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제16장 역경(易經)의 입문(入門)/ 6. 지자불언(知者不言)

작성일
2017-04-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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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제16장 역경(易經)의 입문(入門)


6. 지자불언(知者不言)


조곤조곤 말하는 상인화의 설명이 이어졌다.

“당연하지 않아? 어제는 옳다고 생각한 것도 오늘 생각해 보면 다시 고쳐야 할 것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야.”

“아, 그렇다면 상병화 형님께서 이미 그에 대해서 책을 통해 수정을 해야 한다고 공포하셨겠네요?”

“아니야.”

“아니, 왜요? 모르는 무지인(無知人)들에게 한 줄기의 빛을 내려줘야 하잖아요?”

“오라버니는 사소한 문제로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

“그게 왜 사소해요?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요.”

“누군가에게는 중요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거든.”

“그렇긴 하죠. 그래도 뭔가 속 시원하게 공포를 했으면 좋았겠어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을 할 수도 있지.”

“그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깨우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그렇지가 못하거든.”

“예? 이건 의외인데요.”

“얼마나 소심하고 옹졸하고 고리타분하다고.”

“그런 사람도 많기는 할 겁니다.”

“더구나, 공자도 고치지 않은 것을 감히 네가 뭔데 고치고 나서느냐고 칼이라도 들고 올지도 몰라.”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도 있습니까?”

“말도 말아. 그래서 처음에는 그 문제로 많이 고심했는데 마침내 내가 당부해서 마음속으로만 알고 공개는 하지 말자고 했어.”

“그럼 그냥 묻히고 마는 건가요?”

“그야 동생 같은 사람이 또 갈고닦아서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하다가 나중에 좋은 세상이 오면 그때가 되어서야 활발하게 토론(討論)이 이뤄지면 되지 않을까?”

“정말 급할 것이 없는 형님과 누님이시네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모난 돌이 되어서 정을 맞기보다는 조용히 후세를 기다리는 것도 삶의 지혜 중에 하나니까.”

“알아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만 하고 남들에게 발설(發說)하진 않겠습니다. 나중에라도 그 말의 출처를 추궁당하면 누님께 해로움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오호라~!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네.”

“문득 생각해 보니까, 연산역(連山易)이 완벽했다면, 왜 귀장역(歸藏易)이 나왔을 것이며, 귀장역이 완벽했다면 왜 다시 주역(周易)이 나왔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역도 또한 미흡한 부분이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겠다는 생각할 수가 있겠다는 단서(端緖)도 되겠습니다.”

“물론이야. 모든 학문은 미흡한 채로 전해주고 전해 받는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것을 연마하고 개선(改善)시키는 것이 후학이 할 일이라고 보면 될까요?”

“당연하잖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해도 모두 다 밝히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말이지요.”

“옳지. 그렇게 알고 있으면 괜한 일로 심신(心身)을 상하게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누님. 오늘 너무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명학(命學)도 마찬가지일 거야. 어제는 매우 소중했던 이론이 오늘은 허접한 쓰레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상인화의 말에 우창이 문득 실소(失笑)가 나왔다.

“맞습니다. 누님이 말씀대로 어제 공부한 내용 중에서 그러한 것이 있었습니다.”

“들어봐도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나 해 줘 봐. 궁금하네.”

“어제 배운 내용 중에 ‘그림자를 쫓고, 메아리를 따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고서(古書)에 버젓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거든요.”

“적천수(滴天髓)에 그렇게 나와 있단 말이야?”

“아닙니다. 적천수에 그러한 것이 허접한 쓰레기라고 밝혀놓았지요.”

“아마도 그 학자는 대단한 결기(決起)가 있는 분인가봐.”

“맞습니다. 경도 스승님이란 분인데, 과연 털어버리는 능력에서 어떤 확신(確信)이 느껴졌습니다.”

“명학은 그래도 될 거야.”

“왜요?”

“개인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니까.”

“그럼 역학은 안 된단 말씀인가요?”

“역학은 국사(國事)를 논하는 것이니까.”

“국사를 논하는 것일수록 더욱 바르게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생각해 봐.”

