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제11장 간지의 변화 / 2.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

작성일
2017-03-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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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2.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



“진싸부 자원이에요. 안에 계세요~!”

마침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입정(入定)에 들었다가 막 깨어나려던 참에 자원의 기척을 듣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래. 어서 오시게.”

“반가운 손님들을 모시고 왔어요.”

“손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참회객과 취현이 웃으면서 서 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사형님이 아니십니까? 어인 일로 여기까지 나들이를 하셨답니까? 취현형님도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반겨 맞이하는 우창을 뒤로하고 자원이 방으로 들어가서 찻물을 끓였다. 그리고는 차를 준비하기 위해서 잔들을 챙겨서 물가로 들고 나가자 다들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나야 천하가 집이니 잘 지냈다만 아우는 어느 사이에 도골 선풍이 되어 가시는군. 진리의 광채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하하하~!”

그 사이에 자원은 고월에게 가서 손님이 왔으니 동참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고월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에 본론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자원이 먼저 취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심각하게 듣고 있던 고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러한 문제라면 일단 저의 스승님께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운산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두 검객의 표정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듯했다. 그러자 우창이 나섰다.

“운산 선생은 고월의 스승님이신데 술수에 능하셔서 어떤 혜안이 있으신지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고월이 앞장을 섰다. 우창은 괜히 마음이 설렜다. 하늘같이 높은 학문을 이룬 분을 뵙고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잠시 후에 일행은 운산의 처소에 다다랐다.

인기척에 시중을 들던 동자가 얼른 나와 보고는 고월이 손님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서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와서는 안내를 한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객실로 들어가자 초로의 운산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행을 맞는다.

“멀리에서 진객들이 나들이를 하셨구려. 어서 오시오. 왕개(王介)올시다.”

“초면에 실례합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모두 각자 자리에 앉았다. 동자가 차를 내어 오자 한 모금씩 마시고는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운산이 말을 꺼냈다.

“아마도 봐하니 노산을 구하러 먼 걸음을 하셨소이다.”

“앗, 어찌 알고 계셨습니까?”

참회객 오혜량(吳慧樑)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다른 일행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역시 강호의 술사는 여느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한 우창도 궁금한 마음에 이목을 집중했다.

“흑표방이 노산을 공격한다는 이야기 말이오?”

“그것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평안하신 것을 뵈니까 걱정했던 마음이 놓입니다.”

“노산이 밖에서 보기에는 허술해 보여도 속은 제법 탄탄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외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한쪽에 있는 도면(圖面)을 가리켰다.

“현재까지의 흑표방이 움직이는 상황이라오.”

“아, 이것을 보니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동태를 살필 수가 있습니다. 놀라운 예지력이십니다. 감탄했습니다.”

참회객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흑표방의 주력은 아직도 태항산(太行山)에 머물러 있었고, 각 방의 방주들이 노산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괴(首魁)인 금의금성 초규황의 동태였다. 그는 현재 설산에 머물러 있다는 표시를 보고서 모두 의외라는 듯이 운산을 바라봤다.

“자자, 상황을 살피셨으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조용히 말을 하는 운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당금 무림에 떠도는 것은 그야말로 초구황의 작전이라고 할 수가 있소이다. 강호의 인물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져서 노산으로 모여들게 하려는 수작이지요.”

“그럼 실상은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맞소이다. 허상으로 실상을 덮으려고 하는 작전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소이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참회객이 운산을 바라봤다. 그 의도를 알아챘는지 참회객을 향해서 말했다.

“이러한 것을 풍문(風聞)이라고 하지 않겠소. 처음에 바람의 소리를 듣다가 보면 모두 그것을 실체를 본 것처럼 여기게 된다오. 이것을 기다리고 있는 초규황이오. 그러니 부화뇌동할 필요가 없는 것이오.”

담담하게 말하는 운산에게 감히 반발(反撥)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은 지울 수가 없었던 참회객이 다시 물었다.

“과연, 운산 선생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에 앉아서 그들의 동태를 어떻게 알 수가 있다는 것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참회객의 이 말을 듣고, 세 사람은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다. 감히 묻지는 못했지만 그 이유를 듣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운산은 좌중을 쓰윽 둘러 본 다음에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산골에 살고 있지만 약간의 재주가 있어서 이 정도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수준은 된다오.”

“그것은 어떤 도술(道術)로 가능한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감히 도술이라고 할 수는 없소이다. 술수(術數)라고 한다면 또 몰라도 말이오.”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앉아서 알 수가 있는지 신기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반신반의(半信半疑)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소?”

“아니, 그렇게 손바닥을 들여다보다가 막상 노산에 혈겁(血劫)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운산이 웃었다.

“하하하~!”

“…….”

“노산의 안위를 염려해 주시는 마음에 감복(感服)이오. 하하하~!”

“그 웃음은 마음을 놓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당연하오. 하하하~!”

“아니, 그래도…….”

“아무래도 연유를 약간 설명해야 할 모양이구려. 잘 들어 보시오.”

모두 이목을 집중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의 눈빛은 진작부터 반짝이고 있었다.

