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2. 난데없는 산천대축(山天大畜)

작성일
2017-04-2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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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2. 난데없는 산천대축(山天大畜)



신나게 떠드는 자원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장단을 쳐줬다.

“왜? 대축(大畜)이라서?”

“그렇잖아요. 많이 모은다는 거니까 부자로 잘 산다는 뜻이 되잖아요. 호호~!”

“정말 처음인데도 제대로 18변법을 제대로 잘 익혔군. 잘 했어.”

“이제는 오라버니의 해석이 필요해요. 풀이할 수가 있는 데까지만 풀어 봐요.”

“나도 잘은 모르지. 일단 괘상이나 살펴보자.”

185-1

“상괘는 산이니까 산과 연관이 있다고 해석할까?”

“와~! 좋아요.”

“하괘는 하늘이니까 남자나 남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

“왜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사람은 산 아래나 산속에 있는 남자라는 뜻이네요.”

“가능한 해석인걸.”

“우왕~! 신기(神奇)하네요. 정말로 남편으로 삼을까 말까 생각하는 사람이 산속에 있거든요.”

“정말이야? 그것참 기가 막힌 주역의 점괘라고 해야 하겠네.”

우창도 감탄했다. 과연 점신(占神)이 존재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상인화의 점괘에 대한 풀이도 떠올랐다. 과연 점괘가 먼저인지, 운명이 먼저인지, 생각이 먼저인지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어서 주역의 설명을 읽어봐요. 이해가 다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대충이라도 살펴보도록 하죠.”

“그럴까? 어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점쟁이가 되어 보자. 하하~!”

“여기에 나온 것이 해석이에요.”

그러면서 자원이 가리키는 곳을 살펴봤다. 그러고는 소리를 내어서 읽는 자원.

“안으로 강건하고 밖으로 분수를 지키는 덕이 있으니 독실(篤實)한 괘이다. 간(艮)의 산(山)에 도(道)가 들어와서 크게 쌓이는 이치가 있으니 이것은 산에서 도를 닦아서 크게 언덕을 이루고 사람은 학문을 닦아서 후일 크게 쓰일 때가 있다.”

“어머~! 뜻이 이렇게나 좋단 말이에요?”

“나쁜 뜻으로 보이지는 않지?”

“나쁜 게 다 뭐예요. 산에서 도를 닦아서 크게 쓰일 날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더구나 사람은 성실하니 반드시 도를 이루게 된다니 이보다 더 좋은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호호호~!”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대로 풀이가 되어 있군.”

“그럼 동해서 다른 괘가 되는 것에 대해서 알아봐요.”

“나도 그게 좋겠다. 주역은 더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으니까. 하하~!”

“하괘가 7, 9, 9였으니까 7은 그대로 양으로 두고, 9는 음으로 바뀐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효의 모양은 ‘음음양’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겠네. 그러면 진위뢰(震爲雷)가 되는 괘인걸.”

“상괘는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맞아. 동한 효가 없으니까 그대로 둬야지.”

“상괘는 그대로 산이고, 하괘는 하늘에서 우레로 바뀌었어요. 그러면 산뢰가 되네요. 찾아볼게요.”

“아, 여기 있어요. 산뢰이(山雷頤䷚)라고 나오네요.”

185-2

“엉? 산뢰이라고 했어?”

“예. 맞는데요. 산뢰이예요.”

“거 참…….”

“왜요? 산뢰이는 아는 바가 있으신 거예요?”

“누님의 말씀으로는 잘 먹고 잘사는 괘라고 했거든.”

“그래요? 이건 정말 대길상(大吉祥)이잖아요? 호호호호~!”

자원은 그 말을 듣자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으면서 좋아했다. 자원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우창도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나쁜 점괘가 나오지 않아서 좋아하는 것이 더 보기가 좋았던 것이다.

문득, 다시 상인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창이 화뢰서합(火雷噬嗑䷔)에서 구사(九四)가 음효로 바뀌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을 적에 보양(保養)하여 잘 먹고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부부가 화합하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만 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원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으로 속내를 숨겼다.

“우선의 뜻은 좋아 보이지만, 주역에 통달한 사람의 관점으로는 또 어떤 변화를 찾아낼지는 모를 일이야.”

우창의 말에 자원이 까르르~ 웃으면서 답했다.

“호호호~! 그게 뭔 상관이에요? 해석할 만큼의 수준에 맞는 답이 주어지는 것이란 말을 들었는데 오늘 그것을 확인한 것 같아요. 이보다 더 명료한 것이 또 있겠느냔 생각이 들잖아요?”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오늘 저의 운명을 알았어요. 그대로 결정할래요. 그리고 주역의 공부는 다음에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찜했어요. 너무 신기하단 말이에요. 호호~!”

“결혼할 남자를 찾았단 말이야?”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되었고요. 주역에서도 체용의 논리를 적용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원이 말을 돌리는 것을 보고 우창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은 자원의 몫이기 때문이다.

“주역에다가 체용을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거지?”

“점괘는 체가 되고 그것을 풀이하는 것은 용이라고 보면 되겠어요.”

“그렇겠네. 당연한 이야기잖아?”

“오라버니에게는 당연해도 제게는 신기하단 말이죠.”

“대축(大畜)이 체가 되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풀이를 하면서 이용하겠지?”

“맞아요. 제 말이 바로 그 뜻이에요. 대축에서 변화를 할 수가 있는 것은 도대체 몇 가지나 될까요? 아니면 64가지가 모두 가능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봐. 글쎄 일없는 령아가 따져봐. 하하~!”