“뭘 말입니까?”

“역학자가 왕에게, ‘폐하~! 어제 소신이 판단한 주역의 점괘는 오늘 생각해 보니 잘못되었다는 것이 발견되었사옵니다. 그래서 바로잡아야 하겠기에 어제 올린 말씀을 수정해 주시옵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될까?”

“오호~! 그렇게 되면 대왕은 진노(震怒)하지 않을까요?”

“진노만 하면 그래도 괜찮지.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이 떼를 지어서 상소하고 공격하면 이겨 낼 장사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야.”

“정말 그렇겠습니다. 국사를 논한다는 것은 쉽사리 변경할 수가 없겠네요.”

“더구나 그 판단이 전쟁이라도 치러 가야 한다는 결정이었다면 어떨까?”

“정말 생각해 보니 아찔합니다.”

“그런데 태괘(兌卦)를, ‘연못이 아니라 구름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니 변경이 불가피합니다.’라고 했다가는 무슨 봉변(逢變)을 당하게 될지는 예측불허(豫測不許)인 거야. 그러니까 우리끼리만 소곤소곤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어?”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역학은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단 말씀이었군요. 또 하나 깨달았습니다.”

“실은 내가 명학에 관심이 생긴 것도 자유로운 학문의 탐색이 가능하겠다는 것도 일조(一助)한 거야.”

“아, 그러셨군요. 누님께서 명학에 관심 갖게 된 이유를 듣고 보니 더욱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과연 학문은 배우기도 어렵고,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제 팔괘(八卦)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하겠지?”

“맞습니다. 누님의 설명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팔괘의 으뜸은 건곤(乾坤)이야. 그래서 부모라고도 하잖아.”

“맞습니다. 건괘는 부친이요, 곤괘는 모친이라고 하니까요.”

“표정을 봐하니 팔괘의 기본은 잘 닦여 있구나.”

“예? 그게 보입니까? 예전에 스승님으로부터 기본적인 이야기는 들었던 적이 있어서 약간의 이해가 있을 뿐입니다.”

“그만하면 되었지. 괜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아니, 그러시면 이야기를 안 해 주시려고요?”

“그게 아니라 그다음 단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는 거야.”

우창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상인화의 표정을 보면서 사실은 자신의 속내를 읽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학문의 깊이가 얼마나 되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의 수준까지도 가늠이 될까를 생각하면서 내심 놀랐다.

“이제 중천건(重天乾䷀)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누님, 중천건이라면 대성괘(大成卦)를 말씀하시는 것이죠?”

“당연하지, 팔괘의 기초가 되어있으면 본격적으로 64괘를 탐색(探索)해 봐야 하지 않겠어?”

“사실 저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누님께서 가려운 곳을 시원스레 긁어주십니다. 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귀신이십 아니, 도사이십니다. 하하~!”

“알았어. 괜한 소리는 필요 없고, 중천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고대하고 있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중천건(重天乾)은 괘명(卦名)을 건괘(乾卦)라고도 해.”

“그런데, 중천건(重天乾)이라고 하는 것을 또 누구는 중건천(重乾天)이라고도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건지요?”

“뜻이야 같아서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이치로는 괘명(卦名)으로 적당치 않아.”

“천(天)은 형상을 설명한 것인데 그것으로 괘명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인 거죠?”

“물론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어.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아.”

“소성괘(小成卦)의 건괘와 이름이 같네요?”

“건괘만 겹쳐놨으니 이나 저나 건괘란 말이야.”

“그렇다면 64괘 중에서 적어도 8괘는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되겠네요?”

“맞아, 그냥 팔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니까.”

“그것만 해도 외울 것이 줄어들었습니다. 하하~!”

“아, 동생은 외우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힘들잖아요. 아무리 외워도 이내 사라져버리고요. 아무래도 지능(知能)이 부족한가 싶습니다.”

“외우는 것이 어려운 사람은 감성적이라서 그래.”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반대로 이성적인 사람은 외우는 것은 잘하니까.”

“놀라운 말씀이시네요. 그렇다면 저는 감성적이란 말씀이시네요?”

