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제11장 간지의 변화 / 3. 무불통지(無不通知)

작성일
2017-03-0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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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3. 무불통지(無不通知)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원은 풍수의 이야기가 생소해서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참회객이 물어주는 바람에 자신의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봐서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다. 이렇게 덤으로 얻어듣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고 알찬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회객은 강호를 누비면서 권선징악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만 했었는데 오늘 문득 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새로운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다음 날에 끼니 거리가 생긴다는 말은, 칼로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롭겠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태까지 풍수학이니 지리학이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그냥 괜히 하는 소리이겠거니 했습니다. 진정으로 어떤 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까요.”

“당연한 말이오. 아마도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허둥대면서 살아갈 것이오.”

“땅의 이치를 배우려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 검객이 검도(劍道)를 가셔야지. 풍수를 배워서 뭘 하시려오?”

“칼로 억울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최선인가 싶었는데 오늘 문득 구빈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니라오. 누구든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는 법이외다.”

“여태까지 칼끝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럼에도 강호의 악인들은 여전히 날뛰고 있으니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오호~! 그렇다면 무림(武林)을 떠나서 산천(山川)의 공부나 해 보시려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늘 공부도 있고, 땅 공부도 있고, 사람 공부도 있소이다.”

“그것을 다 배워야 한다면 많은 세월이 필요하겠지요?”

“그렇소. 어쩌면 일생을 다 해도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과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니 그냥 검도(劍道)를 가는 것도 좋다고 보는 것이오.”

“검에도 도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오. 이미 참회객이라고 이름을 고치지 않으셨소?”

“뭘 깨달아서가 아니라 지은 죄를 뉘우치고자 한 것이지요.”

“그것에서 이미 검도를 깨달은 것이오.”

“과연 그럴까요?”

“아마도 그 후부터는 웬만해서 검을 뽑지 않게 되었을 것이오.”

“맞습니다. 검으로 해결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됩니다.”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오. 세상에 무도(無道)한 영역은 없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오. 그러므로 자신의 손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보는 것이오.”

“참, 흑표방의 동태를 앉아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슨 신통력(神通力)입니까?”

“신통력이 아니라, 학문이라오.”

“이론으로 그것을 배울 수가 있단 말입니까?”

“쉽진 않지만 불가능하진 않으니 공부를 하지 않겠소?”

“그것은 무슨 학문이라고 합니까? 이름이나 듣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천문(天文)의 영역이고, 점성술(占星術)도 포함하고 있소이다. 즉 천기(天機)를 볼 줄 알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고 하겠소이다.”

“아, 어디서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진인달사(眞人達士)는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들으셨소이다. 그 말이 이 말이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면 천지의 이치를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오.”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면 다 되는 것입니까?”

“아니오. 중지인사(中知人事)까지 해야 완전하다고 하겠소이다.”

“그렇게 되면 천지인(天地人)이 되는 겁니까?”

“맞소이다.”

“천문에 대해서 얼마나 믿음이 되면 노산에 흑표방이 침투한다고 하는 풍문이 강호를 뒤숭숭하게 만드는데도 태연할 수가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학문은 그렇게 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손에 잡은 듯이 명료해지는 순간이 온다오.”

“아,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로군요.”

“처음에는 무슨 소식을 접하더라도 과연 그런 것인가 싶어서 긴가민가한다오.”

“그렇다면 시작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많겠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소이까? 아니, 무예는 그렇지 않겠소?”

“맞습니다. 무인이 된다는 것도 처음에는 많은 좌절을 겪게 되지요.”

“그렇게 반복되는 난관을 뚫고 절정의 고수가 되는 것이나, 학문을 통해서 이치에 통하는 과정은 모두 같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오.”

“그렇겠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됩니다.”

“자, 이렇게 먼 길을 방문하셨는데 이렇게 차만 대접해서 될 일이 아니겠소이다. 밖으로 나가십시다. 오늘 푸짐한 저녁을 대접하겠소이다.”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심오(深奧)한 학문의 세계를 듣게 되었지 않습니까?”

“공부는 공부고, 귀한 분들이 찾아와 주셨으니 이 운산도 반드시 그래야만 하겠소이다. 하하하~!”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고월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했다. 고월이 대답을 하고는 식당의 요리사에게 저녁상을 준비시키러 가면서 두 손님에게도 머물 곳을 안내했다.

운산도 쉬셔야 할 것 같아서 자원과 우창도 작별하고 나왔다. 다만 저녁은 같이 먹어야 한다는 요청은 고맙게 받았다. 자원이 우창에게 눈짓하자 우창도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자원과 함께 처소로 돌아왔다.

모처럼 자원이 우창과 단둘이 되었다.

“오라버니와 둘이 있어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죠?”

“그렇구나. 그나저나 령아도 참 끈기가 대단하군. 그렇게 공부가 재미있어?”

“물론이죠. 오라버니께서 하는 공부는 령아도 열심히 노력해서 모두 다 깨닫고야 말 거예요. 호호~!”

“제발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겠네. 기왕 시작한 것이니 끝장을 보긴 해야지?”

“당연하죠. 오라버니를 평생을 싸부로 섬기기로 했어요. 절대로 도망가심 안 돼요. 언제까지라도 쫓아갈 거란 말이에요. 호호~!”