“궁금하긴 한데 지금의 수준으로는 안 되겠어요. 공부를 더 한 다음에 해볼게요.”

“주역에도 관심이 많이 생기셨구나?”

“물론이죠. 오라버니가 공부하시는 것은 저도 모두 배우고 말 거라고 했잖아요. 호호~!”

“주역은 참으로 단순한 것으로 무지하게 복잡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우창은 주역의 뿌리는 건곤(乾坤)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원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잠시 생각을 한 다음에 말했다.

“육효(六爻)가 모두 양으로 된 것을 뭐라고 하지?”

“그야 당연히 중천건(重天乾)이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모두 음으로 되어있는 괘는?”

“중지곤(重地坤)이요~!”

“잘 알고 있구나.”

“근데 왜 그런 기초 중에도 기초인 이야기를 하시느냐는 것이 문제이죠. 왜 그걸 물으시는 거예요?”

“역경의 64괘 중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괘가 뭐야?”

“중천건(重天乾)이네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예?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주역은 음양(陰陽)을 논하는 학문이잖아?”

“당연하죠. 도대체 오라버니는 또 무슨 공상(空想)을 하신 거예요?”

“지금 체용에 대한 공부를 하는 중 아닌가?”

“당연하죠. 음은 체(體)가 되고, 양은 용(用)이 되는 것도 이해했고요.”

“그런데 정작 64괘는 왜 건괘(乾卦䷀)가 먼저 나오느냔 말이야.”

“어? 오라버니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그렇겠네요.”

“맞지? 내가 엉뚱한 것이 아니라 역경이 엉뚱한 거지?”

“정말이네요. 처음에 나오는 괘가 곤괘(坤卦䷁)여야 말이 자연스러운데 뭔가 이상하잖아요?”

“내 말이~!”

“정말 오라버니의 발칙한 생각은 기가 막혀요. 역경에 건괘가 먼저 나오는 것에 대해서 시비를 걸 사람은 아마 천하에 오라버니밖에 없을 거예요. 호호~!”

“역경에는 곤괘로 시작된다고 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사람들이 어머니의 심성을 더 많이 갖고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오호~! 령아도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듣기 전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오라버니의 말을 듣고 보니까 느낌이 확~ 오는걸요. 정말 놀라워요.”

“고정된 생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뭔가 생각하다가 불쑥 걸리는 것이 있으면 건져 올려 보는 거야. 때로는 대물이 걸려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아무래도 오라버니 판으로 주역을 다시 써야 할 것 같잖아요?”

“무슨 말을~! 그냥 약간의 궁금증이라고 해 두자고. 나도 너무 일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다음에 경순 형님을 만나거든 물어보지 뭐.”

“령아도 기억해 둘께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곤건(坤䷁,乾䷀)이 되면 모성(母性)을 위주(爲主)로 삼아서 사유(思惟)하게 될 것이니까 얼마나 부드러운 세상이 될 것인지를 생각할 수가 있겠어.”

“동감이에요. 호호호~!”

“이렇게 되면 체(坤䷁)와 용(乾䷀)의 순서에도 완벽(完璧)하군.”

“그래요. 음은 체가 되고 용은 양이 되기 때문이죠?”

“맞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와 같은 성현도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야 공자는 고치는 것은 원치 않았을 거예요.”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냥 따르면 되는 거죠.”

“왜 따르기만 하고 고치진 않지?”

“보수적(保守的)이니까.”

“그게 뭐죠?”

“옛것을 따르는 것에 비중을 두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은 경계한 까닭일 거야.”

“그럼… 우와~!”

“왜? 갑자기 탄성(歎聲)을 지르고 그래?”

“공자보다 오라버니가 더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요.”

“그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렇잖아요? 따르는 자가 고수예요? 아니면 고치는 자가 고수예요?”

“여기에선 그렇게 비유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요?”

“말하자면, ‘오라버니는 두려움을 모르는 개척자예요’까지는 수용해 주지.”

“아항~! ‘두려움을 모르는 개척자~!’ 맞아요. 오라버니는 개척자네요. 호호~!”

“이렇게 적천수의 ‘체용(體用)’에서 주역의 건곤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생각할 줄이야 나도 몰랐었지.”

“그렇게 생각이 들면 바로 뒤집어 보는 발상의 전환이 놀라운 거예요. 아무나 그렇게 하지 못하거든요. 호호~!”

“그런가? 이제 또 누군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군.”

“아하~! 잘 되었네요. 상인화 선생님을 뵈러 가요.”

“그건 왜?”

“왜는요~! 물어보면 소상하게 잘 알려 주실 거잖아요. 그리고 저도 궁금하단 말이에요. 뵙고 싶어서요. 호호~!”

“그럴까?”

“오라버니~!”

“응?”

“괜히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뭐가?”

“얼굴에 쓰여 있단 말이에요. ‘누님을 보고 싶어라~!’라고 요. 호호~!”

“아니야~! 그럴 리가.”

“쳇, 오라버니는 여자의 타고난 능력을 과소평가(過小評價)하시는군요.”

“아, 그런가? 나도 모르게 그랬단 말이지? 그럼 뵈러 가야지. 하하~!”

“저것 봐요,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어요. 참 신기하네요. 호호~!”

“난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참 신기하군.”

“그런 경우에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가 보네요.?”

우창은 과연 여인의 영감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내심(內心), 상인화가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우아한 모습의 미소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자태와 겹치면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원과 함께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