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3. 다시 찾은 몽유원(夢遊院)

작성일
2017-04-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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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3. 다시 찾은 몽유원(夢遊院)


우창과 자원은 느긋하게 생기 넘치는 노산의 초여름 오후에 신록이 우거진 숲의 오솔길을 걸었다. 우창은 체용(體用)과 건곤(乾坤)의 관계에 대해서 상인화가 어떻게 설명을 해 줄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궁금한 것과는 별개로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싸부, 설레지요?”

“무슨 소리야? 왜 정색을 하고 그래?”

“호호~! 안 그런 척할 필요 없어요. 얼굴에 딱 쓰여 있어요. ‘나는 지금 상인화 누님을 만나고 싶어서 가슴이 방망이질하고 있음’이라고요.”

“근데, 왜 갑자기 진싸부야?”

“아이참, 이제 언행(言行)을 삼가야죠.”

“그러니까, 왜 그러느냔 말이야.”

“이유는 묻지 마세요. 그냥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호호~!”

“그래 알았어. 그런데 사실 좀 설레긴 한다. 왜 그럴까?”

“그야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걷는 사이에 몽유원에 도착했다. 숲속에 둘러싸인 몽유원은 고요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우창이 헛기침을 하고는 불렀다.

“상 누님, 우창입니다~!”

“…….”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다시 조금 큰 소리로 불렀다.

“누님~! 안에 계십니까~~!!”

여전히 안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면서 없나 보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집의 뒤뜰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소리를 따라가 후원으로 가보니까 나물을 뜯고 있는 상인화가 보였다.

“누님, 그간 편안하셨는지요~!”

“어? 아, 동생이 오셨구나. 어서와~!”

그 옆에는 처음 보는 서생(書生)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나이로 봐서 대략 오빠라고 한 상병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저, 처음 뵙겠습니다.”

“아, 이 친구인가? 인화가 말했던 학자분이?”

“맞아요. 오빠에게 말씀드렸었죠. 우창 동생이에요.”

“우창 인사드립니다.”

그러면서 두 손을 모아서 단전에 가지런히 대고는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그 남자가 화답했다.

“반갑소이다. 난 상병화라고 하오. 인연이 되어서 반갑소이다. 하하하~!”

“아, 원래 상 선생님이셨군요. 뵙고 싶었습니다.”

상인화는 옆에서 자신을 뜯어보고 있는 자원을 향해서 말했다.

“동행이 계셨군요. 어서 와요. 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진사부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어요. 조은령이라고 해요. 뵙고 싶었어요.”

“누추한 곳을 찾아 주셔서 고마워요. 어서 들어가요. 오빠도 그만하고 차나 마셔요.”

“오, 그래 그게 좋겠군.”

“두 나그네는 주인들을 뒤따라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상인화는 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시원한 차를 내놓는다.

“목이 마르실 텐데 이것 좀 마셔요. 산에서 이것저것 캐서 만든 음료예요. 자, 조 낭자도 좀 들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옆에 앉은 자원에게도 음료를 권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감사히 마시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자원이 옆에서 찻잔을 나눠주던 상인화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창이 깜짝 놀랐다. 그런데 상인화는 오히려 흡인력이 강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 손으로 자원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야말로 자매가 오랫동안 해어졌다가 만난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

자원은 말을 잃었다. 그렇게 손을 잡은 두 여인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잠시 그렇게 뭔가 교감을 하는 듯했다.

“역시,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니었네. 이게 얼마만이야~!”

“저는 혹시나 했어요. 가까이에서 보니까 비로소 생각이 난 거 있죠. 그때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서 미쳐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못 본 사이에 이렇게도 성숙하셨구나. 어떻게 알아보겠어. 그래, 아직도 하북원(河北院)에 있는 거야?”

“…….”

“아니, 왜?”

자원은 갑자기 울음이 왈칵 북받쳐 올랐는지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면서 상인화의 가슴에 파묻혔다. 우창은 갑자기 생각 못 한 상황의 전개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뭐라고 말을 꺼낼 수도 없어서 애꿎은 차만 연신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났다.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자원이 일어나서는 두 사람을 향해서 절을 했다.

“두 은인(恩人)께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감격했습니다.”

그러고는 포권을 하고 허리를 굽혔다. 두 사람은 잔잔히 웃으면서 마주 포권으로 답례를 했다.

“됐어, 어서 앉아~!”

“정말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그냥 형식으로 남기신 것으로만 생각했어요. 오늘 이렇게 뵙고 보니 참으로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겠어요. 덕분에 이렇게 잘 자랐어요.”

어리둥절한 채로 무슨 일인지를 궁금해하는 우창과 상병화를 위해서 자원이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


당시, 17세의 조은령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극심한 곤궁을 면해 보려고 천진(天津)의 동북(東北)에서 주루(酒樓)의 점원(店員)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의 활발했던 조은령은 손님들의 시중을 들면서 동남서북으로 뛰어다녔다. 그러고는 마침 밥을 먹으려는 마음에 주루로 방문한 상인화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아름다운 여인이 혼자서 주루에 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뭇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는데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음식을 주문받으려고 다가갔다.

