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4. 중천건(重天乾)이 처음인 이유

작성일
2017-04-27 05:54
조회
2007
[187]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4. 중천건(重天乾)이 처음인 이유(理由)



자원(慈園)의 이야기를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듣고 있는 상인화를 보면서 감동한 우창은 지난 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하면서 스스로 감격하는 자원의 마음에 대해서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숙연하여 뭐라고 말을 하기도 뭣해서 그냥 잠자코 분위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원이 이야기를 다 마치고 두 사람을 향해서 갑자기 절을 하고는 말했다.

“두 분의 은인이 아니었더라면 저의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짐작도 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다시 뵙고 나니 그 마음에 감개가 무량하여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네요. 거듭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러자, 상인화가 자원의 손을 잡았다.

“이제부터 과거는 잊도록 하지, 나이로 봐서 내가 몇 년 빨리 태어난 것 같으니까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겠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가당치 않아요~!”

자원이 펄쩍 뛰면서 말하자, 다시 상인화가 조용히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인연이 있으면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도 있는 거야. 우리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또 누가 알아? 그 가운데에 내가 전세(前世)에 진 빚이 있어서 동생에게 그 빚을 갚았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그런 부담감은 떨쳐버리고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 열심히 수행해서 자유를 얻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봐.”

자원이 그 말에 감격했는지 잠시 상인화를 바라보면서 목멘 소리로 말했다.

“정말 하해(河海)와 같으신 말씀에 다시 감동하게 되네요. 그리 말씀하시니 그럼 소녀도 언니라 부르고 가족처럼 의지해도 되겠는지요?”

“암, 여부가 있겠어? 나도 예쁜 동생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있겠어? 인연이 다 하는 날까지 함께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

상병화는 이러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다가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을 보고서야 말을 꺼냈다.

“나도 인화의 말에 동의(同意)하네~!”

그렇게 지난 사연의 고리를 이어서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묵묵히 듣고 본 우창이 말했다.

“두 분의 마음 씀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베푸는 자의 여유로움과 공덕(功德)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창도 마음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집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인가 싶습니다.”

그러자, 지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상인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참, 우리 이야기에 취해서 동생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잖아? 오늘 찾아온 것은 뭔가 공부할 것이 있어서인 듯싶은데 그렇지?”

우창은 이제나저제나 그 이야기를 해주기만 고대하고 있다가 문득 자기를 보면서 말하는 상인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닙니다. 누님의 이야기와 자원의 이야기에 취해서 제가 왜 왔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하하~!”

“에이~! 거짓말도 해 본 사람이 하는 거야. 동생은 천상 서생(書生)이나 해야지 장사꾼은 못 되겠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까 누님? 사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상병화도 우창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래서 물었다.

“누이에게 듣기는 했네만, 이렇게 만나보니 과연 준수한 용모에서 학자의 풍모가 저절로 배어 나오는걸. 오늘 어떤 가르침이 계시는지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세.”

“가르침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다만 궁리하다가 뭔가 사소한 것이 막혀서 그 점에 대한 고견(高見)을 듣고 싶었습니다.”

“오호~! 그래? 그게 뭐지? 어서 말해 보시게.”

상인화도 갑자기 반색했다.

“어머나~! 동생이 궁금한 것이라면 나도 궁금한 것일 거야. 도대체 그게 뭔지 어서 말해 봐~!”

“사실은 사소한 것입니다. 어쩌면 말이 되지 않는 망념(妄念)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요.”

“당연한 말이야. 오라버니가 실력은 변변치 않으셔도 동생의 궁금증에 기름을 부어 줄 정도는 될 것 같으니까 어서 이야기해 봐.”

이렇게 말하면서 손뼉을 쳤다. 기대된다는 표정에서 소녀의 호기심이 넘쳐났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자신감을 얻어서 말을 꺼냈다.

“별것은 아닙니다. 먼저 누님에게서 배운 주역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의문이 생겨서 이것이 일리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초학자의 발칙한 망상인지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 주역을 궁리하셨군. 어디 기대가 되네. 어서 말씀해 보시게나.”

