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제11장 간지의 변화 / 4.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참회법

작성일
2017-03-0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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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
[138]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4.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참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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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이 술잔에 가득 담긴 술을 들이마시고는 빈 잔을 참회객을 향해서 내밀면서 말했다.

“자, 참회객은 보시오. 조금 전에 가득 담겨 있던 향기로운 약초로 담은 술은 어디로 갔소?”

“그야 술잔에서 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주위에 감도는 향은 어찌 된 것이오?”

“향은 잔에 술이 따라질 적에 퍼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술과 향이 하나라고 생각하오? 아니면 둘이오?”

참회객이 잠시 생각하고는 답을 했다.

“그야 둘이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그렇소?”

“술은 마시는 것이고, 향은 맡는 것이니 서로 다르다고 봅니다.”

“틀렸소이다. 하하하~!”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취현이 말했다.

“하나입니다.”

“틀렸소~!”

“예? 틀렸다니요?”

의외라는 듯이 묻는 취현에게 운산이 다시 물었다.

“왜 술과 향이 하나라고 생각하셨소이까?”

“같은 항아리에서 나온 것이니 비록 둘로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하나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운산의 이야기를 듣다가 오히려 혼란스러워진 참회객이 물었다.

“그렇다면 답은 없다는 뜻입니까?”

“아니오. 답이 없는 질문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하하하~!”

“가르침을 청합니다.”

“불일불이(不一不二)~!”

“옛?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이것이 정답이었소.”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지 않소이까? 하하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참회객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운산이 아무래도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심사가 편치 않았다. 그러한 마음을 운산도 느꼈지만 개의치 않고 또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다시 생각해 봅시다. 몸과 마음은 하나요 둘이요?”

이렇게 말하자 참회객은 술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생각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분명히 뭔가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비로소 직감(直感)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낯설었지만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서부터 우러러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우창과 고월도 이목을 집중했으니 자원은 더 말을 할 나위도 없었다. 모두 운산과 참회객의 문답에 빠져들었다.

“심신일여(心身一如)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이야기지요.”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 있을 때는 어떻소?”

“예?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생사는 어떻소?”

“살아 있다는 것은 마음과 몸이 같이 있는 것이고, 죽음이란 마음과 몸이 분리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은 하나요? 둘이요?”

“둘입니다.”

“틀렸소이다.”

“그럼 하나입니다.”

“그것도 틀렸소이다.”

“다 틀렸다면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불일불이(不一不二)란 말이오.”

“그러니까, 술과 향도 불일불이, 심신도 불일불이란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말씀하시는 뜻을 모르겠습니다. 풀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라고 해도 틀렸고, 둘이라고 해도 틀렸다는 말이오.”

“그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고 해야 합니까?”

“짝짝짝~! 바로 그렇소이다. 하하하~!”

운산이 유쾌하게 박수치면서 웃었다. 그러나 참회객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죄업(罪業)과 선업(善業)도 둘이 아니란 말이오.”

“아, 그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었습니까?”

“죄업에 괴로워하는 것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란 말이오. 자 술 한 잔 더 받으시고~!”

“예.”

‘콸콸콸~!’

“쭈욱 들이키시고, 또 생각해 보시오.”

“예, 고맙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까, 죄업과 선업의 실체란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말씀 참 잘하셨소. 그럼 지금 생각해 보면 될 일이오. 실체란 것이 무엇이겠소?”

“실체(實體)란 실질적(實質的)인 물체(物體)라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겠소, 아니면 오감의 밖에 있는 것이겠소?”

“오감 밖에 있는 것이 어찌 실체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칼을 들고 적과 대했을 적에 마주하는 상대는 무엇이오?”

“그야 상대방도 검객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말이오, 그 순간 눈을 감으면 상대방은 사라지는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다가 단칼에 목숨이 날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감이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실체는 여전히 존재한단 말이오. 그래서 맹인협객도 강호를 누비는 것이 아니겠소?”

“아, 그렇긴 합니다.”

“실체는 오감 안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오감 밖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오.”

“그럼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는 것이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을 많이 죽였다면 그것은 실체이겠소?”

“그렇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소이까?”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회객이 괴로운 이유는 무엇이오?”

“그것은 기억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실재하는 것이오?”

“그것은…….”

“왜 명료하게 말을 하지 못하시오?”

“기억이 있다고 하려니 실체가 없고, 없다고 하려니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은 몸이오? 아니면 마음이오?”

“그것은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몸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몸을 떠나서 존재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호~! 진정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렇습니다. 틀림없다고 봅니다.”

“아니, 좀 이상하지 않소?”

“예? 뭐가 말입니까?”

“생각해 보시오. 좀 전에는 실체를 믿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무엇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참회객 속에 담겨 있다고 믿는 기억(記憶)~!”

“기억이 왜 실체가 아닙니까?”

“자,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돈을 빼앗았다고 합시다.”

“예.”