“동파육(東坡肉) 한 근이랑 모태(茅台)도 한 병 주세요.”

“예, 그런데 같이 동석하실 일행이 있으신가요?”

“없어요. 나 혼자 왔어요.”

“아, 예 얼른 준비해서 모시겠습니다.”

“혹 괜찮으면 낭자가 합석해도 좋아요.”

“고맙습니다만, 그건 좀.”

“알았어요. 어서 일 봐요.”

조은령은 조금은 이상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으나 손님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모태주와 동파육을 가져다 올렸다. 함께 먹을 채소 요리도 필요할 것 같아서 간단히 준비된 청채(靑菜)를 겸해서 준비했다.

그렇게 별일이 없이 지나가는가 싶었다. 손님을 맞이하던 조은령이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그래서 넓은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어수선했다. 점원이 쓰러지자 주인이 쫓아 나와서 들여다보고서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보고서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정 점원들을 시켜서 들고나가라고 했다.

주인의 입장에서야 손님이 한참 들어올 시간인데,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민망한 일이기도 하고 손님들이 나가기라도 하면 오늘 장사를 망치는 셈이라고 생각해서 서둘러서 이 상황을 정리하려고 허둥댔던 것이다.

마침, 그 장면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던 여인이 점원을 불렀다.

“여봐요~!”

“예이~! 손님. 무슨 분부가 계시 온지요?”

득달같이 달려온 점원에게 여인이 말했다.

“방금 쓰러진 점원은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아, 예. 그것은 저희들이 휴식을 할 수가 있는 곳으로 옮겼으니 염려 마시고 드시던 식사를 즐겁게 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그러자 여인이 벌떡 일어나서는 보퉁이를 들고는 조용히 말했다.

“어서 나를 그곳으로 안내하세요.”

“예?”

“사람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싶어요?”

나직하지만 힘이 실린 여인의 말에 점원은 난처해서 주인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자 주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얼른 여인을 조은령이 있는 좁은 방으로 안내했다.

조은령은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여인은 다짜고짜 손목의 맥을 짚어 보고서는 봇짐에서 침통을 꺼냈다. 그리고는 매우 신속하게 태충(太衝)과 합곡(合谷)의 사관(四關)에 시침(施鍼)하고는 다시 맥을 짚어 보면서 상태를 주시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점원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서 조바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것을 본 여인이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예예~!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겠습니다. 모쪼록 살려 주십쇼~!”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망가지도록 뒀죠?”

“그건….”

“왜? 말하기 곤란한가요?”

“아닙니다. 사실은 과로(過勞)로 인해서 요 며칠은 무척이나 힘들어 했습니다요. 그러다가 급기야 이렇게 혼절을 하게 되었나 봅니다.”

“아, 대략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겠어요. 주인이 쉴 틈을 주지 않았군요.”

“아무래도 조 낭자의 외모가 고와서 손님들이 자꾸만 찾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외모가 당산에서는 출중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힘깨나 쓴다는 부호(富豪)들이 둘째 부인으로 들여앉히려고 안달이 나 있습죠.”

“그래요? 이 낭자는 그럴 마음이 없었던가요?”

“물론입니다요. 집안이 어려워서 이런 곳에 와서 몸을 담았지만 그래도 내심은 자신의 길을 가려고 기회만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요.”

막상 말을 시작하자 너분너분 잘도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여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맥을 점검하더니 다시 기다란 침을 하나 꺼내어서 가슴의 단중혈(膻中穴) 언저리에 꼽는다.

그렇게 하고 다시 맥을 짚어 보다가 이번에는 다시 굵은 침을 하나 꺼내어서 용천혈(湧泉穴)에 깊숙이 꽂았다. 그러자 비로소 반응이 나타났다.

“휴우~!”

“낭자. 정신이 좀 들어요?”

“휴~~~!”

“다행이다~!”

비로소 점원과 여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돌았다. 잠시 몸을 추스르던 조은령은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펴보고 손님이었던 여인과 점원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서야 상황을 대략 짐작했다.

“어머. 이제보니 손님께서 저를 구해 주셨군요.”

“아직 좀 더 누워있어요. 기혈이 움직이려면 한 시진(時辰:2시간)은 안정을 취하고 기다려야 해요.”

“얼른 나가봐야 해요. 이제 정신이 들었으니까 괜찮아요.”

“움직이지 말아요.”

여인의 다소 위압적인 말에 조은령도 일어나려던 몸을 도로 침상에 눕혔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여인이 점원에게 나가서 일을 보라고 내보낸 다음에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여기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되었어?”

“대략 5년은 되었나 봐요.”

“그럼 꽤 일찍부터 일을 했네?”

“부모님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미리 돈을 받아서 부모님께 드리고 그것을 갚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어요.”

“아, 그랬구나. 그래 빚은 다 갚았어요?”

“아뇨. 아직도 500냥은 더 갚아야 해요. 물론 1년은 더 일해야 하겠죠. 그것도 밤낮없이 하면 될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몸을 혹사(酷使)시키다가는 3개월을 넘기기 힘들 텐데요.”