“운산이 한 갑자(甲子)를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술법들을 약간씩은 익혀봤소이다. 그리고 말이 되는 것은 익히고, 말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리기를 수없이 했단 말이오.”

“예, 무한한 학문의 정진력(精進力)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지를 명료하게 알았다고 해도 되겠소이다.”

“그래서 저 잔인무도(殘忍無道)한 흑표방의 무리가 쳐들어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소이다. 하하하~!”

“이 무지몽매한 참회객은 도무지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노산의 도사들을 모두 금강불괴신을 증득(證得)한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런 것을 미리 알 수가 있는 술법이 몇 가지 있소이다.”

“아니, 그런 것도 있습니까?”

“그렇소이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미리 조짐을 파악하고 대처를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오.”

“아,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것이 뭔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그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소이다만 원하신다면 대략적인 것은 말을 해 줄 수도 있소이다.”

“그러시다면 문외한도 이해할 수가 있는 수준에서 말씀을 해 주시면 이해를 해 보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존함이 어찌되시오?”

“아, 참회객으로 불러주십시오. 이름은 오혜량입니다.”

“참회객이라? 어쩌다가 그런 호를 얻게 되셨는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그것은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씻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스스로 지은 허물이야 없어질 리가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이나마 뉘우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묻지 않겠소이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사실은 풍수분야의 어느 고인이 문득 생각이 났소이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 고인께서는 자신의 호를 참회학인(懺悔學人)이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아니 왜 그렇습니까?”

“오랜 세월을 자신이 배운 이론으로 묘지(墓地)를 잡아 줬는데 나중에 지리학(地理學)에 개안을 하고 보니까 그 모든 것이 불구덩이와 물구덩이에 시신을 모신 꼴이 되었더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다오.”

“오호~! 그럴 수도 있습니까?”

“물론 학문의 관점으로 본다면 당연히 진화(進化)한다고 보면 되겠으나 막상 실제로 그러한 일을 집행(執行)한 입장에서는 아마도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이오.”

“이해가 됩니다. 마치 저의 과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강호에서 쟁쟁한 이름을 떨치던 풍수문파의 장문인이 어느 날 홀연히 아호를 참회학인이라고 바꿨을 적에 문도(門徒)들은 또 얼마나 놀랐겠소이까?”

“그랬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물론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소이다만, 무엇보다도 땅속의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도 어떤 이치가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렇다오.”

“좀 쉽게 설명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뭐 어려운 일도 아니라오. 땅속에서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기운이 흘러 다닌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오.”

“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동굴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겠구려.”

“바위틈에 난 동굴을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어떤 동굴은 훈기(薰氣)가 감돌고, 또 어떤 동굴은 냉기(冷氣)가 감도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오.”

“아, 문득 동굴이라니까 생각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참회객은 문득 혜암도인의 지시에 따라서 화산 석실에 머물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 비록 석굴이었지만 냉기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었다.

“그럴 것이오. 낮은 곳의 동굴은 냉기가 감돌고, 높은 곳의 동굴은 온기가 감돌게 되어있는 것은 음양의 이치라고 할 수가 있소이다.”

“아마도, 제가 머물던 곳은 높은 화산의 석굴이어서 냉기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이치가 이와 같음을 잘 알겠습니다.”

“맞았소이다. 이와 같이 지하에서도 오행의 기운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좋은 기운이 모여서 흩어지지 않는 곳을 명당(明堂)이나 혈처(穴處)라고 한단 말이오.”

“그렇다면 그러한 자리에 모신 시신은 편안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한 말이오.”

“또 반대로 온기가 흩어지거나 냉기가 모인 곳에 모신 시신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까?”

“참회객도 검을 붓 삼아서 이 공부를 하심이 어떻겠소? 하하하~!”

운산은 참회객이 말귀를 잘 알아듣자 마음이 유쾌해져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며 한마디 했다. 그러자 다시 참회객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니, 그런데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같은 땅인데 왜 보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의미인지요?”

“그것은 학문(學問)의 시행착오(試行錯誤)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오.”

“당금 풍수분야에서 진실로 진인(眞人)이 계신다면 누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숨은 기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한 마디로 단언을 할 수는 없을 것이오. 다만 그래도 한 사람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구빈(救貧)선생 양균송(楊筠松)을 제외하고 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는구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인가 싶습니다. 혹 일화라도 한 가지 들려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오죽하면 호를 구빈이라고 했겠소이까. 가난한 사람에게 부모의 장례를 모실 형편도 되지 않았을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고 자리를 잡아주곤 했었다오.”

“과연 진정으로 진리를 베풀 줄 아는 고인이시군요.”

“구빈선생이 점혈(點穴)한 곳에 조상을 모시면 다음 날 저녁에는 굴뚝에 밥 짓는 연기가 오른다고 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명안종사(明眼宗師)였는지는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는 일이오.”

“오호~! 그렇게나 신묘한 것이 풍수학입니까?”

모두 운산과 참회객의 이야기에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서 빠져들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풍수학은 누구나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