“참, 그전에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는 스승님이라고 하고 싶으나 누님께서 반대하실 것 같아서 저도 형님으로 생각할 테니 우둔한 제자 동생을 거둔다고 생각하시고 그리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알았네. 그것이 편하다면 나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네. 하하하~!”

“궁금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역경의 64괘가 배치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역경의 배치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역시 질문이 예사롭지 않구나~!”

상인화가 의외라는 듯이 우창을 바라보면서 더 궁금해했다.

“질문이 유치하다고 탓하지 않으신다면 감히 말씀을 여쭙겠습니다. 역경의 처음은 중천건(重天乾)이 맞습니까?”

“그렇지, 알고 있는 그대로라네. 그런데?”

“사실은 요즘 간지(干支)의 체용(體用)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 좋지~!”

“사주의 명식(命式)을 체로 보면 그 글자들의 작용을 용이라고 보면 되겠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당연한 이야기로군. 그래서?”

“그러다가 문득 주역의 체용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호~! 그래서?”

상병화도 우창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는지 관심을 보이면서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을 이었다.

“역경은 건곤(乾坤)을 조종(祖宗)으로 삼고 그로부터 나머지의 62괘가 출현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그렇다면 건곤에다가 체용을 대입해서 해석해 볼 수가 있겠습니까?”

“어허~! 놀라운 후학(後學)이로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아마도 황당(荒唐)한 망념(妄念)이겠지요?”

“아니네. 기가 막힌 생각이네. 주역을 연구하는 사람은 건곤(乾坤)을 묶어서 체(體)로 보고 나머지를 용(用)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건곤을 체용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내가 짐짓 놀란 것이라네.”

“그렇다면, 형님의 격려에 힘을 입어서 되지도 않는 이야기이겠지만 두서없이 여쭙겠습니다.”

“이미 경이로운 생각임을 인정하네. 어서 말해 보게.”

“건곤을 놓고 보면, 건은 양이고, 곤은 음이라고 하는 것은 달리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암, 여부가 있겠는가.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네.”

“아 참, 일전에 누님을 통해서 태위운(兌爲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습니다. 언제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자 합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이야기라고. 그보다도 우창의 이야기에 더 흥미가 동하네.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게.”

“이건 조금 다른 기초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음양을 체용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해를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까?”

“음(陰)은 체(體)가 되고, 양(陽)은 용(用)이 되겠지.”

“그건 왜 그렇습니까?”

“만물은 모체(母體)에서 생겨나는 것이니까.”

상인화는 비로소 우창이 무엇을 물어보려는 것인지 느낌이 왔다. 그래서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우창을 향해서 한쪽 눈을 찡긋~했다. 무언의 격려이자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우창의 마음은 푸근하게 안정이 되었다. 상인화에게 미소로 화답을 하고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음에서 양이 나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서 부합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은 무리(無理)가 없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니, 뭐가 말인가?”

“저의 이러한 생각이 전혀 헛된 망상(妄想)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자꾸 뜸만 들이지 말고 어서 본론을 말해 보게, 나도 궁금하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건괘(乾卦)가 맨 처음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건괘가 왜 맨 처음에 나오느냔 말인가?”

“그렇습니다. 앞의 이치에 부합하려면 곤괘(坤卦)가 맨 앞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그 말을 들은 상병화는 일순(一瞬),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면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땅에서 만물이 생하고, 모체(母體)에서 자녀가 태어난다고 하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봤던 것입니다.”

“음…….”

상병화가 생각에 잠기자, 우창이 다시 다른 말로 질문을 했다.

“그럼 형님께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말해 보게.”

“주역에서는 어째서 건괘를 맨 앞에 놓은 것입니까? 이것이 질문의 순서인데 제가 급한 마음에 오히려 혼란들 야기한것 같습니다.”

“아, 그건 말이지.”

그러자 상인화가 끼어들었다.

“동생, 오늘 너무너무 잘 하고 있는 거 알지? 오라버니가 이렇게 난감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잘하네~!”