“그나저나 운산 선생의 수준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신 것 같지?”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가만히 앉아서 깊은 학문의 내공을 통해서 천하를 둘러본다는 것이잖아요.”

“좌견천리(坐見千里)하고, 입견만리(立見萬里)한다더니 과연 그 말이 실제로 존재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네.”

“음양과 오행의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언젠가는 오라버니도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실 것을 믿어요. 호호~!”

“암, 사람이 할 수 있는 공부라면 나라고 해서 못할 이유는 없겠지.”

“오늘 이야기로 봐서는 참회객도 공부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잖아요?”

“검 한 자루에 몸을 의지하고 천하를 누비는 사람도 때론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네.”

“몸을 연마하는 것도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정신의 수련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가는가 봐요.”

“결국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이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맞아요. 몸은 마음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난 명분을 좇아서 삶을 탕진하고 있지만 실은 내면의 세계를 완숙(完熟)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되네.”

“제 말이요. 호호~!”

“여하튼 적천수 공부는 재미있지?”

“너무너무 재미있죠.”

“다행이네.”

“임싸부가 무뚝뚝한 것처럼 보여도 내면은 따스한 분이란 것이 느껴져요.”

“아마도 삶의 여정에서 깨달은 것도 많은가 싶더군.”

“다행이에요. 가르침을 줄 스승이 없으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잖아요. 노산에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래서 공부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을 하나 보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저녁 만찬이 준비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둘은 가벼운 차림으로 특별히 진귀한 방문자를 대접하는 별채에 있는 식당으로 갔더니 이미 두 손님과 운산이 고월과 함께 이야기 속에 빠져서 분위기가 자못 달아올랐다.

둘은 가만히 빈자리에 앉아서 눈인사를 나눈 다음에 이야기에 귀를 모았다. 뭔가 배울 것이 있다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좌중을 둘러 본 운산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흑표방에 대해서는 주의를 할 상황까지도 아니고 경계는 더더욱 아니니 그냥 방치해도 된다고 보면 충분할 것이오. 하하하~!”

그러자 참회객이 말을 받았다.

“이미 설명해 주신 여러 정황들로 봤을 적에 그렇게 믿고 떠나가도 되겠습니다.”

운산이 넌지시 미끼를 던졌다.

“아, 혹 가야 할 곳이 급하지 않다면 노산에 머물면서 자연의 이치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외다 만은.”

“예? 이 죄 많은 참회객에게 그런 자리가 있겠습니까?”

“무슨 말이오. 불타의 말씀에는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고 했소이다. ‘죄업이란 것도 본래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란 말이오.”

“그러나 제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보(罪報)는 받아야지요.”

“어허, 다음 구절을 들어보시오.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亡)’이라고 했단 말이오. ‘마음이 멸하면 죄도 또한 사라지는 것’이란 뜻이 아니겠소?”

“불경에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당연하오. 그래서 한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오. 몸으로 지은 죄는 몸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몸이라고 하는 존재에 의식이 갇혀 있을 적에나 해당하는 것이오.”

“그러나, 운산 선생의 말씀을 들어봐서는 마음이나마 편히 살아가라는 뜻으로만 들립니다.”

“음. 믿지를 못하겠단 말이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만, 그것이 마음만으로 되겠는가 싶은 마음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합니다.”

“다시, 부처는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이라고 했는데, 의미를 보면, ‘죄도 사라지고 마음도 텅 비어 버린다.’는 뜻이 아니겠소?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다음에 헛된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풀었겠소?”

“그렇습니까? 그 말씀을 들으니까, 뭔가 마음속에서 시원한 한 줄기의 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구절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이오. 마지막 구절은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라고 했소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참회(懺悔)라고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까?”

“왜 아니겠소. 그대가 살아오면서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죄업들에 갇히게 되면 과거에 매여서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오.”

“참회객이 듣기에 어느 부친께서는 아들이 못된 짓을 하나씩 할 때마다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 그 말을 하시려고 그러시는구려~!”

“나중에 아들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좋은 일을 할 때마다 못을 하나씩 뽑았다는 이야기를 운산 선생도 알고 계셨군요.”

“마지막 못을 뽑았지만, 마침내 못을 뽑은 자리의 상처까지는 없애지 못했다는 이야기 아니오.”

“예, 맞습니다. 저의 죄업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씻어도 다 없앨 수가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중이랍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오~!”

“예?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의 가르침에 불과하다는 뜻이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삶은 궤적(軌跡)이 아니라 심로(心路)이기 때문이오. 마음에 따라서 생멸(生滅)하는 것을 살아온 기억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의 탁(濁)한 견해일 뿐이오.”

“저로서는 그 말씀의 뜻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 말하기를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고 했소이다. 이 운산이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마음의 세상을 잘 표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오.”

“그 말의 뜻은 ‘한 생각이 곧 한량없는 시간’이라는 뜻입니까?”

“왜 아니겠소이까. 하하하~!”

그 말을 듣고 있는 취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부처의 혜안(慧眼)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한량없이 귀중한 진리를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포권을 하고 진정 어린 표정으로 예를 표했다. 그것을 보고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운산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음식이 식으니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오.”

그러면서 노산의 산약초로 담은 술을 한 잔씩 따랐다. 그렇게 잔을 가득 채운 다음에는 운산의 권유대로 술을 마시니 그 향이 공간을 가득 메워서 향기로운 약초의 냄새가 은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