“그런데 그 사람이 돈은 원래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소이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좋소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돈을 빼앗긴 것은 실체가 되겠소이까?”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다면 실체라고 할 근거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옳은 말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렇다면 저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망념(妄念)~!”

“망령된 생각일 뿐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허상(虛像)을 집착하는 것이오.”

“예?”

“허상이 어찌 실체일 수가 있단 말이오?”

“듣고 보니 수긍(首肯)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묻겠소이다. 기억은 실상(實相)이오? 아니면 허상이오?”

“아무래도 허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 한번 잘 하셨소이다. 그렇다면 지금 참회객은 허상에 갇혀서 실상을 외면하는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생각해 보시오. 과거에 살상(殺傷)을 수도 없이 했다고 기억하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이란 말이오?”

“말씀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실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소이다. 무엇이 두려우시오?”

“저의 과거에 저지른 허물들이 두렵습니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소이까?”

“선량한 사람을 괴롭힌 악당들을 처단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흑표방의 움직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추적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점은 참으로 고맙소이다. 다만, 악당을 처단하면 점점 마음에 머물러 있던 살인에 대한 기억의 빚은 줄어들고 가벼워지는 것이오?”

“처음에는 그럴 줄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소. 나머지 삶에 대해서 평생 그렇게 살다가 떠날 것이오? 아니면 그러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마음을 구하고 싶소?”

“당연히 이 참혹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하하하~!”

“아니, 왜 웃으십니까?”

“이미 벗어나셨습니다. 하하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냐하면, 이미 기억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오.”

“예? 그렇습니까? 저는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내가 말했던 불경의 구절을 생각해 보시오.”

참회객은 운산이 설명했던 시구를 다시 중얼거렸다.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

마음이 소멸되면 죄도 또한 없는 것이니,

죄도 마음도 다 사라지고 나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참회이다.

 

“자, 다시 생각해 보시오. 기억에서 사라지면 죄도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셨소이까?”

“아,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맞으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머리의 어느 한 부분이 텅~ 비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깨달음이오. 이제부터는 편안한 잠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오. 자 축하주(祝賀酒) 한 잔 받으시오.”

그러면서 다시 모두에게 술을 따라 주는 운산의 술을 가득 채우고서는 운산이 권하는 대로, 모두 건배를 하고 술잔을 비웠다. 그렇게 잔을 비우고 난 참회객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제야 무엇이 이렇게도 가슴을 짓누르는지 깨달았습니다. 실체가 아닌 허상에 의해서 죄책감(罪責感)으로 스스로 괴로워했다는 것을 명료하게 이해하겠습니다.”

“그럼 된 것이오. 이제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소?”

“이제는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보다도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소이다.”

“가르쳐 주십시오.”

“참회객이라는 호를 버리시오.”

“예?”

“참회객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이제 그만하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때도 되었지 싶소이다.”

“듣고 보니 스스로 자신의 고통에 갇혀서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신의 망념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깨닫겠습니다.”

“맞았소~! 바로 그것이오. 하하하~!”

다시 호탕하게 웃고 난 운산이 제안했다.

“괜찮으시다면 이제부터 살아갈 아호를 내가 하나 지어드리고 싶은데 생각이 어떠시오?”

“생각해 보니, 자오검(子午劍)으로 천하를 누비면서 죄업을 많이도 지었는데, 혜암도인(麻衣道人)을 만나서 구제를 받았습니다. 이때에 이미 몸으로 지은 허물은 벗어났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 마음에 남은 찌꺼기를 운산 선생께서 말끔히 씻어주시니 이러한 은혜를 어찌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호~! 혜암도인께서 그대를 잡아 주셨구려. 천복(天福)이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회객 아니, 오혜량에게 다시 살아날 이름을 하나 부탁드립니다.”

“내가 방금 생각해 냈소. 일각(一覺)이라 부르면 어떻겠소?”

“예, 일각은 무슨 뜻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무슨 뜻이겠소? 오늘 비로소 천하의 은밀(隱密)한 뜻을 한바탕 깨달은 사나이라는 의미라오. 하하하~!”

“감히~ 그러한 이름을 주신다면 일평생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좌중이 모두 일제히 박수쳤다. 기나긴 참회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지 참회객은 다시 일각(一覺) 오혜량으로 거듭 태어나는 순간에 표정이 여러 가지로 변했다. 그러다가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에게 인사를 했다.

“거듭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강호를 누비던 한 마리의 불나비에서 깊은 철학의 세계로 파고 들어갈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과연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오늘 이 순간의 자유를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이미 입문을 한 취현이 말했다.

“축하하오. 스승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다고 했소이다.”

“이제 육감으로 살아온 강호의 모든 은원(恩怨)을 잊고 정신세계의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머물고자 합니다. 하하~!”

그러자, 고월, 우창, 자원은 자리에서 물러나도 좋을 것 같아서 작별을 고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취현(京坊)과 일각(一覺)은 운산이 들려주는 술수(術數)의 세계와 함께, 천지(天地)에 깃든 자연의 오묘한 이치에 취해서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