자원도 흥미진진(興味津津)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그렇잖아도 맑은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주변을 쓱~ 둘러본 우창이 다시 상병화를 바라봤다.

“건괘의 의미는 알고 있는가?”

“제가 알기로는 하늘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네. 건괘는 하늘이지. 세상에서 제일 넓고 큰 것은 무엇일까?”

“그야 아무래도 하늘이 아니겠습니까?”

“맞아, 그래서 성현께서도 건괘를 하늘로 보고 맨 처음에 놓았다고 보면 될 것이네.”

“그렇다면 주역은 하늘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지~!”

“하늘의 이치를 연구하는 분야는 천문학(天文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역이 천문학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그렇게도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지는 않지. 천문학은 또 따로 존재하니까 말이네.”

“그렇다면 주역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지.”

“좀 어렵습니다. 쉽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할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 다음에 하늘에 그 뜻을 묻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네.”

“사실은 글자의 뜻을 몰라서 여쭙는 것은 아닙니다. 형님께서는 그 뜻을 어떻게 말씀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하~!”

“그렇다면 주역의 대의(大義)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모든 학문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네.”

“결국은 주역도 인간의 삶에서 추길피흉(趨吉避凶)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전적(全的)으로 동의하네.”

“그렇다면 다시 여쭙습니다. 우주를 맨 앞에 놓은 것은 이치적으로 타당한 것입니까?”

“왜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가?”

“물론 천체학(天體學)이나 천문학이라면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보겠습니다만, 인문학(人文學)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인간의 터전인 땅에 대한 것을 앞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일리가 있는걸.”

“양음(陽陰)이라고 하지 않고 음양(陰陽)이라고 하는 이치도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습관적으로 그렇게 불러서 이름이 된 것입니까?”

이치가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만물은 음에서 시작해서 양으로 가는 것이라고 본다네. 그러므로 음을 모체로 삼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주역은 본질이 음양(陰陽)을 체로 삼고 인간의 삶에 대한 길흉을 예시(豫示)해 주는 것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동의하네.”

“그렇다면, 저의 의문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역경에 나와야 할 처음의 괘는 중지곤(重地坤)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호~! 듣고 보니 과연 우창의 깊은 통찰력(統察力)이 대단하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 이 공부를 30년이나 한 나도 그러한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네.”

“원래 ‘하룻강아지가 대책이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놀라운 이야기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의 뿌리는 우주에 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중천건(重天乾)이 맨 앞에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만 했지, 그렇게 되면 음양(陰陽)이 아니라 양음(陽陰)이 된다는 것은 미쳐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은 타성(惰性)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네.”

“그렇다면 주역의 처음이 건괘인 것은 무슨 이유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큰 이치는 양으로 시작하고, 작은 이치는 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네. 즉 우주론(宇宙論)론과 지상론(地上論)은 그 궤를 달리한다고 보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혹시 주역은 신(神)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신은 우주적인 존재이므로 소소한 인간의 관점을 벗어난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음양이 아니라 양음으로 봐야만 이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하늘은 하늘님이고, 그것은 천신(天神)이기도 하니까 말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괘가 먼저 나온다고 해서 신의 뜻이 약화된다는 생각은 되지 않는데 이것은 어떻습니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상병화가 무릎을 쳤다.

“오호~! 과연, 우창의 추론에 대해서 할 말을 잃었네~!”

“말학(末學)의 졸견(拙見)임에도 귀를 기울여 주시니 과연 형님은 대학자이심이 분명합니다. 경의(敬意)를 표합니다.”

“이거 왜 이러시나? 이미 우창도 같은 반열임을 모른단 말인가? 말학이라니 가당치 않네. 가르침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해야 할 수준임을 이미 알고 있음이네. 하하~!”

“그러시기에 더욱 감동입니다. 권위(權威)를 내려놓고 이야기 나눈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진대 말입니다.”

“우주론이라고만 생각했던 관습(慣習)으로부터 빠져나올 길을 보여 준 우창에게 도리어 내가 감사드려야지. 그게 무슨 말인가.”

상병화는 진심으로 우창의 뜻에 감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