없고, 그것도 아직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강태공은 그 위치가 다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문왕의 의심이 어찌 그에 미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랬을 것이네. 문왕도 꽤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봐야지.”

“예? 그건 왜입니까?”

“원래 자신이 왕좌를 물려받기 전에 강태공을 만나서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다더군. 그 말은 용의주도(用意周到)하고 조심성이 많았다고 봐도 되겠단 말이네.”

“아, 원래 그랬군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의심도 많은 법입니다.”

“의심으로 본다면 조조(曹操)를 능가할 사람이 없겠지만 문왕도 그에 못 미친다고 하긴 어렵겠군.”

“후세인들은 문왕을 성군이라고 하겠군요?”

“당연하지 않은가? 공자는 문왕을 닮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옹졸(擁拙)한 문왕을 그렇게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강태공의 위업(偉業)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옹졸하기까지야 했겠는가?”

“아, 이것은 상대적입니다. 강태공이 봤을 적에 그랬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야 문왕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무슨 근거라도 있기에 우창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근거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렇게 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게.”

“사실은, 옹졸하지 않았다면 분명하게 강태공에게 곤괘를 맨 앞에 놓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근거인가?”

“아마도 강태공은 미리 문왕에게 그 의사를 비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이치는 당연히 음양(陰陽)인데, 양음(陽陰)으로 역경을 시작한다는 것이 즐거웠을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오호~! 기가 막힌 추론(推論)이군.

“물론 강태공이 처음에는 그러한 의도를 살짝 내 비쳤을 것입니다.”

“상황의 설정이 그럴싸하네.”

“만약에 문왕이 대범(大凡)했더라면 당연히 곤괘가 앞에 나와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왕에게 그러한 귀띔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강태공을 알아본 사람이 문왕이라면 문왕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오호, ‘지자지 부지자부지(知者知 不知者不知)’란 말이지?”

“당연합니다. 비록 옹졸하기는 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인을 시기하고 질투했더라면 그러한 인물을 영접(迎接)했을 까닭이 없으니까요.”

“우창의 설명에는 조리(條理)가 정연(井然)한 것이 일말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군. 그래서?”

“강태공이 살짝 간을 봤는데 문왕도 그 의도를 몰랐을 까닭이 없으므로 동의를 했을 것입니다.”

“그 봐. 문왕도 동의했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문제는 말과 뜻이 서로 어긋나 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있나?”

“근거 없는 상상입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입으로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거부하는 것이 있었겠지요.”

“문왕도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텐데 설마.”

“지혜와 옹졸이 따로 놀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과 본능의 차이일 수도 있고요. 자신을 최상으로 떠받들어 줄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도 당연히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아니, 곤괘를 앞에다 놓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봤을 것이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아니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강태공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어떻게 말은 그래야 한다고 하고, 표정은 싫다고 할 수가 있었겠느냔 말이네.”

이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자원은 말을 할 것도 없고, 상인화조차도 넋을 잃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일찍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이 실화(實話)처럼 적나라(赤裸裸)하게 전개되는데 너무나 흥미진진(興味津津)했기 때문이다.

“우창의 설명이 조금 미흡한 감이 있는걸.”

“아, 그렇습니까? 원래 언변이 부실하여 그러함을 양해 바랍니다. 하하~!”

“그게 아니라, 문왕과 강태공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속내가 궁금하단 말이네.”

“아마도 강태공이 설마하니 자기 목숨을 걸고서 곤괘를 앞에 놓자고 했겠습니까?”

“뭐라고? 그게 아니면?”

“제가 생각해 본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동생 어서 이야기해 줘. 숨이 넘어가게 생겼잖아~!”

역경의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상인화가 더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진심으로 이야기에 몰입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