“전에 일하던 동료 언니도 두 달 전에 그렇게 일하다가 죽었어요.”

“어머, 저런… 쯧쯧~!”

“그렇지만 전 달리 방법이 없어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럼 낭자가 하고 싶은 것은 뭐야?”

“기회가 주어진다면 학문을 열심히 배워서 못 배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은 가져 봤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뜬구름일 뿐이죠.”

“돈을 많이 벌수 있는 방법도 있었잖아?”

“예? 무슨 방법이요?”

“돈 많은 사람들이 작은 부인으로 들이려고 했었다면서?”

“아, 무슨 말씀인가 했어요. 그렇지만 속박이 싫어요. 전 나물을 뜯어 먹고 살더라도 자유롭고자 하거든요. 돈에 팔려 와서 이렇게 힘든데 또 돈을 따라서 간다는 것은 수용할 수가 없었어요.”

“그럼 내가 낭자를 사면 어떨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에게 하녀(下女)가 필요한데 낭자를 데려갔으면 해서.”

“정말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어디라도 따라가야죠. 그런데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동의할 수가 없겠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 왜? 돈 많은 남자들이야 싫다지만 나랑 같이 가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물론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의 고마운 말씀에 무한한 감사를 드려요. 다만 원숭이에게 황제의 옷을 입혀서 대궐에 가둬둔다면 행복해할까요?”

“아하~! 자유가 목숨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속박이 된다는 것은 아직은 원치 않아요. 고맙고 감사하지만 그 말씀은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이름은 하녀라도 동생처럼 아껴 줄 텐데 그래도 안 될까?”

“손님의 인품에서도 그러한 느낌이 풍겨 나옵니다. 결코 거짓을 말씀하실 분이 아니란 것을 알겠어요. 그렇지만 갇히는 것이 싫으니 부디 소녀의 작은 바람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내가 머물 곳을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고마우신 말씀이지만 아직 거금의 빚이 남아 있어서 그것도 수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이제 기운도 차린 것 같으니 또 일하러 가봐야 하겠어요.”

그러면서 몸을 일으키는 조은령에게 여인이 나직이 말했다.

“알았으니 원하는 대로 해. 몸값은 내가 주인에게 지불하고 계약문서를 받아 줄게.”

“예? 무슨 말씀이세요? 전 결코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나를 따라가서 하녀가 되는 것은 낭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잖아. 그냥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란 말이야.”

“그렇다면 거금을 소녀에게 쓰시는 까닭을 모르겠어요.”

“괜찮아. 그것도 내 마음이니까.”

여인은 계산대로 가서 주인을 불렀다. 주인이 무슨 호통이라도 당하려나 싶어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얼굴에는 아첨하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아이쿠~! 손님~! 덕분에 큰 우환거리를 해결했습니다요.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그만 가시려고 하십니까요?”

“여기~!”

그러면서 보퉁이에서 전표를 꺼내더니 500냥이라고 쓰고 수결(手決)을 했다. 주인은 영문을 모른 채로 그 모습을 휘둥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낭자는 오늘부터 자유예요. 담보 계약서 가져와요.”

“예? 아니… 그, 저…….”

“왜요? 돈이 부족해요?”

“아,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다만 왜 이렇게 보잘 것이 없는 아이에게 거금을 쓰고 데려가시려는 건가요?”

“그건 알 필요 없어요.”

그렇게 해서 계약서를 받아 든 여인은 조은령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따뜻하게 말했다.

“자, 이제 자유를 얻었으니까 어디든 가봐.”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어리둥절할 따름이에요.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마음 쓰지 마.”

“그리고 미쳐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일이 갑자기 발생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조금 전에 그랬잖아? 공부하고 싶다고.”

“그렇지만 공부를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정, 갈 곳이 없으면 천진(天津)으로 가 봐.”

“천진이야 들어봤어요. 다만 천진에 간다고 해도 아는 곳도 없는데 어디를 가야 할까요?”

“그렇다면 내가 편지를 써 줄 테니 천진의 하북원으로 가서 장로 원장을 찾아보고 이 서찰을 전해 줘. 아마 묵을 자리를 만들어 줄 거야.”

그러면서 여인은 편지에 글을 쓰고 봉해서는 조은령에게 전해주고는 휭하니 나가려고 한다. 그것을 보고 황급히 쫓아가서 붙잡았다.

“손님, 어디 사는 누구신지 성명이라도 알려 주셔야 다음에라도 이 빚을 갚을 것이니 그것만이라도 알려주고 가세요.”

“그야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열심히 공부해서 멋진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봐.”

이렇게 말을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조은령은 그 길로 천진의 하북원으로 가서 편지를 전달하고는 일을 하면서 공부할 수가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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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이름도 모르고 신세만 졌던 여인을 지금 노산의 몽유원에서 만나게 될 줄은 어찌 꿈엔들 생각했으랴. 인연(因緣)의 끈질기고도 오묘(午卯)함이란.

우창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인화를 바라봤다. 갑자기 그녀가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화신(化身)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