“맞잖아? 감정을 숨기기 어렵지?”

“예,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누님.”

“짚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냥 보면 아는 것을.”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감정이 격해지면 행동으로 드러내야만 하잖아. 주체 못하고.”

“맞습니다. 그러니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여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거야.”

“예? 그럴 리가요.”

“뭐가 ‘그럴 리가’야. 이렇게 누나도 첫눈에 반한 걸 보면 알지.”

“아니, 그게 정말이십니까. 누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처음 보는 남자를 방으로 들였겠어?”

“아, 그러셨구나. 그럼 기억력은 떨어져도 불만이 없습니다. 하하~!”

“그 봐.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사유(思惟)에 걸림이 없는 거야.”

“이성이 풍부한 사람은 사유에 걸림이 있을까요?”

“물론이야. 이것저것 따지느라고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같지.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도 접근하기를 두려워하는 거야.”

“정말 그럴 수가 있겠습니다. 생각이 많은 것은 이성적이라고 하는군요.”

“기억력이 좋은 것도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야.”

“오홋~! 말 됩니다. 말이 되어요. 하하~!”

“감성적인 사람은 기억하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거든.”

“그건 왜죠?”

“다음 상황은 또 그에 따른 상황이 있을 테니까 지금 기억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우와~! 놀랍도록 정확한 판단력이십니다. 그렇다면 누님은 이성적인 가요?”

“맞아, 나는 이성적이야. 그래서 사람을 보면서 바로 분석에 들어가지.”

“그럼 저랑은 안 맞는 거잖아요?”

“아니야, 매우 잘 맞는 거야.”

“그건 무슨 까닭입니까?”

“원래 남자는 밖을 향하는 이성적이기 때문에 감성적인 남자가 매력이 있는 것이고, 여자는 안을 향하는 감성적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여자가 매력이 있는 거야.”

“아하, ‘음양의 조화(調和)’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요?”

“맞아, 음양의 조화라고 할 수가 있어.”

“그래서 누님을 보면서 첫눈에 빨려 들어갔나 봅니다.”

“가능해. 아까 그 여인, 자원 낭자라고 했지? 그 여인은 감성적일 거야. 그래서 내가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던 거야.”

“이름도 기억하셨습니까? 왜 들어오라고 하지 않으셨는데요?”

“감성적이어서야.”

“그것과 무슨 상관이죠?”

“동생이 누나랑 이야기 나누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이니까.”

“정말로 용의주도하십니다.”

“그건 용의주도한 것이 아니고 사려(思慮)가 깊은 거야.”

“어허~! 이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누님께서 연속적으로 놀래셔서 그렇습니다. 하하~!”

“감성적인 사람은 그러게 잘 감탄하고 놀라고 웃고 울지.”

“어쩌면 그렇게도 냉정(冷情)하게 분석(分析)을 하십니까? 놀랍습니다.”

“이건, 그렇게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천성인 거야. 그렇게 타고났으므로 그렇게 보이는 것을 보고 판단하게 될 뿐이야.”

“어쨌든요.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건 왜?”

“모든 것을 내맡겨도 알아서 챙겨 주실 것 같아서입니다.”

“그게 감성적인 사람의 특징이야. 한 번 마음에 믿기로 하면 끝까지 그 감정을 갖고 가려고 하지.”

“그런가요?”

“물론이야. 그러다가 상처도 받지. 이성적인 사람은 늘 복잡한 계산을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등을 돌릴 수도 있잖아.”

“우와~!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섭습니다.”

“걱정 말아 감정이 변하지 않으면 등을 돌리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오늘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것은 기억 못 해도 그것은 꼭 기억하겠습니다.”

“원래 꼭 필요한 것이나 마음이 간 사람은 바로 기억하고 오래도록 잊지 않는 것도 감성적인 사람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

“누님의 말씀을 듣고, 구분하는 법을 생각해 보니까 뭔가 많은 것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건괘(乾卦)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까?”

“아참, 정신머리하고는, 금 새 이야기에 취해서 공부하고 있는 것도 깡그리 잊어버렸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